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목숨 앗아간 철거 참사 ‘조폭 개입한 부패고리’ 의심돼

  • 등록 2021.06.12 09: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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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9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광역시 철거 건물(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4구역 ‘학산빌딩’) 참사가 벌어진 뒤 하루(10일)만에 현장을 찾은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늘 이런 중대재해 현장의 뒷 배경에는 위험을 외주화하는 다단계 하청구조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합동감식 직전이라 아직 밝혀진 것들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여 대표는 직감적으로 다단계 하청구조를 의심했다. 위험하고 번거로운 작업은 모조리 아래 회사에 맡기고 싼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단가 후려치기는 상수다.

 

 

권순호 HDC현대산업개발(현산) 대표이사는 “재하도급 (계약을) 한 적이 없다. 법에 위배가 되기도 하고”라고 강변했지만 경찰(광주경찰청 수사본부)은 새끼줄처럼 이어진 불법 재하도급의 고리를 파헤치고 있다. 경찰은 계약 과정을 주도한 현산 실무진 3명을 추가 입건했다. 총 7명이다.

 

11일 출고된 KBC 이준호 기자와 한국일보 안경호·원다라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재개발 사업의 시공사 현산이 정식 계약을 맺은 1차 하청업체 ‘한솔기업’ 외에도 ‘백솔건설’과 불법 철거왕으로 불린 조폭 출신 이금열 전 회장의 ‘다원그룹’ 등이 개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박정보 광주경찰청 수사부장은 “(백솔건설의) 철거 공사 장비도 동원이 됐고 인력도 동원이 됐고”라고 말했다.

 

당초 한솔기업은 현산으로부터 610개 건물을 철거하는 수십억원대의 계약을 수주했다. 그런데 한솔기업은 광주에 소재를 두고 있는 백솔건설에 물량 전체를 그대로 재하청줬다고 한다. 한솔기업은 현산으로부터 받은 공사 대금의 25% 이하로 공사비를 후려쳤다. 백솔건설은 사실상 부실 철거를 강요당했다고 볼 수 있다. 경찰은 리베이트 등 뇌물관계가 형성됐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특히 경찰은 재개발 이권을 둘러싸고 조합, 지역 정치인들, 공무원, 조폭 등이 네트워크를 맺고 각자 한몫 챙겼다는 풍문이 도는 만큼 게이트급으로 수사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금열 전 회장의 다원그룹 계열사 중 한 곳 ‘다원이앤씨’가 석면 제거 업체로 선정된 만큼 영화에서나 볼법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다원이앤씨측은 이 전 회장이 이번 재개발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언론의 의혹 제기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한솔기업과 다원그룹 차원의 카르텔이 있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사실상 철거 작업 과정에도 다원그룹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원그룹에서 파견나온 사람이 현장 작업 지시를 내렸다는 진술도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백솔건설과의 재하청 계약 및 공사비 후려치기 등에도 다원그룹의 폭력성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이 전 회장이 어느정도 이권의 파이를 보장받고 재개발 사업에 직접 손을 뻗쳤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현재 네이버에 다원그룹을 검색해보면 여러 업체들이 나오는데 홈피가 노출되지 않고 네이버 지도에만 나오는 ‘다원이앤아이’와 ‘다원이앤씨’ 등 서초구에 위치한 회사들이 이 전 회장의 관계사(관련 기사)다. 이 전 회장의 동생이 이중열 다원그룹 현 대표이사다.

 

 

호남 출신 이 전 회장은 1970년생으로 1990년대 초반 서울로 올라와 조직폭력 ‘대문호남파’, 악덕 철거업체의 원조 ‘적준’ 등에서 활동했고 2000년대 들어 다원그룹 오너가 되어 중견 건설사를 사들일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이 전 회장은 젊었을 때 피바람부는 폭력 철거로 악명을 떨쳤고, 중년이 되어서는 경찰·정치권·정부관료 등에 전방위적 로비를 해서 이권을 따냈다. 2013년 수원지방검찰청의 대대적인 수사로 다원그룹의 기세가 꺾였고 이 전 회장도 2015년 1000억원대 횡령과 45억원 가량의 뇌물공여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현재는 출소한 상태다.

 

인허가권을 쥐고 있던 광주 동구청과 업체들의 커넥션도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경찰은 동구청이 부실하게 관리감독을 한 지점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동구청은 감리 역량을 살피지도 않고 한솔기업 해체계획서에 나온 감리자를 그대로 용인했다. 또한 작업이 개시된 이후 돌덩이가 떨어지는 등 위험하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의 위치를 옮겼으면 좋겠다는 민원들이 접수됐음에도 현장 점검을 전혀 하지 않았다.

 

 

소중한 생명 9명이 산화했다. 유족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하청과 재하청, 공사비 후려치기의 흔적은 커다란 위험을 만들어냈다. 목숨을 앗아갈 정도의 위험이었다. 돈과 목숨값을 맞바꿨다.

 

이를테면 원래 계획대로 30톤 굴착기가 5층부터 차례차례 철거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사정거리가 너무 짧았다. 굴착기의 팔이 닿지 않는다면 마땅한 지지대를 세워서라도 윗층부터 부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중간층으로 바로 진입해서 천장을 뜯으려고 했다. 결국 중간층 바닥이 굴착기의 하중을 못 견디며 내려앉았고 폐건물 전체가 붕괴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시 굴착기를 운행한 기사는 변호인을 선임해 “평소보다 작은 굴착기를 사용한 건 아니”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작업한 이유는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효영 eduna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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