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평범한 사람들의 지방선거 투표 후기를 듣기 위해 급하게 대담을 준비했다. 어쩌다보니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는 30대 남성 5명이 모였다.
사실 ‘정치 고관여층’이라고 해도 우리 동네 구청장과 구의원이 4년간 무슨 활동을 했는지 아는 것이 없다. 대다수 시민들은 살고 있는 지역의 구조적인 흐름에 맞춰 그냥 기계적으로 투표를 하기 마련이다. 후보들의 면면을 알고 투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담에 참석한 청년박스 김민국 대표는 말미에 소감으로 “우리를 위한 나라와 시는 없다”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최근 예산 관련 특강을 들었는데 거기서 강사가 해준 이야기가) 우리를 위한 나라와 시는 없다. 예산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내가 참여하고 감시하지 않으면 사실상 우리가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주권은 우리에게 있는 건데 그런 걸 너무 모르고 살아간 것 같다. 이번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나의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질 거고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김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단체 차원으로 청년 후보들을 인터뷰했고 향후 지방 정치인들의 평소 활동과 발언들을 모니터링하는 플랫폼을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치에 무관심해서 투표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1단계라면, 말 그대로 지역주의적인 색채로 무조건적인 투표만 하는 것이 2단계이고, 직전에 공보물을 살펴보고 검색도 해보면서 나름 공부를 하고 투표를 하는 것이 3단계이고, 벼락치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지방 정치인의 활동을 지켜보고 투표에 반영해보는 것이 4단계다. 그리고 직접 목소리를 내고 지방 정치권에 참여해보면서 투표를 하는 것이 5단계다. 김 대표는 시민들이 최소한 3단계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김 대표는 “구의원이나 시의원이 어떤 의정활동을 하고 무슨 발언을 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따로 광주의 정책 플랫폼을 만들어볼 것”이라며 “국회의원, 광주시의원, 구의원 등의 의정활동들을 업로드해볼 수 있는 장이 조성되면 좋을 것 같다.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해볼 것”이라고 공언했다.
1일 19시반 6.1 지방선거 투표 시간이 종료된 직후 광주 북구에 위치한 평범한미디어 사무실에서 서정일씨(37세), 김동훈씨(34세), 김 대표(33세), 박효영 기자(33세), 윤동욱 기자(31세) 등 5명이 모였다.
무지 더운 초여름 날씨에 굳이 시간을 내어 투표장에 가서 줄을 서서 도장을 찍은 나름의 이유가 궁금했다.
각종 대외활동과 취업준비에 매진하고 있는 동훈씨는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 등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두 달 반 전에 있었던 대선 때도 그랬지만 청년들이 좋은 후보들을 잘 뽑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청년의 정치적 권리에 관심이 깊은 김 대표는 “(작년 보궐선거와 이번 대선을 통해 2030세대가 부각됐는데) 사실 그동안 청년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많이 낮았다. (그러나 대선 이후) 젠더 문제나 청년들의 표심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반강제적으로 청년들의 참여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것 같다”며 “이런 흐름이 지방선거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좀 더 청년들이 내 삶에 필요한 의제들을 제안도 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원래 정치 고관여층에 가까운 김 대표는 이런 지점에 주목하며 투표를 했다는 것인데 “(대선 때 보다는 양강 구도가 덜 강하기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실망이 어떻게 표출될 수 있을지 주목했다. 어떤 방식으로 민주당을 정신차리게 할까? 이런 지점에서 여러 의견들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김 대표는 “천적이 있어야 잘 클 수 있다”면서 “광주시민들도 국민의힘에 표를 줄 수 있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동훈씨는 “박지현 비대위원장이 이런 저런 행보로 민주당의 내부 비판에 힘을 쏟고 있는데 굉장히 비판적이었다”면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박 위원장의 메시지들이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교육감, 광주시장, 광주시의원,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정당 투표(광역과 기초)에서 누구에게 표를 줬는지 물었다.
동훈씨는 “전부 민주당 후보들에게 표를 줬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시장은 장연주 후보(정의당), 교육감은 박혜자 후보, 북구청장은 문인 후보를 찍었다”며 “나는 주로 청년 후보들에게 표를 줬는데 사실 아무리 광주라고 해도 청년 정치인들은 당을 떠나서 다들 알고 있고 교류를 하고 있더라. 청년 후보들 만큼은 적어도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광주를 위해 좋은 일이라면 당이 달라도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광주시장은 장연주 후보를 뽑았다. 강기정 후보(민주당)는 너무 지나치게 개발 위주였다. 기후위기가 심각한데 그것에 대한 대응이 너무 없었다. 대선 때도 심상정 후보가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많은 표를 받게 된다면 그것 자체로 유의미하다고 생각해서 찍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당 투표도 기초와 광역 다 정의당에 표를 줬다.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을 선택한 김 대표만의 해설은 더더욱 인상적이었다.
시의원으로는 정다은 후보(광주 북구 2선거구)를 찍었다. 변호사 출신인데 공약이나 전체적인 삶 자체가 약자를 위한 삶이었다. 오치동에는 노인들이 많은데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있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의정활동을 할 수 없는 곳이다. 구의원은 신정훈 후보(광주 북구 나선거구)를 선택했다. (조오섭 국회의원) 비서관 출신으로 청년 후보인데 구의원이 되면 행정사무감사 등 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충실히 할 것 같다.
윤 기자는 광주시장으로 장연주 후보를 찍었고, 광주시의원으로는 소재섭 후보(진보당)에게 표를 줬다. 교육감은 ‘실력 광주론’과는 거리가 먼 교육 철학을 보여준 정성홍 후보를 찍었다. 정당 투표는 광역과 기초 둘 다 정의당이었고 거대 양당을 피하는 것이 윤 기자의 소신있는 투표행위였다. 그래서 북구청장은 의도적으로 무효표를 던졌다고 한다.
북구청장은 일부러 무효표를 줬다. 민주당(문인 후보)과 국민의힘(강백룡 후보) 딱 둘만 나왔는데 민주당에게는 차마 표를 줄 수 없었고 그렇다고 국민의힘 후보를 찍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칸 가운데에 도장을 찍었다. 구청장 후보로 다른 소수정당이 나왔다면 표를 줬을 것이다.
정일씨는 정의당 당원으로 과거 선거들에서 캠프에 소속되어 선거운동에 나선 적도 있다. 정일씨는 최근 검수완박 사태를 겪으며 정의당에 실망감이 커서 탈당까지 고민했다.
시장은 장연주 후보였는데 당연히 정의당이라서가 아니라 정책 비전면에서도 장 후보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디테일하고 좋아서 뽑았다. 무상교통 공약도 그렇고 원래 진보정당의 정책 의제는 당장 실현되지 않더라도 과거 무상급식 사례처럼 시대를 이끌어가는 측면이 있다.
특히 정일씨는 교육감으로는 전교조 출신 진보적인 정성홍 후보에게 표를 줬는데 과거 몇 번 만나본 적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물론 인연이 있다고 표를 준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만나본 정성홍 후보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고 그의 “교육자적 마인드”가 와닿았기 때문에 선택했다.
앞서 거론했던 4단계적 투표를 했던 사례가 혹시 있는지 물었다.
정일씨는 장연주 후보가 지난 4년간 유일한 야당 광주시의원 으로서 보여줬던 역할론에 주목해서 표를 주게 됐다고 강조했다.
장연주 광주시의원이 유일한 야당 1석이었는데 정말 잘 했다. 목소리를 내고 할 건 다 하고 잘 했다. 산업안전보건조례를 만들고, 청소년 생리대 보편 지원을 이뤄냈다. 20석 중에서 1석이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점이 컸다.
윤 기자는 3선 북구의원 출신 소재섭 후보의 풍부한 의정활동 역량을 좋게 본 측면도 있다면서도 “민주당에 대한 견제를 위해 소수정당을 찍는 목적이 크긴 컸다”고 말했다.
사실 잘 한 것에 대한 투표 동기보다 못 한 것에 대한 투표 동기가 더 큰 법이다. 김 대표는 지역구 후보들의 비위 사례들을 미리 체크해놨고 그런 지점을 반영해서 투표했다.
약 2주간(13일)의 선거운동 기간이 있었다. 선거운동원의 열정적인 무브먼트, 명함 돌리기, 피켓, 현수막, 유세차, 현장 연설 등을 보고 투표의 향방이 달라졌을지 궁금했다.
윤 기자는 “선거운동원들이 다 똑같은 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전혀 감흥이 없었다. 오늘도 길가다가 어떤 후보가 춤을 추는 걸 봤는데 그냥 이런 광경 자체가 이벤트성이라서 별 영향이 없었다”고 말했고 김 대표도 “춤추는 걸 보면 정치인이 연예인인가? 프로듀스 101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동조했다.
반면 동훈씨는 “그래도 홍보활동이 중요하긴 한 것 같다. 마이크를 들고 직접 연설을 많이 하는 것이 그나마 나은 듯 하다”고 말했다.
윤 기자는 “명함을 돌리는 것도 사실 바로 버려져서 무의미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정일씨는 “사실 이미 마음이 결정돼 있는 사람들한테는 그런 구태의연한 선거운동이 무의미하다”면서 “특히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화력 싸움에서 밀리는) 소수정당 후보들은 없는 설움을 많이 당한다”고 토로했다.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강기정 후보에 대한 정일씨의 쓴소리도 주목할만했다.
이번 선거전에서 강기정은 현장 선거운동 일정을 많이 소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강기정이 직접 연설하는 걸 코빼기도 보지 못 했다. 너무 다 된 선거라고 보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기정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연사가 나와서 연설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윤 기자는 “나는 왜 그런줄 알고 있다”면서 “(강기정 후보는) 직능단체들을 많이 만났다. 아무래도 누가 봐도 다 된 선거라고 생각되니까 시민들을 직접 만나는 선거운동의 양을 최소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들 의미없는 댄스 타임, 무조건 반사적인 명함 돌리기, 시끄러운 유세차 스피커, 피켓 인사 등등에 집중하기 보단 후보자의 직접 연설을 더 많이 하는 것이 그나마 효과적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대표는 “(민주당이었다가) 무소속으로 나온 분이 청년특구 여성특구로 정해져서 컷오프당했는데 그분이 무소속으로 나와서 울분을 토해서 연설하는 걸 보고 마음이 동했었다”고 말했다.
1인 미디어 시대. 개나소나 유튜브를 하는 시대에서 SNS의 중요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윤 기자는 “SNS 유세를 창의적으로 기획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환기했다.
김 대표는 “명함에 유튜브 큐알코드 같은 걸 넣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박효영 기자: 날 뽑아달라는 메시지만 쏟아내는 선거판에서 오히려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선거운동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간이 상담소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김 대표: 실제로 박혜자 교육감 후보는 유세차에서 즉석으로 유권자를 불러세워서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자꾸 눈길이 가는 인상적인 나만의 후보가 있을까? 다들 1명쯤은 있을 것 같다. 그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먼저 정일씨는 “내 지역구는 아니지만 녹색당 박고형준 후보자가 꼭 됐으면 좋겠다”며 “박고형준은 교육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을 주로 해왔는데 그것도 잘 했지만 지역 밑바닥에 맞는 공약들을 제대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 나도 박고형준씨가 자전거 타고 선거운동을 한 걸 인상 깊게 봤는데 광주에서 박고형준 후보 정도는 꼭 당선이 됐으면 좋겠다.
박효영 기자: 다들 나올 사람이 나왔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실제로 남구 주민들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알 수가 없다.
윤 기자는 광주시장 문현철 후보(기본소득당)가 “눈길을 끌었다”면서 “기본소득당이 포스터를 세련되게 잘 만든다. 민트색 바탕이라 더 그런 것 같다”고 칭찬했다.
나아가 김 대표는 “북구의원 정재성 후보가 장애인 이동권 이야기를 했다. 길거리 보도블럭의 턱을 없애자거나 그런 공약들을 냈는데 본인 스스로 장애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사회복지사로서 장애인 권익을 주요 공약으로 낸 것 같다”며 “거의 드문 사례다. 최근 지하철 시위 등으로 장애인 이동권 이슈가 수면 위로 올라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 후보들이 그다지 관련 공약을 내지 않았다”고 풀어냈다.
마지막 질문으로는 중앙정치권 이슈가 지방선거 표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모든 선거가 그렇겠지만 지방선거 후보들도 워낙 많고 누굴 찍을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중앙정치권의 바람에 따라 표를 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 초기니까 ‘정권 안정론’이냐? 아니면 벌써 오만해진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정권 견제론’이냐? 이런 구태의연한 문법이 있을테고, 박지현 비대위원장의 행보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메시지가 막판까지 고심하는 유권자들에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다들 어느정도 그런 측면이 있다는 점에만 살짝 동의하고 당위적으로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데에 뜻을 모았다.
윤 기자는 “(중앙정치권의 이슈가 영향을) 많이 미칠 것이다. 70% 정도는 되는 것 같다”면서도 “점점 그런 게 약해지는 추세 같다.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니까 지역 이슈로 선거가 치러져야 맞다”고 역설했다.
정일씨도 “소수정당 활동을 하다 보니 지역 밀착형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 훨씬 낫다는 걸 느낀다”며 “중앙정치권 이슈가 영향을 덜 미치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지역 공약으로 판가름이 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호응했다.
민국씨도 “7대 3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지역 이슈가 더 커야 된다고 본다”며 “실제로 검수완박이 내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동네 이슈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지방선거 직전 청년정의당 갑질 이슈 때문에 표를 안 줄까 하다가 분리해서 생각을 했고 장연주 후보에게 표를 줬다. 장연주 후보가 읍소를 하면서까지 표를 호소했는데 그게 보여주기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윤 기자는 중앙정치권 요소라고 보긴 좀 그렇지만 한국 정치판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보수정당이 싫으니까 민주당 찍어야 하는 그런 것이 강하다”고 말했다.
도입부에서 투표 타입을 다섯 단계로 나눠봤는데 김 대표는 요즘 청년들이 작게나마 나름의 공부를 하고 투표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나는 원래 고향이 서울이다. (대입 때문에 광주로 와서 13년 정도 거주했지만) 민주당에 대한 선호 정서가 아예 없었다. 보통 광주시민들은 다 부모로부터 그런 걸 다 배워왔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다 그렇지 않다. 작게나마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게 예전에는 공약도 안 보고 찍었는데 지금은 공약을 확인하고 투표하려고 한다. 그래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열리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