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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위급하단 전화 받고 "가는데 덜덜 떨려서 운전을 못 하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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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일요일 당직 근무 중인데 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7살 아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믿지 못 했다. 믿을 수 없었다. 

 

평범한미디어는 윤창호법 보완 입법 기자회견을 진행했던 지난 15일 음주운전 피해자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은 이날 14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의 면담 일정을 소화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15시반 즈음 국회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참석자는 △故 윤창호씨의 친구 이영광씨 △대만 유학생 故 쩡이린씨의 친구 박선규씨와 최진씨 △휠체어와 간병인에 의지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오토바이 음주운전 피해자 안선희씨의 여동생 안승희씨 △햄버거집 낮술 운전 사건의 피해 아동 부친 김주영씨(가명)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엔엘) 등 6명이었다.

 

 

판사들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에 기속된다. 그러나 양형 기준은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실제 권고 불이행률은 10%나 된다. 그러나 음주운전 사건에서는 아직 단 1건의 권고 불이행 사례도 없다.

 

영광씨는 “왜 음주운전 사건에서는 양형 범위를 넘어 선고한 적이 한 번도 없을까?”라고 말했고 정 변호사는 “처음에 윤창호법이 막 만들어지고 나서는 대부분 양형 범위를 넘어서 선고했다. 만들어지기 전에 위험운전치사죄가 너무 약하니까 판사들이 오히려 양형 범위를 넘겼는데 지금은 양형 범위가 넓어졌으니까 그 이후로는 판사들이 그걸 넘겨서 선고를 안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조건 음주운전을 과실로 보면 안 되고 음주운전 전과가 있으면 적어도 고의성의 측면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담이 시작되고 30분 정도 지난 후에 ‘햄버거집 낮술 운전 사건’으로 알려진 피해 아동의 부친 김주영씨(가명)가 도착했다. 

 

주영씨와 그의 아내는 초등학교 4학년 첫째 아들이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언론과의 접촉은 유지하지만 얼굴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영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피해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려줬다.

 

“첫째는 인도 앞 의자에 어떤 어르신이 술에 취해서 앉아 있었던 걸 바라보고 있었고 둘째는 매장에 있는 엄마를 보고 있었다. 엄마를 보고 있다가 차량이 오는 쪽을 못 봤다. 갑자기 차가 쿵 하고 와서 첫째는 가로등 박는 순간 피했고 둘째는 거기에 맞아버린 것이다. 가로등이 진짜로 좀만 한발짝만 덜 왔으면 어깨나 이런 데였으면 좋았을텐데.”

 

주영씨는 일요일이었던 사건 당시에 회사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때 아내, 장모, 처남 순으로 걸려오는 급박한 전화를 받고서도 쉽사리 둘째 아들이 위급하다는 사실을 믿지 못 했다고 한다.

 

“운전을 하고 가는데 덜덜 떨려서 운전을 못 하겠더라. 그래서 광명에서 급하게 갔다. (가는 도중 의사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 지금 빨리 오시라고. 큰일 났다. 진짜 안 좋다. 주차도 하지 말고 응급실 앞에 대고 오라고 했다. 가보니 아내는 실신해서 쓰러져 있고 장모님이 아내를 부축하고 있었고 처남도 있고 딱 가니까 응급실 못 들어가게 하더라.”

 

 

가해자는 60대 남성이었다. 2020년 9월 그때는 코로나 거리두기 규제에 따라 수도권에서 9명 이상이 사적 모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영씨는 “무시하고 조기축구를 했고 술 마시고 7km 운전하고 오다가 집에 거의 다 와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다음날 장례식장에 아침부터 젊은 사람과 어떤 어르신이 오더라. 아침부터 조문오는 분이 있었나? 딱 봤더니 죄송하다. 죄송하다. 반복하더라. 그래서 순간적으로 가해자다! 가해자(아들)와 아들의 아버지가 온줄 알았다. 처음엔 우리는 당연히 가해자가 구속이 돼 있는줄 알았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연로해 보이는 가해자가 젊은 아들을 대동하고 장례식장에 온 것이었다.

 

주영씨는 “그 가해자가 구속되기 전에 여기로 와서 형식적인 사과를 한 것이다. 가해자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온 건데 몰랐다. 저희 엄마는 그걸 몰랐는데 할아버지로 보이는 그 사람(가해자)한테서 술 냄새가 정말 많이 났다”며 “이미 변호사를 다 선임했고 그렇게 하라는 말을 듣고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해자는 그 다음날(9월8일) 구속됐다.

 

주영씨는 “진짜 그 이후로 사실상 안 믿겨졌다. 최근까지도 아직까지도”라며 “가족들의 고통은 어떻게 말로 표현을 못 하겠다.... 음주는 실수가 아니라 살인이 정말 맞다”고 호소했다.

 

정 변호사는 음주운전 범죄자들의 행동 패턴과 재판의 사이클을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사건 이후에 재판까지) 음주운전 사고 경위에 대해 변명을 하고 사고 난 것에 대해 피해자한테 사과하고 용서도 구한다. 당연히. 보통 변호사측에서도 그걸 교육시키고 어떻게 본다면 본인이 진심으로 우러나서 진정어린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변호사가 다 교육시켜준다”며 “뉴스 보니까 반성문 대필도 있더라. 음주운전 교통사고 자체가 형사 재판은 정형화 돼 있다. 법원에서도 이런 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일로 접근한다. 다만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지는 사건에서 가족들이 감정적으로 호소하면 형량에서 차이가 나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틀에 박힌 판결이 나오고 있다”고 묘사했다.

 

이어 “사실 다툴 게 없다. 혈중알콜농도 있고, 블랙박스 영상 있고, 사망인지 부상 정도가 어느정도인지 판결문 검색하면 유사 사례 다 나온다. 이미 나온 판결문에서 사실 나중에 숫자 하나만 바꾸면 된다”면서 “판사가 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 한다. 그걸 아무도 어떻게 할 수 없고 사실 유일한 길은 강력한 처벌”이라고 덧붙였다.

 

 

네이버에 음주운전을 검색해보면 대부분 가해자들의 처벌을 경감해줄 로펌들의 홍보글이 넘쳐난다.

 

정 변호사는 “(윤창호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창과방패’에서 가해자가 음주 영향이 아닌 조수석 동승자 여성과 딴짓을 하느라 사고를 냈다고 변론을 한 것은) 사실 사회생활 못 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변명을 해서 어떤 반향이 올 것이라는 걸 생각해야 하는데 정상적으로 사고했다면 그렇게 했을 때 욕만 더 먹고 빠져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며 “나라면 하지도 않았겠지만 가해자측 변호인이라면 딴 것 없다. 무조건 사과하라고 할 것이다. 무릎꿇고 빌고 법정에서 뭘 하든지 하루에 한 번 반성문 내든지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이걸 무슨 변명으로 하는가”라고 설명했다.

 

이어 “음주운전 가해자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에게 그 사건을 못 맡긴다. 자기가 익명화될 수 있는 변호사를 찾는데 그래서 인터넷에 쳤을 때 나오는 변호사를 찾게 된다”며 “가해자는 어떻게든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로펌에서) 광고가 되고 돈벌이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영씨도 “피해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변호사 말씀대로 가해자는 반성문, 탄원서, 공탁, 변호사 선임 등 뉘우친다는 그런 액션 등. 나중에 탄원서나 반성문이 2심 선고 가까이 오니까 엄청나게 오더라”며 “과연 이 사람한테 탄원서를 써주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아이도 언론에 적지 않게 나왔던 그 사건인데 조기축구 그놈들인가. 청와대 청원에 내가 그날 운동했던 놈들 면허증 반납해야 한다고 올렸다. 그 인터넷에 아까 전에 보니까 몇 만원만 내면 탄원서 대필도 있다”고 동조했다.

 

승희씨 역시 “저희도 탄원서라고 올라왔더라. 변호사를 통해 봤는데 그런 걸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고 공감했다.

 

 

주영씨는 선규씨가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햄버거집 사건을 거론한 것을 보고 수소문을 해서 연락을 취했고 쩡이린씨 재판에 연대 참석을 해줬다.

 

주영씨는 “그날 갔었는데 가서 좀 저희의 목소리를 내드리고 싶었다. 그날따라 사람들이 많아서 6명만 들어오게 했다. 우리 아들 판결보다 좀 더 잘 나왔음 하는 마음에 갔는데 다들 못 들어가니 나눠서 들어오라고 했다”며 “가해자 가족들 왔는지 (법원측에서) 물어보니 엄마, 딸, 남자 둘이 손을 자신있게 들더라. (너무 방청 인원이 많아서 누군가 못 들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러면 가해자쪽 빠지라고 내가 그랬다. 근데 여자 둘이서 도끼눈으로 쳐다보더라. 그래서 내가 잘못 말했는가? 그랬더니 저흰 가족이다! 그러더라”고 전했다.

 

이어 “너네는 볼 수 있잖아. 우린 못 보는데 그랬다. 그래서 살짝 말싸움이 오가서 옆에서 말렸다. 어쨌든 밀고 들어갔는데 결국엔 딸과 엄마가 다 들어오더라. 속으로 정말 반성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쩡이린씨 가해자는) 대법원까지 갈 사람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정말 그랬을줄 몰랐다”고 말했다.

 

 

주영씨는 둘째 아들 재판에서 가해자측 젊은 아들을 자주 마주치게 됐고 “아들한테 말했다. 1심에서 항소한 거 보고 놀랬다. 이게 반성이냐. 아들한테 10만원 주고 밥도 잘 챙겨먹고 나중에 하고 싶은 꿈을 잃지는 말아라. 너네 아버지가 들어갔다고 해서 네 잘못은 아니라고 했다”면서 “내가 네 아버지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너에게는 악감정이 없다. 요새 뭐 하냐고 물어보니 노가다 뛴다고 하더라. 아버지 사건 때문에 너의 길에 걸림돌이 되면 안 되지 않겠느냐. 오히려 그렇게 말해줬다”고 밝혔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음주운전 전문 재단 설립 등 모여서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영광씨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언론 대응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저희도 할 수 있었던 게 인터뷰 많이 하고 여기 저기 찾아다니고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냐면 진짜 가족이나 가까운 사이에 발벗고 나설 사람이 없으면 어디에 기대야 하느냐”고 환기했다.

 

주영씨는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라도 해야(단톡방 개설 등) 피해자들끼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말 이런 게 있었으면 했다. 영광씨나 선규씨나 변호사님, 기자님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가족들은 겁이 난다. 알지도 못 하고 그래서 이렇게 뭉쳐주면 힘이 난다”면서 “오늘 부산에서 올라오시고 다들 시간을 내서 와주셨는데 나는 조그맣게 꼭 재단까지 아니더라도 사이트나 카페 같은 것을 통해서 시간 됐을 때 법원에 같이 가주고 (또 다른 음주운전 피해자들을 위해) 우리는 이렇게 대응했다고 안심을 시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씁쓸하게도 가해자들이 주도해서 결성한 음주운전 관련 모임들이 종종 있다. 음주운전 3범 이관수 강남구의원은 현역 신분에서 음주 사고를 냈음에도 옷을 벗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는 이미지 세탁을 위해 ‘음주운전근절국민운동본부’를 급조해서 캠페인 활동을 하고 있고 홈피에서 음주운전 가해자들을 구제해준답시고 각종 무죄 판례들을 업로드해놨다. 윤창호법 보완 관련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하루 뒤 16일에는 ‘음주운전근절문화협회’라는 곳에서 하태경 의원실에 연락을 취해 피해자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연락처를 전달받은 평범한미디어는 뭔가 의심스러워서 바로 연락을 취했고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단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 변호사는 “음주운전 카페가 있다. 가해자들 카페다. 후기를 다 올린다. 이렇게 하니까 벌금 받았다고 하고 반성문 쓰는 틀도 있다”고 꼬집었다.

 

 

주영씨는 음주운전 피해 가족들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고통스럽다면서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하게 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은, 친구를 잃었다는 슬픔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는 울음을 잘 참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도 걱정하고 첫째 앞에서 울 수 없으니까 울지 않으려고 참았다. 왜냐면 진짜 여기 아버지한테 힘들다고 하면 더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아내도 둘째 얘기를 못 꺼낸다. 얼마나 시간이 가야 옅어질지. 음주 사고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고 있다. 근데 저희가 항소심 판결(징역 8년)을 5월에 받고 나서부터 그 이후로 (음주운전 사망 사건 관려 재판들에서) 좀 많이 세게 나오는 것 같더라. 우리는 법조계에서 8년 나와서 다들 잘 나왔다고 했는데 댓글을 보면 말장난하냐고 한다. 80년도 아니고. 그런 걸 보면 인식 차이가 많이 난다. 네티즌들이 이렇게 말이라도 해주고 편을 들어줘서 고마운 것 같다. 대전에서 무기징역 구형내렸던 것 보면 음주운전 피해자들에게는 힘이 된다.”

프로필 사진
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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