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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⑰] 남친의 여사친이 거슬린다고? “믿음도 의무이자 책임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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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우선 상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당신에 대해 어느 정도 유추해볼게. 그거 알아? 사람은 말야, 은연 중에 자신이 내뱉는 말 한 마디, 무심코 쓰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로 자기 자신에 대해 무수히 많은 정보를 드러내기 마련이거든. 작가가 쓰는 글 내용을 보고 이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도 그래서인 거고. 당신은 나름의 익명성을 빌려 스스로를 숨기려 했겠지만 내가 본 당신의 정보는 대략 이래. 당신의 성별은 여성이다, 또한 남친이 있으며 그 남친에게는 여사친이 있다. 또한 남친의 여사친은 당신과 연애를 한 이후에 생긴 친구일 거다. 내가 유추해낸 것이 맞다 해도 너무 놀라지 마. 성별이 다른 친구를 두고 “못생겨서 걱정없다”는 말을 하는 건 대부분 남성들이고, 무엇보다 당신은 끝 문장에 애인이 있는데도 남여사친을 만드는 사람을 콕 집어 이야기했지. 이걸로 당신과 당신 애인의 성별과 상황을 유추한 거니까.

 

저는 남여사친이 언제든 연인관계로 발전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남여사친에서 연인 관계로 발전된 사람들도 많을텐데 그걸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잘 이해할 거라고 생각되네요. 애인이 원하면 제발 남여사친 좀 정리해주세요. 애인이 정리하라고 하는 게 이기적인 게 아니라 친구라서 괜찮다, 얘랑은 그럴 일 없다, 못 생겨서 괜찮다, 선 넘으면 철벽치겠다, 이게 개소리고 이기적인 거니까 제발 정리해주세요. 게다가 애인이 있는데 새로운 남여사친을 굳이 사귀려고 하는 행위는 더욱더 이해가 안 가네요. <고민글 출처 : 전국대학생대나무숲 / 2020년 10월29일>

 

 

그럼 내가 유추해본 정보를 바탕으로 상담을 시작하지. 그 전에 나는 당신이 사람과의 관계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좀 묻고 싶어. 사람이란 건 말이야,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가 제각각 달라. 누군가와는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를 맺고 있고, 또 누군가와는 친구라는 관계를, 또 누군가와는 애인이라는 관계를 맺고 있는 식이지. 당연히 관계에 따라 서로를 대하는 양상도 달라지니 아무리 친구가 성적으로 끌리는 성별을 가졌다고 해도 친구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어. 친구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친구가 아닌 것이 되는 거니까. 그렇게 되면 관계가 완전히 끝나거나 섹스 파트너가 되거나 애인이 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당신은 ‘내 애인이 이성인 친구를 성적으로 대할 거야. 왜냐하면 그 친구는 내 애인이 성적으로 끌리는 성별을 가지고 있으니까’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잖아. 하, 대체 나이가 몇인데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는 관계의 형태와 양상이 저마다의 관계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건지 정말 신기하단 말이지. 

 

혹시 내 말이 어려워서 알아듣지 못 했다면 미안. 내 직업이 본래 글을 다루는 거라 그런지 무언가를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잘 몰라. 그럼 다른 질문을 할게. 당신, 그렇게 애인을 믿지 못 하면서 어떻게 연애를 해? 아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싶을 거야. 남녀관계에 친구가 어디 있냐고 바락바락 소리라도 지르고 싶겠지. 그렇지만 조용히 내 말 들어. 애인이든 친구든 부모 자식이든 모든 관계의 기본은 ‘상호 신뢰’야. 민법에서는 ‘신의성실의 원칙’이라고 하지. “모든 관계는 서로에게 있어 권리와 의무를 수반하니 양 당사자는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서 신의와 성실로써 행동해야 한다.” 대한민국 민법 2조에서 다루고 있을 만큼 모든 관계의 기본 원칙이고 대전제이며, 이는 심지어 아주 잠깐 동안 서로를 이용해먹는 적과의 동침일 경우에도 서로 목적이 같아 함께 움직이는 그 기간 동안에도 적용되는 일이야. 하물며 애인관계일 때에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 내 애인이 나를 속이거나 나와의 1대 1 관계가 전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 외에 다른 애인을 만들어 바람을 피우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의무인데, 당신은 그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사람을 믿지 않고,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그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의무조차 모르고 있는 당신이 연애는 물론, 다른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도 걱정이네. 

 

지금 이 사람이 상담을 해준다더니 왜 나를 약올리나 싶을 거야. 뭐, 나도 당신을 온전히 이해 못 하는 건 아냐. 애인의 이성친구? 괜히 신경쓰이는 건 나도 이해해. 나도 지금 연애 중인데 내 친구 중에 내 전전애인이 있거든. 그리고 내 친구들은 대부분이 남성이야. 내가 여자랑 노는 것보다 남자랑 노는 게 편해서 새로 누군가랑 친해져도 그 사람이 남자인 경우가 태반이고. 그러니 나도 당신을 이해는 해. 하지만 당신 애인의 입장이 더 이해가 가는 거지. 나는 내 친구에게 성적인 끌림이나 의도가 없고, 내 친구도 내게 성적인 의도나 끌림이 없는데, 그래서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데 내 애인이 나를 못 믿는다면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해? 애인이 싫어한다고 친구를 만나지 마? 나랑 잘 맞는 사람이 있어도 친구를 새로 만들지 마? 내 모든 친구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리에도 아예 가지 마?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어.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애인이 화내고 싫어할 거 아니까 내가 누구를 만나도, 어디를 가도 이야기를 안 하고 가거나 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둘러대고 거짓말을 하게 돼. 마치 부모님이 “너 걔랑 놀지 마라”고 하면 걔랑 놀고 와서 “걔 말고 다른 친구 만났어요” 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애인의 이성친구가 신경쓰여도 적당히 그걸 차단하고 살아. 애인을 좀 믿으라고. 애인한테 계속 친구들 정리하라고, 나 있는데 왜 이성친구가 또 생기냐고 화내고 닦달하다가 애인을 거짓말쟁이 만들어서 당신에 대한 신의칙을 어기게 만들지 말라는 소리야. 한 마디로 애인 잡는 것 좀 작작하란 소리지. 

 

내가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애인을 못 믿겠다면, 하아, 그래도 그냥 지켜봐. 애인한테 이제 너 의심 안 하고 믿을테니까 누구 만나는지, 어디 가는지 서로 이야기만 해주고, 사귀는 동안에는 서로 바람피지 말자고 약속을 해. 그러고도 애인이 바람을 피운다면 그건 애인이 나쁜 놈인 거니까 이제 애인을 좀 믿어. 애인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서 먼저 신의칙을 다하고, 애인의 친구에 대해 신경쓰느라 그간 놓쳤던 것들이 있다면 그걸 다시 찾아나갔으면 좋겠어. 오늘 내 상담은 여기까지. 이놈의 아는 거 나오면 못 참는 병이 또 도져서 상담 내용이 어려워진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의심하고 그 사람에게 별 것도 아닌 일로 화내느라 당신의 감정을 쓸모없이 소비하지 않았으면 해.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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