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차현송 기자]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제대로 꽃 피워보지도 못 한 20세 여성 A씨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대학 캠퍼스 내부에서 처참하게 사망했다.
A씨를 그렇게 만든 가해자는 같은 학교 동급생 B씨였다. B씨는 A씨를 성폭행하려고 했다. 만취 상태였던 A씨의 옷을 벗기고 성범죄를 저지르던 중 난간에 있던 A씨를 그대로 밀어버렸다. 과실치사였는지 강간 살인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법의학자들의 감정 결과와, B씨의 자백까지 나와서 확실히 후자가 유력한 상황이다.
B씨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A씨의 옷가지를 챙겨서 각각 다른 장소에다 내다버렸다. 게다가 신고도 하지 않고 자신의 자취방으로 도망가버렸다. 뒤늦게라도 A씨에 대한 구호조치를 했다면 목숨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B씨는 7월15일 새벽 2시반쯤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며, 3시49분경 인하대 용현캠퍼스 2호관과 60주년 기념관 사잇길에서 발견됐다. B씨는 행인들에 의해 발견되어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3시간 11분이 지난 아침 7시 즈음 사망 판정을 받았다. 1시간 동안 방치되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생존할 수도 있었다.
캠퍼스 내에서 발생한 강간 살인 사건이다 보니 사건의 파급력이 상당했다. B씨에 대한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 어떤 때보다 컸다. 여성들이 갖고 있는 공포감에 또 다시 트리거가 발동한 셈이다.
그동안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강력 범죄에 노출되어 왔으나 사회적 파장이 커서 일종의 터닝포인트로 작용한 사건이 있다. 바로 2016년 5월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징역 30년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있는 가해자 40세 신학대생 김성민은 피해자 20대 여성 하모씨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그냥 불특정 여성에게 그렇게 칼을 휘두른 것이었다. 철저히 여성을 범죄대상으로 노렸던 김성민의 여러 발언들로 인해, 대다수 여성들은 실질적인 공포심을 갖게 됐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다니던 생활 반경 내에서 죽을 수도 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중대한 사건이 있다. 2019년 5월28일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30대 남성 조모씨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여성의 집이 있는 건물까지 침입했던 사건이었다. 피해 여성은 간발의 차로 문을 닫았지만 단 1초만 늦었다면 끔찍한 일을 당할뻔했다. 그 당시 전국민이 CCTV 영상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을 정도다.
나의 생활 반경 내를 넘어 가장 사적이고 편안해야 할 내 집까지 범죄의 타겟이 될 수 있다는 위험 인식이 심화됐다. 집에서조차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긴장 상태에 있어야 하는 걸까? 많은 여성들이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대학 캠퍼스 안에서 여학생이 죽었다. 대학생들이 매일 같이 다녀야만 하는 학교에서도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은, 강남역 살인사건과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에 이어 다시 한 번 여성들에게 ‘그 어느 곳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평생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끔찍한가. 이번 인하대 사건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가해자 B씨의 형량만이 아니다.
우선적으로 안전해야만 한다. 생활 반경, 집, 학교 등등 그 어디에서든 우리는 안전해야 한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젠더 갈등은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A씨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갖고 분노의 방향을 이상한 곳으로 향하지 않게 해야 한다.
페미니스트 여성 ‘치리’는 2016년 6월 출고된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칼럼을 통해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나는 안전하고 싶다. 두려움에 떨고 싶지 않다. 내가 감수해야 할 두려움이 단지 어둠에 있는 인간의 기본적 두려움에 그쳤으면 좋겠다. 더운 여름밤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기실 내게 밤이 안전했던 적은 없다. 아주 가끔 있는 여성 취객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안위를 걱정해야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바로 앞에 있는 공원 화장실에 가면서도 두려웠던 게 일상적이었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왜 나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