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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의 불편한 하루④] 구시대적 '두발규제'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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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학생다움”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말고 그냥 꼴 보기 싫다고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지난 26일 평범한미디어 최은혜 기자는 청소년 인권과 관련하여 아수나로의 규탄 기자회견을 보도(학생답다? '라떼 꼰대' 이제 그만 "아직도 두발규제 심해")한 바 있다.

 

나 역시 기사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 했다. 2021년이다. 21세기가 시작된지도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두발규제? 복장규제? 하등 쓸모없는 규제를 하는 학교들이 여전하다는 것에 놀랐다. 90년대 초반 출생 라떼에만 그런 인권침해 규제들이 존재했지 이제는 다 사라진줄 알았다.  

 

 

나는 시골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도시보다는 좀 더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개별 교사들의 인품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두발과 복장에 대해서 만큼은 엄격했다. 사회적 사고가 발달하지 않은 그때에도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소심한 학생이라 문제의식을 가지면서도 이의제기나 반항을 하지는 못 했다.

 

당시 고등학교에서 '3無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학생에게 △술 △폭력 △이성 교제 등 3가지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미성년자니까 술 마시면 안 되고 누군가를 때리면 안 된다는 것은 백번 공감한다. 당연하다. 그러나 이성 교제는 왜 금지하는지? 또 금지가 될까? 그때도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성 교제는 권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에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사회성을 형성하는데 이성 교제도 정말 중요하다.

 

가족관계, 친구관계, 이성 친구들간의 관계(남사친과 여사친), 연애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인척관계 등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관계들을 맺고 살아간다. 그런데 남성 청소년이, 여성 청소년이 공부에 방해된다고 이성 교제를 강제로 금지당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특히 아무리 학교가 금지해도 사귀는 애들은 다 사귀었다. 애초에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의 이성 교제를 막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발상이다. 어불성설 그 자체다. 교사들은 항상 “대학 가면 자동적으로 여친(남친)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건 거짓말이다. 대학 가도 솔로인 친구들은 계속 솔로다.

 

 

대한민국 헌법상 신체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데 두발규제와 복장규제가 웬말인가? 명백한 인권 침해다. 도대체 머리 길이와 공부 실력이 무슨 상관일까? “머리가 짧으면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는가? 논문이 있다면 제발 한 번 보고 싶다. 외모에 신경쓸 여지를 줄여 공부에 집중하게 한다는 것도 어이가 없는 논리다. 오히려 귀밑 3cm와 스포츠머리를 강요당하기 때문에 사기가 대폭 깎여 의욕을 잃게 된다.

 

좀 꾸미면 어떤가?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 아닌가? 머리 꾸밈과 상관없이 어차피 공부를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한다. 그냥 학생들이 자기 개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

 

복장도 그렇다. 빈부 격차에 따른 위화감 방지 등 교복을 입는 것까지는 나도 공감하는 바가 있다. 교복이 없다면 잘사는 집 아이는 명품 옷을 입고 올 것이고 형편이 좋지 못 한 친구는 비교적 품질이 떨어지는 옷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복 자체가 아니다. 숨 막히는 복장규제들이 문제다. 예를 들어 양말 색깔, 스타킹 유형, 바지통 등등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 말이다. 이런 건 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인가? 심지어 여성 청소년의 브래지어 속옷까지 규제하는 학교가 있다.

 

 

나는 ‘학생다움’이라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도대체 학생다움의 정의가 무엇일까? 일부 어른들은 “아이들이 학생답게 하고 다닐 때 가장 예쁘다” 이런 말을 아무 타당한 근거없이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결국 자신들의 기준 아닌가?

 

그들이 말하는 ‘학생다움’이란 어른들의 통제 속에 순응하는 ‘학생다움’이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왜? 한국 학생들이 외국 학생들에 비해 창의력이 없는가"라고 따져묻는다. 왜 그럴까? 이렇게 각종 규제로 학생들을 옭아맨채 오직 입시 공부만 강요하는데 어떻게 독창적인 창의력이 나오는가? 좀만 생각해봐도 다 알 수 있다. 결국 이 나라의 교육체계가 청소년의 창의력을 좀먹고 있다. 요즘 초딩들의 장래희망은 강남 건물주 또는 9급 공무원이라고들 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다. 절망적인 교육 제도 하에서도 청소년들은 기적적으로 나름의 창의력을 꽃피우고 있다. 

 

이제는 모든 학교에서 이런 구시대적인 규제를 하지 말아야 될 때가 되었다. 이런 식의 규제는 학업 성과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냥 학생들이 자유롭게 하고 다니는 것을 어른들이 꼴보기 싫게 여기는 것일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 ‘학생다움’이란 유치한 말로 포장하지 말고 학생들이 머리 길고 염색하는 것이 꼴보기 싫다고. 라떼는 온갖 규제 속에 숨이 막혀서 빨리 스무살이 되어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었다. 근데 왜 스무살이 되어야만 해방감을 느껴야 하는가? 애초에 억압이 없다면 해방이란 것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청소년들도 당연히 자신의 신체와 복장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 라떼는 청소년기 때 그렇게 살지 못 했지만 요즘 청소년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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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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