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투표소 앞 침묵 깬, ‘청소년 참정권’ 시위

  • 등록 2020.04.16 19: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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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용봉동 제4투표소 앞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보다 완전한 청소년 참정권 보장 위한 5대 요구' 1인 시위
선관위 "100m 떨어져라" 제재하자 활동가들 "법적 문제 없다"
"만18세 선거권은 시작일 뿐, 정치참여 금지한 학칙도 있어"

[평범한미디어 김우리 기자]

 

 

4.15 총선 당일 광주의 한 투표소 앞, 침묵을 깨고 손팻말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청소년 정치참여 처벌하는
법과 학교 교칙 폐지하라!

 

1인 시위에 나선 이는 만 17세 청소년이었습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2002년 4월16일 이전 출생자)돼 치러졌지만, 나이가 한 살 모자라 투표를 할 수 없었죠. 그래도 침묵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대부분의 학교에선
학생들의 정치 참여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학칙이 남아 있습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광주지부 추진모임

 

아직도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해요. 최근에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에서도 관련해서 문제를 제기(관련기사 링크)했어요.

 

투표일엔 전국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들이 행동에 나섰습니다. 아수나로 광주지부 추진모임은 전남대 컨벤션홀(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제4투표소) 앞에서 3시간 정도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어요.

 

 

마이광주는 이날 1인시위에 참여한 빈둥 활동가(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광주지부추진모임)와 청소년 참정권 보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선거권뿐 아니라 정치참여 보장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다음은 빈둥 활동가와 진행한 인터뷰(아래 영상 참고)입니다.

 

△투표소 앞 1인 시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년 12월27일 만18세 선거권이 포함된 공직선거법이 개정됐고, 이번 총선에서 만18세 청소년 역시 투표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여전히 선거권과 피선거권뿐만 아니라 정당가입 역시 연령제한이 남아있습니다. 일상에서 청소년들이 발언이나 정치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같이 인지하고 싶었어요.

 

△아직도 학교에서 정치 참여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학칙을 두고 있다던데, 실제로 그런 사례가 많나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지난 3월 중고등학교 533개를 대상으로 학생의 정치적 권리를 침해한 사례를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절반 이상이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정치활동 금지와 처벌 규칙이 있고, 불온문서를 소지하거나 게시, 유포하면 처벌을 받는다던가 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칙이 있어요. 또 허가 없이 외부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조항, 집회 결사의 자유 침해도 있었어요. 광주 K중학교에서는 학교밖 행사 활동에 대한 참여 규제를 하는 곳도 있었어요. 학교장의 허가 없이 대외 행사에 출품, 출연 또는 참가하여 학교의 명예를 훼손한 학생을 대상으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선거연령 하향 논의가 있을 때 학교가 정치판이 될 거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사실상 학교는 이미 정치적인 공간이에요. 청소년은 정치적일수도 정치적이어서도 안된다는 것은 분명히 편견과 차별입니다.
내가 내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선택권을 갖게 될 때 비로소 평등한 민주주의가 찾아올 수 있는 시점인거죠. 지금보다 ‘더욱’ 완전한 참정권을 보장하는 게 필요합니다. 특정 사회적 범주에 관계없이, 연령 관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무시당하거나 저평가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선거권 나이 제한 ‘폐지’에 대해선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란 의견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여성에게 참정권을 왜 줘?’ 라던지 ‘장애인은 선거를 하면 안 돼’라고 했을 때 그 말 자체가 굉장히 차별적이고 인권침해라는 것을 잘 알잖아요. 마찬가지로 ‘연령 제한 폐지’도 그렇게 여기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연령하향’이라는 말 자체가 되레 연령제한을 지탱해주는 말이거든요.
예컨대 연령하향을 만 16세로 하자고 하면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청소년 혐오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지금같이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담론들이 지배적인 사회에선 예시로 든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은 미성숙한 사람’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연령제한 폐지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계속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날 취재 과정에서 지켜본 투표소 앞 1인시위가 무난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현장을 찾아 시위 참여자들에게 “투표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으니, 투표소에서 100m 떨어진 곳으로 시위 장소를 옮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아수나로에선 이 사태를 미리 준비했고, 차분히 대응했습니다.


앞서 전국 투표소 앞 1인시위 행동매뉴얼(링크)을 통해 “선거일에 금지된 것은 선거운동과 소란행위이며, 투표소 앞 1인 시위는 소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정당한 요구”라는 내용을 공유했었죠.

 

 

시위 현장에서 아수나로 광주지부 추진모임이 이 같이 응수하자,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확인 과정을 거친 뒤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한 1인시위는 법에 문제가 되지 않음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여전히 다수의 청소년들은 도처에서 침묵할 것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만 18세 선거연령 하향으로 선거권을 가지게 된 청소년(광주 유권자 중 1.5%)은 극히 일부에요. 대부분 투표에 참여하지도, 정당에 가입하지도 못합니다.

 

‘고등학생들이 투표하게 되면 교실이 정치판이 될 것이다’, ‘청소년들이 교사들에게 선동당할 것이다’는 우려는 지금까지 반복되어 온 논리입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목격하고, 지난 정권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왔던 청소년들은 알고 있습니다. 정치로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자신의 삶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 봤거든요.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타인과 교류하며 문제를 해결한다.
참정권은 나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선택할 권리이다.

청소년은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이다.
어리다고 유예되어도 좋은 권리는 없다.
어리다고 누리지 못할 권리는 없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 10일 ‘만 18세 선거권, 끝이 아닌 시작이다’ 동시 기자회견문 중에서

 

 

 

김우리 kwr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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