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차현송 기자] "잘 죽여야 잘 살 수 있다"라고 하는데 무슨 의미일까? 정신과 전문의 안병은 원장(행복한우리동네의원)은 죽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문자적으로만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자신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마음 속 대상을 잘 죽일 수 있어야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지난 4일 청년정의당 정신건강위원회 주최로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강연에 연사로 참여했다. 안 원장은 강연 주제를 <청소년 자해, 자살, 그리고 애도>로 잡았다.
최근 5년간 청소년의 극단적인 선택은 무려 55%나 증가했다. 10대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8.2명에 달한다. OECD 평균은 5.9명이다. 교육제도와 학교 등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자살을 감행하기 직전의 청소년이 보내는 시그널 즉 '자살위험신호'를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굉장히 어렵다. 그런 시그널을 알아챘다고 하더라도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적절한 매뉴얼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안 원장은 3가지 솔루션으로 △아이와 죽음을 이야기하라 △아이가 진정으로 죽이고 싶은 것을 찾아라 △잘 죽여야 잘 살 수 있다 등을 제시했다.
안 원장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마냥 기피할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든 궁극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정확히는 나 자신을 죽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날 힘들게 만드는 '대상'과 '환경'을 제거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았다면 그걸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안 원장은 이를 "잘 죽여야 한다"고 표현했다.
안 원장은 청소년 자해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흔히 자해를 자살 시도와 동등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안 원장은 "자해는 죽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 마음 속 아픔을 조절하지 못 해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는 행위가 바로 자해라는 뜻이다. 또, 자신의 아픔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자해 모방’이라는 것도 벌어질 수 있다.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지난 6월6일 방송된 tvn <알쓸범잡>에 출연해서 "자해에 몰두하는 동안 다른 아픔은 잠시 잊는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려 하는 경우가 있다"며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자해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어떤 때는 제발 자신을 도와달라는 구조 요청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 왜 하는데? 이건데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하게 되는지 같이 이야기해보자라고 해야 된다"며 "어떻게 하면 네가 더 편해질까?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해야 한다. 한 두 번의 조언으로 자해를 멈출 거라는 것 대신 소통하고 나눠줄 수 있는 누군가가 늘 옆에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리하면 청소년들이 자해를 하는 이유는 △부정적 느낌으로부터 안도감을 얻기 위해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을 도와달라는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서 △상처를 내서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등등이다.
특히 안 원장은 자해를 하는 청소년들에게 캐묻듯이 "왜 (자해를) 하냐?"고 반복적으로 묻거나 "누구 따라하냐? 관종이냐? 아픈데 왜 하냐?" 등등과 같은 말을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내면의 상처를 알아보려 하지 않고 섣불리 다가가는 것은 금물이다. 안 원장은 "예쁜 몸에 상처가 나서 걱정"이라는 멘트도 언뜻 들으면 걱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상대의 아픔을 전혀 공감하지 않는 말이니 피해야 한다고 주의를 요구했다. 영혼없는 말투로 "하지 마라" 또는 "힘내라"와 같은 말들도 안 하느니만 못 하다.
더 나아가 "의지가 약해서 그래"와 같은 평가하고 탓하는 표현들도 절대 금물이다.
반대로 그들에게 해주면 좋은 말들이 있다. 일단 나열해보면 아래와 같다.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뭐", "그랬구나", "힘들었구나", "그래서 자해를 했구나", "하고 싶을 때는 해도 되긴 한데 (엄마는) 속상하다", "왜 하는지는 알겠는데 조금만 하면 좋겠어", "자해를 해서 네가 편해진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그렇지만 힘들 때 칼 대신에 나를 찾아줘",
결론적으로 안 원장은 자해를 한다고 해서 무작정 윽박을 지르거나 하지 말라고 말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자해를 한 배경에 대해 공감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감과 이해가 먼저다. 그 다음에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해를 한 청소년들이 스스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지금 겪고 있는 아픔을 넘어 더 나은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원장은 성급한 접근법을 경계했다.
우리는 너무 교과서적인 답, 해결책을 원하는 것 같다. 여러분들도 문제를 인지했지만 너무 손쉬운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 아닌가. 때로는 해결책이 없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때 가장 많이 대답했던 답이 뭐였냐? 어떤 게 당신에게 제일 편했냐? 물어보면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이라고 하더라. 안다.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압박을 받는 것 같다. 뭔가 해줘야 될 것 같고. 우리 사회는 정답을 빨리 구하려고 하는 조급증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