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최근 굵직한 음주운전 범죄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스쿨존을 지나다 난데없이 돌진한 차량에 치어 목숨을 잃은 배승아양, 떡볶이 배달을 가다 역주행을 한 차량과 정면으로 부딪힌 40대 남성 모두 음주운전자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최근 발생한 사고만 다룬 것이다. 사실 과실로 취급되는 사고라고 명명하기도 뭐 한 것이 사람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음주운전을 감행한 것이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가 있는 명백한 살인사건으로 봐야 한다. 이처럼 음주 살인마들로 인해 부모, 형제자매, 자녀, 지인 등등 소중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국민 여론이 음주운전에 대해 대단히 엄격해졌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MBC 인기 음악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 음주운전 3범 가수 호란씨가 출연한 것이다.
사실 10개월만에 재개하는 불편한 하루 시리즈에서 굳이 호란씨를 굳이 써야 하는가 좀 망설였다. 너무 ‘뻔한’ 주제 같았다. 내가 비판을 하지 않아도 언론과 대중들이 연일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미디어는 음주운전 문제에 대해 그 어떤 매체보다 피해자의 편에 서서 열심히 보도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일단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 시기에 왜 가수 호란을 출연시켰을까? 녹화를 했더라도 편집할 수 있었을텐데? 호란씨가 오랜만에 MBC에 출연한 그날 <뉴스데스크>의 헤드라인은 승아양의 안타까운 죽음을 비중있게 다뤘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호란씨는 2004년, 2007년, 2016년 총 세 차례나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음주운전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해본 결과 한 차례 적발될 때까지 대략 스무 번의 음주운전이 자행됐다고 한다. 아마도 호란씨도 수 십번의 걸리지 않은 음주운전들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2016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로 차량을 몰고 성수대교 남단 인근을 지나다 3차선 도로 길가에 정차된 성동구청 청소 차량을 들이받은 전력이 있다. 당시 청소 차량 운전석에 타고 있던 환경미화원이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호란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벌금 700만원 약식 기소 처분을 받았고 ‘음주운전 삼진아웃(윤창호법 이후 투아웃제로 개편)’ 제도에 따라 면허 취득이 2년간 제한됐다. 더구나 그날 호란씨는 아침 라디오 생방송을 위해 이동하던 중이었다. 방송인으로서 음주 생방을 하려 했던 사실 자체만 봐도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다.
음주운전만 세 번이다. 2022년 배우 김새론씨와 곽도원씨는 딱 한 번 걸렸음에도 앞으로의 활동이 불투명할 만큼 대중들의 시선이 싸늘한 상황이고, 1991년 음주 뺑소니 치사 사건을 일으켜 실형까지 살다온 방송인 조형기씨는 아무 일 없는 듯이 활동을 이어오다 윤창호법 체제가 들어서기 이전 2017년부터 방송가에서 완전히 외면을 받고 있다. 호란씨처럼 음주운전으로 세 번 적발된 가수 길성준씨도 사실상 방송 활동이 전면 중단된지 오래다.
그리고 호란씨는 전부 연예인으로 데뷔한 이후 적발됐다. 상식적으로 딱 한 번만 적발되었더라도 노홍철씨처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다시는 음주운전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호란씨는 법이 우스웠는지 무슨 올림픽 열리듯 음주운전을 반복적으로 자행했다.
사실 세 번째 음주운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호란씨는 SNS로 자신의 신념과 의견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일명 ‘바른 말’을 할줄 하는 이미지를 구축했었다. 소셜테이너였다. 그러나 음주운전으로 인해 한 방에 날아갔다. 내로남불이란 비판을 듣기 딱 좋은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 그 누구도 호란씨의 올곧은 이미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하다. 본인 스스로 범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말만 번지르르 하면 뭐 하겠는가? 언행이 불일치한데. 말로는 누구나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 호란씨의 페이스북에 가보니 각종 사회 이슈들에 대해 나름의 메시지들을 적은 것들이 많다. 표절 작가 비판, 미얀마 군부의 반민주적 폭압 규탄, 헌혈이 시급한 사연, 방글라데시의 트렌스젠더 성별 인정, 청각장애인 택시기사 서비스 홍보,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 노래 등등. 근데 그러한 사회적 주장은 본인의 준법 정신과 언행일치가 전제될 때나 가능하다. SNS 중독은 병인 것 같다.
사실 호란씨는 2016년 이후에도 음악활동을 이어왔고 2019년 MBN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2022년 숏폼 드라마 <수진트럭>, tvn <프리한 닥터M> 등 이미 방송에 복귀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은 일종의 마지노선이었다. 호란씨는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 마음만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심경을 밝혔으나 본인의 잘못으로 상해를 입은 환경미화원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대중들의 반응은 아주 싸늘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호란씨 출연 직후 <복면가왕>의 시청자 게시판은 불이 났다. 시청자 A씨는 “범죄자 복귀 무대인가”라고 조롱했고 B씨는 “진짜 이건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호란씨의 복귀를 바라고 응원하는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그런데 <복면가왕> 제작진은 왜 이런 자충수를 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제작진도 어느정도 논란을 예상했을텐데 노이즈 마케팅을 바란 걸까? 아니면 단체로 갑자기 나사가 풀린 걸까? 그렇게 출연시킬 사람이 없었을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제작진은 자숙의 기간을 거쳤다고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는 감수성에 분명 차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시사 평론 크리에이터 이용주씨도 “우리가 기억해야할 호란은 세 가지가 있다. 정묘호란, 병자호란 그리고 음주호란”이라고 꼬집었다.
원래 <복면가왕>을 보지 않았는데 앞으로 더더욱 안 볼 것 같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시류도 제대로 읽지 못 하니 정말 부끄러워 해야 한다.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자 <복면가왕> 제작진은 뒤늦게 부랴부랴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지난 9일 방송된 399회와 관련해 시청자 여러분들께 불편함을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시청자들의 엄격하고 당연한 눈높이를 맞추지 못 하였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은 모두 제작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생긴 일입니다. 방송 후 시청자 여러분의 질타를 받으며 반성하였습니다. 앞으로 출연자 섭외에 있어 보다 엄격한 기준을 도입하겠습니다. 또한 시청자 여러분과 현 시대의 정서를 세심히 살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제작진이 “시청자들의 엄격하고 당연한 눈높이를 맞추지 못 했다”고 밝힌 이 대목에 대한 논란이 생겼다. 마치 선비 취급하며 비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많았다.
아이고 우리 미천한 제작진이 감히 하늘 같은 시청자님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 해 죄송합니다.
아무리 봐도 <복면가왕>은 의도적으로 호란씨의 성공적인 복귀작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호란씨는 복면을 벗고 “곧 새로운 싱글 발표를 할 예정”이라며 “기억해주시고 많이 들어달라. 조만간 공연으로도 만나 뵙겠다”고 향후 활동 계획을 밝혔고 제작진은 자막으로 “음색 퀸 호란 무대에서 다시 만나요”라고 호응했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제작진의 때늦은 사과를 비아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청자의 눈이 엄격하든 말든 방송사는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을 출연시키지 않는 게 상식이다. 무슨 시청자 탓을 하고 있는가? 그냥 죄송하다는 표현을 쓰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면 된다. 물론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 건지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지상파 방송은 여전히 시골에서도 의무적으로 전송되며 전국민이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는 그런 방송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의 기본적인 정서도 읽지 못 한다면 뭘 어쩌란 말인가? 차라리 유튜버들이 민심 파악을 더 잘 하는 것 같다.
호란씨 본인은 섭외가 오더라도 진심으로 반성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단칼에 거절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으니 슬슬 복귀각을 잡아도 되지 않을까. 방송에서 한 번 더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이면 될 것 같은데”라고 판단했던 걸까? 어림도 없다. 스스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대중들의 싸늘한 반응을 접하지 않았는가? 그냥 가수로서 노래를 계속 부르고 싶다면 방송 밖에서 열심히 하시길 바란다. 눈꼽 만큼이라도 반성하는 마음이 있다면 굳이 방송에 또 출연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불특정 다수의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의 숙명이다.
그래도 고무적으로 보는 지점이 있다. 이제 대중들은 더 이상 음주운전 연예인들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2020년 11월 배우 배성우씨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던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과감하게 그를 중도 하차시켰다. 그때 배씨와 같은 소속사에 있는 배우 이정재씨가 급하게 대타로 출연하려고 했는데 이씨 역시 음주운전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배우 정우성씨가 대신 들어갔다. 참고로 배씨는 현재 공영방송(KBS·EBS·MBC) 영구 출연 정지 대상자 명단에 올라간 상태다. 드라마 제작진이 종영을 앞둔 시점에서 왜 주연 배우를 교체하기로 결단했을까. 그만큼 대중들의 눈높이가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연예인과 스포츠선수 등 유명인들이 음주운전을 저지르고 어떤 양태로 얼마나 자숙하는지에 대한 사례가 축적되고 있는데 갈수록 용납하기 어려운 시대로 가고 있다. 그러니까 제발 음주운전 좀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