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우루과이전에서 손흥민 선수(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의 부진이 유독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월드컵 직전 안와골절 부상을 당한 손 선수의 투혼을 안쓰러워했지만 스포츠 팬들은 냉혹했다. 전무후무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 월드클래스이지만 SNS 등에서는 “손흥민 너무 못 하더라”는 반응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손박 대전은 박지성의 승리로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다. 클럽 경력은 압도적이지만 국가대표 경력으로 봤을 때 박지성 선수의 영향력을 넘어서지 못 했다는 직접적인 지적이었다.
하지만 3일 자정 열린 카타르 월드컵 H조 마지막 3차전 포르투갈전에서 손 선수는 결정적인 역전골을 만들어냈다.
이날만큼은 모여서 축구를 보고싶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윤동욱 기자와 함께 차를 타고 광주 광산구 월전동에 있는 평동역으로 가서 평범한미디어 개국공신이자 편집국장을 역임한 바 있는 박세연 전 기자를 픽업해서 전남 담양군으로 향했다. 축구 광팬 아버지가 살고 있는 본가로 가서 다같이 보고싶었다. 사실 8년 전 브라질 월드컵 마지막 벨기에전을 이 멤버 그대로 극장에서 함께 본 적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폭망이었다. 그때 한국 대표팀은 1무 2패로 1승도 거두지 못 한 채 조별 리그를 마쳤다.
박 전 기자는 유럽 리그의 현황을 훤히 알고 있는 축구 매니아다. 윤 기자는 추억에 남는 축구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는 라이트한 축구팬이고, 아버지는 국가대표 경기만큼은 온몸으로 집중해서 보는 열성 축구팬이다.
미리 배달시킨 치킨 2마리는 세팅이 완료됐는데 고민스러운 것이 지상파 3사 중 어디를 선택할지에 대한 부분이다. 박 전 기자는 “배성재와 박지성의 SBS를 봤다”며 “KBS는 한준희와 이광용은 좋은데 구자철이 별로”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배성재 캐스터의 주도권이 너무 높은 SBS를 우루과이전에서 봤는데 해설위원들이 병풍 같은 느낌”을 받았던 만큼 한준희 해설위원과 이광용 캐스터의 오랜 궁합을 밀었고 결국 KBS로 합의를 봤다.
포르투갈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은 플레이메이커 베르나르두 실바 선수(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브루노 페르난데스 선수(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강력한 센터백 후벵 디아스 선수(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 등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했다. 로테이션이 가동된 건데 박 전 기자는 “베르나르두 실바도 그렇고 후벵 디아스도 그렇고 칸셀루 빼고 맨시티 주축이 다 안 나왔다”면서 “요즘 반다이크(잉글랜드 리버풀)보다 폼이 더 좋은 게 디아스”라고 말했다.
박 전 기자는 만수르가 팀을 인수하기 전부터 맨시티의 골수팬이었다.
핵심 선수들이 몇몇 빠졌더라도 포르투갈은 여전히 경기력이 상당했다. 전후반 통틀어서 보더라도 한국이 많이 밀리는 경기였고 우루과이전과 가나전 때보다도 주도권을 많이 내주는 분위기였다. 선제골 내주고 동점골을 욱여넣은 상태로 전반전이 마무리됐지만 후반전에 경기력이 반전되지 않아 다시 실점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수비라인이 너무 올라온 느낌이었고 측면이 쉽게 뚫려서 위협적인 크로스를 많이 허용했다.
윤 기자는 “포르투갈 계속 공격하네”라며 “(후반 막판에 투입된) 베르나르두 실바가 완전 드리블로 농락하고 있다”고 내뱉었다. 간간이 한국의 역습과 세트플레이 찬스가 연출될 때마다 윤 기자는 “확실히 쫄리고 떨리는 맛이 있다”고 표현했다. 애간장이 녹는 분위기 때문에 아버지는 쇼파를 벗어나 티비 코앞까지 가서 맨바닥에 앉았다.
양팀의 네임밸류 갑은 누가 뭐래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무소속)와 손 선수였는데 둘 다 부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호날두 선수는 한국의 첫 번째 골을 어시스트했고 결정적인 기회 두 차례를 어이없이 날려버렸다. 손 선수는 측면에서 페인팅 드리블이 번번이 막혔고 현저히 느려진 속도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손흥민 존’으로 근접해서 몇 차례의 슈팅을 때렸지만 수비진의 다리에 맞고 튕겨나갔다.
박 전 기자는 “손흥민 왼쪽 측면 돌파 다 읽히고 있다”며 “손흥민 너무 안 좋다. 차라리 빼고 황희찬 선발로 넣지”라고 일축했고 윤 기자는 “손흥민 예전 속도가 아니네”라고 호응했다. 나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으로 날렸던 그때의 폼이 전혀 아니”라고 동조했다. 호날두도 마찬가진데 박 전 기자는 “너무하네 정말 드럽게 못 하네”라고 일갈했다.
이상하게도 포르투갈은 가나가 우루과이에 지고 있는 상황을 알고 있었을 것 같고 그런 만큼 이기든 지든 조 1위가 확정되는 형국인데 후반 막판 하파엘 레앙 선수(이탈리아 AC밀란)와 베르나르두 실바 선수를 투입시켰다.
박 전 기자는 “오 레앙이다 앗. 지금 레앙이 이탈리아 원탑 공격수다. 포르투갈의 음바페(프랑스 파리생제르망)로 불리고 있다”면서 “브르노 페르난데스 보다 베르나르두 실바가 더 잘 한다”고 묘사했다.
윤 기자도 “지금 타이밍에 왜 넣는지 모르겠다. 다음 경기 준비 안 하냐”고 말했다. 넷 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산투스 감독의 용인술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한국 선수들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구자철 해설위원은 “선수들 모두 체력이 소진된 느낌이다. 이제부턴 정신력의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앞선 두 경기에서 이강인 선수(스페인 마요르카)가 후반전에 조커로 투입되어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번엔 황희찬 선수(잉글랜드 울버햄튼)가 후반 21분 교체 투입되어 특유의 용트림 드리블로 공격의 활로를 뚫었다. 팔닥팔닥 전투적인 드리블이 인상적이었는데 윤 기자는 “몸빵도 그렇고 정말 파워풀하다”고 표현했다.
어느덧 후반전 타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상대팀 코너킥 볼이 튕겨나와 손 선수쪽으로 전달되자 4년 전 독일 월드컵 당시 카잔의 기적을 만든 손 선수의 질주가 오버랩됐다. 솔직히 그 짧은 순간 불신감이 들었다. 또 뺏기겠지. 그런데 손 선수는 볼을 끝까지 키핑했고 이내 미친 듯이 질주해서 볼을 받아주려고 근처까지 도달해있던 황 선수에게 패스를 했다. 황 선수는 오른발 슈팅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해서 골을 작렬시켰다.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각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샤우팅을 외친 순간이었는데 아버지는 주먹을 쥐고 쇼파에서 엉덩이 점프를 했다. 아슬아슬했던 추가시간 6분은 금방 흘러갔고 우리는 곧바로 채널 9번(KBS1)으로 돌려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를 주시했다. 우루과이 선수들의 파상공세는 정말 쫄깃했다. 한 골만 더 넣으면 우리가 탈락하는 상황인데 마지막 프리킥 찬스까지 로렌스 아티 지기 가나 골키퍼(스위스 FC 장크트갈렌)에게 잡히자 넷 모두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됐다.
나는 “우리가 손흥민을 비난했던 게 무안해졌다. 역시 존재만으로도 큰 역할을 해낼 선수였다”고 말했고 박 전 기자도 “손흥민은 손흥민이네”라고 호응했다. 윤 기자는 “책임감과 투혼으로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냈다”고 극찬했다.
펑펑 눈물을 쏟은 손 선수는 그라운드 인터뷰에서도 내내 울먹였다.
정말 어려운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실점을 하면서 엄청 어려운 경기였는데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한 발 더 뛰어주고 희생해주고 그런 것들 덕분에 저희가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2018년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이런 결과를 얻지 못 했는데 이번에는 특별하게 결과까지 얻게 돼서 너무 기쁘고 선수들이 정말... 정말 자랑스럽다. 이 순간을 상당히 많이 기다려왔고 저희 선수들이 분명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잘 해줬고 오히려 주장인 내가 더 부족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선수들이 커버해줬다. 정말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 (본인의 마스크 투혼이 결국 16강으로 이끈 것 아닌가) 그건 아닌 것 같고 많은 국민들의 응원, 선수들이 한 발 더 뛸 수 있는 에너지와 힘을 받아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는 동료 선수들에게 (16강 진출의) 공을 돌리고 싶다. 16강에 올라가는 게 가장 큰 목표였고 다가오는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축구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않은가. 저희가 갖고 있는 걸 며칠 동안 잘 준비해서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경기 보여주면 좋겠고, (파울루 벤투)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를 벤치에서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일인 것 같다.
주목 받기 좋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임에도 손 선수는 철저히 팀과 동료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던 만큼 누구보다 속앓이를 했을텐데 손 선수의 노고와 눈물이 정말 짠하게 느껴졌다. 사실 손 선수는 본인의 컨디션과는 별개로 상대팀 선수들에게 존재만으로 위압감을 주는 한국의 캡틴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아이게스는 경기 직후 역전골 상황을 분석했는데 “여기가 정말 소름돋는 장면”이라면서 손 선수가 질주 끝에 7명의 포르투갈 선수들과 맞서고 있는 순간을 상정했다.
역습을 막기 위해 먼저 복귀한 4명의 선수 중 무려 3명의 선수가 손흥민 선수를 막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손흥민 선수의 실력과 명성, 양발 슈팅 능력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손흥민 선수가 부진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쏠림 현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수비가 갖춰져있는 상황이 아니라 정신없는 역습 상황이었다면 수비들에게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심지어 수비 복귀를 하는 선수들 모두가 손흥민을 향해 들어오고 있다.
손 선수는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내가 긴거리를 뛰었는데 나한테 조금만 공간이 생기면 슈팅을 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찼었는데 그렇게 쉽게 공간을 안 주더라”며 “순식간에 상대팀 위험 지역에 들어가다보니 3~4명의 선수들이 압박했고 나한테는 마스크 사이로 옆으로 보이는 게 황희찬 선수였다”고 떠올렸다.
패스를 주려고 했는데 길이 안 보였고 사실 보이는 길은 그 길 딱 하나였는데 운이 좋게 그 볼이 희찬이한테 잘 연결되면서 마무리를 잘 해줘서 너무 기뻤다.
<이스타TV> 멤버 박종윤씨는 ‘월드컵 후토크’ 방송에서 “손흥민 선수가 세 경기 다 치르는 동안 본인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래서 비판도 많이 받았다”며 “근데 자기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뛰기 때문에 대회 전에는 나오기만 해도 좋겠다고 얘기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냉혹해지기 마련”이라고 풀어냈다.
막상 여러 컨디션들 때문에 본인의 모습이 안 나오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가해졌다. 심지어 그럴거면 뛰지마라!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찌됐든 지나간 일이고 결과적으로 손흥민이 어시스트했고 황희찬이 득점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손흥민 선수에게 한 번 더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손 선수가 느꼈을 부담감에 대한 손 선수 본인의 생각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대표팀의 경기를 할 때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성장해왔기 때문에 그 부담감을 못 견뎌내면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나가는 거면 어디까지나 그런 부담감을 항상 안고갈텐데 그 부담감을 오늘도 선수들이 서로 도와가며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