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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목숨 앗아간 여수산단 폭발 "위험천만한 작업 일용직에 떠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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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정수현 기자]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에서 폭발 등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근본적인 사고 방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사고 피해자들의 대다수가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로 밝혀져 노동계는 예방대책 마련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3일 13시반 즈음 여수산단 내에 있는 석유화학업체 '이일산업'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작업장 내 화학물질 저장 탱크 73기 중 4기가 폭발했고 6기가 불에 탔다. 이로 인해 현장에 있던 7명의 노동자들 중 4명은 대피했으나 70세 용접사, 67세 배관사, 64세 제관사 등 3명이 피하지 못 하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폭발 원인에 대해서는 조사를 넘어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전남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원하청 관계자 4명을 입건(업무상과실치사)해서 1차 조사를 벌인 상황으로 볼 때 탱크 윗부분에서 배관 연결 작업과 용접 작업이 동시에 이뤄졌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확보한 '화기·고소 안전 작업 허가서'와 '관리 감독자 체크리스트'에 따르면 "작업장 주위 20미터 내 인화물질 제거 작업을 완료했다"고 기재돼 있고 "가연성 물질 유입 방지 및 불꽃 비산방지용 방화포 준비" 항목에 체크 표기가 돼 있다. 용접 작업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심이 농후할 수밖에 없다.

 

작업 허가서라는 것은 원청이 구체적인 작업의 '시간·내용·조건·요구사항' 등을 명시해서 하청업체에 전달하는 문서이기 때문에 원청 이일산업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즉 화학물질이 유증기로 떠다닐 수 있는 탱크 주변 환경이 조성되는 상황에서, 용접 작업이 이뤄지는 그야말로 위험한 사태를 이일산업이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중화학 공장이 몰려있는 여수산단에서는 용접이나 화기 작업에 대한 안전관리가 단계별로 철저히 이뤄져야 하고 그것이 상식이다. 누가 봐도 위험천만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일산업은 이번 폭발 사고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지고 진상규명에 나서야 하지만 아직까지도 "용접 작업이 이뤄질리가 없긴 한데 실제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분위기다.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폭발 당시 탱크 내부에는 수소 처리된 중질 나프타(중질 휘발유), 이소파라핀 등 석유 물질이 30% 가량 저장돼 있었다. 노동자들은 유증기 회수 배관 설치를 위해 탱크 위에서 나사를 체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숨진 노동자들은 이일산업과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가 고용한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위험하고 번거로운 작업이기 때문에 하청업체에 떠맡겼을 것인데 만약 이일산업 소속 정규직 노동자가 이런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하면 수습 책임이 막대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원청이 하청업체에 일을 맡기는 것은 그 자체로 직접 진행하는 것에 비해 비용 절감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청업체에서 고용한 노동자들은 여러 비용을 들여 안전 체계를 촘촘히 갖춰놓지 못 한 환경에서 작업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안전 교육? 자세한 작업 정보 숙지? 둘 다 어렵다. 그런 상태에서 급히 현장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석유화학 공장은 설비 점검을 위해 공정을 중단하고 설비를 청소하거나 정비를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정비 일감을 하청업체에 맡기려는 의도가 그렇듯이 반드시 상주해야 할 안전감독자는 있을리 만무하다. 

 

그야말로 '위험의 외주화'로 집약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최근 5년간 여수산단에서는 규모가 작지 않은 화재 29건 등 안전 사고만 61건 발생했다. 그중 대형 사고는 총 16건으로 8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쳤다. 작업 중 숨진 노동자들은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으로 설비를 청소하다 질식하거나 정비 중에 목숨을 잃었다.

 

최관식 민주노총 여수지부장은 "작업 허가서에 기재된 내용과 실제 작업 환경이 다른 점이 있어 관리감독 소홀 문제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수지부는 폭발 사고 당일 별도로 성명을 내고 "노동자들이 수없이 죽어나가도 그저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미봉책은 여지없이 또 다른 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왔다"며 "근래 모든 중대 사망사고는 위험의 외주화를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어 안전 불감증과 개인의 부주의로 치부하기엔 구조적인 문제가 너무도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누더기가 된 중대재해처벌법을 기업 살인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묻는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사람이 죽어나가도 벌금 몇 푼에 책임이 면해지는 현실에서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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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

여전히 '좋은 저널리즘'이라는 이상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정수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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