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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의 불편한 하루②] 학교폭력 멈춰!! 탁상공론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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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최근 몇 개월간 스포츠계를 넘어 연예계 전반으로 학교폭력 논란이 번지고 있다. 학폭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더 이상 그저 어렸을 때의 실수나 객기로 정당화될 수 없다. 사실 그동안 학교에서는 “너네 둘이 얼른 화해해”라는 식으로 대충 처리하려고 했었다.

 

학창시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 자체로 엄청난 마음의 상처이자 평생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 청소년기에 당한 학폭 피해는 성인이 된 뒤에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특히 어느 순간 청소년들의 학폭 수위는 잔혹한 성인 범죄 이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모두의 고민과 주의가 필요하다. 절대 단순히 넘길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문제는 어렵고도 복잡한 학폭 문제를 탁상공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이다.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지난 2014년 모 중학교에서 '멈춰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도입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 친구가 괴롭힘이나 폭력을 당하고 있을 때 주변 친구들이 일제히 "멈춰!!!"라고 경고성 멘트를 외쳐주는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대구교육청에서 2012년 학폭 근절의 일환으로 도입됐는데 놀랍게도 관내 학교들에서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학폭이 많이 줄었다며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진짜? 글쎄 몹시 의문스럽다. 지금 멈춰 놀이 자체가 일종의 유튜브 밈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멈춰가 학폭 예방에 효과적이었다고? 다들 웃었을 것이다. 밈으로 소비되는 신세가 된 맥락에는 조롱의 의미가 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나를 괴롭히는 소위 일진 친구들에게 "멈춰"라고 외치면 정말 그들이 말을 듣고 멈춰줄까? 되려 더 맞지 않을까? 더욱 가혹한 폭언에 노출되지 않을까? 애초에 학폭 피해 학생의 말을 그렇게 잘 듣는 친구들이라면 왜 일진이 되었을까? 왜 괴롭히고 다닐까? 막말로 범죄자들에게 "범죄 멈춰!!!" 이렇게 외치면 대한민국의 범죄율은 줄어들까? 당장 국가기관 아무 곳에나 들어가 공무원들에게 "비리 멈춰!!!" 이렇게 외치면 공무원들이 뇌물 수수를 하지 않는 걸까?

 

청소년들도 그들 나름의 공동체가 있고 또래 집단에서의 상호작용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인데 왜 그렇게 단순하게 사고하는 것일까. 청소년을 우습게 보지 않는 이상 그런 어이없는 멈춰 프로그램이 학폭 근절의 대책으로 제시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말로 해서 다 해결된다면 범법자를 강제로 제재하는 법률은 왜 있는 것일까? 멈춰로 학폭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 대구교육청은 정말 많이 반성해야 한다. 결국 탁상행정과 탁상공론이 문제다. 보여주기식 행정 프로그램이 문제다. 실효성은 안중에도 없는 현장과 괴리된 그들만의 사고 회로가 문제다.

 

사실 멈춰 프로그램의 기원은 노르웨이다. 1982년 노르웨이의 유명 심리학자 올베우스에 의해 고안됐고 거듭된 연구 끝에 완성됐다. 멈춰 프로그램의 원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상당히 심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노르웨이에서는 멈춰 프로그램이 나름의 효과를 거뒀다. 도입 이후 2년 동안 학폭이 50%나 감소했다고 한다. 범죄심리 전문가 표창원 전 의원은 "멈춰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유의미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원래 "멈춰"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방관자 효과를 알게 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사전에 방관자 효과 관련 교육을 통해 철저히 훈련을 받은 뒤에 아이들이 "멈춰"라고 외치면 다수의 학생들이 방어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가해자가 폭력을 멈출 수 있다. 물론 학생들끼리만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이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즉 멈춰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으려면 체계적인 사전 교육과 훈련이 전제돼야 한다. 후속 대책도 구체적으로 세워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멈춰"라고 외치는 행위만 달랑 도입된 것이다. 올베우스의 멈춰를 외형만 흉내내어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교육청 관계자들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멈춰 프로그램은 2014년까지 시행되다가 거센 비판만 받고 이내 폐지됐다. 근래 들어 연이은 연예인 학폭 미투로 "멈춰" 역시 재조명되어 사람들의 조소를 사고 있는 것이다.

 

 

표 전 의원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간과 노력없이 그냥 외향만 베끼니까 문제다. 벤치마킹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앞으로 교육당국에서 학폭 대책을 세울 때 외국에서 좋아 보이는 것들만 서둘러 도입해올 게 아니라 구체적인 맥락과 배경까지 완벽하게 수입해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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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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