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돈 문제’ 때문에 50년 된 헬기가 날고 있었다

  • 등록 2022.12.04 0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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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강원도의 한 야산에 헬기가 추락했다. 이 사고로 산불이 났고 안타깝게도 탑승자 5명이 사망했다. 추락의 원인으로는 헬기 노후화로 인한 기체 결함이 유력하다.

 

추락 사고는 지난 11월27일 오전 10시50분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 인근 야산에서 발생했다. 이 헬기는 산불 진화용 헬기로서 사고 당일에도 산불 계도를 위해 산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기체가 시계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정상적이라면 기체는 가만히 있고 프로펠러만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기체가 빙글빙글 돌았다. 결국 이 헬기는 그대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이 사고로 기장 71세 남성 A씨, 정비사 남성 54세 B씨, 부정비사 남성 C씨와 동승한 여성 2명이 안타깝게도 숨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공적 용도로만 사용해야 하는 산불 진화용 헬기이니 만큼 사고 초반에는 동승한 여성 2명의 신원이 바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조사 결과 56세 D씨와 53세 E씨로 밝혀졌다. 이들은 각각 경기도 시흥시와 안산시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모두 B씨의 지인이었다. 당초 비행 계획표(양양공항 항공정보실)에 A씨와 B씨 딱 2명만 탑승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머지 인원들은 사적으로 탑승해서 고의로 누락시켰던 걸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사고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헬기 자체의 노후화로 인한 기체 결함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게다가 관리감독의 허술함도 부각되고 있다. 사고 헬기는 미국 ‘시코르시키사’가 제조한 S-58T 기종인데 1975년 2월에 만들어진 헬기라고 한다. 순간 숫자를 잘못 읽은줄 알았다. 거의 50년 된 헬기가 하늘에서 날아다니고 있던 것이다.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자동차도 10년만 타면 주변에서 반드시 차를 바꾸라고 이야기한다. 아무리 관리를 잘 한다고 해도 기계라는 것이 한 번 노후화되면 제기능을 점점 상실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항공기는 20년이 넘으면 금속의 색과 특성 등이 변하기 때문에 노후 항공기로 분류된다. 정부도 20년이 넘은 항공기를 따로 분류해 안전관리를 더 신경 쓸 정도다. 이렇게 20년만 넘어도 노후화가 되었다고 판정되는데 사고가 난 기체는 그 두 배가 넘는 47년이 된 헬기다. 사고가 안 나는 것이 이상했다. 해당 헬기는 국토교통부에 등록된 항공기 중에서도 최고령급에 해당하는 고물이었다.

 

 

심지어 국내 민간 헬기 10대 중 7대가 이렇게 20년 넘은 노후 헬기라고 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맹성규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의 조사에 따르면 지자체가 민간업체에서 빌린 헬기의 평균 기령(헬기사용연수)은 33.8년으로, 산림청 헬기보다 14년 이상 노후화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자동차, 선박, 비행기, 헬기, 기차 등의 교통수단 노후화 문제는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된다. 노후화된 자동차를 타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인데 무려 하늘을 날아다니는 헬기다. 고장으로 운행 도중에 추락하면 사실상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정비와 점검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어느정도 노후화가 진행되면 폐기 처리 후 새 기종으로 바꾸도록 하는 규정 같은 게 없었던 걸까? 심지어 이번 사고 헬기의 블랙박스도 노후화되어 사고 원인 규명에 난항을 겪고 있다.

 

그래서 헬기에 대한 관리감독의 허술함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당 기종은 전북 임실에 본거지를 둔 한 민간업체가 소유하고 있는 헬기였다. 즉 양양군은 이들로부터 헬기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속초시와 고성군에서도 이 기종을 산불 진압 및 예방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지자체도 나름의 할 말이 있었다. 이를테면 △대형 헬기보다 임차비가 저렴하고 △이륙 전 엔진 가열이 필요하지 않아 초동 진화에 적합하며 △같은 업체에서 2019년부터 임차하고 있어 지역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노후화된 헬기는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담당 부서에서 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 기체 안전 문제를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양양군은 사고 헬기가 47년이 된 기종이라는 정보를 알지 못 한채 계약해서 납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말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임차 헬기 계약은, 조달청이 민간항공업체와 계약을 통해 산불 진화용 헬기를 먼저 확보한 뒤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에 올려놓으면 지자체가 이를 선택해 납품을 요구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지자체별 임차 헬기 확보전이 치열해서 노후 기종 여부는 선택 기준에 들지도 못 하고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실정이다. 결국 노후 기종 여부보다는 지자체의 예산에 맞춰 헬기를 임대하는 방식인 것이다.

 

헬기는 부품을 교체해주면 일단 계속 운용할 수 있고 따로 이용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 따라서 기체의 안전성이 확보됐는지 1년에 한 번 확인하는 감항 검사를 통과하기만 하면 운항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누리집에 국내 항공기 기령 정보 등이 나와 있긴 하지만 조달청에 납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지자체 담당자들은 이를 알기 어렵고, 공급 여건이 열악한 데다 임차 헬기에 대한 지자체의 관리감독 권한도 없거나 협력이 부실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헬기의 관리는 지자체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업체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거듭해서 말하지만 헬기 노후화 문제는 목숨과 직결되는 만큼 정말 심각한 것이다. 하루 빨리 헬기들을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고는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편, 정윤식 교수(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학과)는 KBS <9시 뉴스>에서 사고 헬기의 회전꼬리날개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회전꼬리날개가 아마 손상을 입었든지 또는 부작동이 됐든지. 아니면 동력 전달에 문제가 있어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이 영상에서 그대로 보이고 있다.

 

정 교수는 프로펠러 소음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했을 때, 추락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민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종사가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은 것 같다고 추정했다.

 

어느 순간에 항공기가 회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 이미 조종사는 그걸 인지해서 전진 속도를 줄이고, 고도 강하 자세를 만들고, 내려가면서 항공기 회전을 줄이려고 노력한 것 같다.

윤동욱 endend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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