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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인생⑱-1] 청년 당직자 이소정씨 “정의당이 집권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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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스무살 대학생 새내기였던 시절 우연히 정의당 중앙당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정의당과의 인연으로 현재는 지역당에서 당직자로 활동하고 있다. 1996년생 이소정씨의 이야기다. 소정씨는 정의당 경남도당에서 정책기획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창원시의원 후보(상남·사파·대방)로 출마하기도 했으나 간발의 차로 낙선했다. 하지만 이소정 국장은 좌절하지 않고 당에서 실무를 맡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2월8일 18시 즈음 경남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에 위치한 정의당 경남도당 사무실에서 이 국장을 만났다.

 

 

독고다이 인터뷰에서 늘상 그래왔던 것처럼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가 첫 번째 질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국장은 “작년 10월부터 정의당 경남도당에서 정책기획국장 직을 맡아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6기 지도부 때는 정책국과 총무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번 7기 들어서 개편을 했다. 구성은 사무처, 정책기획국, 대외협력국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 이번에 내가 정책기획국장을 맡음으로서 그동안 정책국에서 하던 논평, 기자회견문, 성명서 작성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의정 지원도 한다. 그 외에도 당 행사를 준비하는데 행사의 목적과 목표에 맞게 사업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사업 기획을 할 때는 현재 당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해야 당에 동력이 더 실릴지를 연구하며 일을 진행한다.

 

이 국장은 기획 파트를 맡았다.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기획은 정말 중요하다. 매력적인 역할이지만 항상 머리가 지끈한 자리다. 힘든 점은 뭘까? 이 국장은 “기획국장으로 일한지는 몇 개월 안 되기 때문에 국장으로서 힘든 점보다는 당의 활동가로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정당 당직자는) 일반 회사원처럼 그냥 근무시간에만 근무하고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근무 시간 마치고 당원들을 만나러 가고 행사가 있다면 남아서 준비도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나의 개인적 일상이 없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일과 여가의 경계가 없어지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워라밸이 안 맞는 느낌? 그래서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이런 부분들이 조금 힘들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7~8년 정도 이 생활을 하다 보니 그 부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개인 시간이나 휴식 시간이 좀 줄어든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지가 않다. (정당) 활동가나 (평범한미디어처럼) 독립언론 기자는 모두 비슷한 지점이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수행하는 덕업일치의 삶이라 하더라도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힘들다. 자칫 번아웃이 올 수도 있다.

 

 

이 국장은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는 것은 정말 외롭고 쓸쓸한 길이라는 말을 선배들로부터 많이 들었다”고 환기했다. 언뜻 들어도 와닿는 말이다. 정말 외로울 것 같다.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물론 이 국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만큼 “고독하다는 느낌 자체를 크게 느껴본 적이 없다”고 전제했다. 

 

(진보정당에서 활동하는 것이 외롭고 쓸쓸하지만)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당원 동지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당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같다. 지난주에 문자를 한 통 받은 적이 있다. 작년 지방선거 당시, 선거 유세원으로 도와준 당원이 보낸 문자인데 ‘그동안 말은 못 했지만 지난 선거 당시 이소정 후보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 뒤로 항상 마음 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갑자기 생각나서 문자를 보내 보았다’라는 내용이었다. 명절 인사는 매번 내가 지지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드리고 있다. 하지만 지지자에게 응원 문자를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그분에게 매우 감사했고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당원 동지들의 힘 그리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그분들이 나에게 직접 표현을 해주시니 이 길을 걷는 보람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정치인에게 진정성있는 지지와 응원은 큰 힘이 된다. 험한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 국장은 항상 바쁘기 때문에 스케줄이 없으면 무료하다고 했는데 그것은 고독의 감정과는 다르다.

 

다만 무료한 건 있다. 일하는 시간이 끝났고 시간이 비어서 심심하다. 이런 느낌을 들지만 고독하다. 쓸쓸하다. 외롭다와 같은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은 잘 없다.

 

그동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고독할 때 사색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이 국장은 “사색까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저런 이미지 메이킹이나 상상은 혼자 있을 때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독고다이의 또 다른 공식 질문 ‘내 인생의 전성기’에 대해 물었다. 이 국장은 “다른 분들 인터뷰한 것을 읽어봤다. 보통 20~30대에서는 전성기라는 말을 쓰기는 좀 이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입을 뗐다.

 

사실 40~60대가 되더라도 ‘내 인생의 전성기라고 꼽을 만한 순간이 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어쨌든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고 내일을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고 내일보다 먼 미래가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냥 미래에 나의 전성기가 올 것 같다.

 

이렇게 답변을 하는 인터뷰이들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는지로 치환해서 다시 물어본다.

 

어린 시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20대 전체를 정당 활동을 하며 보냈기 때문에 이 활동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선거 캠프에서 일하며 우리 후보들이 당선될 때, 그리고 당원들이 많이 입당했을 때가 과할 만큼 기분이 좋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당에 좋은 일이 있었을 때 나는 행복했다.

 

그렇다면 이 국장이 지금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을까? 

 

나 자신이 어떻게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정의당의 집권을 바란다. 아니면 노동자들의 정치 세력화가 좀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서 제대로 해내고 싶다. 이 생각은 항상 한다. 이상이나 꿈이라고 한다면 정의당이 지향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내 자리가 있다면 거기서 역할을 다하고 싶다.

 

너무나 견고한 양당체제 하에서 비양당 제3당이 집권하는 것은 꿈만 같다. 현실이 녹록치 않다. 정의당은 2012년 창당 이후 지금까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이 국장은 다시 한 번 신발끈을 바짝 조이면서 ‘존버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안 될거라고만 생각하면 이 활동 자체를 할 수가 없다. 무조건 될 거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을 때 되면 좋겠지만 안 되더라도 이후에 계속 이어져서 갈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된다고 본다.

 

 

이젠 개별 질문 타임이다. 작년 지방선거 출마에 대한 질문부터 해봤는데 이 국장은 3명 뽑는 중선거구에서 아깝게 4등을 해서 낙선했다. 낙선은 곧 낙심으로 이어질 것 같아서 그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 343표 차로 완전 접전으로 가다가 결과가 나왔다. 개표 상황이 더뎌서 자정 즈음 너무 피곤해 잠을 좀 청했다. 동지들에게는 결과 윤곽이 보이면 좀 깨워달라고 부탁했다. 좀 자고 3시에 깼는데 너무 접전인지라 그때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결과가 나왔는데 낙선이었다. 선거 캠프 같이 했던 사람들은 낙선으로 결과가 나와서 나에게 연락하기 좀 그랬었던 것 같다. 아침까지 연락이 없다가 7시에 전화가 와있는 걸 확인했다. 나를 비롯한 경남의 모든 후보들이 전부 낙선했고 당선자가 1명도 없다는 소식도 같이 받았다.

 

생각보다 심각한데 작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이 받은 성적표는 처참했다. 이 국장 개인의 선거를 넘어 정의당 전체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는 큰 위기가 닥쳤다. 

 

내가 낙선했기 때문에 아쉽다는 생각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대로면 당이 위기다. 진짜 정신 바짝 차려야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쉽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할 시간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인드였다. 나도 스스로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었고 당내 상황이라든지 정치 지형도 정의당에 그렇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생애 첫 공직선거 출마의 경험은 값지고 소중하다.

 

내가 직접 선거에 후보로 나선 것은 처음이라 배울 점이 많았다. 그동안 당직자 생활만 하다가 처음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우리 당의 매력 포인트, 정책 등을 설명하다 보니 확실히 시야와 인식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비록 낙선했지만 이를 계기로 추진력을 얻었다.

 

이 국장에 대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중학생 때무터 힙합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구체적으로 래퍼 ‘제리케이’의 팬이라고 한다. 뜬금없지만 이 국장에게 제리케이의 곡 추천을 부탁하며 이런 저런 힙합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4~15살 즈음 우연히 힙합 장르를 알게 되었다. 소울컴퍼니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거기 소속되어 있던 래퍼가 제리케이였다. 그분은 특히 가사에 정치사회적인 비판 메시지를 많이 담았다. 거기에 대해 뭔가 충격을 느꼈고 팬이 되었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제리케이의 팬임을 밝혔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가장 좋아하는 래퍼로 꼽았다. 제리케이 외에도 소울컴퍼니 아티스트들은 두루두루 다 좋아했다. 명곡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고민이 많이 된다. 일단 크루셜 모먼트라는 앨범을 추천하고 싶다. 이 앨범은 제리케이가 ‘로퀜스‘라는 그룹에 있을 때 낸 앨범이다. 그리고 제리케이 단독으로 발매한 ‘마왕’이라는 앨범이 있다. 1곡만 추천하기는 어렵다. 그냥 앨범의 1번 트랙부터 끝까지 다 들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렇다면 요즘엔 어떨까? 실제로 정의당 거리 행사에서 직접 랩을 했던 동영상을 봤는데 요즘에도 힙합을 자주 듣고 부를까? 이 국장은 “듣기는 듣지만 예전처럼 열정적이지는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곡를 선정해서 강추했다.

 

요즘에는 앞서 말했다시피 랩을 찾아 듣거나 그 전처럼 열렬하게, 나오는 곡마다 모니터링하고 이러지는 않는다. 그냥 플리(플레이리스트)에 다 담아놓고 가볍게 듣는다. 어제도 플리를 재생시키다가 담아두었던 제리케이 노래가 나왔다. 그래서 들은 것이 ‘스테이 스트롱’이라는 노래와 더 콰이엇의 ‘노 모어 크라이’가 있다. 특히 노 모어 크라이는 제리케이가 피처링을 한 노래다. 두 곡은 그때 당시 시야를 트이게 해준 것이라서 내가 리스트에 담아둔 것 같다. 스테이 스트롱 같은 경우에는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가사들이 있다.

 

과거처럼 열정적이진 않다고 했는데 여전히 힙합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 같았다.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피력하기 가장 좋은 음악 장르가 힙합인데 이 국장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그리고 ‘마왕 파트2’에는 가사에 대놓고 ‘불법 파업 딱지를 붙인 색깔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때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이게 대체 뭔가? 그러고 찾아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것들을 계속 플리에 담아놓고 듣는 것 같다. 노 모어 크라이는 국제 연대적 느낌이 있다. 가사 중에 ‘존재하는 모든 건 연결되어 있어 굳이 트위터나 페북 없어도’라는 가사가 나온다. 다른 나라에서 일이 터져도 우리나라에 영향이 온다. ‘돼지를 구덩이에 묻으며 침전수가 퍼지고’ 이런 가사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다 연결되어 있음에도 서로를 배척하고 싫어하는 게 먼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사랑이다’ 이런 느낌으로 가사가 마무리된다. 이 가사를 두고두고 곱씹었던 것 같다. 어제도 퇴근하면서 들었던 것 같다.

 

이 국장이 보기에 쇼미더머니 이후의 한국 힙합계는 아무래도 플렉스 위주로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국장은 힙합 안에 녹아 있는 비판, 저항, 특유의 자전적 서사 등을 참 좋아했다.

 

쇼미더머니로 힙합이 대중화되면서 플렉스 무드가 강조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힙합에 막 빠지기 시작했던 시기는 정말 자전적이고 비판적인 무드였다. 정치적인 가치관이 맞지 않더라도 솔직하게 래퍼가 직접 가사를 쓰고 멜로디와 플로우를 만들어서 부른다는 것이 힙합의 엄청난 매력이다. 전처럼 많이 듣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뭐냐고 물어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힙합이라고 대답한다.

 

그동안 한국 힙합씬에서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많이 넣는 래퍼들이 꽤 있긴 한데 그런 힙합 음악을 들었던 리스너가 직접 정치인의 경로로 나아가게 된 유형은 정말 드문 것 같다. 이 국장에게 중학생 이후 정치인으로 성장한 지금까지의 인생 이야기를 물었다. 힙합을 통해 사회 의식이 트였다고 해서 모두가 직접 정치인이 되어 보겠다고 맘먹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걸까.

 

나도 좀 신기하다.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뭐냐고 물어보면 ‘힙합을 좋아해서 사회 비판적인 가사를 듣고 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되게 신기해한다.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 중에 정치인이 있던 것도 아니고 노조 활동가가 있던 것도 아닌데 그런 계기로 시작했다는 것을 되게 신기해했다. 힙합 외에도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는 장르는 많다. 그중에서도 힙합 음악이라는 장르는 나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점, 그리고 분명히 누군가를 향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래퍼, 아티스트, 정치인, 뮤지션 모두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이 국장은 대학교 전공으로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는데 힙합으로 투박하게 키워왔던 사회 의식을 이론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해 사회문화, 법과정치 등의 과목을 공부했다. 그 수업들을 듣다 보니 기사에서 접했던 것을 아주 쉬운 버전이긴 하지만 이론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정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정치 현안과 현실 정치에 대해 찾아보면서 정의당의 대표 인물인 심상정 의원과 故 노회찬 의원을 알게 되었다. 문과에서는 보통 경영학이나 사회복지학을 많이 추천 받지만 나는 정치외교학과를 희망했고 경상대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했다.

 

이런 밑바탕이 충분히 형성돼 있던 상황에서 정의당을 만났다. 

 

정외과에 진학 후 1학년 프로그램 중에 정당이나 NGO단체, 기타 공공기관을 방문해보는 견학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중에 정의당에 관심이 있어 가보기로 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경남에서 서울까지 가보겠는가? 그래서 동기들과 정의당 중앙당사를 견학했다. 뒤이어 국회도 방문한 다음 온 김에 당원 가입을 하고 싶어 그 자리에서 당원 가입서를 작성했다.

 

→이소정 국장에 대한 독고다이 인터뷰는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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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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