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민의힘 당권 레이스에서 사실상 나경원 전 의원을 비토하는 대신 신진 정치인들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오 시장은 23일 23시 즈음 “방금전 0선 초선들(이준석 전 최고위원/김은혜 의원/김웅 의원)이 자체적으로 벌인 토론회를 유튜브로 봤다”며 “발랄한 그들의 생각과 격식 파괴 탈권위적 비전을 접하면서 우리 당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제 우리 당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중도층과 2~30대 젊은이들은 누가 대표가 되었을 때 계속 마음을 줄까?”라며 “정당은 집권을 위해 존재한다. 집권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으로부터 가능해진다. 지혜로운 당원 동지 여러분 민주당원은 전략 투표를 하는데 국민의힘 당원은 분노 투표를 한다고 한다. 분노는 잠시 내려놓고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후보들의 잠재력에 주목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민의힘의 지지 기반은 영남의 전통적인 보수 당원들이다. 4년이 흘렀지만 이들은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에 대해 “분노” 정서를 갖고 있다. 오 시장은 탄핵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중도보수 포지션의 젊은 정치인들에게 악감정이 있더라도 전략적으로 지지해달라는 시그널을 보냈다.
오 시장은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시절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황교안 전 대표와 맞붙어 민심(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이겼지만 당심(당원 투표)에서 졌다. 결과적으로 4만2653표 31%를 얻어 황 전 대표(6만8713표 50%)에게 완패했다. 결국 당권을 거머쥐려면 당심을 잡아야 하는데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오 시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근택 변호사는 23일 방송된 MBC 라디오 <정치인싸>에서 함께 패널로 출연한 이준석 전 최고위원에 대해 “(이 전 최고위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림은 예전에 황교안과 오세훈이 당대표 나왔을 때 (오 시장이) 민심에서 50% 이상 앞섰다. 그러나 당심에선 졌다. 그래서 격차가 많이 났다”며 “이준석 전 최고 머릿 속에는 그게 가장 큰 두려움이다. 그때도 오세훈이 여론에선 앞서갔다”고 밝혔다.
현재 당권 관련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나 전 의원과 이 전 최고위원의 2파전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 시장은 강경보수 이미지가 강한 나 전 의원이 당심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보고 민심에 부합하는 당권 주자를 밀어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오 시장은 “경륜과 경험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서도 “어차피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당대표의 역할은 지원 기능에 한정되고 대선 후보가 사실상 당대표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은 페이스 메이커로서의 소명이기도 하다”고 환기했고 나아가 “정치권의 공식대로 예상가능한 (당대표 선거의) 결과라면 기대감도 매력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적어도 유쾌한 반란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게임으로 이어진다면 기대감을 한껏 자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4선의 원내대표까지 역임한 나 전 의원이 오히려 정치 경륜을 바탕으로 대권 주자들을 잘 관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 시장은 대권 주자가 ‘경륜’, 차기 당대표가 ‘젊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오 시장은 노골적으로 “경륜과 안정감의 대선 후보와 호흡하며 대중의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당대표”를 띄웠다.
구체적으로 오 시장이 “0선 중진”으로 불리는 이 전 최고위원을 지지하는지 아니면 초선의 김웅·김은혜 의원을 밀고 있는지 정확한 속내를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세 사람의 자체 토론회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이들을 한 블록으로 묶고 “유쾌한 반란”을 일으킬 주체로 규정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 전 의원을 견제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전 최고위원이 앞서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오 시장의 워딩이 누구에게 힘을 실어줄지는 불보듯 뻔하다.
이 전 최고위원도 오 시장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공유하며 “선거 캠프에서 많은 것을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했다. 이번에 좋은 성과를 내서 첫날부터 능숙하게 당을 개혁해내겠다”고 밝혔다.
자신에 대한 지지 선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오 시장은 “국민이 흥미로운 기대감으로 계속 지켜봐줄 수 있는 유쾌한 반란의 주인공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런 대표가 선출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피력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당권 여정은 순탄대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의 페미니즘 논쟁으로 연일 언론 지면에 오르내리고 있고, 당권 여론조사 성적도 좋고, 영남권 당심 관리의 첫 발도 뗐다.
오 전 시장이 영남권 당심을 염두에 두며 나름의 워딩을 내놨듯이 이 전 최고위원도 영남권 당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은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2011년 박 전 대통령에 의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뒤) 난 내 발탁에 있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한다. 그런데 탄핵은 정당하다. 이 얘기를 어딜 가나 하는데 무슨 문제인가”라며 “당대표라는 큰 산에 도전하면서 그냥 자주 사색에 빠진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함께. 시작은 그분 덕분이다. 내가 계속하고 있는 건 내 의미와 목적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 발언을 두고 정치인싸 패널들은 당권 행보를 위한 전략적 메시지로 해석했다.
현 변호사는 “(이 전 최고위원이) 탄핵에도 찬성했고 대구경북이나 영남쪽 핵심 당원들이 나를 아마 별로 안 좋게 볼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박근혜한테 감사하다는 말이 갑자기 왜 나왔지를 보면 사실 이준석 최고가 머리가 굉장히 좋다. 발언 하나 할 때 다 (계획을) 짜고 하는 것”이라며 “지난번에 얘기했는데 다음주부터 2주간 대구 가서 살 거라고. 그걸 미리 밑자락을 깐 것이다. 대구 가기 전에 미리 서비스를 하고 이게 사실 논란이 되지 않았는가. 대구 당원들도 이걸 다 볼 것 아닌가. 이준석이 드디어 대구에서 뭔가 하려는구나. 대구에 가기 전에 밑자락을 깔았다고 분석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소속 신장식 변호사는 “무대에 올려준 사람한테 감사할 수 있다. 딱 사실만 진술한 것인데 그렇다면 이걸 대구경북 쪽에서 평가를 할 때는 각자 듣고싶은대로 해석을 할 것”이라며 “비판과 호평 양쪽으로 다 받을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고 사실관계만 진술했다. 굉장히 여러가지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걸 의도한 발언”이라고 했다.
이어 “그게 만능열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잔머리가 대단하다고 평가할 사람과, 우리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을 하는구나라고 평가할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논란을 일으키고 주목도를 높인 점에서는 선거 전술로서는 유효한 전술을 구사했다”고 덧붙였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역시 이준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당대표 나간다고 했을 때 배신자 프레임. 대구경북의 골수 당원들의 감정적인 거부감을 어떻게 해결할까 싶었다”며 “이 한 마디로 다 끝났다. 저 사람이 맞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픽업을 했고 같이 활동을 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 것이다. 아주 신의 한수라는 생각이 들고 대구경북 당원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데 열쇠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