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작년 11월17일 어머니의 생일 때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짧은 가족 여행을 떠났다. ‘색칠 지도’ 앱을 켜고 가보지 않은 곳들 위주로 탐구해봤는데 수많은 여행지들 중 전남 진도를 픽하게 됐다. 사실 전남 함평 출신으로서 진도에 안 가보진 않았다. 고등학교 이후로 15년만에 가게 된 만큼 기대감이 컸다. 진도에 있는 ‘쏠비치’라는 리조트에 묵었는데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황홀한 여행이었다. 제목으로 뽑았던 송가인 생가는 말미에 등장한다.
드디어 여행 당일! 우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목포 소재 식당에 들어가 낙지 비빔밥으로 입가심을 했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진도로 향했는데 거의 2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예약해둔 숙소는 진도에 진입한 뒤에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했기에 체감상 상당히 멀게 느껴졌다. 벌써부터 여행 피로가 축적되는 것 같았는데 체크인을 했더니 밤이 되었다. 쏠비치는 예전부터 상당히 유명했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예약을 겨우 한 만큼 인기가 많았고 도착하자마자 웅장함에 압도되었다. 야경이 끝내준다.
리조트 안에 있는 마트에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샀고 어머니 생파용 와인도 가볍게 마셨는데 숙소 내부 분위기와 인테리어도 무지 깔끔하고 아늑해서 참 좋았다. 음주 수영을 자제해야 하지만 왠지 하고 싶어서 고민이 들었는데 가족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어 아쉬움을 삼켰다.
그렇게 첫째날이 지나갔고 다음날 아침 뷔페 조식을 맛있게 먹고, 주변 산책을 했는데 아침에 보는 풍경은 야경과는 또 다른 매력을 주는 뷰맛집 그 자체였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는 ‘신비의 바닷길’이 등장한다. 진도군에서 시그니처 관광 컨텐츠로 밀고 있는 스토리텔링 요소인데 정말 아쉽게도 물때가 맞지 않아 바다가 열리는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진도 바다를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마음이 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구름 사이로 햇빛이 새어 나와 바다를 비치는 모습은 마치 지상에 신이 강림한 모습이었다.
이제 본격 진도 여행이다! 맨 처음 간 곳은 운림산방이라는 곳이었다. 대한민국 명승지 중 한곳으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에 선정되기도 했다. 마침 가을이라 단풍도 예쁘게 물들어 가을의 정취가 절정이었다. 날씨도 좋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맘껏 즐길 수 있었다.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산수화의 화풍 중 하나)의 대가인 소치 허련이 그림을 그리던 곳으로, 이후 그의 후손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남화의 맥을 이었다고 한다. 허련은 진도 태생으로 해남 녹우당의 화첩을 보고 그림을 익혔는데 대둔사라는 절에 머물던 초의선사의 소개로 서울로 올라가 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그만의 화풍을 만들었다고 한다. 허련 선생과 그 후손들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도 있어 이들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는데 산수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산수화는 멍하게 바라보게 하는 흡입력이 있다. 마치 내가 그 그림 안에 풍경 속으로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집안 대대로 이렇게 미술을 하는 것도 정말 놀랍다. 미적 감각과 재능도 물려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림 안에서 겨우 빠져 나온 우리 가족은 진도 시내에 들려 점심을 먹고 그 유명한 울돌목으로 향했다. 이곳은 진도와 해남반도 사이에 좁은 수로다. 특히 물살이 굉장히 센 것으로 익히 알려졌다. 아주 어릴 때 와본 것 같았는데 다시 와보니 새로웠고, 나름 역사 덕후로서 이순신 장군의 ‘명량 대첩’ 격전지를 떠올리며 지긋이 살펴보았다. 명량 대첩 관련된 설명이 자세하게 안내문으로 나와 있었지만 나는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냥 소용돌이 치는 물살을 보며 “명량 대첩을 이끄는 장군 이순신의 마음은 어땠을까?”라며 사색에 잠겨봤다.
새삼스럽지만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12척의 배로 100척이 넘는 배를 상대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물살과 좁은 지형을 이용하고 판옥선이 일본 배보다 기능이 더 뛰어나고 전략 전술을 잘 짰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병력차가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쟁취한 것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당시 조선 수군은 사상자 2명 밖에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적을 초토화시켰다. 오히려 영화 <명량>에서 조선 수군의 피해가 과장되어 묘사된 수준인데 정말 군인 이순신은 ‘해전의 신’이다.
피날레는 역시 송가인의 생가다. 트로트 열풍의 문을 열어 젖힌 슈퍼스타 가수 송가인. 웬만한 네비게이션 앱들에는 ‘송가인 생가’라고 치면 그대로 안내가 될 정도다. 나아가 송가인이 태어났던 마을 이름(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앵무리 앵무리 마을) 자체가 ‘송가인 마을’로 바뀌어 버렸다. 정말 진도 최대의 아웃풋이다. 온통 송가인 마케팅으로 가득했는데 송가인 공원을 조경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송가인 생가에 다다르니 온갖 사진들과 입간판이 많았다. 근처에는 커피와 간식을 파는 곳들이 즐비했는데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송가인 팬들로 장사진을 이룬다고 한다.
송가인 생가에서 우리 가족은 개별적으로 기념사진을 많이 찍었다. 솔직히 자연 관광지를 좋아하는 타입이라 그렇게 타입에 맞는 곳은 아니었지만 유명세를 이길 순 없었다. 더구나 송가인이라는 브랜드는 진도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 영향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진도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 바로 송가인이기 때문이다.
송가인 생가를 끝으로 진도 가족 여행은 마무리됐다. 누나와 나, 부모님은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이번 진도 투어는 무지 재밌었는데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돗개 테마파크에 가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진돗개로 먹고 살던 진도에서 어느새 진도 하면 송가인이 떠오르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진돗개를 떠올리지 못했다. 곧 진돗개 테마파크에 초점을 맞춰서 재방문 계획을 세워봐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