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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훈의 뷰 포인트⑬-1] '개인적 자유' 내세운 하이에크 "그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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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문명훈 칼럼니스트] 지난 칼럼(문명훈의 뷰 포인트⑫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걸까?)에서 저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같은 언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예시로 들었던 단어가 '자유'였는데요. 정치인과 학자들은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만 서로 다른 용법으로 쓰고 있습니다.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면 당연히 그 단어를 둘러싼 맥락도 달라지겠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에서 '자유'의 의미는 다릅니다. 이번 글과 다음 글에서 이 개념의 서로 다른 의미를 알아볼까 합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 하면 서로 악다구니만 쓸 뿐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간극을 좁히기 어렵습니다. 

 

 

보수의 멘토, 하이에크의 자유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는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인데요. 그는 세계대공황 이후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주장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사상에 반대하며 정부의 한계를 규정하고 시장의 힘을 강조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입니다.

 

자유에는 여러 의미들이 있는데요. 하이에크는 ‘타인에 의한 강제가 없는 상태’‘개인적 자유’라고 명명했고 이 자유를 사회가 지켜야 할 의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개인적 자유를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는 ‘정치적 자유’, 자유의지와 같은 형이상학적 의미의 ‘내적 자유’,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자유’와 구분합니다. 그는 사회에서 타인에 의한 강제가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강제적 요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개인적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공동체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이에크가 생각하는 자유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자유입니다. 정치학자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자유의 두 개념」이라는 논문에서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하는데 소극적 자유는 다른 사람의 간섭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적극적 자유는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의미에서의 자유입니다. 적극적 자유에는 주도적으로 목표와 가치를 설정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죠. 벌린은 두 자유 중에서 소극적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유가 파괴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하이에크와 벌린은 세계대전을 전후로 전체주의가 자유를 파괴하는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나치와 소비에트 연방은 각각 독일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두 경우 모두 국가의 번영과 평등한 사회를 목표로 특정한 가치를 추구한 적극적 자유의 사례이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됐습니다. 특정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간섭하고 그들의 기본권을 파괴했죠. 이러한 경험은 두 학자가 소극적 자유의 보장을 우선순위로 설정하게 된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국가의 역할

 

국가는 경찰력이나 행정력 같은 강제력을 가진 통치조직입니다. 그래서 하이에크는 국가가 가진 강제력의 한계를 어느 정도로 제약하는지가 중요한 문제라고 봤습니다. 그가 보기에 국가가 특정 목적을 갖고 사회체계와 정책을 계획하는 것은 오만한 짓입니다. 국가가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해서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인간의 무지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계획을 세워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한다고 해도 원하는 성과를 얻어낼 수 없습니다. 반대로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대신 하이에크는 의도적으로 계획하지 않더라도 상호조정 메커니즘이 시장(사회)의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한 것처럼 비인격적 논리가 작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개인이 나름의 판단 끝에 내리는 결정이 서로 조화를 이뤄 전체적으로는 평형 상태에 도달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이에크의 관점에서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길이고,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국가는 최대한 시장의 균형을 유지하는 기조를 가져야 하지만 국가의 개입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경쟁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 시장 경쟁이 사회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 할 때에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이에크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에도 개입 조건을 제한합니다. 특정 권력자나 특정 세력의 자의적 개입을 방지하기 위해서죠.

 

그는 국가의 개입도 법에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의적 지배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를 말하는 것이죠. 이때 법은 특정 사람이나 목표를 겨냥해 만들어져서는 안 되고, 일반적 사회 구조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법에 의한 강제력 행사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야 하죠. 이런 조건을 충족할 때에야 국가에 의한 자유의 침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

 

그런데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 강제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항상 자유가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제정되지만 그 법이 자유를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하이에크가 개인적 자유를 정치적 자유와 구분한다고 했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하이에크는 민주주의가 자유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분하는데, 민주주의는 무엇이 법이 되어야 하는가를 묻지만 자유주의는 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민주주의와 다르게 자유주의에는 통치의 범위와 목적에 관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수결에 따라 만들어진 법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지만 자유주의의 원리에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치는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았지만 나치의 지배는 차별과 배제로 이어졌고 수많은 이들의 자유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다수의 동의를 얻었다고 모든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수의 동의가 유일한 기준이 되면 선동 정치가 넘쳐나고 결국 전체주의 사회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에 의한 지배는 선동 정치를 막는 중요한 기준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치가 그랬듯 사회에서 특정한 가치와 윤리를 추구하고 일반화하려는 시도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법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제하려고 하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획일적인 가치와 윤리를 상정하고 모든 이들을 그 기준에 맞추려고 할 때 다양성은 사라지고 개인의 양심과 자유는 파괴됩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무리 민주적 형태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사회가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이에크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하이에크는 보수주의 정치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했지만 스스로는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수주의가 사회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지 못 하기에 변화의 속도에만 영향을 줄 뿐 변화 자체를 막지는 못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보수주의의 특징을 크게 4가지로 설명하는데 보수주의자는 ①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고 ②권위를 선호합니다. ③경제적 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일관된 정책 원리를 갖지 못 하고 ④기존 위계를 보호하려는 엘리트주의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하이에크는 정치철학자의 역할이 정책의 목표를 제시하고 정치의 일반원리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 자유와 시장질서의 보장을 추구하는 자유주의 정치경제 이론을 제시했죠. 사회는 늘 변하고 달라집니다. 보수주의자는 변화를 두려워하며 거부하지만 자유주의자인 하이에크는 자유라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변화에 대처하려 했습니다.

 

분명 하이에크가 고민하던 시대와 오늘의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그의 이론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이론없이 보수주의자들은 하이에크의 말을 선택적으로 인용합니다. 하이에크의 문장을 읊으며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질서와 권위만 지켜려고 하죠. 그들을 보고 하이에크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하이에크가 말한 자유가 여전히 유효한 개념인지, 우리 사회를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안은 없는지 고민하는 것이 보수의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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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훈

학생들과 철학, 역사, 사회 분야를 공부하는 인문학 강사입니다. 의미있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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