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서 11년간 쉬지 않고 활동가로 살았다”

  • 등록 2024.08.20 15: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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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현장 취재: 윤동욱 기자 / 기사 작성: 박효영 기자] 20명 내외의 시민들이 아담한 공간에 모여 활동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는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5.18 민주화운동 44주년을 맞아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이라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말하자면 청년들이 5.18과 광주와 지역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고 이렇게 많이들 얘기하는데 왜 청년들이 우리 지역에 관심이 없을까라는 질문을 좀 시작을 했다. 그러면 청년들이 요즘 과연 어떤 가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이런 것들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오월 정신과도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광주라는 지역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활동들을 하고 있는 분들을 직접 만나 보고 그분들이 생각하는 5.18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7월2일 19시 광주 동구에 위치한 한걸음가게에서 <작지만 소란한 공론장> 4번째 행사가 열렸다. 호스트로 초대된 인물은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유빈 활동가다. 김 활동가는 11년차 활동가로서 2013년 5.18 기념재단 자원활동가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 당시에는 자원활동가가 없으면 재단이 돌아가지 않았다라고 생각을 할 만큼 정말 열심히 일을 했었다. 2박3일 일정이 있으면 정말 2박3일 전체에 투입될 정도로 이제 내가 일을 쉽게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뭐 큰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휴학을 앞두고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학교 도서관에서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됐다. 그래서 그걸 보고 별뜻 없이 지원을 해서 아직까지 활동가로 살고 있다.

 

김 활동가는 5.18 기념재단에서 보내주는 해외 NGO 인턴 프로그램차 태국과 캄보디아에 1년 가량 머물다 왔는데 이것이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해외 인턴 프로그램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 이런 활동을 해오지 않았을 것 같다.

 

그 이후 김 활동가는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을 거쳐 광주여성민우회 산하 성폭력 피해자 쉼터 ‘다솜누리’에서 주로 일했다. 김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살고 마주하는 작업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2020년부터 광주로와 연이 닿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 활동가는 스스로 11년간 쉬지 않고 본인의 발자취를 남겨왔던 지난 날들에 자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약간 자부심이라고 한다면 2013년부터 2024년인데 지금까지 단 두달 쉬었다. 이 기간을 전부 다 이어서 활동을 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11년간 쉼 없이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김 활동가가 준비한 슬라이드 타이틀도 부끄러움이다.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감정을 먼저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조금 힘든 상황도 많이 생기는데 날 움직이게 했던 건 부끄러움이라고 생각을 한다.

 

김 활동가는 태국에서 미얀마 이주 노동자들을 돕는 NGO 활동 경험을 떠올렸다.

 

미얀마 이주 노동자들이 불법으로 강을 넘었고 바다를 넘었고 이 사람들이 오징어, 송어가 가득 실린 큰 트럭 거기에 몸을 싣고 같이 들어왔다. 그 사람들은 일을 해야 되니까 시골에 가는 것보다 푸켓이나 이런 관광지에 가려고 하는데. 근데 4시간 동안 그 트럭 탑차에 타서 오징어와 함께 가는 와중에 20여명의 노동자들이 질식사했다. 그만큼 이 사람들이 폭력에 너무 많이 노출되고 그냥 이주를 와서 바로 죽는 경우도 다반사다.

 

 

미국 국경을 넘으려는 멕시코인들도 그렇고 북한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들어오려는 북한 사람들도 그렇고 전세계 어디에든 목숨 걸고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김 활동가는 인도네시아에서 출발한 배를 타고 1년간 육지를 밟지 못 했던 한 이주 노동자가 목숨 걸고 “바다에 뛰어내린 사연”을 접했다.

 

그분이 운이 좋게 인도네시아 해안으로 떠내려갔다. 그래서 살았고 결국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는데 그래서 자기는 절대 다시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먼나라 남일 같은 이런 일들이 2013년에 일어나고 있었다. (마침 그때 인도네시아 이주 노동자가 한국 선박에서 폭력을 당해 사망한 사건도 일어나는 등) 남일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 내 주변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걸 몰랐고 그걸 이제야 알았던 것에 대한 어떤 부끄러움이 있었다.

 

김 활동가는 캄보디아에서 만난 ‘모니라’라는 언니의 헌신적인 다정함에서도 부끄러움을 느꼈다.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지만 태어난 곳이 다르단 이유로 근본적인 폭력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캄보디아 여성들의 현실을 마주하기도 했다. 모니라 덕에 버라이어티하고 재밌는 일상을 보낼 수 있었던 김 활동가는 그 즈음 해외 인턴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복학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로 그러지 못 했다. 그러면 앞으로 뭘 하며 살까? 진로 고민 끝에 한국 친구들이 전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던 탓에 “공무원 도전해야지”라고 맘을 먹었었다. 그러나 차마 그러지 못 했다.

 

내가 시민사회 운동을 하면서 이주 노동자 인권에 앞장서겠어! 막 이런 게 아니고 모니라 같은 언니들 얘기를 했는데 그 언니들이 나한테 조건 없이 주는 다정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러면 한국에 가서 나도 힘든 사람들에게 다정함을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되게 컸던 것 같다. 그래서 활동을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다.

 

김 활동가의 활동을 관통하는 의제들은 △이주 노동자 인권 △성소수자 인권 △장애인 인권 △젠더 문제 △평화 운동 등이다. 각각의 의제 관련 활동을 해오면서도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것이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김 활동가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광주 동구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침묵은 동의가 아니다”라는 피켓을 들었던 사진을 보여주며 성평등 관련 활동 사례들을 들려줬다. 여성대회, 미투 운동 집회, 낙태죄 폐지 집회 등에 참여했고 미군 기지촌과 성매매 집결지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 성폭력 피해자들 곁을 지켰던 활동이 가장 인상적이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우리랑 같이 찍은 사진이인데 그니까 이 친구들과 있으면서도 너무 부끄러웠던 장면을 내가 마주하게 됐다. 쉼터다 보니까 가해자와 분리하기 위해, 보호 조치를 위해 입소를 한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 즉 아버지나 남자 형제로부터 피해 입은 여성들이 1번으로 들어온다. 그 피해자들이 항상 하는 얘기가 내가 피해자이고, 가족이 가해자인데 내가 왜 집에서 나와야 되는가? 너무 맞는 말이다. 근데 나는 그 친구들한테도 너무 부끄럽게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그 가족을 피해 있는 건데 어떻게 보면 그런 것들 자체가 되게 부끄러웠다.

 

 

그런데 활동을 하면 할수록 더 부끄러워졌다. 심지어 김 활동가는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칭하는 것조차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스스로가 그런 칭호를 얻어도 되는가에 대한 반성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기 고뇌 같은 걸 수도 있겠다.

 

고뇌의 결과 김 활동가는 활동가라면 무릇 “어떤 불편함, 불편감이 되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목도하는 게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이 핵심이다. 나아가 김 활동가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문제제기하고 이를 평등하게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활동가라고 정의했고 “그렇다면 나는 활동가일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5.18과 광주로 연결해본다면 전남매일 기자들이 느꼈던 부끄러움과 일맥상통한다.

 

부끄러움의 근원이라고 할까. 나는 이 부끄러움을 그냥 내 스스로 알아서 느꼈을까? 광주에 살아서 그렇지 않았을까? 약간 내가 역사 덕후였다. 막 공부하기 싫으면 역사 책 보고 그랬었는데 중학교 때 전남매일 기자들의 고백을 보고 되게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참기자잖아. 나는 부끄러운 말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걸 그대로 적어가지고 다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읽어보겠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줄도 싣지 못 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그래서 내가 이런 부끄러움을 학습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고 그리고 광주에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사실 지금은 좀 멀리 하려고 노력하는데 왜냐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활동가는 항상 지쳐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부끄러움들을 마주하는 그 과정들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냥 하기 싫으면 도망치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아니 나 아니어도 얘기를 할 사람이 많은데 나까지 나서가지고 얘기를 해야 되는 일인가. 그리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지만 나는 그 계란도 아닌 것 같고 계란 껍질인 것 같고.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맨날 한다. 사전 질문에 지치지 않고 어떻게 활동하는지 이런 질문이 있던데 나는 항상 지쳐 있다. 그런데 내가 이런 부끄러움과 지쳐 있음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나는 신념을 갖고 살아간다기보다 그냥 덜 부끄럽게 살고 싶어가지고 한 번 사는 인생 조금 그런 마음으로 지금 하고 있다.

 

 

한편, 김 활동가는 시민사회 운동을 시작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는 질문을 받고 “나는 어떤 첫 시작 창구가 있었던 것 같다”며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아니면 그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들 많이 하는데 그래서 친구들끼리 소모임을 만들어서 같이 재밌게 해보면 어떨까”라고 답했다.

 

친구들에게 이거 한 번 해볼래? 제안을 하면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새롭게 나오고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역에서 의외로 보면 소모임 지원사업 같은 걸 되게 많이 한다. 좀 소소한 예산이지만 그런 곳들에 지원을 해서 활용해볼 수 있는 방안도 있다. 만약에 그런 지원사업에 신청한다면 이제 럭키비키처럼 생각을 해서 행정 서류를 한 번 연습해 본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게 조직에 참여를 한다기보다는 그냥 자기들끼리 단둘이라도 될 것 같다.

박효영 eduna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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