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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전봇대 올라 ‘감전사’로 세상 떠난 예비신랑 “잔인한 하청업체와 한국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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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수많은 산업재해 사건들에 묻힐 뻔했지만 하청업체와 한국전력의 뻔뻔함이 방송사의 심층 보도를 불러일으켰다. 작년 11월5일 경기 여주시의 모 신축 오피스텔 인근 전봇대에서 개폐기 조작 작업을 하던 39세 남성 김다운씨가 고압 감전을 당해 긴급 수술과 치료를 받다 패혈증 쇼크로 숨을 거뒀다. 사고 19일만인 11월24일이었다.

 

 

김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랑이었고 2020년 1월 한국전력의 하청을 받고 있는 해당 D업체에 입사했다고 한다. D업체는 “별로 남는 게 없는 13만5000원짜리 단순 공사였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이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다운씨는 D업체와 한전의 방치 속에 온몸이 전기로 타들어갔다. 크게 아래와 같은 것들로 정리된다.

 

①다운씨는 당시 추락방지용 안전줄에 의지해서 작업을 했는데 한전 안전 규정에 따르면 감전으로부터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활선차’(고소절연작업차) 바스켓에 타서 작업을 했어야 함

②‘2인 1조’ 작업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다운씨 홀로 작업

③고무 절연장갑이 아닌 일반 면장갑으로 작업

④한전은 D업체가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는지 확인 및 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방치

 

MBC <뉴스데스크>는 3일 저녁 5건의 양당 대선 후보들 관련 톱뉴스를 배치한 뒤 바로 3건의 단독 리포트로 이 소식을 심층 보도했다.

 

 

다운씨는 10미터가 넘는 전봇대에 홀로 올라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2만2900볼트 고압 전류와 접촉했는지 굉음과 함께 스파크가 튀었다. 인근 주민들과 동료들이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큰 소리였고 바로 신고해서 119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바로 구조해내지 못 했다.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상 다운씨는 의식을 잃은채 30분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현장에 출동한 한전 직원들이 전기를 완전히 끊어낸 뒤에야 구조 작업이 시작됐고 다운씨는 닥터헬기에 태워져 경기 수원 영통구에 있는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로 급히 옮겨졌다. 사고 발생 이후 이미 2시간이나 흐른 시점이었다.

 

예비신부를 비롯 가족들은 연락을 받고 다운씨를 마주했지만 얼굴이 붕대로 완전히 감겨 있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맥박과 호흡은 붙어있었지만 온몸의 40%가 3도 이상 화상을 입었다. 병원측도 처음에는 30대 다운씨를 “60대 남성”으로 오인하고 있었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화상이었다.

 

다운씨는 그야말로 위중한 중환자였다. 화상입은 피부를 긁어내는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다량의 혈액이 필요했다. 그렇게 신장 투석을 받으며 버티던 다운씨는 끝내 패혈증 쇼크로 눈을 감았다. 39세 생일(11월23일) 바로 다음날이 기일이 돼 버렸다. 다운씨는 1년 전 부친을 사고로 잃고 어머니, 누나 1명 등 세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제 올봄 결혼해서 새가정을 꾸릴 예정이었다. 응급실에 누워 있던 다운씨는 그 즈음 원래 상견례를 잡아놨었다고 한다. 그러나 물거품이 됐다. 예비신부 A씨는 사고 당일 다운씨로부터 “일 끝나고 얼른 집에 가겠다”는 말을 들었고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D업체 관계자는 MBC 취재진에 “너무 간단한 작업인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쉽고 간단한 작업을 왜 입사 1년도 안 된 다운씨에게 혼자 떠넘겼는지 알 길이 없다. D업체 관계자는 “13만5000원짜리 단순 공사라 꼭 2인 1조로 해야 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활선차가 아닌) 1톤 트럭이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우리 지침에 있다. 막대기(절연봉)로 작업을 해야 되는데 (안 되면 작업자가) 현장 소장한테 보고를 하고 재작업 지시를 받아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다운씨가) 업무를 잘 처리하고자 하는 그런 의욕이 앞선 것 같다.

 

석원희 위원장(전국건설노조 전기분과)은 “고소절연작업차(활선차)는 대지와 고압선 간의 차단을 해주는 그런 절연붐이라는 게 있습니다. 절연붐 때문에 고소절연작업차를 타고 있는 작업자가 장갑 끼고 고압선을 만져도 전기가 통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고층 전봇대에 오를 때는 활선차에 타도록 돼 있다. 그래야 작업자가 바스켓에 타서 거리를 유지하며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봇대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활선차는 전류가 통하지 않게 막아주는 기능도 탑재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의 조사 결과 다운씨는 당시 1톤짜리 일반 트럭을 타고 파견됐다. 무엇보다 반드시 2인 1조로 작업하게 돼 있는 한전의 필수 지침도 가볍게 무시됐다. 13만원짜리 작업이라 고무 절연장갑도 지급해주지 않았던 걸까?

 

성남지청과 여주경찰서는 합동 수사를 벌였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서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성남지청은 한전 해당 지사와 D업체를 대상으로 2주간 특별감독을 실시했고 산안법 위반사항을 다수 적발해서 348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사고 이후 약 한 달간(~2021년 12월29일) 작업 중지를 명령하기도 했다. D업체는 작업 중지 명령 기간이 지나고 올 1월부터 전기 업무를 재개했다고 한다. 성남지청은 절연용 보호구 미지급 등 산안법 위반 혐의로 한전 채준수 여주지사장(안전보건총괄책임자)과 D업체 현장소장 및 관계자들을 추가로 입건해서 수사하고 있다.

 

권기섭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언론을 통해 “공공기관에서 기본적인 안전조치 미이행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공공기관이 모범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뉴스데스크> 왕종명 앵커는 “유족이 김다운씨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라고 허락하면서 MBC에 도움을 청한 것은 이 안타까운 죽음이 결코 망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절규였다”고 코멘트했다.

 

다운씨의 매형은 “입사한지 얼마 안 됐고 제일 만만한 처남을 혼자 그냥 단독으로 보내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D업체가 작성한 산업재해 신청서에 보면 사고 경위에 대해 “재해자의 손과 휴즈 충전 부분이 접촉되어 상반신 쪽이 감전되었다”라고만 기록돼 있다. D업체가 방기한 ①②③에 대한 대목은 코빼기도 없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작년 한전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총 8명으로 주요 공기업 가운데 가장 사고 사망자가 많다. 8명 중 본사 소속 노동자는 1명 뿐이고 7명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2016~2020년 4년간 사고 사망자는 총 39명인데 역시 본사 소속은 딱 1명이었고 38명은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왕 앵커는 “위험의 외주화가 또 다시 죽음의 외주화가 되고 말았다”고 묘사했는데 정확한 표현이었다.

 

한전 여주지사 관계자는 “통제를 시공관리 책임자가 하게끔 돼 있는데 저희는 D업체에 지시를 했는데 저희 모르게 저희한테 사전 승인없이 한 것”이라며 “D업체가 현장 여건상 활선차 없이도 작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변명했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리고 “몇 달 뒤 결혼해 가정을 이룰 꿈에 부푼 청년의 비참한 죽음을 앞에 두고 업무상 재해에 대해 회사가 할 말이 고작 13만5000원짜리 작업이란 말 뿐인가”라며 “정전 시간 줄이자고 전류를 끊지 않고 배선 작업을 하는 직접활선공법을 쓰다가 사고를 당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현실은 과거부터 쭉 이어진 일이었다”고 환기했다.

 

이어 “민주당에서 발의한 산안법 개정안이 아직 계류 중이다. 직접활선공법을 사용하는 도급 작업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청년들의 목숨이 돈보다 더 중한 세상 반드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배포해서 “하청은 13만5000원짜리 단순 작업이라 주장하고 있는데 2021년 건설업 시중노임단가를 보면 배송 전공 시중노임단가는 최저 26만원에서 최대 50만원에 이른다”며 “전신주를 타는 업무를 시키면서 13만5000원으로 계약을 했다는 것은 노무비 착복이 있었거나 한전이 외주화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저가 계약을 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식적으로 봐도 고압 전류를 만지는 작업을 할 때 어느 누가 전류가 그대로 흐르는 위험한 작업복에 작업차를 자의적으로 선택하겠는가”라며 “하청 노동자 다운씨는 애초에 절연용 보호구를 미지급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김 씨가 입사한지 1년이 채 안됐다는 점까지 고려할 때 결국 이는 예견된 죽음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죽음의 피해자가 있다면 당연히 가해자도 있는 법이다. 안전조치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하청 그리고 여전히 죽음의 외주화 굴레를 돌리고 있는 원청인 한국전력은 당연히 죽음에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 특히 한국전력이 2021년 공공기관 중 가장 많은 사고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분노를 일으킨다. 어렵고 위험한 작업은 전부 외주화하며 비용을 절감하고 책임은 회피하며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곳이 한전이다. 반성하기는커녕 이번 죽음에서도 하청업체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는 인면수심한 모습에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중략) 하청업체에게만 낮은 벌금을 묻는 것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딱 그 정도로 치부한다는 것이다. 원청에 대한 처벌이 분명하게 있어야 할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통령 후보도 4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민주노총 15층 회의실에서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과 간담회를 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다운씨의 죽음 역시) 구조가 똑같다. 2인 1조 작업하라는 것 무시됐고 그 다음에 안전장비는 이제 돈 안 들어가는 최소한만 주고 그 다음에 사람 목숨에 대해서 원청 한국전력 같은 경우에는 이제 책임없다고 발뺌하고 하청업체는 별일 아닌데 노동자 잘못으로 그랬다. 모든 산재의 책임 회피는 이런 방식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데 바로 이렇게 패턴화된 이 책임 전가를 어떻게 제대로 온전하게 책임지는 구조로 바꿀 것인가. 이게 저희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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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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