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현장 취재: 정회민 크루 / 기사 작성: 박효영 기자] 광주와 5.18 정신을 이야기하던 박흥순 대표(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는 “광주만이라도 상징적으로 우리는 이주민 단속 안 한다. 미등록 이주민 단속 안 한다. 누구나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인권의 도시를 선언하는 것”이라며 “광주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박 대표는 “그렇게 못하겠지만 표 떨어지니까.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근데 50년 전 독일은 그것이 가능했다. 나는 이런 시민의식이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있다. 그때 스위스 출신 막스 프리쉬 작가(1911~1991)는 우리는 노동력을 원했지만 온 것은 사람이었다. (유럽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사람이었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그들을 노동력으로 생각했다.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박 대표는 지난 3월26일 19시 광주 동구에 위치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 공유공간에서 <인권과 다문화 다양성 속에서 조화>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한국식 다문화주의는 미국에서 실패한 용광로 이론(Melting pot)과 다를 바 없다. 박 대표는 “용광로처럼 하나의 미국을 만들기 위해서 유나이티드 어메리카라고 했는데 하나의 미국을 만들 수가 없었다”며 “그래서 멕시칸 아메리칸이 있고 코리안 아메리칸이 있다. 용광로 이론이 실패했는데 한국 사회의 다문화주의는 용광로 이론”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이주민이 들어오면 한국 사람을 만들고 싶어 한다. 왜 빨리 한국 사람이 안 되냐고 얘기한다. 나는 이주민들이 이미 있는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 자리에서 박 대표는 한국에 있는 이주민들이 “베트남계 한국인이다. 필리핀계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게 좀 필요하다”면서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도 멕시칸 아메리칸이 있고 코리안 아메리칸이 있는 그런 상황을 보면서 용광로 이론에 대한 현실을 볼 수 있듯이 이제 모자이크 이론이 다문화 사회를 설명해주는 되게 중요한 이론”이라고 설명했다. 모자이크 이론(Mosaic theory)의 핵심은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인종들이 공존하면서 전체 문화를 형성해가는 것이다. 모자이크 이론에 따르면 해외 이주민들이 본국을 떠나 정착한 타국에서도 본국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원래 갖고 있는 생활양식을 계승시킬 수 있다고 본다. 전체 인구의 20%가 이주민으로 구성된 캐나다는, 1971년 피에르 트뤼도 총리 재임 당시 미국의 용광로 이론과 일맥상통하는 동화주의를 포기하고 모자이크 이론을 받아들였다. 이밖에도 캐나다는 다문화 정책 선진국으로서 △1969년 영어와 불어를 공용어로 지정 △1981년 인종 관계 전담 기구 설치 △1988년 다문화주의 법률 제정 등을 추진했다.
박 대표는 “(강연장에 착석해 있는) 이주민들이 여기 있는데 이주민들이 오면 한국은 한국 사람을 만들고 싶어 한다”면서 아래와 같이 설파했다.
빨리 한국말 배우고 한국 문화 배우고 왜 너는 한국 사람처럼 하지 않아? 그렇게 강요하는데 왜냐하면 일치시키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문화 사회는 일치보다 더 중요한 게 조화라는 가치다. 하모니가 중요하다. 그래서 어떻게 다양성의 가치를 조화롭게 실천하며 살 것인가라고 하는 걸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다양성 속 조화의 가치를 알아야 하고 이것이 다문화다.
특히 박 대표는 “차별하는 것만으로도 한 생명을 죽일 수 있다”는 교훈을 들려주기 위해 마틴 루터 킹 목사(1929년~1968년)의 사후 1970년대 미국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차별 문제를 알려주려고 했던 제인 엘리엇 사례를 제시했다. 제인 엘리엇 교사는 ‘분열된 반’이라는 심리 실험을 통해 순수한 청소년들이 하루아침에 차별 의식을 내재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푸른 눈 가진 사람이 우월하고 갈색 눈 가진 사람이 열등하다라고 해서 우월한 사람에게는 노는 시간도 많이 주고 물도 많이 먹게 하고 여러 특혜를 줬다. 놀라운 건 어제까지만 해도 학습 능력이 뛰어났던 아이였는데 차별을 당하자 학습 능력이 현격하게 떨어졌다. 이 실험이 미국 전역으로 방송됐는데 누군가를 차별하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생명을 완전히 죽일 수 있구나라고 하는 걸 보여주는 되게 전형적인 사례로 남았다. 그래서 이 사례를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다른 사람의 신발 한 번 신어보는 경험, 그 사람의 자리에 한번 가보는 경험.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기존에 우리가 배워온 잘못된 교육과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할텐데 박 대표는 이것을 “탈 학습”이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 서양인이 갖고 있는 동양인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방식이 그대로 한국인에게 학습됐는데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 사람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이고, 동양 사람이 서양을 바라보는 시선은 옥시덴탈리즘이라고 하는데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을 이래저래 규정하듯이 동양 사람들도 학습해서 복제해서 오리엔탈리즘을 했다. 그래서 이주민들은 이래라 저래라고 하는 편견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사람은 이래, 베트남 사람은 저래, 필리핀 사람은 이래, 중국 사람은 저래. 이렇게 편견을 갖고 대응하는 우리 안에 복제된 오리엔탈리즘이 있다. 이런 잘못된 선입견에서 탈 학습해야 한다.
탈 학습을 위해 중요한 것이 바로 만남이다. 그 사람을 모르기 때문에 편견과 선입견이 생기는 것이다. 박 대표는 “사람을 잘 알지 못 하기 때문에 생기는 충돌이니 그 사람을 알게 되면 여기 우리 이주민들이 되게 많이 와 있는데 이분들을 알게 되면 친구가 되고 잘 모르면 낯선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 학습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도 연결된다. 박 대표는 늘 자신이 하는 “말을 되새겨본다”며 “비판적 성찰을 하지 않는 삶은 악이 편안하게 자리잡는 것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선 비판적 사고가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이 일에 대해서 비판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아주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박 대표가 강연에서 피력했던 주요 메시지는 △5.18 정신은 연대 △역지사지 △편견을 깨려는 수평적 만남 △반말의 문제점 △외모로만 판단하는 것 경계하기 △잠시 멈춤 등이다.
아무래도 강연하는 곳이 광주이기 때문에 5.18 정신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거론하게 됐는데 박 대표는 “5.18 정신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응답하는 자발성”이라고 김상봉 교수(전남대 철학과)의 워딩을 인용하며 아래와 같이 풀어냈다.
나는 이 말만 있다면 굳이 인권 교육이라고 하는 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고통당하면 그 고통당하는 것에 응답하는 마음이 우리에겐 있다. 우리에게 연대하는 마음이 있다. 이런 마음들이 되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 연대하는 마음이 어떻게 보면 다문화 사회에서 다양성 속의 조화를 이뤄내는 되게 중요한 가치 실천일 것 같다.
역지사지는 직접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기 위해 겪어보는 것이 좋다는 취지다. 박 대표는 “그 자리에 가보라고 얘기하고 싶다”며 “내 아내가 두 달 동안 필리핀 갔다 왔는데 필리핀에서 이주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았다. 왜 언어도 안 되고 낯설고 다른 환경에 있다 오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그런 표현을 쓰는데 가보면 안다”고 운을 뗐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고 그 다음에 가족도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이 어떤 삶을 살지 그의 자리에 처해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역지사지의 마음들이 필요한 거다. 그 다음에 역지사지의 자세로 경청을 하는 것이다. 좀 물어봐 달라는 것이다. 뭘 원하는지 물어보고 하자. 그 어떤 다문화 정책도 마찬가지고 행정 지원도 마찬가지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고 좀 (이주민 당사자에게) 물어보자.
앞서 탈 학습을 위한 만남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수직적인 만남은 의미가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수평적 만남이 필요하다. 예컨대 박 대표는 “남북 전쟁이나 다른 전쟁에서도 흑인 병사랑, 백인 병사를 같은 부대에 투입을 시키면 인종적 편견이 사라진다”면서도 “백인 주인과 흑인 하인으로 아무리 많이 만나도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다. 즉 수평적 관계가 되지 않으면 편견은 만나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만남이 편견을 깨는 굉장히 중요한 방식인데 수평적인 경우에만 깨진다는 것이다. 수직적인 경우에는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편견을 깨기 위해서 연대하고 그 다음에 함께 살겠다라고 말한다면 그가 내 동료여야 된다. 내 친구여야 된다. 근데 그게 아니고 내가 교육해야 할 대상이거나 시혜를 베풀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편견이 깨지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어제도 이주민들하고 만나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가 친구라고 말했다. 진짜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이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와 관련 한국적 문화에 존댓말이 있는 만큼 함부러 반말을 쓰지 않고 나이가 어리든 많든 존댓말을 쓰는 태도가 중요하다. 박 대표는 “다 존중하는 의미에서 나는 어린이에게도 존대한다”며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반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애들한테 계속 존대했고 아이들이 그걸 좋아한다”고 전했다.
어린이들도 존중받는다는 걸 안다. 우리가 그런 연습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1대 1로 앉아 있을 때는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중에 모였을 때 우리가 이런 서열을 파괴할 수 있는 되게 좋은 방법은 내가 당신을 존중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존중받고 싶어서! 이 가치를 실천하는 게 필요하겠다 싶다.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에 천착했던 소설가 존 하워드 그리핀 작가(1920년~1980년)는 원래 백인이지만 흑인에 대한 차별을 직접 경험해보고자 일부러 흑인 피부로 변장까지 했다. 그는 하루 15시간 일광욕을 하고 피부 변색을 위해 약품과 염료를 썼다. 겉모습이 완전히 흑인처럼 바뀌자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알라바마, 죠지아 등 인종차별 정책이 심한 남부 지역으로 갔는데 그곳들에서 적나라한 인종차별의 현실을 깨달았다. 그리핀 작가는 직접 겪은 야만의 시대를 <블랙 라이크 미>라는 책으로 생생히 고발했다. 박 대표는 “(그리핀 작가가) 달라진 건 피부 색깔 뿐이었는데 엄청난 차별과 모멸을 겪어야만 했다”며 “(책이 나오고) 미국 백인들이 자기의 부끄러운 속살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분노해서 그리핀을 죽이려고 해서 결국 멕시코로 망명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겉모습으로 판단을 한다. 그 사람의 생김새, 옷, 머리 스타일, 피부색 등등을 가지고 충분히 판단하고 편안함을 느끼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과연 사람의 얼굴만으로, 겉모습만으로 한 사람의 존재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들을 던지는 거다. 여러분은 어떤가? 외모로 사람 판단하지 않는가? 그러면 좋겠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외모로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라는 걸 인정하면서 계속 되돌아봐야 탈 학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 대표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멈춤과 여유”라고 역설했다. 생각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타인의 처지와 이질성을 배타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우리는 굉장히 바쁘게 살다가 잠시 멈춰야만 보이는 일들이 있다”면서 “보통 1분 정도 잠깐 30초 정도라도 침묵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2022·23)에서 맨체스터 시티가 우승했을 때 다른 선수들은 시상 단상에 서있는 시각장애인 여자 아이를 그냥 지나쳤다. 근데 잭 그릴뤼시라는 선수만 멈춰서서 계속 그 아이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이게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다. 옆에 진행하는 사람은 빨리 그 사람에게 시상하고 싶은 마음에 지나가라고 하지만 우리가 멈춰서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일들이 저런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다문화 사회를 준비하는 첫 번째 일이 뭐냐면 잠깐 멈춰 서자. 그리고 돌아보고 어떤 사람이 있는지 누가 있는지 어떻게 함께 사는지. 이걸 좀 생각하면서 살아가자.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끝으로 박 대표는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우리 모두는 동등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걸 인정한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산다라는 것만 기억하자”면서도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답게 사는 것”의 소중함을 피력했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프란츠 파농(1925~1961)이, 인종차별 시대를 살아가는 흑인들이 정신불열로 고통 받는 배경을 탐구했는데 거기에는 “흑인인데 백인처럼 행동하는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 대표는 “사람은 자기 꼴대로 자기가 태어나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라며 “여기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너희 나라의 관점이나 생각들을 버리고 한국 사람처럼 살라고 하면 이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얘기하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핀란드의 교육 철학의 핵심적인 것과 맞닿아 있다. 뭐냐면 항구에, 배에 타는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가는 것이다. 교실에 있는 한 아이가 학업 능력이 떨어지면 다음 단계로 안 넘어간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애가 공부 잘 못하는 아이를 가르쳐준다. 한배에 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부족하면 같이 채워주면서 같이 가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주민과 함께 하면서 내가 제일 많이 쓰는 말이 가장 늦게 걷는 사람의 속도와 호흡에 맞추는 연습을 하자는 말이다. 이주민을 위해서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이주민과 함께 하면 된다. 청소년을 위해서 뭔가를 하지 말고 청소년과 함께 하면 된다. 이 말을 꼭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