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금태섭 전 의원의 ‘새로운정당’, 양향자 의원의 ‘새로운 희망’, 정의당의 재창당 조직 ‘세 번째 권력’과 ‘신당추진사업단’ 등 정치권에서 신당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까지 합세할 것 같은 분위기다.
유 전 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누구보다 그 당시 윤석열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이다. 대선 패배 이후 공백기를 갖지 않고 바로 지방선거(경기도지사 후보)에 출마해서 경선 탈락을 하긴 했지만 누가 봐도 친윤석열계 김은혜 전 의원(대통령실 홍보수석)을 내려꽂기 위한 정치적 배경이 존재했다. 그 이후 유 전 의원은 당대표 선거에 나설 기세로 각종 방송 마이크 앞에 대고 여러 메시지들을 내놨다. 주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친윤계를 비판하는 비평들이 많았다. 결국 이준석계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의 대리 출마에 만족하며 불출마하긴 했지만 유 전 의원은 최근까지 쉴틈 없이 윤 대통령의 행보를 매섭게 비판해왔다.
유 전 의원은 19일 저녁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당 바로 세우기’ 강연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신당을 만들지, 남을지, 무소속으로 나올지 등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진짜 백지상태에서 프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정치인들의 워딩은 해설이 필요한데 보통 하지 않을 거라면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래도 나중에 말을 바꾸는 게 정치인인데 통상 출마설이 불거질 때 그렇게 하곤 한다. 유 전 의원이 신당을 만들지 않고 국민의힘에 잔류하겠다고 명확하게 발언을 하더라도 현재 친윤계가 장악한 당내 지형으로 봤을 때 언론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신당을 만드는 것도 정치적 진로 선택의 한 카드로 인정하는 발언을 내놨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선 신당을 만들거나,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다거나, 다른 누군가가 조성한 신당으로 합류하는 등 셋 중 하나라고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최소한 잔류는 아닌 것이다.
정바세는 성골 이준석계 모임인데 이들이 개최한 토론회에 유 전 의원이 모습을 비췄다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다. 그동안 이준석 전 대표는 “유승민 키즈”를 넘어 별도의 세력화를 시도했고, 유 전 의원도 2022년 대선 후보로 나서거나 경기지사 경선을 준비할 때 굳이 이 전 대표를 부르거나 공동 일정을 수행하지 않았다. 두 리더는 누가 봐도 정치적 지향과 경로가 일치하는 영혼의 파트너임에도, 새로운보수당이 미래통합당으로 흡수된 2020년 총선 정국 이후로는 별도로 병존해서 투트랙으로 정치 행보를 밟아왔다. 그러나 당권을 잡았던 이 전 대표도 쫓겨났고, 유 전 의원도 옳은 말만 하는 야인으로만 남게 된 마당이라 이제는 손을 마주 잡고 함께 나설 타이밍이 됐다.
유 전 의원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민 중”이라면서 탈당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모양새를 취했는데 이 전 대표가 어떤 메시지를 내며 손발을 맞추게 될지 주목된다.
총선이 우리 정치를 변화시킬 굉장히 중요한 계기인데 미력하고 작은 힘이지만 어디서 어떻게 할지 백지상태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 전 의원은 또 다시 탈당을 감행하는 것에 상당한 부담감이 있다. 소신과 비주류의 이미지에 스크래치를 남긴 개혁보수 실험 때문이다. 3년간 정치적 개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는 말미에가서 화룡점정이 아닌 용두사미를 택했다.
유 전 의원은 2015년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계기로 거물급 정치인으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야당과 타협해서 대통령의 시행령 정치에 제동을 거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서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자”로 몰려 핍박 받는 정치적 이미지를 갖게 됐다. 옳은 말하는 비주류의 수장, 개혁보수의 아이콘 등으로 불리며 2017년 1월 탄핵 정국 당시 바른정당 창당의 주역이 됐는데 그때 유 전 의원은 탄핵 찬성파 중 새누리당에서 끝까지 버티다 가장 늦게 나왔다.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로 2017년 조기 대선을 치르면서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굳세어라 유승민”의 이미지가 형성됐고 무엇보다 “따듯한 보수”로 대표되는 그의 복지정책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대선 패배 이후 수많은 동지들이 바른정당을 탈당해서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할 때, 유 전 의원은 끝까지 남아 한국 정치사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보수정당의 본류 바깥에 존재하는 바른정당을 지켰다. 그 당시 유 전 의원은 “죽음의 계곡”이란 구호를 자주 썼다. 그만큼 어려운 길이었다. 그런데 정치적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나섰던 유 전 의원은 결국 바른미래당과 새로운보수당을 거쳐 미래통합당의 둥지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 전 대표는 새로운보수당으로 끝까지 버티길 원했지만 개혁보수의 수장 유 전 의원의 결단에 저항하지 못 했다.
유 전 의원이 바른정당과 새로운보수당 등 독자적인 보수신당을 창당해서 운영해본 경험은 값진 것이지만, 그 결과가 원리주의 강경우파 황교안 전 대표가 이끄는 미래통합과의 흡수 합당으로 마무리된 것은 참으로 면이 서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유 전 의원은 또 다시 탈당해서 신당을 차리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다. 그래서 이번에 아래와 같이 단서를 달았다.
총선 때 신당 만들어서 몇 석 얻고 대선 때 흡수 통합돼 떴다방 비슷한 기회주의적인 3당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절대 인정 안 한다. 죽을 각오로 끝까지 가겠다는 말을 국민이 믿도록 해야 한다.
총선 직전 새로운보수당을 만들어서 버티지 못 하고 미래통합당으로 들어간 것은 떴다방 기회주의가 아니고, 총선까지 치르고 큰 정당으로 흡수되는 것만 떴다방 기회주의일까? 결국 유 전 의원의 셀프 디스이자 혹시라도 보수신당을 차리게 되면 다시는 새로운보수당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온통 가시밭길이자 용두사미로 귀결된 보수신당 시즌1의 아픔을 잘 알고 있는 유 전 의원이, 굳이 기자들에게 신당 가능성에 군불을 떼는 듯한 워딩을 아무 이유없이 줬을 리가 없다.
관련해서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유 전 의원의 신당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내다봤다.
탈당을 해서 신당을 만든 이력이 있는데, 지금 신당 창당을 한다고 해서 동력이 생길 것인가는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나중에) 윤석열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져 정권 교체 바람이 불 경우 대안으로 충분히 역할을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