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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 겸비한 '김덕령 장군' 얼마나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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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김덕령 장군을 알고 있는가? 짧게 설명하자면 임진왜란 당시 목숨을 걸고 왜군과 맞서 싸운 훌륭한 의병장이다. 그러나 1596년 벌어진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옥사하고 말았다. 

 

 

김덕령 장군은 광주광역시 태생이며 홍의 장군 곽재우와 같이 인지도가 높은 대표적인 의병장이기 때문에 호남 일대에 유적들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김덕령 장군을 주제로 각종 행사들이 개최되기도 한다.

 

마침 현충일 타이밍에 이 기사를 출고하게 되어 기쁘다. 국난 시기에 스스로 총칼을 들고 왜적과 맞서 싸운 김덕령 장군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다. 김덕령 장군은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다. 향교에서 성리학을 공부하던 20대 학자였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동안 전남 담양에서 모은 30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참전했다. 역사학자들은 김덕령 장군에 대해 주요 전투들이 마무리되던 시점이라 큰 무공을 세우지 못 했을 뿐 타이밍만 맞았다면 엄청난 무신 장군으로 이름을 드높였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해군과 선조는 작지 않은 성과를 낸 김덕령 장군에게 '군호'를 부여했다. 김덕령 장군은 28살에 의병 총사령관이 됐다.

 

 

예고하자면 이번 기사는 현장 사진들이 많다. 그리고 김덕령 장군을 계기로 갔던 역사 탐방의 풍경을 묘사하는 대목들이 많다.

 

지난 5월28일 일요일 아침 일찍 <김덕령 장군과 함께 놀자> 행사에 다녀왔다. 전날 야근이 있어서 매우 피곤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답사를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오는 6월18일과 9월24일에도 김덕령 장군에 대한 마당극과 마을투어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니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

 

프로그램은 광주 북구 '문화의 집'에서 주최했는데 거의 대부분 가족 단위로 참석했다. 어린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 광경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주말에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할 수 있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말에 쉬고 싶은 부모 입장에서는 좀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프로그램은 정말 중요하다.

 

어쨌든 신청자들은 전세 버스를 타고 충효마을(광주 북구 충효동)로 이동했다. 당연하지만 김덕령 장군이 살았던 곳이다. 충효마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가볼 기회가 없었다. 생업이 바쁘기도 했고 마을 자체가 외곽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충효마을에는 커피나 각종 주전부리를 파는 곳들이 많다. 그야말로 관광지 분위기가 물씬 났다. 

 

도착하자마자 문화해설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해설사는 처음에 충효동 정려비각을 소개하며 설명을 이어갔는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쉬운 표현법이 인상 깊었다. 장군의 생가터로 이동했는데 말 그대로 '터'였다. 정말 그냥 흙마당 밖에 없었다. 생가가 보존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뭔가 공허한 마음을 달랜 채 다음 장소로 이동했는데 걸어가는 동안 땀이 뻘뻘 났다. 초여름의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어렸을 때 갔던 현장 학습을 다시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주체가 다를 뿐 현장 학습이 맞긴 하다. 그 특유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다음 행선지는 취가정과 환벽당이었는데 시원한 계곡부터 눈길을 끌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런 곳에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을 것 같다. 유유자적의 삶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즈음 걸어가다 어떤 글귀가 적힌 비석을 발견했다. 국한문 혼용체에 고어로 쓰여 있어 무슨 내용인지 파악이 어려웠다. 수능 고전문학 지문을 보는 것만 같았는데 해설사가 나름의 설명을 해줬음에도 자연의 정취에 취해 제대로 듣지는 못 했다. 풀내음을 맡으며 취가정과 환벽당에 도달했다.

 

개인적으로 한옥의 멋을 정말 높게 사는 편이다. 한옥 감상이 정말 좋다. 특유의 전통적이고도 고전적인 곡선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나중에 한옥에서 살고 싶은 로망도 있다. 하지만 한옥은 그 특성상 손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 터를 사서 한옥집을 짓기 위해서는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돈이 정말 많이 든다. 게다가 원목으로 만들기 때문에 사후 관리에도 신경 쓸 일들이 많다. 그냥 로망은 로망으로 남겨둬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원한 마루에 걸터앉아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취가정과 환벽당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정말 끝내줬다. 점점 푸른빛이 진해지는 산의 능선이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예전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남부 지방의 한옥은 상대적으로 더운 기후의 특성 때문에 마루를 넓게 만들었다고 알고있는데 정말 마루가 넓었다. 우리 일행이 다 앉아 있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취가정의 경우 마루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이 좀 좁다고 느껴졌다. 정말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옥 특유의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담양으로 넘어가 식영정으로 이동했다. 송강 정철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식영정은 정철 선생의 주요 가사 문학 중 하나인 ‘성산별곡’의 주요 배경들 중 하나다. 고전 문학의 배경이 된 곳 답게 정말 경치가 아름다웠다. 돌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정말 멋있는 정자가 있었다. 그리고 광주의 대표적인 호수인 광주호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압도적인 호반의 정취에 그간의 스트레스와 피로가 날라가는 느낌이었다.

 

조선시대 문인 김성원은 정철 선생과 환벽당에서 함께 공부를 했던 막역한 사이였다. 또한 김성원은 조카 김덕령 장군이 억울한 옥사를 당하자 세상과 연을 끊고 산골로 들어가버렸다. 정철 선생은 김성원이 직접 건설한 식영정과 서하당 등을 오가며 성산 일대의 풍경을 만끽했고 그 과정에서 성산별곡을 썼다. 성산별곡을 보면 정철 선생의 김성원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드러난다.

 

청강에 떠 있는 오리가 흰 모래에 옮겨 앉아 흰 갈매기를 벗 삼고 잠 깰 줄 모르나니 무심하고 한가함이 주인(김성원)과 비교하여 어떤가. 

 

 

 

이번 프로그램에는 판소리 공연도 있었다. 소리꾼은 친숙한 민요와 아리랑 등을 부르며 우리에게 추임새를 유도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추임새를 해주며 공연을 즐겼다. 한 예술가는 갓과 도포를 입고 전통 무용인 ‘한량춤’을 선보였다. 딱 봐도 춤선을 정말 신경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통 무용은 오늘날의 춤과는 확실히 달랐다. 오늘날의 춤은 동작이 크고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전통 무용은 동작이 느리면서도 상당히 우아했다. 특유의 여유로움을 표현하는 것이 정말 독특하고 재밌었다. 춤선의 디테일도 감상 포인트다. 다만 소리꾼과 무용인이 더운 날씨에 한복을 입고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느라 고생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나비를 의인화한 연기자들이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을 했다. 이들은 풍선을 나눠줬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갖고 놀며 즐거워했다.

 

공연이 끝나고 다같이 점식을 먹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서 그런지 정말 배가 고팠다. 주최측에서 수육 등 각종 반찬들을 손수 포장해왔다. 돗자리를 펴고 밥을 먹었는데 정말 피크닉에 온 기분이었다. 

 

 

 

 

오후 일정은 본격적인 체험 이벤트들로 채워졌다. 하나 하나 짚어보면 △김덕령 활 만들기 및 활쏘기 대회 △나만의 군호 만장 쓰기 △김덕령 장군 후손께 배우는 짚풀공예 △마상 체험 △김덕령 장군 탈 만들기 등이었다. 포커스는 어린이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16시 즈음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모두 모여 버스를 타고 돌아왔는데 주최측은 설문지를 나눠주며 피드백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는 취지로 설문지를 작성해서 냈는데 다음에는 개인적으로 방문해서 맘껏 즐겨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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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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