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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관심없는 사람들의 ‘월드컵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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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누구보다 월드컵 분위기에 심취해있던 지난 11월28일 아침 단톡방에 “이번 월드컵에서 건물 축조 등에서 사고가 빈발했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었지만 방금 이 월드컵 준비가 6700여명의 희생자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톡이 올라왔다. 대학 동창 4명이 모여 있는 단톡방이었는데 선배 A씨는 “그렇게 많이 희생된줄 몰랐는데 월드컵을 시청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A씨는 “원래 (축구에) 관심도 거의 없었기에 안 보는 것도 있었지만 (노동 인권 문제 때문에) 앞으로의 경기들을 보면 안 되는 것인지 고민스럽다”며 “그 문제와 그밖의 것들이 별개인지가 잘 분별이 안 된다. 그래서 의문이 계속 든다”고 덧붙였다.

 

사실 카타르 월드컵은, 유치 과정에서 엄청난 뇌물 스캔들이 있기도 했고 대규모 축구장 건설에 동원된 남아시아 5개국(인도/네팔/방글라데시/스리랑카/파키스탄) 출신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사망한 만큼 기존 월드컵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더구나 카타르 왕족의 방관이 있었고 인판티노 피파 회장의 망언이 겹처 월드컵 자체에 보이콧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마냥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다. 심지어 성소주자 탄압 국가답게 카타르는 여러모로 후진적이다.

 

 

야구광이자 축구광인터라 축구 이슈 자체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정말 이런 인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월드컵을 보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노동과 성소수자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은 진보적인 사람이긴 한데 지상 최대 축구쇼를 보이콧하며 목소리를 내야 할까?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덴마크 대표팀은 카타르 월드컵의 노동 인권 문제에 항의하는 뜻으로 블랙 유니폼을 선정하는 등 월드컵 자체를 보이콧하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3일 페이스북을 통해 “월드컵과 애국주의, 월드컵과 보이콧 등에 대해 고민할 때 이런 이름들을 함께 떠올려봤으면 좋겠다”며 지단(프랑스), 드록바(코트디부아르), 오마르 알 소마(시리아), 압둘 바셋 알 사루트(시리아), 사르다르 아즈문(이란) 등의 사례를 제시했다.

 

(월드컵은) 보이콧해야 할 무대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세계에 무언가를 전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월드컵 자체는 비윤리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 그걸 주최하는 자와 개최하는 자의 문제가 있을 뿐이고 그들이 제공하는 주목 효과를 활용해서 오히려 비판적인 메시지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월드컵 등 너무나 거대한 대상에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접촉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기 때문에 무작정 불매운동만 주창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반대로 축구에 관심이 없는데 월드컵 기간이라고 해서 억지 관심을 압박 받을 필요도 없다. 사실 이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었다. 지난 11월28일 네이트판에 “축구 안 좋아하는 사람 있냐. 안 좋아한다기 보단 관심이 없다. 월드컵 시즌만 되면 도태된 느낌”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장혜영 의원(정의당) 역시 12월3일 포르투갈전을 시청하지 않을 정도로 축구에 관심이 없다. 장 의원은 이날 진행된 <토론의 즐거움>에서 “국회의원이 아니었을 때도 축구 월드컵을 막 챙겨보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뭔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건 알겠지만 그 재미의 포인트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이런 시기에는 좀 소외돼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축구를 안 좋아한다는 이유로 소외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차라리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에 축구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어보면 어떨까. 찾아보면 분명 있을 것이다. 단순히 월드컵 기간 동안 소외감을 덜 느끼고 싶다는 것과, 남들이 축구 얘기만 할 때 조금이라도 아는 척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어 다이제스트가 필요한 경우 두 가지가 있을텐데 후자라면 각종 축구 유튜브 채널들을 추천하고 싶다. <김진짜><새벽의 축구 전문가> 등이 있는데 <김진짜>만 보면 축알못 신세를 벗어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는데 2019년 6월 U-20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결승까지 올라갔던 그때 네이트판에 이런 사연이 올라왔다. 20대 여성 B씨는 “축구에는 관심도 없고 축구에 축자도 모르는 사람인데 남자친구는 축구를 진짜 엄청 좋아한다”면서 아래와 같이 풀어냈다.

 

나는 관심이 있는 분야가 아니라 모르는데 내가 멍청하고 애국심이 없는 사람인가? 유럽 리그 잘 몰라서 물어봤는데 무시란 무시는 다하고 어떻게 그런 걸 모르냐고 꼽을 주더라. 기분이 나빠서 더는 물어보지 않는다. 또 이번에는 나이대 어린 사람들이 하는 월드컵을 한다는데 결승이라고 꼭 보라고 하길래 나는 축구 잘 모르고 골 넣어도 누가 넣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저 그렇고 지루하다고 말을 했더니 애국심도 없냐고 하고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골 넣어서 환호하는데 네 눈에는 한심해 보이냐고 확대 해석을 하더라. 내가 저렇게 말한 게 잘못인가? 객관적으로 잘못이라면 반성하겠지만 연인 사이에도 본인이 싫어하는 건 싫어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거고 관심 없는 것도 관심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왜 그런 거 좋아하냐고 한 것도 아니고. 축구 흥미 없다고 했다가 애국심 없는 사람 취급해서 너무 화가났다.

 

사실 현대사회에선 모든 걸 개인의 취향에 따라 하면 되고 타인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B씨와 같이 가까운 사람과 취향이 불일치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B씨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남친은 굉장히 배려가 없고 일방적인 사람이다. 연인 사이에서 둘 다 관심사가 일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호 존중해주거나 정 여친이 축구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면 축구장에도 데려가고 본인이 알기 쉽게 잘 설명해주면 되는데 “무시하고 꼽을 줬기 때문”이다.

 

B씨는 “지난번에도 축구 보라고 강요하길래 나는 축구팬들 존중하고 네가 새벽같이 일어나 보는 것도 다 이해하는데 나에게 강요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B씨는 남친으로부터 “자기 이상형은 축구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너무 축구를 좋아하는 만큼 축구 얘기를 대화에서 아예 안 할 수도 없는데 내가 억지로라도 관심 갖고 그래야 해결할 수 있는 걸까? 또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 보여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축구를 봐야하나 고민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게 축구는 너무 어렵다. 그리고 나는 무시하거나 이해 안 된다는 투로 말한 적 없는데 반대로 남친은 저런 식으로 말을 해서 기분도 상한다. 어떡해야 할까?

 

 

반대로 B씨가 남친에게 자기 취향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똑같이 요구해보면 어떨까 싶다. 예컨대 B씨가 좋아하는 요가를 남친에게 막 시켜보는 것이다. 사실 나중에 부부 사이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더 골치가 아프다. <안녕하세요>나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나온 사연자들 중에 가족의 과한 취미 몰입으로 인해 피곤해졌다는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카타르 월드컵이 끝나면 내년에 ‘2023 WBC’와 ‘AFC 아시안컵’이 있고 내후년에는 ‘파리 올림픽’이 있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피곤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남편을 따라 아내가 축구를 좋아하게 되거나, 아내를 따라 남편이 요가를 좋아하게 되어서 같이 즐기는 것이다. 아니면 각자 취향이 존중되기만 해도 더 바랄 게 없다.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는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 나처럼 월드컵 기간에만 자발적으로 축구를 챙겨보는 사람, 월드컵에도 축구를 안 보는 사람. 이렇게 세 종류가 있을 것 같다”면서 “내가 알기로는 박찬욱 감독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안 봤을 정도로 축구에 무관심하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이나 타인으로부터 자기 취향이 공격 받지 않을 정도의 내공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감독은 에세이 <박찬욱의 몽타주>에서 “모두가 축구 이야기만 하고, 나하고는 전혀 안 놀아주더라. 재미난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없고, 그 시간에는 무슨 약속도 잡을 수 없었다. 극장에 볼 만한 영화가 안 걸렸다”며 “고독했다. 학교에서 따 당하는 애들의 심정이 뭔지도 알게 됐다. 친일파의 죄책감이 이랬을까. 부역자의 공포가 이만큼이었을까. 나는 월드컵이 싫어요라고 절규했다가 입이 찢어지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 누구도 박 감독한테 축구 안 좋아한다고 뭐라고 하진 않을 것 같았는데 나름의 고충이 있었구나 싶은데 물론 이런 지점도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 있다면 얕은 공감대라도 형성해줄 수 없을까?

 

B씨의 게시물에 한 네티즌은 “(월드컵 결승이니 꼭 보라는 말에) 그저 그렇고 지루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그냥 공감 능력 전혀 없는 사람 같다”며 “안 보는 건 님의 자유이고 그냥 알았다고 했으면 아무 문제없었을 듯. 솔직히 뭐 축구 보는데 뭐 엄청난 상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남친이 그렇게 좋아하면 맞장구쳐주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고 댓글을 달았다.

 

내가 뭔가를 엄청 좋아하는데 나랑 사귀는 사람이 완전 부정적으로 나오면 기분이 썩 좋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B씨는 전혀 노력을 안 한 것 같진 않고 오히려 남친으로부터 어그로적인 언사를 들어서 더 오기가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런 남친이라면 차라리 피하는 게 상책인 듯 싶다.

 

결국 박 감독은 월드컵 동안 “잠시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고 한다. 20년 전이긴 하지만 그때 박 감독은 꼭 가지 않아도 되는 미국 영화제에 참석했다. 마침 박 감독은 올 여름부터 드라마 <동조자> 촬영차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의도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2년만의 16강 진출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는 열광의 분위기를 피할 수 있게 됐다. 박 감독처럼 해외가 아니더라도 월드컵 동안 휴가를 내고 한적한 국내 여행지를 잡아 머물러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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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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