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서울권 대학 다니는 청년들만의 공정 담론 “누군가에게 상처될 수 있어”

배너
배너

[평범한미디어 한정희 기자] 청년과 공정은 핫한 키워드다. 검색창에 ‘청년’을 치면 수많은 청년 지원 정책들이 나오고, ‘공정’을 치면 공정거래위원회 이하 ‘공정하다는 착각’을 포함한 ‘가치와 거래’에 관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담론의 지형이 슬쩍 드러나는 부분이다.

 

지난 1월 고려대학교 정치연구소에서 <불안: 청년세대가 바라본 한국 사회>라는 주제로 에세이 공모전을 개최했다. 수상자들의 글은 책 <어쩔청년 저쩔공정>으로 재탄생했다. 19일 저녁 서울 성북구 소재 ‘피카커피’에서 북콘서트가 열려서 가봤다.

 

여느 북콘서트나 발표회장과는 다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인적 구성에서부터 도드라졌다. 공동 저자 청년 4명이 가운데에 모여 있으나, 사회자와 패널 그리고 청중들 대다수가 ‘교수님’이었다. 조계연 교수(고려대 정치연구소)가 진행을 맡았는데 공동 저자들이 각자 집필 내용을 소개하고, <급진의 20대> <인싸를 죽여라> 등을 펴낸 김내훈 작가와, 이정진 연구관(국회입법조사처)이 토론자로 나섰다.

 

 

먼저 엄준희씨(고려대 정외과 대학원생)는 청년들의 불안 정서에 주목했다. 준희씨는 청년의 불안은 경제 문제와 직결돼 있다면서 스스로 대학 생활 내내 학업과 돈 문제로 내적 갈등을 자주 겪었다고 고백했다. 준희씨는 책 속에서 공정 담론의 한계에 대해 꽤 많은 양을 할애해서 피력했다고 밝혔다. 준희씨는 “공정성이라는 건 굉장히 추상적”이라며 공정 담론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의 전제조건이 바로 먹고사니즘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전제조건이 먹고 살만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공정성이라는 건 굉장히 추상적이다. 우리가 나와 관련된 일도 많지만 나와 관련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까지도 그것이 어떻게 해야 공정이고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추상적인데 사실 이러한 논의를 활발하게 이어나가려면 지금 내가 당장 경제적으로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며 당장 내일 밥값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고 교통비를 어떻게 아끼지? 이런 생각들에서 좀 벗어났을 때 공론장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준희씨는 지방 출신이지만 서울 명문대에 진학했던 만큼 “굉장히 운이 좋은 환경 속에서 이런 공정 담론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사실 청년세대가 교육을 받을 때부터 그냥 사지선다 중에서 답을 고르는 교육을 받았지 그래서 너는 공정이 뭐라고 생각해?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교육을 받은 적도 없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이런 논의를 주도할 수 있는 청년 계층은 사실상 수도권 대학을 다니고 있고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상위 계층이고 이런 특성들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까 좀 더 다양한 논의가 나오기 힘들다. 좀 더 다양한 논의를 하려면 그 논의가 이뤄지기 위한 전제조건이 성립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참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논의를 하는 게 괜찮을까? 우리가 공정에 대해서 이렇게 논의를 하는 것이 다른 계층들의 공정을 포괄하지도 못 할 것이고 어떻게 보면 이렇게 우리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텐데 이런 고민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청년 계층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내 위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성찰하고 있다.

 

 

북토크에 참석한 준희씨의 지인 A씨는 “평소 준희가 실제 자신의 위치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았다는 점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다소 죄악시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면서 “이런 친구가 정치학을 공부하고 공정에 대해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책 제목과는 달리 이 자리에 청년 청중이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준희씨의 또 다른 지인 B씨는 대학의 틀을 벗어나 사회에 진출해서 바라보니 소위 청년과 공정 담론이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쓴소리를 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지독한 엘리트들인가 얼마나 좁은 시각으로 청년을 바라보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현재 통용되는 청년 담론은 소위 ‘말하기 좋은 일’만 과잉 대표되고 있으며 여성 구직자를 배제하는 등 남성 할당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지만 사람들이 말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라 담론에서 배제되고 있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연구를 해줬으면 좋겠다.

 

취업준비생 김민준씨는 영화를 소재로 글을 썼다면서 학창시절 내내 함께 성장해왔던 주변 지인들 모두 정치 무관심층이라는 점이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특정 세대에서는 “신화적 정치인”을 추종하는 팬덤 현상이 목격되고 있는 만큼 정치 고관여층과 무관심층간의 괴리가 커져가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민준씨는 정치 혐오 정서가 강한 20대 청년들이 이준석 전 대표(국민의힘)에 열광하는 현상을 고찰하고, 이 전 대표의 소구력,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정치의 작동 방식 등을 정리했다. 

 

 

김소영씨(고려대 정치외교학과)는 3가지 질문을 던졌다.

 

①청년 계층은 단일한가

②그렇지 않다면 정치권은 어떻게 공정함을 대변하고 있는가

③여기에 포퓰리즘 면모는 없는가

 

이에 대한 답을 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는데 소영씨는 “우리 사회의 담론이 진정한 능력주의를 쫓고 있으나, 능력은 하나의 잣대로 평가될 수 없어서 허상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냈다.

 

특히 소영씨는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는 청년 여성으로서 맞닥뜨리는 당황스러운 상황들이 아주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정치권에도 여성 혐오적 분위기가 만연한데 정치인들이 관심 갖는 ‘청년’ 역시 ‘남성 청년’이 디폴트값이라는 게 소영씨의 주장이다. 그래서 소영씨는 어떻게든 정치권에 여성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반면 조성빈씨(고려대 교육행정 대학원)는 성차별에 대한 질적 연구를 시도해봤다며 가상의 동명이인 남성 ‘성빈’이 겪은 성폭력 상황을 가정했다. 직장내 괴롭힘, 사회적 시선 등 다양한 폭력과 성범죄의 대상에 남성도 해당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성빈씨는 성폭력에 대해 성별을 떠나 그 자체로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으며 현실 세계에서 남성에게도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소영씨는 청년들 사이에서 “(정치인은 거짓말을 잘 한다는 의미로) 마피아 게임을 잘하겠네?”라는 표현을 들었다면서 소위 정치 혐오적 반응 사례들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