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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가 김동규 “분노할 일에 분노하고 행동하고 알리는 것이 내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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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규씨는 청소년 시절 5.18 국립묘역에 갔던 경험이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5.18을 알게 된 뒤로 “분노의 마음”이 들었고 뭐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청소년 활동을 시작했던 이유는 5.18이 컸다. 어릴 때 5.18 묘역에 갔는데 잔인한 사진들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걸 보고 분노의 마음이 들어서 진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페이스북에서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라는 페이지를 만들어서 잘 됐다.

 

 

동규씨는 지난 9월30일 20시 광주 동구에 위치한 심야 책방 ‘책과 생활’에서 열린 북토크에 참석했다. 동규씨는 1년 전 동료 활동가 이가현씨와 함께 책 <광주에서 활동가로 살아가기>를 출간했다.

 

동규씨는 5.18을 계기로 청소년단체에 들어갔다. 그렇게 17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을 하게 됐는데 벌써 10년 전의 이야기다. 동규씨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분노였다. 분노할만한 일에 분노하는 마음이 중요했다.

 

청소년단체에서 만난 친한 동생이 찾아와서 힘든 일을 겪었다고 했다. 그 친구는 고3이었는데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임금을 못 받고 폭행을 당했다. 근데 그게 너무 화가 났다.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그 내용을 정리해서 페북에 썼다. 해당 사업주에 대해 사회적 고발을 한 것이다.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 두려웠는지 해당 사업주는 사회적 고발이 이뤄진 뒤에야 합의를 시도했고 밀린 임금의 상당수를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사업주는 문제제기를 한 동규씨와 후배를 온갖 명목으로 고소했고 손해배상소송까지 걸었다.

 

검찰까지 가서 조사를 받았다. 검사가 사업주한테 사과를 하라고 하더라.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도 사건이 무혐의가 돼서 처벌받지 않았다. 그때 어떤 마음의 울분 같은 게 생겼고 비슷한 일들이 생기면 계속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계속 고소를 당했다. 최근에도 한 번 당했다. 네 주체에게 일곱 번의 고소를 당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게 된 동규씨의 삶은, 그렇게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명백한 위법과 잘못을 고발하는 활동으로 채워졌다. 고발의 목적은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동규씨에게는 “알리는 활동”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알리고 고발하는 역할을 쭉 해왔는데 광주에서 뭔가 터지면 알리고 고발하는 것이 내 일이 됐다. 오마이뉴스에서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서 거의 매일 쓰고 있다. 나는 활동할 때 알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알리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아줄 때 그게 힘이 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알려야만 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 동규씨는 “정말 별의별 것을 다해봤다”고 말했다.

 

어떤 걸 고발하고 싶을 때 당근마켓에도 글을 올렸다. 블로그에 올리고 카페에 올리고 네이버 지식인에 내가 질문하고 내가 답변도 해봤다. 예를 들면 ‘명진고 사건’은 무슨 사건인가요? 이런 이런 사건입니다. 하하하. 그러면 답글에 너무 충격적입니다. 이렇게 달린다. 페이스북도 하고 유튜브도 하고 단톡방으로도 뿌린다. 별걸 다하다보니 알리는 마케팅의 방식은 다 알게 됐다.

 

널리 알려 사회적 압박을 가하는 것은 결국 문제 해결로 가는 통로다. 문제 해결을 위해 동규씨는 불매운동을 기획한 적도 있다.

 

예전에 담양의 한 숯불갈비집과 싸운 적이 있다. 정말 심각하게 임금체불을 했는데 피해자 20명에게 7000만원을 안 줬다. 그걸 알리려고 불매운동을 했는데 여기로 전화해서 바로 끊어달라고 했다. 왜냐면 단체주문 예약을 못 하도록 했던 거다.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 말고도 좋은 활동가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도 큰 틀에서 비슷한 가치가 있다. 동규씨는 “(부조리한 일들을) 알리는 영역에서 시작했고 그런 의미에서 활동가들을 발굴하고 알리는 것도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책을 썼다. 북토크에 함께 참석한 가현씨는 “종종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지역 활동가들을) 기록해야 한다. 기록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왔다”면서 이내 광주청년유니온 사무실에서 동규씨와 같이 “그래 해보자”고 의기투합을 하게 됐다. 먼저 리스트업을 했다. 동물권, 기후위기, 여성, 장애인, 청년 등 각 분야별로 광주에도 이런 활동가들이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좋은 취지에 공감한 시민들은 십시일반 텀블벅을 통해 출판 비용 500만원을 마련해줬다.

 

광주에서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하셨는데 광주에 있다 보니 수도권에 비해 덜 주목 받고 재야의 숨은 고수 이런 느낌으로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중략)

 

책을 쓰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것은 박가영님이 명진고 사학비리를 고발한 청소년운동을 했고, 주세연님이 광주에서 청년부채운동을 했는데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란 책을 읽고 마음 안의 작은 불씨를 느껴서 그날부터 뭔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우리들의 책도 뭔가 오랫동안 남는다면 누군가가 그걸 읽고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게 컸다.

 

동규씨와 가현씨는 2탄까지 만들어보고 싶어 고민 중이라고 했다. 동규씨는 “이미 넣고싶은 이야기는 다 넣었다고 생각됐는데 다시 (활동가들) 리스트업 해보니 1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동규씨는 만나본 활동가들 중 주세연 센터장(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과 이상석 사무총장(세금도둑잡아라)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강조했다. 주 센터장은 좋은 공공사업 아이템으로 광주시 예산을 받아 광주역 앞에 ‘광주청년드림은행’을 열었다. 여기서 6명의 팀원과, 청년들을 만나고 있는데 1대 1로 ‘경제 상담’을 해주고 있다. 상담을 통해 맞춤형 회생절차를 안내하고 경우에 따라 매달 조금씩 돈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동규씨는 5.18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지만 토크쇼 내내 “거대 담론만이 아닌 작은 문제로도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환기했다. 이 사무총장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확신이 생겼는데 동규씨는 “마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시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무총장은) 정보공개청구를 자기가 사는 곳에서 계속 요청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니버시아드 관련 사업 업무추진비 그런 정보를 알고 싶다고 요청을 하면 행정기관에서 알려줘야 한다. 근데 보통 이런 저런 이유로 비공개를 통보한다. 그러면 이분은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몇 년이 지나면 무조건 이긴다. 법적으로 공개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정보 내역을 받아) 분석해서 언론에 알리고 직접 경찰 고발도 하고 이런 식의 활동을 계속 하고 계신다.

 

동규씨에 따르면 이 사무총장은 “시민단체들이 포괄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마을에서 가까이 있는 것들을 더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예를 들면 “가로수만 보는 시민모임”과 같은 것이 있다. 광주에 있는 가로등 현황을 분석하고, 충분히 밝은지, 빈부격차에 따라 부촌만 밝은 것은 아닌지 등등 이런 것들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 받아내 분석해볼 수 있다.

 

 

사실 동규씨도 그렇고 수많은 활동가들도 그렇고 ‘생업’과 ‘가치있는 활동’ 사이에서 고심이 깊다. 돈이 안 되는 활동을 놓을 수 없지만 생업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놓고 싶게 만든다. 병행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가현씨는 “투잡, 상근활동 등 다들 각자 선택을 감내하고 있다. 나도 청소년센터 책방지기를 했었고 이 작업(책 집필) 할 때는 직업이 없어서 알바를 전전하고 힘들었다”면서 “사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서 자본주의와 맞지 않는 것 같고 결국 많은 활동가들이 관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아직 힌트를 못 찾았다. 해결책을 같이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동규씨는 몇몇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는 활동가 사례가 있긴 있지만 “대부분 단체에서 소액의 급여를 받고 있다. 그래서 다른 직장생활을 하며 남는 시간에 활동하고 있다”며 “활동으로는 돈을 벌기 어렵고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좋지 않은 결과로 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자신의 활동에) 자긍심이 있는데 나는 왜? 그런 질문이 있다. 586세대의 보상심리와 같은 걸 안 느끼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많은데 단순히 그런 차원이 아니다. 그래서 다들 시민단체 후원을 더 많이 했으면 좋겠고 사실 나도 책을 써서 결국 50만원을 손에 쥐게 됐는데 많이 가혹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책을 만들기 위해 직접 인터뷰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반복해서 편집하고 교정교열을 보고) 엄청난 수고로움이 있는데 남는 게 없는 것이다. 이렇게 흑화되고 안 좋게 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힘과 세력을 더 많이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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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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