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김우리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노란리본입니다. 이제 저를 언제, 어디서 보아도 낯설지 않으실테죠.
제 나이도 벌써 6살이 되었어요.
가방에, 옷에, 그리고 자동차에 대롱대롱 매달려 여러분 곁에 머문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답니다.
4월은 제가 태어난 달이기도 해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실 거예요. 너무나도 처참하고 충격적이었던 그 날 이후…
304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잊지 않기 위해 저를 만들고, 몸에 지니고, 또 나누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줌마리봉스는 저에게 엄마같은 존재에요.
난 6년 동안 매주 저를 만들고, 또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 어디든 기꺼이 보내주신답니다.
줌마리봉스 |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앞둔 4월2일 목요일 오전에도 광주 풍암동 ‘토닥토닥 공방’에선 저를 만드는 손길로 분주했습니다. 4월이 되면 요청문의가 많아져 더욱 바빠져요.
(아, 토닥토닥 공방은 줌마리봉스의 ‘지주’ 조재희 님께서 내어준 공간으로 매주 노란리본이 만들어지는 공방입니다.)
이날도 줌마리봉스 핵심 멤버들이 코로나19 여파로 마스크를 쓰고 한 자리에 모이셨어요.
모두의 손길이 닿으면, 앉은 자리에서 뚝딱뚝딱 저의 분신들이 만들어집니다. 재단, 부착, 군번 연결 등 분업화가 잘 되어 있어요.
그런데 완성된 저희들은 곧 흩어지게 되어요. 학생들을 위해 학교로 보내지거나 세월호 추모객들을 위해 전국 각지로 보내진답니다. 오늘은 효동초등학교 이명숙 교장선생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셨어요. 개학 전에 학교에 노란리본을 달아 놓으신대요.
줌마리봉스 회원 분들의 손을 거치면서 의도치 않게도 많은 대화를 엿듣곤 해요. 주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주제가 많고, 자녀 키우는 이야기, 사회적 이슈나 시사 관련, 평범한 일상 이야기 입니다.
아직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화를 나눌때면 한숨 소리가 깊어져요.
그렇게 6년이 흘렀네요.
지금은 이렇게 능숙하게 저를 만드시지만, 처음부터 쉽진 않았답니다. 재료를 자를 때 손을 베는 일도 있었고, 녹아 뜨거워진 글루건에 데이기도 했어요. 고개를 숙이고 작업하는 시간이 길어져 목디스크가 오기도 하고요.
그리고 줌마리봉스의 초기 모델은 지금과 달라서 더 어려웠죠. 진짜 리본 끈으로 만들어 가슴에 다는 브로치 형태라서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요.
하지만 지금의 가방고리 형태는 재질과 제작면에서 한결 낫아요. 재질이 가볍고, 부드럽고 또 변형도 잘 되지 않고요. 무엇보다 제작 과정이 더 단순해졌답니다.
저는 어떻게 만들어지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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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만들어진 저의 분신은 10만 개나 되어요. 군번줄 구매내역으로 알 수 있죠. 10만 개의 노란리본이 누군가의 가방, 필통, 책상에서 머무르며 ‘그 날’을 떠올리게 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도 저를 이렇게 6년이나 만들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거예요. 그만큼 세월호에 대한 진실이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네요.
줌마리봉스 초창기 멤버로 시작해 지금도 달려와주시는 하수정 님은 6년 전 “꽃다운 아이들”을 떠올리며 가슴 떨렸던 경험을 잊지 못하세요.
하수정 님은 세월호 참사를 만든 사회의 이면을 직시하게 되었고, 줌마리봉스에 참여하면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바라며 함께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이런 말을 하신 걸까요?.
오경진 님도 줌마리봉스 초창기 멤버로 참여하셨어요.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나이와 같은 나이의 자녀를 둔 오경진 님 또한 ‘그 날’ 이후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만든 수많은 리본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망하신 뒤 검은리본을 만들어 추모했고, 민주주의를 위해 파란리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만들고 있는 노란리본에 언젠가 이뤄질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바람을 담습니다.
조재희 님은 줌마리봉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고 있는 분이세요. “금방 끝날 것 같았는데, 아직도 밝혀진 게 없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조재희 님은 기꺼이 ‘토닥토닥 공방’ 자리를 내어주고, 누구든 들를 수 있는 마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 하셨어요. 이젠 풍암 마을 공동체인 풍두레(전 풍암마을촛불)의 거점공간이기도 하고요.
코로나19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날 때는 마스크를 제작하는 공방으로 변신했답니다. 그래서 조재희 님은 “세월호 참사는 너무도 안타깝지만, 사람들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제게 하신 말씀은요?
세월호 참사 6주기가 다가옵니다. 올해도 저를 잊지 않고 지녀 주셔서 고마워요.
한 땀 한 땀 고생해서 저를 만들어 주시는 줌마리봉스 분들이 계셔서 가능한 일이란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줌마리봉스 회원분들의 십시일반 자금을 모으고, 또 많은 분들의 후원과 응원이 더해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도요.(줌마리봉스는 자연아이쿱에서 소모임으로 공간과 간식비를 지원받고 있답니다!)
당분간 아니, 어쩌면, 좀 더 오래 머물게 될 것 같아요. 아직 세월호의 진실이 그대로 묻혀 있으니까요. 제대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제가 있는 곳에서 ‘진실’을 외치고, ‘기억’을 새기겠습니다.
6년 동안 매주 목요일 노란리본을 만들어 오고 있는 줌마리봉스 회원 분들을, 2일 토닥토닥 공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동안의 발자취를 인터뷰한 뒤 ‘노란리본’을 의인화 한 글로 정리한 기사입니다. 노란리본으로 맺어져 노란본을 통해 인연을 이어오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