한국 정치史의 희귀종 ‘내각제’

  • 등록 2024.07.22 0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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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28번째 기사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정치인입니다.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았고 현재는 민생당 소속으로 최고위원과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습니다. 이내훈의 아웃사이더는 텍스트 칼럼 또는 전화 인터뷰 기사로 진행됩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한국 정치사에서 유일하게 내각제를 실시했던 때가 있었다. 바로 장면 내각 정부(1960~1961년)다. 물론 장면 내각 체제에도 대통령(故 윤보선)이 있었지만 통상 내각제는 당과 내각의 리더 총리를 중심으로 국정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장면 정부는 역대 정부 계보에 언제나 빠져 있다. 장면 정부는 무능했다는 세간의 평가가 결정적이었다. 내각 출범 이후 1년도 안 되어 5.16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막지 못 했다는 책임론이 컸다.

 

 

박정희 대통령은 장면 정부의 무능함을 부각해서 쿠데타가 불가피했음을 선전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높게 평가 받고 있는 경제성장의 기반이 됐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장면 정부에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아무래도 박정희 대통령이 지적한 장면 정부의 무능은 군부 통솔력에서 기인한 것 같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4.19 혁명 이후 집권한 장면 정부는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경찰과 군부를 통제의 대상으로만 간주했고, 두 조직의 수장을 민간인으로 임명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나아가 장면 정부가 전복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장면 정부의 실책은 비단 군부에 대한 통제 불능 뿐만이 아니었다. 그땐 언제고 제2의 6.25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불안한 정국이었음에도, 장면 정부는 국론 분열이 벌어지고 나라가 혼란스러웠음에도 아무런 국민 통합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 했다. 공산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목숨 걸고 싸우고 여기에 민족주의들까지 더해진 극심한 혼란이 해방 정국(1945~1948년) 못지 않았다. 집권 여당 민주당은 구파와 신파로 나뉘어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던 만큼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장면 정부는 어지러운 공동체를 중재하고 통합할 역량이 1도 없었다. 게다가 한반도를 자유진영의 최전선으로 삼으려는 미국 입장에선 한반도 통일이 전제된 민족주의적 목소리가 불편할 수밖에 없음에도, 장면 정부와 민주당 내부에서 그렇지 않다는 확신의 시그널을 주지 못 했다. 결국 5.16 쿠데타가 벌어졌을 때 미국은 전혀 개입하지 않고 묵인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전략적으로 반공주의를 제1의 가치로 내세워 미국의 암묵적 지지를 얻고 정국을 안정시킨 측면이 있다. 그로 인한 부정적 폐해가 지대했지만 정치인 박정희의 개인 처세술에선 그것이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는 취지다. 장면 내각은 그렇게 역사책의 뒷방으로 퇴장했다.

 

굳이 이 시점에서 장면 정부에 대해 논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면 내각제 때문이다. 내각제는 권한 분산과 함께 다수당과의 협력에 충실한 정치 시스템이다. 실권자로서 총리는 현행 대통령처럼 무지막지한 권한을 갖고 있지 않으며, 국민 여론과 여당의 평가에 따라 언제든지 내려올 수 있고 반대로 임기 없이 오랫동안 재임할 수도 있다. 내각제에서 권력기관들은 상호 견제와 균형 나아가 합의가 이뤄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치 회의감이 극에 달한 지금의 한국 정치 환경에서 내각제를 공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그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한국은 더 이상 다른 나라를 쫓아 개발을 채찍질 당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이전까지는 속도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방향이 중요하다. 다행히 우리 기업들은 역량을 가지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데 반면 정치는 전혀 그렇지 못 하고 있다. 지방선거와 총선이 모두 대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초전 취급당하고 있으며, 대권을 먹은 정당과 그렇지 못 한 정당간의 소모적인 정쟁이 한국 정치의 본질이다. 한국에서 정치는 거대한 이익집단들의 민원에만 귀를 기울이고, 다원화된 국민 계층의 신음에는 무감각하다. 폭력적인 양당은 적대적 공존이라는 관성의 범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한쪽이 권력을 잡아 정치 보복과 거부권을 남발하면, 한쪽은 탄핵과 일방적인 법안 통과로 대응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꾸역꾸역 지속됐던 제왕적 대통령제가 앞으로도 유효할 수 있을까?

 

다시 장면 정부의 내각제를 들여다보자. 우선 대통령 권한부터 살펴보자. 대통령은 국가 원수의 지위를 갖고 있으며, 양원제 의회에서 간선제로 선출되고, 국무총리 지명권, 내각의 계엄 선포에 대한 거부권, 헌법재판소 심판관 임명권만 보유했다. 지금처럼 18개 정부부처 장관 임면권을 비롯 막강한 인사권이 전혀 없었다. 물론 순서상 대통령이 먼저 뽑히고 그 대통령은 총리 지명권을 갖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민의원(하원)에서 총리를 간택한다고 볼 수 있다. 총리가 결정되면 대통령은 총리에 대해 어떠한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 총리는 내각(국무원)의 수장으로서 국무위원(장관)에 대한 임면권, 민의원 해산권 등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 당시 의회는 하원 민의원(233석)과 상원 참의원(58석)으로 구성되었고, 민의원은 대통령 지명 총리 거부권과 선출권을 갖고 있는 의회의 핵심이었다. 민의원은 법률안 및 예산안 심의권, 상하원 합의 불발시 안건 재의결 권한, 내각 불신임권 등을 행사했다. 참의원은 3년마다 정원의 절반만 선출되어 연속성을 보장받았고, 민의원이 해산될 경우 권한을 대행했다.

 

내각제의 가장 큰 특징은 내각과 의회가 긴밀한 협력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상호 불신임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점이다. 만약 현재처럼 정부 여당과 거대 야당이 극한 대립을 이어갈 경우 언제든지 내각은 의회 해산권을 행사하고, 의회는 내각 불신임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견제 권한은 정부와 의회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예방해주는 기능을 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비록 장면 정부 당시에는 이러한 내각제의 장점들이 전혀 발휘되지 않았으며 대립만 가득했다. 장면 정부의 역사적 의의가 없는 건 아니다. 권위주의 타파를 기치로 자유민주주의를 안착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장면 정부는 불가항력적인 요인들로 실패한 정부로 기억되고 있지만 상상을 해보고 싶다. 만약 장면 정부가 위기를 극복하고 조금 더 길게 존속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하지 못 했을까? 한국 정치의 초창기부터 내각제적 전통이 자리잡게 됐다면 지금처럼 이모양이었을까? 진영논리와 동서 지역주의로 나뉘어 60년 넘게 퇴화 일변도로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전 정권 대통령과 실세들이 임기가 끝날 때마다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익숙한 장면을 이제는 그만 보고 싶다.

 

이참에 우리 모두 내각제를 공부해보자. 내각제가 절대 진리라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내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한국 정치에 적합한 대안 정치 모델을 찾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헌 논의는 정치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공부하고 토론하는 풍경이 펼쳐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내훈 pyeongbum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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