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짧은 영상을 보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일단 이것부터 감상해보자.
계단에서 굴러내려온 수많은 공들은 컵 안으로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주변을 스쳐갈 뿐이었다. 우리가 살면서 품게 되는 무수히 많은 ‘걱정과 염려’도 마찬가지다. 부지기수는 ‘기우’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불필요한 걱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DNA가 있다. 크게 4가지다.
①부정 편향
②불확실성
③파국화
④미신적 대처
먼저 부정 편향부터 탐구해보면, 과거 원시인들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것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예를 들어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사과가 떨어졌다고 여기고 그걸 주우러 가면 맹수에게 잡아먹힐 수 있다. 반면 맹수일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가능성을 전제하고 대피하게 되면 살아남는다. 이렇게 실제 발생 여부와 무관하게 최악 또는 부정적인 결과에 맞닥뜨렸을 때를 대비하는 ‘생존 매커니즘’이 인류의 DNA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으로 설명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저서 <부정성 편향>을 통해 아래와 같이 설파했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부정성에 초점을 맞추도록 진화했으며, 부정성은 뇌의 경고 체계와 밀접하게 연관 있다. 사람의 몸은 위협을 감지했을 때 심박, 소화, 땀과 소변의 분비를 통제하는 자율신경계에서 ’투쟁-도피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이는 기저핵과 변연계 체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이 부분은 부정적 신호에 매우 민감하다. 뇌의 CEO라고 불리는 전전두엽에서 우리가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되면 기저핵과 변연계가 빠르게 작동해 투쟁-도피 반응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성 편향은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도 작용되기에 잘만 활용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좋은 방향으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실생활에서 느끼게 되는 부정은 사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두 번째는 불확실성인데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것 즉 모르는 사실에 대해 위험하고 불안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뇌는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사실 미래를 정확히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이 뇌의 활동이다. 가상의 시나리오는 한 마디로 쓸데 없는 걱정과도 같다. 합리적인 예측에 따른 ’유비무환‘으로 긍정적 포장을 하고 싶겠지만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헛수고에 불과하다.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종결 욕구(Need for Cognitive Closure)’로 풀어내고 있는데, 우리 뇌는 미지의 상태로 남겨두는 것보다 차라리 온갖 부정적인 가정법을 하는 것을 덜 불안하다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뭐라도 시나리오를 만들어내서 결론을 지어놓는 것이 블랭크 상태보다 훨씬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아리에 크루글란스키는 ”인지적 종결 욕구가 강한 사람은 단호하며 예측가능하고 질서가 잡혀있는 삶을 선호하고 불확실함과 애매함에 대해 더 많은 불편함을 느낀다“고 역설했다. 미궁의 미래를 두고 온갖 인지 활동을 하기 보단 나름대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으로 가정한 뒤 결론을 내서 종결해버리려는 욕구가 강한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미리 내리는 결론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비관적이다.
세 번째는 ‘파국화(Cognitive Distortion)’다. 아주 작은 가능성의 눈덩이를 계속 굴려서 최악의 결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학자인 아론 벡은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지적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이번 프로젝트 마감이 늦어지면 내부 평가가 나빠져서 결국 해고당해서 길거리에 나앉을 것”이라고 하는 기적의 삼단논법 같은 거다. 사고 전개가 참으로 비합리적인 것 같지만 누구나 파국화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여기에는 ‘조명 효과(Spotlight Effect)’가 결합하기 쉬운데 사실상 남들은 나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데 마치 작은 실수라도 하면 모두가 손가락직을 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여기는 재앙적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그렇게 큰 일이 아님에도 과도한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네 번째는 미신적 대처다. 이를테면 “걱정은 일종의 부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미리 걱정을 해두면 나쁜 일이 비껴가거나 충격이 덜할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갖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걱정에 대한 긍정적 신념(Positive beliefs about worry)’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사전 걱정을 일종의 ‘예방 주사’나 ‘정신적 부적’처럼 여기는 것이다. 만약 아무 걱정도 없고 대책도 없이 행복해 하다가 갑자기 불행에 맞닥뜨리면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잽을 날리며 맷집을 키우려고 반복하는 것이다.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수시로 걱정하고 어쩔 땐 과도하게 염려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니고 본능적인 뇌의 인지회로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아공의 심리학자 수잔 데이비드는 걱정을 ‘없애야 할 적’으로 보지 말고 오히려 내 삶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좋은 시그널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사고의 전환을 모색해보는 것이다.
불안과 걱정은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그것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귀를 기울여라.
예를 들어 회사에서 잘리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감이 들면 역설적으로 ‘내가 이 직장과 안정적인 삶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걱정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부드럽게 수용하는 태도가 불필요한 불안의 악순환을 끊어줄 수 있다. 미국의 인지치료협회장을 맡고 있는 로버트 레이히는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 “불확실성에 대한 낮은 용인력”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완벽하게 안전해질 때까지 걱정을 멈추지 못하는 것인데 레이히는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지만 삶의 모든 것을 예측하려는 시도야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욕심”이라고 말했다. 레이히는 차라리 매일 15~30분 정도 ‘정해진 걱정 시간(Worry Time)’을 만들어서 그 시간에는 실컷 걱정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면 하루종일 걱정에 시달리는 대신 “이 걱정은 오후 6시에 몰아서 하자”는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걱정을 유예시킬 수 있다. 지금 당장 뇌로 파고드는 심각하게 느껴지는 그 걱정도 막상 걱정 시간이 되어 다시 떠올려보면 신기하게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단순히 마음가짐의 전환을 넘어 실제로 도움을 받고 싶다면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팁에 주목해야 한다. 셀리그만은 불필요한 걱정에 대처하기 위해 ‘학습된 낙관주의(Learned Optimism)’를 제안했다.
비관주의자들은 불행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믿지만 낙관주의자들은 그것이 일시적인 시련일 뿐이며 통제 가능하다고 믿는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미래의 위험을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훈련을 통해 ‘내가 다룰 수 있는 것’으로 재정립할 수 있다. 그래서 당장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걱정거리들이 있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일’과 ‘내가 바꿀 수 없는 일’로 명확히 분류해야 한다. 다만 머릿 속에서만 분류하지 말고 스마트폰 메모장에 써도 좋고, 종이와 펜을 가지고 카페로 가서 차분하게 손글씨로 써도 좋다. 그러면 날씨나 타인의 마음처럼 통제할 수 없는 99%의 일은 내려놓을 수 있고, 당장 내가 통제할 수 있는 1%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심리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미래의 불안을 다스리는 법은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99%의 가상 시나리오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수많은 걱정들 중에서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실천하는 것이 정석이다. 걱정 본능은 진화의 유산이 맞다. 하지만 우리가 슬기롭게 관리하고 대처할 수 있다. 다시 돌아가서 앞에서 본 수많은 공들이 컵에 들어가지 않는 짧은 영상을 업로드한 인스타그램 계정 <찐리학>은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엔 모든 게 불안정해 보인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고, 조금만 흔들려도 끝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지켜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이미 현실처럼 걱정하고, 머릿속에서 수십 번 반복하지만 실제 현실은 불안이 만들어낸 상상보다 훨씬 조용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우리는 문제 자체보다 ‘문제가 생길 거라는 생각’에 더 지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