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누구나 부모가 존재하는 만큼 ‘가족’이 있기 마련인데 가족이 사치일 수 있다? 진미정 교수(서울대 아동가족학과)는 지난 3월30일 책 <가족이라는 사치>를 출간했다. 부제가 ‘가족을 이루는 삶이 특별해진 시대의 가족’이다. 어떤 행간이 있는 건지 들여다보고 싶은데 진 교수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가족이라는 것이 예전에는 누구나 다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었는데 이제 시대가 변화하면서 지금은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 또는 조건이 갖추어진 사람들만이 누리는 그런 사치제 같은 것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그렇게 제목을 지었다.
진 교수는 4월17일 방송된 KBS 라디오 <뉴스레터K>에 출연해서 한국 사회의 변화 양태를 진단했는데 무엇보다 ‘가족’의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나는 2가지가 맞물리고 있다고 보는데 첫 번째는 가족에 대한 규범이 약화되면서 결혼이나 출산이나 가족을 이루는 일이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누구나 꼭 해야 되는 일이 아니게 됐다. 지금은 내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일. 이런 일이 되면서 그러면 내가 이거를 선택한다고 할 때 왜 선택해야 되는지 이유나 명분이 있어야 되고 내가 혼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좋은 거를 나한테 줄 수 있을 때 그때 가족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것 같다.
결혼과 출산이 ‘선택사항’이 됐다는 점과, 그런 만큼 안 해도 되는데 하려면 ‘조건’이 충족돼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이 2가지가 핵심이다. 무엇보다 의무사항이나 강제가 아니게 된 만큼 결혼 상대를 고르고 고르게 된다. 진 교수는 “배우자에 대한 기준도 높아지고 내가 앞으로 꾸릴 가족은 이러 이러한 가족이어야 된다라고 하는 어떤 기대나 눈높이”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런 걸 다 충족할 수 있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면서 또 SNS 같은 것들을 통해서 이렇게 보여지는 모습들이 너무 완벽해 보이는 가족이랄까? 적어도 겉으로는 그러니까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면 나는 좀 도달할 수 없는 거 아니야? 나는 선택할 수 없는 거 아니야? 나 같은 사람들은 기회가 없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는 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
결혼식, 혼수, 신혼여행, 예물, 신혼집 등등으로 시작해서 자녀 양육, 사교육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타인과의 비교 요소들로 가득하다. 결혼은커녕 ‘나’ 혼자 치러야 하는 입시, 대학 성적, 스펙, 취업, 승진 등등 온갖 평가 체계들로부터 온전히 버티기도 힘든데 결혼? 출산? 꿈도 꾸기 어렵다. 비교적 경쟁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부담을 덜 느끼는 청년이라고 해도 인식 변화가 감지된다. 진 교수는 ‘아동가족학과’에서 근무하는 만큼 제자들이 결혼과 가족에 관심이 있는 편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비해서는 결혼과 출산 및 양육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많이 없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소비주의적 양육’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원래 돈이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1부터 99까지 모조리 돈으로 좌우되다보니 너무나 부담스럽다.
양육이라는 게 아이를 키우는 건데 예전에는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 부모가 직접 돌보는 것에 비중이 굉장히 컸다면 지금은 보육 서비스 같은 것들이 확대되고 보편화됐다. 그렇게 직접 돌보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양육의 범위나 아니면 초점이 생긴 것 같다. 예를 들면 자녀에게 최고의 어떤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 심지어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사귀게 하는 것 이런 것들에 이제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부모가 가져야 되고. 또 그걸 자녀들에게 공급해주는 어떤 경제적인 역량을 갖추는 것. 이런 것들을 이제 좋은 부모의 핵심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양육이 좀 바뀌고 있다.
돈이 어느정도 있는 것으로는 안 되고, 경제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는 것 자체를 시도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그러니까 좋은 보육 서비스를 소비해야 되고 교육 서비스를 소비해야 되고 심지어는 옛날에는 아이의 친구관계나 또래관계에 사실 부모가 개입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에는 좋은 친구 만나게 해주려면 좋은 동네에서 살아야 되고 좋은 학교 보내야 되고 그룹핑 해주고 이런 것들이 사실은 모두 소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기 때문이다. 내가 소비주의적 양육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이런 현상이 좀 심화되는 게 우리나라의 저출생 문제하고도 깊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진 교수의 담론을 듣고 있던 진행자 전종철 기자(KBS)는 아래와 같은 궁금증을 드러냈다.
(대부분 1명 또는 겨우 2명까지만 낳는 요즘) 최선을 다해서 자식한테 물심양면으로 쏟아붓는데 그 혜택을 받은 자식들이 이제 결혼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돼서 내가 우리 엄마, 아빠처럼 잘할 수 있을까? 우리 애한테? 집도 마련하기 어려운 것 같은데 나 힘들 것 같은데? 이런 게 결혼과 출산 이런 데 영향을 당연히 미치지 않을까.
진 교수는 공감했다. 특히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보면 부모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되게 많이 갖고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
우리 부모님이 나를 위해서 많이 희생했고 또 나에게 투자를 많이 했다.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나는 우리 부모님만큼은 못할 것 같은데 내가 자녀를 위해서 그렇게 희생하면서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런 말도 동시에 한다. 그런 양가적인 감정이 다 있는 것 같다.
서울대생들조차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심지어 이렇게 최고의 학부를 다니는 학생들도 남들이 보면 저 친구들은 졸업 후에 좋은 진로가 보장되어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학생들조차도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그렇게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결국 “구조적인 조건이나 경제적인 어떤 상황이나 여건”이 “저출생 문제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다.
다시 돌아와서 가족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관점은 “가족은 가족이고 나는 나”라는 것으로 집약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진 교수는 “자연스러운 변화”라며 “예전에는 가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되고 헌신해야 되고 자녀를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써야했다”고 전제했다. 즉 “가족과 개인이 굉장히 밀접하게 하나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가족과 개인도 분리될 수 있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걸 이제 학술적으로는 개인화라고 얘기를 하는데 물론 가족이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가족이 중요하고 부모님도 중요하지만 또 나는 나의 삶이 있고. 가족이나 부모님의 행복이 언제나 나의 행복과 동일시될 수 없다라는 것들을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다. 다들 그걸 인정하기 시작한 것 같다. 예전에도 그런 욕구가 없었던 게 아니라 있었지만 우리가 그걸 다 참도록 배웠다. 그리고 가족이 행복하면 너도 행복한 거야. 이렇게 내면화하도록 살아왔다면 지금은 이제 시대가 둘 다 중요하다고 이렇게 바뀐 것이다.
사실 다들 굳이 이렇게 나열하지 않아도 알고 있지 않은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가족주의가 오랫동안 굉장히 중요한 핵심적인 규범”이었다. 진 교수는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맞춰서 살도록 기대되었다”면서 이제는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에 관해 “기본적으로는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가족 정책은 모든 가족을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하고 그 가족들이 현재의 상황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근데 사실 다른 한편으로는 저출생 정책은 또 가족 정책하고는 약간 구분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저출생 정책은 어쨌든 출산과 양육의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좀 제거하고. 원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어서. 모든 가족을 인정한다는 것과 또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단기적으로 우리가 가족에게 해줘야 되는 것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중장기적으로는 그런 방향(개인의 행복에 포커스)으로 가는 게 맞지만 또 단기적으로는 당장 양육에 필요한 지원들을 해주는 것도 동시에 가야 한다.
단기 지원책에 관해 구체적으로 진 교수는 ‘주택’과 ‘빈곤’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설파했다.
청년들이나 신혼부부의 보금자리와 주택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원룸에서 살았더라도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그런 데서 살 수 없지 않냐? 이렇게 말하는 게 당연한 거고 그런 목소리들을 들을 때 사실은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주택 문제를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좀 평범한 가족 생활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빈곤한 가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안전망들이! 근데 보통 사람들이나 평범한 가족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지는 경우들이 많다. 예전부터 어떤 가족의 문제는 가족 내에서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라 공과 사를 구분하고 가족은 언제나 사적인 영역에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알아서 해결해야 된다라는 그런 전통이 꽤 오랫동안 있었다.
그래서 정말 가난하고 선명한 취약계층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으면 국가의 정책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진 교수는 “저출생 때문에 전환되긴 했지만 이렇게 평범한 가족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이나 양육 같은 것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사실 굉장히 여러 제도적인 혜택들을 많이 보고 육아휴직이라든가 유연근무제라든가 그런 것들이 잘 적용되는데. 중소기업이나 다른 이런 일반적인 사업장에 다니시는 분들은 그런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가족 생활을 지원하는 그런 정책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섬세하게 적용돼야 된다.
진 교수는 <가족이라는 사치>에서 “가족끼리는 모든 걸 공유하고 갈등을 없애야 한다는 이런 강박이 오히려 가족간의 숨 막히는 갈등을 만들고 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강박을 내려놔야 한다. 진 교수는 “가족은 갈등이 없어야 되고 서로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양보해야 되고 이런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서 “그게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가 가족들과 생각이 좀 달라도 그 가족 안에서 솔직하게 얘기하기가 어렵다. 사실은 건강한 가족관계의 핵심은 친밀하고 가까운 유대를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자리를 좀 보장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지금 그러고 있나? 정말 가족 안에서 내가 솔직하게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나? 혹은 부모가 된 나는 그러고 자랐는데 우리 자녀들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나? 이런 것들을 좀 질문해보면 아닌 가족들이 많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그러기가 어렵겠지만 최대한 개인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해줘야 한다. 진 교수는 “그런 솔직함을 표현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신뢰가 훼손되지 않고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그런 소통법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건강한 가족관계라고 정의했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고 해도 부모는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식을 그 자체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 교수는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출발점은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좀 읽을 수 있어야 된다”며 “그 소통의 출발점을 가족 안에서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족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공동체지만 그 안에 서로 다른 세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읽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또 서로 다른 성별의 생각이나 감정을 읽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데 그런 훈련이 잘 안 돼 있으면 사실 가족 안에서도 외롭고 소외가 일어난다.
끝으로 진 교수가 생각하는 가족의 가치는 무엇일까? 진 교수는 “서로 돌보는 관계”가 가족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인 시간의 전망으로 이 관계가 오래 유지될 것이라는 사실을 공유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서로 호의적으로 돌보는 게 가능한 관계가 가족인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내가 좀 손해를 보고 나에게 불리하더라도 이 관계가 그냥 1~2년 안에 끝낼 관계가 아니라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될 관계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내가 거기서부터 또 보상을 받을 수도 있고 받게 되면 또 줄 수 있는 그런 호혜적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그래서 서로 돌보는 관계이자 우리가 같이 간다는 이 2가지가 가족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면서 가치가 아닐까 싶다.
한편, 진 교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 전통적인 가족관에 대해 “아마도 우리에겐 딱 하나의 전통이 있고 그 전통에서 벗어나는 거는 다 제한적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사실 가족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딱 하나의 가족이 존재했던 시대는 없다. 언제나 가족은 다양한 모습이었고 시대적으로 변화해 오는 모습이어서 사실 이런 다양한 모습들이 우리의 전통을 해칠 것이라고 하는 건 조금 지나친 우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서로 돌보는 게 가족이라면 어떤 형태라도 혼자 각자도생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관계가 형성된 가족이라면 우리가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의 모습을 인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련해서 진 교수는 ‘조립식 가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우리가 레고 같은 걸 조립하듯이 어떤 파트를 선택해서 누구와 가족이 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고. 때로는 그 선택이 제도적인 어떤 범위를 벗어날 수도 있다라는 뜻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을 조립식 가족이라고 하는데 그게 대안이라고 말씀드린 건 아니다. 지금 가족이라는 제도가 그렇게 단일하고 표준화됐던 시대가 지나가면서 그런 다양한 조립식 가족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현상을 좀 말씀드린 것이다. 어쨌든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내가 결혼이나 출산에서는 멀어졌어도 나에겐 여전히 선택지가 남아 있다. 내가 가족과 비슷한 사람들을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선택지가 남아 있다는 측면에서 말씀드리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