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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일의 교통 렌즈①] 오줌 급한 기사가 세워둔 ‘마을버스’ 밀려내려가 50대 여성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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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그동안 평범한미디어는 교통, 화재, 수해 등 안전 보도를 비중있게 취급해왔으나 모든 교통사고와 모든 화재사고 등을 다 다룰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는 사망 사고 자체만 보더라도 너무나 많이 일어나서 다 다루지 못 했다. 그런 와중에 일반 시민들이 꼭 알아야 할 안전 관련 법적인 문제나 팁들을 짚어주지 못 하는 목마름을 느꼈다. 그래서 각 분야 전문가를 1명씩 선정해 정기적으로 중요한 안전 사고를 정해서 알기 쉽게 다뤄보는 기획을 해보고자 한다. 교통사고 분야는 그동안 평범한미디어에 많은 도움을 줬던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엔엘)와 함께 해볼 계획이다. 정경일의 교통 위클리는 월 1회 진행된다. 

 

지난 12일 아침 9시29분쯤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 해안가 근처에서 한 마을버스가 정차했다. 마을버스 기사 30대 남성 B씨는 하차하여 어디론가 급히 이동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버스를 세운 것인데 문제는 그 직후 발생했다. B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버스는 갑자기 자기 멋대로 움직였다. 버스는 도로 경계석을 들이받고 근처를 지나가던 50대 여성 A씨까지 덮치고 말았다. A씨를 충돌한 버스는 컨테이너까지 충돌하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무려 200미터를 굴러갔다.

 

 

B씨는 부산해운대경찰서에 “마을버스를 정상적으로 정차했지만 미끄러져 내려갔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버스는 시동이 켜진 상태였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사실 경사로에서 차량이 미끄러지는 사고는 꽤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평범한미디어에서도 자주 다룬 교통사고 유형이고 안전 팁에 대해서도 정말 지겹도록 많이 정리를 해놨다. 그래도 반복해서 다시 한 번 다뤄보도록 하겠다. 경사로에 차를 안전하게 주차하는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기어 파킹 △사이드 브레이크 채우기 △고임목 설치 △상대적으로 경사 덜한 곳에 주차 △핸들 살짝 돌려놓기 등이 있다. 기본적으로 주정차된 차량의 밀림 사고는, 차량이 밀리도록 방치한 차주의 과실을 무겁게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교통사고 재판에서 어떠한 변수들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혹시 보행자의 과실은 고려되지 않는 것인지? 운전자의 사정이 정상참작될 요소들은 전혀 없는 것인지? 사실 정 변호사가 당연히 보행자의 과실은 별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할줄 알았는데 의외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정 변호사는 비슷한 의뢰건이 있었는데 보행자에게 무려 15%나 되는 과실 책임을 물었던 판례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고처럼 차가 그냥 운전자없이 혼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경우 운전자가 없기 때문에 차가 운전할 때보다 느릴 것이며 피할 시간이 어느정도 있지 않는가? 뭐 그런 이유로 (재판부가) 보행자의 과실을 어느정도 묻는 경우가 있었다. 15%로 보행자 과실을 잡은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가 지인과 걸어가고 있었는데 해당 사고처럼 차가 미끄러져 내려온 것이다. 다행히 지인은 다치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피해자분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여기에 대해서 관련 녹취록도 내고 항소도 했지만 보행자 15% 과실은 변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건 바로 ‘이면도로’였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곳은)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 이면도로였다. 그래서 보행자의 주의도 중요하게 본다. 만약에 인도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와서 들이받았다면 운전자의 과실이 100%가 되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보행자의 과실 비율은 조금이라도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은 생활도로인지? 차도와 인도가 분리된 일반 도로인지? 도로의 종료에 따라 운전자와 보행자간의 과실 비율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이다.

 

덧붙여서 정 변호사는 “차가 그냥 굴러와서 사람이 다치는 사고 자체가 사실 황당하다”며 “당연히 운전자의 중과실로 봐야 될 것 같은데 12대 중과실에 해당되지 않아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그러니까 ①신호위반 ②중앙선 침범 ③제한 속도보다 20km 초과하여 과속 ④앞지르기 방법, 금지시기, 금지 장소 또는 끼어들기의 금지 위반 ⑤철길건널목 통과 방법 위반 ⑥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⑦무면허 운전 ⑧음주운전 ⑨보도 침범 ⑩승객추락 방지의무 위반 ⑪어린이보호구역 안전운전의무 위반 ⑫자동차 화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필요 조치를 하지 않고 운전 등 12대 중과실에 해당되지 않거나,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지 않으면 종합보험으로 처리하고 형사처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는 피해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소변이 급하다는 이유로 시동을 켜둔 채 버스에서 내렸다. 스스로도 평지와 내리막길의 경계로 보이는 곳(비교적 평지에 가깝다고 여긴듯)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 누가 봐도 내리막길이라면 단순히 기어 파킹과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놓는 것으론 부족하다. 승용차도 아닌 마을버스의 크기라면 충분히 차량 밀림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을 거다. 그래서 고임목 정도는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만약 B씨가 재판에서 이런 지점을 어필한다면 과실 책임을 어느정도 인정받게 될까? 정 변호사는 회의적으로 봤다.

 

확실한 경사로가 아니라 애매한 경사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운전자는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주차장법에 따르면 경사로에는 주차금지 표시가 의무적으로 설치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운전자는 불법 주정차를 한 것으로 보인다. 꼭 경사진 곳이 아니더라도 잠깐 정차할 때는 주차 브레이크와 사이드 브레이크 모두를 채워야 한다. 핸들도 인도 방향으로 돌려놓으면 정말 좋다. 약간의 경사로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변명의 여지가 있어 약간의 양형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만약 기어 파킹, 사이드 브레이크 채우기, 고임목 설치, 상대적으로 경사 덜한 곳에 주차, 핸들 살짝 돌려놓기 등등 2중 3중 4중으로 조치를 해놨다는 게 입증이 된다면 좀 정상참작되는 부분이 커지지 않을까? 일단 정 변호사는 “고임목 설치, 기어 파킹, 사이드 브레이크 등 모든 조치를 취했다면 차가 내려갈 수가 없다”고 일축했다.

 

만약 차량 결함이나 외력에 의한 것이라 해도 운전자가 결백을 증명할 증거를 가져와야 한다. 만약 외력 즉 누군가가 차를 고의적으로 굴러가게 만든 것이 밝혀지면 당연히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 일단은 이런 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1차적으로 책임을 지는 구조로 (법률이) 되어 있다.

 

 

앞서 말한 이유 외에도 B씨는 시동도 끄지 않았다. 이 부분이 정말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다. 중량과 부피가 큰 차량일수록 당연히 더 위험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승용차가 아닌 1톤 트럭 이상의 규모있는 대형 차량 운전자들은 애초에 조금의 경사가 있는 곳에는 아예 주정차를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정 변호사는 “조치만 잘 취하면 괜찮다고 본다. 고임목 그거 그렇게 비싸지 않다”며 “앞서 말한 각종 조치만 잘 한다면 (경사로에 주차를)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현실적으로 1톤 트럭 이상의 차량을 갖고 있는 운전자들이 평지만 골라서 주정차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산지가 70% 넘는 대한민국 국토에서 경사로는 아주 흔하다. 불가피하게 경사로에 잠시 주정차를 해야 할 상황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경사로에 주정차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차량 밀림 사고를 원천 차단하라는 말은 아무리 봐도 좀 무리가 있다. 다만 경사로 주차를 하더라도 사전 조치들을 철저히 취해놓기만 한다면 절대 아래쪽으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B씨가 버스를 세워놨던 곳은 원래 ‘간이 화장실’이 있던 장소라고 한다. 해운대구에서 지난 태풍 때 임시로 설치해놓은 것이다. 그런데 해운대구는 간이 화장실을 철거한 뒤에도 정식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서 관광객과 버스기사들은 꽤 멀리 걸어가서 ‘블루라인(해변열차) 정거장’ 화장실을 이용하게 됐다는 것이 동료 기사들의 전언이다. 해운대구가 원래 있던 정식 화장실을 마련해놓았다면 이번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B씨가 이런 지점을 어필한다면 참작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을까? 정 변호사는 단호하게 “참작 요소로 전혀 충분치 않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의 눈에 비친 이 문장은 논리적인 허점투성이었다.

 

이런 주장은 안 하느니만 못 하다. 화장실이 멀리 있기 때문에 이동하느라 차에 재빨리 도착하지 못 해 사고가 났다? 화장실만 가까이 있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논리적 비약이다. 법적으로 참작될 여지가 하나도 없다. 정 급하면 고임목이나 하다 못 해 주변 돌멩이라도 설치하고 갔어야 했다.

 

끝으로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차량 미끄러짐 사고에서 사망 또는 중상해가 발생했을 때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그리고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중대한 교통사고 과실 범죄에 대해 재판부는 어떻게 인식할까?

 

사망이나 중상해 같은 경우에는 일단 일률적으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3조에 따라 5년 이하의 금고형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다만 일반 부상 사건의 경우 12대 중과실 유형의 교통사고가 아니면 보험 처리로 끝나고 별도의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차량 미끄러짐 사고도 12대 중과실 사고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사망, 중상해가 아니라면 보험 처리로 끝날 수 있다. 다만 이번 사고는 피해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운전자는 앞서 말한 것처럼 5년 이하의 금고형에 처해진다. 중상해의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가 전제된다면 형사처벌은 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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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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