쩡이린 죽게 만든 음주운전 범죄자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8년 유지될 수 있어”

  • 등록 2022.01.01 22: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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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대만 유학생 故 쩡이린씨의 목숨을 앗아간 음주운전 범죄자 50대 남성 김모씨가 대법원으로부터 사실상 감형을 받게 됐다. 

 

새해를 이틀 앞둔 지난 12월30일 15시10분 대법원 제2호법정(주심 노태악 대법관)에서 윤창호법(특정범죄가중처벌상 위험운전치사)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씨에 대한 상고심 선고 공판이 열렸다. 노 대법관은 징역 8년을 선고한 1·2심의 판결을 부정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형이 너무 가벼워서 더 세게 선고하라는 취지일까? 그럴리가 없다. 

 

 

노 대법관은 “위헌 결정으로 형벌에 관한 법률 또는 법률 조항이 소급해 그 효력을 상실한 경우 해당 법률 조항을 적용해 기소한 피고 사건은 범죄로 되지 않는 때에 해당한다”며 “공소사실 중 도로교통법 위반 부분에 대해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결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게 됐다”고 판시했다.

 

노 대법관의 판단 근거는 1개월여 전(2021년 11월25일)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음주운전 ‘투아웃제’에 기인하고 있다. 그러니까 도로교통법 148조의2 1항에 따르면 2회 이상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징역 2~5년 또는 벌금 1000만~2000만원’으로 가중 처벌을 받게 되는데 재범의 기속 기간이 너무 멀어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2010년에 음주운전으로 한 차례 적발됐다가 11년 후에 걸리면 투아웃제에 걸려 벌금형을 받게 되는 것이 ‘너무 과한 처벌’이라는 게 헌재의 입장이다. 2011년 12월에 도입된 삼진아웃제가 2019년 말 소위 ‘윤창호법2’의 제정으로 인해 투아웃으로 강화됐는데 헌재는 여기에 제동을 걸었다.

 

쩡씨 친구들은 대법원의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고 “매우 안타깝고 실망스럽다”며 “대만은 최근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 더욱 강력한 처벌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은 음주운전 처벌과 근절에 있어 역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정말 나라 망신이고 국가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규탄했다.

 

 

친구들에 따르면 쩡씨 부모는 “너무나도 지치고 절망스럽다”는 심경이다.

 

앞으로 친구들은 “피고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계속해서 요구할 것이고 추가적으로 국민 청원 및 기자회견을 진행해서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서 계속해서 활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초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민수연 판사)는 작년 4월 홈쇼핑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김씨에 대해 징역 8년을 선고한 바 있다. 1심의 공소유지를 책임졌던 임진철 검사(서울중앙지방검찰청)는 징역 6년을 구형하도록 했는데 민 판사는 이를 뛰어넘어 엄하게 선고했다. 판사가 검사의 구형보다 더 높게 선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술에 취한 탓이 아니라 렌즈가 돌아가서 사고를 냈다고 변명한 김씨측의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 부장판사 원정숙·이관형·최병률)도 8월에 김씨측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8년을 유지했다. 김씨측은 대만 현지 변호사와 국내 변호사를 모두 선임해서 어떻게든 감형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정말 눈물겨울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①수억원의 예치금을 넣어놓는 등 교섭 자체를 거부하는 유족과의 합의 시도  

②음주가 아닌 돌아간 렌즈에 사고 원인 전가

③2회 이상 음주운전부터 가중처벌을 규정한 도로교통법 해당 조항에 대해 과거 음주운전 전력의 기속 기간을 무한정 인정하고 있어서 위헌이라는 주장

④유사한 음주운전 치사 사건들의 악의성이 더 큰 경우가 많은데 징역 8년에 못 미치는 선고들이 있었던 만큼 8년이란 형벌은 형평성에 심히 어긋남 

⑤성실하고 잘 나가는 직장인으로서의 면모 부각 

⑥고소득을 버는 피고인이 구속된 뒤로 아내, 자식, 부모 등 다섯 식구의 생계가 막막해졌음

 

지난 11월초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엔엘)는 김씨측의 변호 전략들에 대해 “전부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서 ①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정 변호사는 “(전부 다) 양형부당을 다투는 것인데 10년 이상의 형에 대한 양형부당이 아닌 이상 심리 불속행 기각일 뿐”이라며 “대법원은 법리 판단만 한다. 이번 사건은 유무죄만 판단한다고 보셔도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김씨측이 밀고 있던 ③에 대해 헌재가 동조를 해준 이상 노 대법관도 이에 호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분명 김씨는 2012년과 2017년 사고없는 음주운전 행위가 두 차례 적발되어 벌금 300만원과 100만원을 부과받은 적이 있다. 1·2심 재판부는 이런 김씨의 반복적인 음주운전을 불리한 양형요소로 고려했는데 대법원은 헌재의 결정에 따라 이런 요소를 배제해서 다시 재판하라고 돌려보냈다. 그러면 파기환송심에서는 누범 요소를 배제해서 기존의 징역 8년보다 더 낮게 선고하게 될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파기환송심이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그런 요소를 배제해서 다시 재판을 하더라도 징역 8년을 그대로 선고할 수도 있다.

 

정 변호사는 12월30일 저녁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파기환송심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 위헌 요소를 배제하더라도 같은 형량을 선고할 수도 있다”며 “음주운전에 대한 철저한 의지를 보인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파기환송심의 판단이 남아 있는 것이고 무조건 줄어든다고 볼 수 없는 부분”이라고 환기했다.

 

왜 그런 걸까?

 

정 변호사는 “파기환송 되는 것이 결국은 양형까지도 영향을 주느냐. 아니면 적용 법조 2회 가중처벌을 하는 규정이 들어간 게 위헌이니까 그걸 빼기 위해서 파기환송이 된 것이냐. 경우의 수는 두 가지”라며 “양형이 너무 과도하다는 것으로는 원래 파기환송이 안 되는데 10년 이상 양형부당으로 상고 이유가 된다. 근데 파기환송심에서 위헌 결정된 부분을 포함해서 8년이고 그게 위헌이니까 그걸 빼서 좀 줄여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8년이 아니라 6년? 그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정리했다.

 

 

노 대법관은 양형이 무겁다는 취지로 파기환송을 한 게 아니었다. 헌재가 결정한 위헌 요소를 배제해달라는 것이 핵심이다.

 

정 변호사는 과거 1심 재판부의 판단과는 달리 2심 재판부가 피고인의 죄를 더 중하게 볼 요소를 인정했음에도 1심과 똑같이 양형을 결정한 사례를 제시했다. 즉 양형 요소가 추가로 부정되거나 인정되더라도 양형에 변동이 없을 수도 있다. 결국 판사 마음에 달려 있다.

 

윤창호법 체제 이전이었던 2018년 12월28일 자정 A씨는 충북 음성군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채 운전을 하다 도로에 누워있던 피해자 B씨를 발견하지 못 하고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A씨는 그대로 도주했고 B씨는 결국 사망했다. A씨는 검거됐고 도주치사 혐의와 윤창호법 이전의 위험운전치사 혐의가 모두 적용되어 재판을 받게 됐다. 1심(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는 더 무거운 범죄인 도주치사 즉 ‘음주뺑소니 치사’에 위험운전치사 혐의가 흡수된다고 판단해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청주지법)는 도주치사와 위험운전치사를 별도의 범죄로 봤고 둘 다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형은 그대로 유지했다.

 

2심 재판부는 “비록 원심 판결에 죄수(죄의 갯수)에 관한 법리 오해의 잘못은 있으나 검사가 항소 이유로 주장하는 불리한 정상들은 이미 원심에서 형을 정하면서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심의 형 자체는 적정한 것으로 보이므로 원심과 동일한 형을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A씨의 범행은 매우 중대한 것이지만 유족과 합의를 했다는 점 그리고 B씨가 도로에 드러누워 있었던 점 등이 유리한 양형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 변호사는 “(파기환송심에서 누범 요소를 빼더라도 징역 8년 선고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음주운전 재범자가 제기한 헌법소원에 호응을 해준 헌재다.

 

뺑소니 또는 인명 사고가 없는 음주운전을 두 번 저질러서 윤창호법2로 의율된다고 해도 판사가 작량감경(형법 53조에 따라 판사가 법정 하한선의 절반까지 감경 가능)을 해주면 벌금 500만원에 그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헌재는 “사고도 안 냈는데 음주운전 두 번 했다고 벌금 500만원은 너무 과한 것 아닌가?”라고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故 윤창호씨의 삶을 짓밟은 20대 음주운전 범죄자 박모씨는 음주운전 초범이었다.

 

음주운전 문제를 깊게 고민해본 교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음주운전으로 한 번 적발되려면 최소 걸리지 않은 음주운전이 열 번쯤은 될 것”이라는 명제가 통용되고 있다. 음주운전은 살인, 성폭력, 폭행, 사기 등 타 범죄들과 달리 행위를 개시했다고 해서 바로 피해를 야기하지 않을 수 있다. 단속에 걸리지 않으면 그만이고, 사고를 내지 않거나, 누가 다치거나 죽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걸리지 않은 음주운전은 계속 반복되다 결국 누구를 죽게 만들고 나서야 스톱된다. 그래서 윤창호법 제정 운동을 펼친 창호씨 친구들은 “음주운전은 살인”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음주운전은 과실이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로 봐야 하고 그렇게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여러 주들에서는 음주운전을 살인미수로 간주하고 있다.

 

 

허억 교수(가천대 국가안전관리대학원)는 2015년 12월15일 방영된 MBC <PD수첩>에 출연해서 이렇게 발언했다.

 

차라리 단속에 걸리면 내가 앞으로 몇 개월간 운전도 못 하고 음주운전하니까 단속에 걸리는구나 생각하는데. 단속에 안 걸리니까 이런 식으로 나는 운이 좋아서 안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운이 나빠서 안 걸리는 것이다. 음주운전을 했음에도 계속 안 걸리면 결국 사고날 때까지 한다. 오히려 단속에 걸리는 것이 운이 좋은 것이다.

 

송수연 차장(도로교통공단 미래교육처)도 2020년 9월17일 방송된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 출연해서 이렇게 말했다.

 

음주운전이란 게 사실 문제는 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처음에 결정을 할 때는 어려울 수 있다. 단속되면? 사고나면? 이런 두려움을 갖는데 실제 그게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어떤 순간에는 위험과 마주하지 않는다. 그니까 혼자는 위험할 수 있지만 사고의 상대가 있거나 단속이 있거나 바로 행위 자체가 그런 걸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내가 해봤는데 별로 문제가 없더라는 것들이 다음 결정을 빠르게 쉽게 반복적으로 하다가 단속되고 사고를 경험하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이전에 우리가 하지 말아야 된다고 하는 원인들을 빨리 만날 수 있는 상황 예를 들면 음주운전을 하면 많이 단속이 된다거나 사고를 일부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든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이라든지 본인들이 두려워할 것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아직까지 부족하다. (실제로 음주운전을 했는데 안 걸리는 것이 특이한 상황이어야 하는데 단속에 걸리면) 나는 재수가 없고 운이 좀 안 좋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다.

 

한편, 김씨가 단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시점은 2012년과 2017년 즉 10년이 지나지 않았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헌재의 위헌 판정을 반영해서 발의한 윤창호법2 개정안의 골자는 “10년 이전”으로 기간을 정해놓은 것인데 김씨는 이 법안의 가중처벌 범위에 포함된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러한 종합적인 요소들을 반영해서 징역 8년을 유지할지 더 낮게 선고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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