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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채’가 받은 위로는 조선시대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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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가진의 이모저모] 1번째 칼럼입니다. 김가진씨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자 성신여대에 재학 중인 20대 청년입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정당 활동을 해왔으며, 더불어민주당 청소년당원협의체 ‘더새파란’ 초대 운영위원장이자 현재도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김가진 칼럼니스트] 인기 드라마 <연인>이 최근 종영했다. 병자호란을 시기적 배경으로 삼았다기에 특히 더 관심이 갔고 유튜브에서 드라마 클립으로 몇 번 찾아봤다. 동네에서 제일 아름답고 인기가 많았던 길채(안은진 배우)가 “화냥년”으로 몰락하기까지 어떤 고초를 겪었던 것인지 영상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인조실록에선 대사헌·예조판서·이조판서·우의정을 역임한 조선의 문신 장유의 일화가 소개돼 있다. 장유는, 외아들 장선징의 아내 며느리 한씨가 청나라에 잡혀갔다 몸값을 주고 돌아왔으니 더 이상 아들의 배필로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조에게 상소를 올려 아들이 며느리와 이혼하고 새장가를 들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좌의정 최명길은 장유의 상소에 대해 “전쟁 중에 몸을 더럽혔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도 진실을 밝히지 못 한 여인이 얼마나 많겠냐”며 “사로잡힌 부녀자들이 모두 몸을 더럽혔다고 볼 수 있겠는가”라고 인조에게 어필했다.

 

결국 인조는 장선징의 이혼 및 재혼을 불허했다. 그러나 장유가 죽기 직전까지 유언으로 아들의 재가를 허락해달라고 끈질길게 요구한 결과 인조는 결국 예외적으로 이혼과 재혼을 허가해줬다. 예외적이지만 이것이 선례로 남아 ‘이혼 금지법’은 무시되기 일쑤였고 결국 효종의 재임 시기 이혼 금지법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연인>에서 장현(남궁민 배우)은 길채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길채는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길채는...”이라며 망설인다. 장현은 “안아줘야지 괴로웠을테니”라며 환하게 웃었다.

 

병자호란 시기(1637년 1월3일~2월24일) 포로로 잡혀간 60만명의 조선인 중 여성이 40만명이라고 한다. 돌아온 여성들이 대부분 자결이나 이혼을 강요당하는 그런 시대였다. 수많은 여성들은 그저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화냥년이라는 혐오적 욕설이 가부장적인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고향으로 돌아온 환향녀라는 일반적인 용어에서 유래됐을 뿐이라는 주장이 있고, 여기에는 갑론을박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 여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과 후에 정조를 잃었다는 비난을 받으며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했던 비극의 역사는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야만의 시대 속에서 고통받았을 당대 여성들이 얼마나 깊은 한을 품었을까? <연인>에서 묘사됐던 위로의 대사들로 인해 그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해소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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