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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투쟁' 왜 출근 시간대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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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차현송·박효영 기자]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대선 기간 잠시 멈췄던 지하철에서의 이동권 투쟁이 지난 24일 재개됐다. 

 

약 1개월 만에 다시 이동권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도 있을까. 전장연은 “장애인 권리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동권은 다른 권리와 연결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가령 교육을 받으려면 이동을 해야 한다. 물리적인 이동 수단이 끊겨 있는데 삶의 질, 철학, 가치를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나. 교통을 넘어 삶의 문제이다. 비장애인이 코로나19로 인해 격리된 채 아무 곳에도 가지 못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이동권이 보장 안 되면 장애인의 이런 격리 상태는 죽을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의 투쟁은 욕을 먹는다. 수도권 시민들이 매일 지옥철을 감내하며 살아가더라도 출퇴근길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연되면 화를 참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수많은 유튜브 영상들을 통해 현장 상황을 간접적으로 살펴보면 “지금 본인들만 바쁜 게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시위하면 누가 장애인 편을 들겠는가”라는 볼멘소리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침 흘렀어. 더러워. 침 닦고 오세훈한테나 가서 따져”, “말도 못 하는 게 무슨 예산 요구를 한다고”와 같은 말들이다. 누군가는 장애인들을 향해 쓰레기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심지어 “대로변 가서 차를 막으면 정치인들이 올텐데 왜 시민들이 이용하는 지하철을 막고 지랄이냐”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온라인 여론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 “10분이면 갈 거리를 30분째 못 가고 있다”는 게시물을 올리면 동조하는 댓글이 수 백개씩 달린다. 시위로 인해 회사에 지각했다는 글들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불만이 큰 지점은 왜 하필 “출퇴근 시간”이냐는 것이다. 다른 시간대에 시위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출퇴근 시간을 선택해서 수많은 시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냐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오세훈 서울시장은 얼마 전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질문을 받고 “얼마나 답답하고 이동이 불편하면 이런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 투쟁을 할까 공감이 된다”면서도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불편을 겪지 않도록 자제해주면 좋겠다. 출퇴근하거나 약속 장소에 가는 분들에게 유무형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출퇴근 시위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 비판 메시지가 연일 화제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수 차례 글을 올리고 “아무리 정당한 주장도 타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경우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시민들의 부정적 여론에 편승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관련해서 여타 진보진영 인사들은 연일 온라인 논쟁을 불사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대를 선택했던 그들의 속사정이 있다. 전장연의 요구사항은 크게 아래와 같다.

 

①장애인 이동권 및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기획재정부의 이행(혜화역 지하철 선전전)

②대통령 인수위원회 면담 요구(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캠페인)

 

일단 ②이 이뤄진다면 시위는 잠시 멈춰질 수 있지만 결국 ①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장애인 이동권의 핵심은 '저상버스'와 '지하철 엘레베이터 설치' 확대로 집약된다. 장애인 권리 예산은 결국 이동권부터 완전히 보장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전장연은 2001년 오이도역, 2002년 발산역 지하철 리프트 추락 참사가 벌어진 이후로 지하철 시위를 시작하게 됐는데 △국가인권위원회 앞 39일 단식농성을 감행했고 △찾아갈 수 있는 모든 기관으로 찾아가 집회를 개최해서 △이명박·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 모든 지하철역 엘레베이터 100% 설치 약속 등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일단 서울시의 관련 예산안을 보면 나머지 지하철역 엘레베이터 공사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가 뒤늦게 반영됐다. 게다가 오 시장 체제의 서울시가 2025년까지 저상버스를 100% 도입하겠다고 공표했던 사항도 과연 지켜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저상버스는 2023년 약 1000대 가량이 더 필요한데 467대 밖에 들여오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하철역 엘레베이터 설치율이 90%에 이르렀지만 100%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장연의 입장이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이동권은 누구나 언제든지 누려야 하지만 휠체어 장애인의 집 근처 지하철역 딱 한 곳에라도 엘레베이터가 없으면 '90% 설치율'이란 문장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우리 집 인근 지하철역의 바닥에 커다란 싱크홀이 여러 개 뚫려 있다면 300여개의 역이 멀쩡한들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나마 비장애인은 전동킥보드나 자전거를 탈 수도 있고, 버스도 있고, 카카오택시를 부를 수도 있고, 그냥 수많은 길거리의 턱을 쉽게 피해 걸어갈 수도 있다. 휠체어 장애인도 저상버스나 장애인 전용 콜택시 등이 있지만 꼼짝없이 이동을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동의 포기는 교육, 재화 구매, 직업, 중요한 약속 등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래서 전장연은 “서울시의 무책임한 약속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또 다시 지하철을 타고 막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두 차례 공식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동안)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 일어난 사망에 대해 정부도, 서울시도, 서울교통공사 그 누구도 사과는 물론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이 전장연의 판단이다.

 

 

이 대표는 진보진영 내에서 “남성과 여성을 갈라치기하더니 비장애인과 장애인까지 갈라치기하느냐”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지만 사실 간단치 않은 대목들이 많다.

 

이 대표는 전장연 대표자들과의 면담, 1분 쇼츠 공약, 송석준 의원을 담당자로 지정해서 입법 및 법 통과 관철 등 전장연이 요구하는 것들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지하철 시위가 중단되지 않고 있다면서 “만나서 많은 것에 대해서 합의하고 실제 추진해서 성과가 나도 본인들이 원하는 속도와 원안이 아니기 때문에 극렬 투쟁하겠다고 하면 누가 신뢰하고 만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26일에 업로드된 페이스북 을 통해서였다.

 

이어 “전장연의 지하철 운행 방해 투쟁은 이미 국민에게 소구력이 없다”면서 “이동권 관련해서 전장연의 요구사항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지하철 엘레베이터 설치율이 100%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속 서울시민 불특정 다수를 볼모삼는 방식은 지속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6호선 대흥역을 사례로 제시하며 ”지금 엘리베이터 설치가 지연되는 역들은 말 그대로 역사 구조상 엘리베이터 설치 동선이 안 나오는 역들이 대부분”이라며 “그럼에도 어떻게든 넣어보려고 고민하는 서울교통공사가 투쟁의 대상인가?”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전장연은 실제로 약속 불이행에 따른 장애인들의 기본권 유예로 점철된 세월이 지난 20년이었다는 취지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봤음에도 여전히 너무나 열악하다는 것이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2002년 발산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 사망했다. 이후 천천히 지하철에 탑승하는 연착 투쟁을 했다. 2017년 신길역 리프트에서 장애인이 사망했을 때는 지하철 안에서 관까지 들었다. 다만 모두 비교적 한산한 낮 시간대에 했다. 출근길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다. 비장애인들에게 맞아 죽을까봐 두려워 감히 생각도 못 했다. 이동권 문제만 놓고 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다. 일각에서 청와대나 국회, 정부부처에 가서 항의하라고 말한다. 수없이 갔다. 집회를 하다 벌금도 많이 맞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청와대 안에서도 기습 시위를 했다. 2007년 노 전 대통령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서명할 때 초대를 받았는데 장애인 교육지원법 제정하라 등의 문구를 적은 현수막을 펼쳤다. 도로에서 버스도 막아봤다.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이 대표의 주장을 반박하는 좀 더 구체적인 증언도 나왔다. 작년까지 전장연에서 정책국장을 역임했던 변재원씨는 26일 밤 페이스북에 을 올리고 아래와 같이 설파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대표님께서 '만났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언가를 추진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이루어진 바 없다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다. 예산은 더욱 그렇다. 언제나 기습 시위 또는 투쟁을 해야만 겨우 다음 대화가 이루어졌다 보는 게 옳다. 죄송하지만 인권단체로서, 시민단체로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목적은 당시 야당 대표, 현 여당대표와 기념 인증샷을 남기는 게 아니었다. 집 밖을 감히 외출조차 하지 못 하고, 교육도 받을 수 없고, 출퇴근은 꿈도 꿀 수 없는 장애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활동의 목표다. 그렇기에 만나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에 대해서는 그리 대단한 성과라고도 노력이라고도 그 누구도 칭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10단계 중 2단계라도 왔다면 그리고 지금도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기다려야지 왜 지하철 시위를 하고 있느냐는 이 대표의 주장과, 지금 현재 비장애인은 10단계를 누리고 있음에도 아직도 장애인은 2단계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고 3·4단계로 가기 위한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려서 불가피하다는 전장연의 주장이 부딪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이런 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를테면 “장애인들이 평생 감내한 불편에 비하면 비장애인들이 하루 이틀 지각하는 불편은 불편도 아니”라고 하는 메시지들이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들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섣불리 재단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는 단순히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여러 사정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인생이 뒤바뀔만한 아주 중요한 시험을 보기 위해 탔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절대 지각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약속에 나가는 중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환경도 사정도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겪는 불편함을 단순히 직장에 하루쯤 지각하는 별 것 아닌 정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조금 곤란할 것 같다.

 

불특정다수가 불편을 겪는 일은 결코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는 불가피하고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불편을 전장연만의 독박 책임으로 가져가서 손가락질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홍신애요리연구소 김형규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장애인 단체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20년 넘게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부와 지자체 탓이다.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대통령, 서울시장 번갈아 해먹으면서 그동안 약속 안 지킨 건 똑같다.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박원순이나 오세훈이나 똑같았다. 두 정당이 의석을 독점한 국회 역시 관련법(교통약자법)의 허점을 방치하며 직무유기로 일관해왔다. 결국 정치가 제 할 일을 똑바로 못 해 시민들끼리 싸우게 만든 셈이다.

 

 

박 대표는 이런 부탁을 했다.

 

우리에게 욕을 100번 한다면 1번만이라도 윤석열 당선인에게 장애인 권리 예산을 보장하라고 말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장애인 시위에 시민들이 이렇게 대놓고 욕을 많이 한 적이 없었다. 잊혀진채 죽고 싶지 않다.

 

결론적으로 전장연은 현재로서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 지하철역 출근 시간대에 시위 행동을 하는 걸 멈출 수 없다. 여론을 만들어가는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전장연 입장에서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해서라도 양보할 수 없는 장애인의 헌법적 기본권이 주목을 받아야 한다. 시민 불편에 초점이 맞춰진 여타 언론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고, 예비 여당 대표까지 타겟팅을 해서 메시지를 내고 있는 만큼 어찌보면 전장연의 전략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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