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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 속 비참한 현실 “15% 안에 들지 못 하면 천현우꼴 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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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5%안에 들어야 살아남는 현실에 할당제 눈에 들어올 리 없어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용접공 출신 천현우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정말 좋아했다. 소설 공모전에도 몇 번 도전한 적이 있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칼럼 등을 쓰다가 <쇳밥일지>라는 책을 냈고 일약 진보진영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천 작가는 현재 얼룩소를 통해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천 작가는 10월28일 저녁 7시반 광주 동구에 위치한 광주청년센터에서 강연을 했다. 이날 천 작가에게 직접 질문을 하고 <쇳밥일지>를 선물로 받았는데 이틀만에 완독했다. 왜 진작 이 책을 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술술 읽혔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몸을 써서 일해왔던 블루칼라 노동자의 생존 일지 그 자체였다. 택배 상하차와 편의점 알바부터 전자제품 업체 하청 공장 근무 등 안 해본 일이 없는 나 역시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천 작가의 고백을 접하고 큰 위로를 받았다. 경외심까지 들었는데 <쇳밥일지>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 대한 공감과 위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용접공’이라고 하면 몸은 좀 고되도 기술직이기 때문에 고용안정성을 보장 받으면서 수입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천 작가는 강연에서 청년에 대한 고찰과 함께 용접공으로서의 경험을 녹여내서 이야기를 들려줬다. 천 작가는 스스로 지독히도 가난하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경남 마산에서 여관에 전전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천 작가는 일찍이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실업계 고등학교와 전문대 코스를 밟았다. 전문대생이던 때 현장 실습을 나가 산업재해를 당하기도 했다. 발에 3도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업체는 나몰라라였다. 천 작가는 산재의 사각지대에 있는 현장 실습생의 비애와 잔혹한 현실에 대해 맹렬히 비판했다.

 

의사는 드러누우라고 했는데 드러눕지를 못 했다. 왜냐면 그 당시에 난 잘 몰랐다. 그냥 (전공 교수에게) 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현장 실습을 관두게 되면 학점도 다 날아갈 거라는 걱정이 앞섰다. 교수님은 얼마나 번거로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현장 실습생이 산재를 당하는 뉴스를 지금도 종종 듣는다. 그 소식을 정말 심심하면 듣는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무도 안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과하게 (저항)해야 한다. 사장에게 누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현장 실습생들은 대부분 또 너무 착하다. 왜 그러겠는가? 다른 청년들은 다 대학에 진학할 때 뭐라도 해보려고 일을 기꺼이 하러 온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겠는가? 하지만 이런 것을 악용하는 업체와 업주가 있어 문제다.

 

 

천 작가가 직접 겪은 노동 문제들은 한국 노동 인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천 작가는 같은 직장 안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전자가 후자를 무시하고 깔보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창원 GM의 하청 계약직으로 일을 했었다. 그곳에서 차의 문짝을 다는 일을 했다. 조금만 늦어도 정규직들이 튀어나와 쌍욕을 했다. 주간에는 보는 눈이 많다. 그러나 야간에 관리자가 없을 때는 정규직들이 사무실에서 자거나 유튜브를 본다. 체스를 하거나 주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이분들 연봉이 8000만원 정도 되었다. 똑같이 주야로 고생하는데 나는 연봉이 2400만원이었다. 연봉 차가 3배인데 이 사람들만 다 누리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성에 다닐 때도 임금 격차는 많았지만 적어도 같은 일을 시키기는 했다. 그러나 GM은 같은 일을 시키지 않았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되었다.

 

동일 노동과 동일 임금인데 2400만원과 8000만원이라니? 자본주의적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 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노동자 사회 내부의 잔인한 계급이 존재한다. 계급에 따라 에어컨도, 선풍기도, 휴게실도 쓰지 못 한다. 하청 노동자들은 인도 카스트 제도의 수드라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용접을 처음 시작하며 SNT라는 곳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여름에 용접을 하면 정말 덥다. 당시 회사에는 일명 ’코끼리‘라고 불리는 공기 순환기가 있었다. 그러나 하청업체 직원들에게는 이게 제공되지 않았다. 선풍기를 쓸 수도 없다. 잘못하면 초고온으로 인해 액체 상태가 된 부분이 흩날려 불량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녹초가 된 상태로 휴게실에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잠시 눈을 붙였는데 한 아저씨가 다가와 소속을 물었다. 소속을 말하니 ’하청은 이곳을 못 쓴다‘고 말을 했다. 심지어 하청 소속은 샤워실도 쓰지 못 했다. 퇴근을 할 때면 땀에 절어 찜찜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 버스에 타도 사람들이 옆에 앉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최소한의 인간 대접도 해주지 않았던 걸까?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지만 불편한 진실인데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피 흘리며 민주화운동에 나서서 직선제를 얻어냈고, 후세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니 투표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

 

(정규직들은) 자기들이 회사와 투쟁하며 이걸 얻었으니 다른 비정규직 직원들은 이걸 쓰면 ’무임승차‘와 같다는 논리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노동조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모른다. 노조에서는 하청도 신경쓴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일은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행태가 고쳐져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지만, 아직 고쳐지지 않은 것 같다

 

 

용접업계에서 업체들은 정규직을 잘 뽑지 않는다고 했다. 숙련공임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주기도 한다. 전체의 아주 일부만 원청 정규직 용접공으로 간택될 수 있다. 대부분의 하청 용접공들은 10년을 웃도는 경력을 갖고 있더라도 월급 200만원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천 작가는 유최안 부지회장(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례를 거론했다. 유 부지회장은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스스로 선박 바닥에 케이지를 용접해서 고정시키고 그 좁은 공간에 스스로 몸을 가뒀다.

 

월급 200만원이 진짜다. 유최안 부지회장이 그렇다고 허접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거대 블록을 용접하는 일인데 정말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다. 절대 아무나 못 한다. 숙련이 무너진 것이다. 직업 박람회에서 연봉을 들어봤는데 똑같다. 한 3000~3200만원 정도다. 지역 청년의 인생은 숙련의 개념이 없다. 그래서 다 떠나는 것이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나온 것도 정책으로는 뭔가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잘 모른다.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 용접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가 개선돼야 겠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그러한 일자리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남성들은 아무리 열악한 곳이라도 일단 갈 수는 있다. 어쨌든 간에 땅바닥에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 그런데 여성들은 일자리가 정말 없다. 최근 울산의 인구 도표를 보면 여성 인구가 9면 남성 인구가 10이다. 그리고 전 지역에서 서울만 유일하게 여성 인구가 많고 나머지는 남성 인구가 많다. 여성 인구가 다 서울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블루칼라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전제조건이다. 더불어 여성이란 굴레까지. 그야말로 삼중고다.

 

경공업 업체에서 일했을 때 여성 노동자들을 많이 봤었다. 이분들은 늘 최저임금으로 살아왔다. 정말 늘 지역 불문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은 열악하다. 거제도에서 배 타고 파워공(도장업체에서 파워그라인더 작업을 하는 사람들)하는 분들도 최저임금을 받는다. 구미에서 하얀 옷을 입고 반도체 작업을 하는 분들도 그렇고 광주 어딘가에서 자동차 부품을 열심히 만드는 분들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공장에서 무조건 최저임금이고 직급이 반장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10년 있어도 반장이고 20년 있어도 반장이다. 남자들은 그래도 밖에 나가면 쪽팔리지 말라고 5년 정도 지나면 대리 정도는 달아준다. 진짜 이런 식이다. 한창 청년 일자리 정책도 펼치고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계단이 잘 되어 있어가지고 최저임금으로 시작해도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연봉이 쭉쭉 올라가지 않을까? 아니다. 보통 조선소 하면 무슨 생각을 떠올리는가? 고임금 중노동을 많이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천 작가는 여성 노동자의 처우 문제를 읊다가 이대남과 공정 담론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갔다. 천 작가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공정론이 대두된 핵심적인 이유를 꼬집었다.

 

작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갑자기 이대남이 악마화가 되었다. 이들은 개인주의적이며 이기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이대남 뿐만 아니라 공정 담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다. 제일 문제는 떨어지면 끝인 것에 있다. 우리가 소위 생각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모든 일자리 중에서 그 비율이 15% 밖에 되지 않는다. 그 밑으로 떨어지면? 천현우꼴 나는 것이다. 무슨 이게 과장도 아니고 러프하게 사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15%에 어떻게든 나는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노이즈가 끼면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스포츠랑 비슷하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 모든 게 반칙이 된다. 이 룰 빼고는. 그러니까 시험이라는 룰 빼고는 모든 게 다 룰이 안 되는 것이다. 이들 입장에서 여성 할당제 같은 것은 부당한 방식이 된다.

 

 

진보진영과 시민사회에서 이대남을 질타하거나 악마화 할 게 아니라 그들이 처한 잔혹한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공정 담론을 막 떠들면서 악마화를 하는데 그게 아니다. 왜 그러겠는가? 이들은 비빌 언덕이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떨어지면 끝이다. 그러니까 공정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내 생각들을 글로 적었는데 그게 빵 떴다.

 

결국 핵심은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이다.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무한경쟁사회에서 특정 집단과 특정 계층에 대한 어퍼머티브 액션을 절대 곱게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각박해져 갈 수밖에 없다. 천 작가는 앞으로 ’청년 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스스로 더는 청년으로 분류될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년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규정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가난한 청년과 부유한 청년이 처한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이를 분리해서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진짜 청년 담론이 시작되는 길이다.

 

청년 문제는 결국 계급 이야기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청년 중에는 흙수저도 있고 금수저도 있다. 이들이 어떻게 같겠는가?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애써 무시하고 청년이라는 계층으로 엮어버린다. 뭔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가난한 사람이 별로 없다. 심지어 계급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고 정치권에서도 전부 중산층, 이런 사람들을 가지고 청년 이야기를 한다. 청년은 결국 계급 문제가 본질이고 그 계급 문제에는 성별, 지역, 재산 이런 것들이 전부 포함된다. 이 맥락을 전부 다 해체해서 끄집어내는 게 청년 담론이 시작되는 부분이라고 본다. 계급의 문제, 성별, 지역, 자산 이런 모든 것들을 꺼내놓고 얘기해 봤으면 좋겠다.

 

 

준비한 강연이 모두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천 작가는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질문을 받고 법의 허점을 비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본질적이지 않다. 왜냐면 다 빠져나간다. 중대재해법을 만들고 제일 이득을 본 집단은 노동자가 아니다. 변호사다. 변호사들이 기업의 의뢰를 맡으며 몸값이 엄청 뛰었다. 물론 소득이 아예 없진 않다. 대기업들은 변호사들도 많이 고용하지만 안전 관리 인력도 많이 고용한다. 그러나 그 외는? 그 비싼 안전 인력들을 누가 고용하겠는가? 국가가? 아니다. 대기업 섹터가 크겠는가 전체 섹터(대한민국 전체 기업 중 중소기업이 99.8%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가 크겠는가? 당연히 전체가 더 크다. 그러니까 산재가 줄어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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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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