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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운드> 클리셰지만 뭔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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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싶은 동기부여가 될 만큼만 읽다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그만 읽고 바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다.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클리셰도 잘 만들면 명작이다. 사실 영화 <리바운드>를 볼 생각이 별로 없었다. 보더라도 OTT 서비스에 풀린다면 킬링타임용으로 감상하려고 했다. 일단 영화가 별로 안 끌린 이유는 뻔할 것 같아서다. 한 마디로 클리셰로 점철됐을 것 같아서다. 클리셰라도 재밌으면 장땡이긴 하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첫 인상으로 클리셰부터 떠오른다면 그닥 재미없을 것 같다는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미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극장에서 봤기 때문에 유사한 고교 농구의 성장 스토리를 또 봐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장항준 감독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최근 연출력이 궁금했다.

 

 

감상평이 어땠냐고? 대만족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박진감 넘치게 봤으며 스포츠 영화 특유의 감동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스포츠물의 전형적인 클리셰가 여지없이 들어가 있다. 홍수정 영화평론가는 스포츠물의 뻔한 클리셰를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경기에 나서지만 상대와의 실력 차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실력이 아니라 진심, 뜨거움, 땀, 피, '내일이 없음'을 무기 삼아 싸운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다친다. 훼손된 신체. 이것은 선수들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비극성을 고취하고, 그들이 예상보다 좋은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이유를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한 제물이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패배한다. 하지만 의미 있는 패배다. 이들은 패배보다 큰 성장을 이뤘으므로. 스포츠 영화의 전설, <록키>(1977)에서부터 반복되어 온 유구한 실패의 역사. 그들은 경기에서 패배하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승리한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다를 게 없다. 스포츠 영화에서 흔히 반복되는 공식 같은 스토리라인이다.

 

실화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텐데 사실 실화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실제 일어난 일을 다루었기 때문에 클리셰가 상쇄된다. 쉽게 말해 “에이 이게 말이 돼?”라는 식의 반응이 실화를 찾아보게 됨으로써 무마되는 것이다.

 

<리바운드>는 언더독을 기반으로 한다. 부산중앙고 농구부는 해체 직전까지 간 조직이다. 선수들도 어중이떠중이들 뿐이다. 이걸 젊은 패기로 커버치고 싶은 농구 코치 양현(안재홍 배우)은 직접 길거리를 배회하며 선수들을 스카웃한다. 농구의 기본기부터 체력 훈련 등등 모든 걸 혼자 다 알려주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아무리 봐도 대회에서 광탈할 것 같은 중앙고 농구부는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무려 ‘준우승’을 차지한다. 그야말로 꼴찌의 반란이다.

 

 

<리바운드>는 내부 갈등을 비중있게 묘사하고 있다. 양현 코치 외에 단연 투톱이라고 할 수 있는 기범(이신영 배우)과 규혁(정진운 배우)은 한때 동료였으나 모종의 오해로 틈만 나면 으르렁 기싸움을 벌인다. 멱살잡이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주먹을 날리진 않는다. 어떻게 보면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서태웅 같다. 딸랑 5명이 시합을 뛰는 농구인데 기범과 규혁은 서로 패스하지 않고 무리하게 드리블을 하다 볼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자존심이 세고 서로 단단히 삐져 있다. 양현 코치의 각성있는 호소, 한 차례의 대회 광탈, 해체 위기 등이 빚어내는 일련의 상황은 둘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그 다음은 뭐 뻔하지 않겠는가. 그 이후로 둘은 영혼의 농구 메이트가 된다. 사실 이런 ‘티격태격’ 파트 역시 워낙 많이 나왔던 클리셰라 지겨울 법도 한데 나름대로 두 배우가 잘 풀어냈다.

 

<리바운드>는 아무 목적없이 농구에만 미쳐있는, 농구에 진심인 고등학생들의 열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모인 코치와 선수들의 절치부심이 어색하지 않으며, 이들의 강도 높은 훈련 역시 신빙성있게 받아들여졌다.

 

농구 플레이 연출도 좋았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박진감이 실사판으로 재현됐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콤비 플레이는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배우들이 농구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다는 게 느껴졌다. 특히 정진운 배우는 연예계에서도 손꼽히는 농구 실력자라고 한다. 심지어 순규 역할을 맡은 김택 배우는 선수 출신이다. 대회 후반부로 가면 처절하다 못 해 잔인하다. 중앙고 농구부는 선수층이 티슈처럼 얇다. 치명적인 약점인데 5명이 하는 농구임에도 꼴랑 6명 뿐이고 그마저도 주전 선수 1명(진욱 안지호 배우)이 부상을 당해 오직 5명의 라인업 그대로가 죽음의 토너먼트를 계속 치러낸다. 농구는 한 쿼터만 풀타임으로 뛰어도 호흡 곤란이 올 만큼 체력 소모가 극강인 스포츠다. 그래서 로테이션이 필수이며 야구나 축구와 달리 한 번 교체된 선수가 다시 출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리바운드>를 보는 내내 가장 안타까웠던 지점이 바로 여기인데 홍 평론가가 언급했던 “비극성 고취”의 기능을 해주고 있다. 정말 결승전 도중 실신해서 앰뷸런스에 실려나가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사실 진욱 외에 규혁 역시 원래는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나가면 안 되는 몸상태였다. 기범은 규혁의 발목 부상이 심각하다는 걸 진작 눈치 챘고 코치에게 솔직하게 말할 것을 조언하지만, 규혁이 그 말을 들을리가 없다. 비극성 고취도 좋은데 아픈 걸 참고 뛰는 모습이 너무나 눈물겨웠다. 실화에서 규혁은 끝내 선수생활을 접고 부산대 체육교육과에 진학해서 체육 교사의 길을 걷게 된다. 개인적으로 부상 재활에 성공해서 프로 농구선수가 되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참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규혁 스스로 마지막 결승전에서 이미 프로선수로 뛸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처럼 중앙고 농구부의 강팀 도장깨기는 다 알고 봐도 흥미진진하다. 그들의 준우승은 평생 맛보지 못 할 ‘인생에서의 승리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리바운드>의 드라마는 말미의 상황을 묘사하지 않고 실제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사진과 코치의 모습 그리고 캡션으로 대체되는데 이게 또 무지하게 감동적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스포에 예민하지 않은 영화 소비자라고 스스로의 타입을 밝혔다. <리바운드>의 내용을 거의 다 발설한 리뷰를 여기까지 다 읽었다고 하더라도 꼭 유튜브 결말포함 요약본이 아닌 영화 전체를 감상해보길 추천해보고 싶다. 가끔은 스포가 무의미한 영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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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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