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무차별 살인사건이 3차례(조선/최원종/최윤종)에 걸쳐 일어났다. 4명이 사망했으며 15명이 다쳤다. 살인 예고글들이 폭풍처럼 휩쓸고 갔고, 실제로 칼 들고 거리를 활보한 사건들도 여러 건 발생했다. 2023년 7~8월의 대한민국 풍경이다. 모두가 불안하고 흉악범에 대한 응보의 여론이 높다. 엄벌주의적 목소리는 갈수록 힘을 얻고 있으며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과 사형 집행 검토 등이 추진되고 있다. 광주에서 사회운동가이자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규씨는 이러한 엄벌주의적 분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 8월17일 19시반 광주 동구 ‘오월의숲’에서 개최된 평범한미디어 후원 프로젝트 <평범한 토크쇼>의 이야기 손님으로 김씨가 초대됐다. 김씨는 ‘신림동 살인마 조선을 사형시키면 안 되는 이유’라는 주제로 논지를 전개했다. 이미 그런 흉악범들에 대한 처벌은 확실히 이뤄지고 있는 반면 여타 범죄 영역들(화이트칼라 범죄/부정부패/성범죄/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솜방망이라는 것이 김씨의 진단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 형사사법 시스템은 “불균형적”이다.
한국인들이 불만을 갖는 이유는 흉악범이 아닌 범죄들에 대해서 관대하고 허약한 판결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흉악범들한테는 바로 무기징역을 때리는데 1명만 죽여도 바로 때린다. 근데 이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도 너무나 큰 것이지만 세계적인 기준으로 1명을 죽인 죄수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고유정과 장대호 기억하는가? 이 사람들은 10~20명 죽인 범죄자가 아니다. 단 1명을 죽였다. 그리고 사체 훼손과 유기를 했기 때문에 살인의 죄질이 불량한 건 맞다. 그래도 어차피 이 사람들은 절대로 가석방으로 못 풀려난다. 그만큼 한국은 흉악범에 대해서는 아주 잘 처벌하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지금의 형량을 올릴 건 없다. 이미 형사사법 시스템이 완비돼 있다.
그런데 문제는 “범죄 피라미드가 있다고 생각했을 때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범죄자들(강력 범죄 이외의 범행)”이다. 가장 먼저 성범죄부터 살펴봤을 때 김씨는 통상 성폭행 초범일 경우 실형이 선고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한 게 한국 사법의 현실이라면서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언론 조명이 이뤄진 경우이거나) 죄질이 극히 나쁘지 않는 이상 일반적으로 피해자와 합의를 하지 않더라도 법원에 공탁금 걸고 그리고 진지한 반성이 있는 것처럼 반성문을 쓰고 범죄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잘못된 성 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반성합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다 감옥에 안 간다. 나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련해서 이은의 변호사(이은의법률사무소)도 프레시안 칼럼에서 “현재 한국의 성범죄 성립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여전히 가해자에게 기울어져 있고, 이들에 대한 처벌은 국민 법감정과 상이하다”고 강조했다.
동물학대범이나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은 더더욱 관대하다.
음주운전은 상습적인데 세 네번 했거나 심지어 다섯 번 하고 어떤 사람은 일곱 번 했다. 초범과 재범도 아니고 아무리 무사고라도 해도 음주운전 5범 이상이 감옥에 안 가는 것까지 이해를 한다고 해도. 음주운전 3범이 사고 내서 사람 다치게 하고 도망까지 쳤는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판례가 있다.
김씨는 재차 “엄벌주의에 반대하지만 처벌을 더 올려야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역설했다. 성폭행범과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현실화시키는 것은 “엄벌주의가 아니”라는 거다. 특히 김씨는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해서 시동잠금장치 전면 도입과 양형 수준 상향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볼 때는 이걸 해결하려면 양형 수준을 높여야 된다. 근데 이걸 올리게 되면 감옥 수용이 감당이 안 된다. 지금 전국 감옥 다 합쳐서 4만8000명이 수용될 수 있는 정원인데 5만2000명을 욱여넣고 있다. 2022년 기준 2회 이상 음주운전을 저지른 사람만 5만3000명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회적 분위기가 음주운전은 살인이니까 두 번 이상 하면 실형 살게 한다고 했을 때, 이 사람들을 다 구속시킨다고 생각해보면 10만명을 넘긴다.
김씨는 판사들이 실형 선고를 꺼리는 배경적 요인으로 이런 지점이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판사들은 단순히 개인을 벌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제도를 집행하는 사명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1년에 살인사건 200건이 일어나는 나라다. 현재 수용자들 중 3000여명은 살인자다. 살인 죄수들만 해도 이렇게 쌓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도저히 판사 입장에서는 웬만한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감옥으로 보낼 수가 없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래서 김씨는 △흉악범만 강력 처벌하자는 엄벌주의를 경계하고 △범죄별 불균형적인 처벌 수위 조정 등을 위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구치소와 교도소를 더 지어야 한다. 그런데 혐오시설로 여겨지는 분위기 때문에 증설이 매우 더디다. 한 발짝을 떼기가 어렵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서 감옥을 더 지어야 하고 빨리 지어야 된다.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감옥을 만들어야 되는데 UN에서 이미 경고도 했고 수용시설의 열악함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화성 여자교도소 설치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씨는 “너무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님비 현상으로 인한 교도소 증설이 난관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예산 문제가 있고 주민 반대도 있겠지만 법무부에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교도소를 훨씬 늘려야 된다. 이걸(과밀 수용 문제) 해소하려면 9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늘려야 한다.
최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정부 입법 추진 △흉악범 전담 교도소 건설 △사형 집행 검토 등을 띄우고 있다. 한 장관은 법조문상의 실형 체계와 달리 실질적인 실형 체계가 일반 종신형과 유기징역만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집행될 수도 있는) 사형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까지 추가해서 법관들에게 4가지의 선택지로 늘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사실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어차피 현행 시스템에 따라 가석방되고 있는 무기수들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최소 1명 이상을 살해한 무기수들은 현재 1313명 있는데 2015년부터 엄격한 심사 절차에 따라 가석방 혜택을 받고 있다. 실제 가석방으로 풀려난 무기수들을 살펴보면 최소 25년 이상 복역, 각종 기능사 자격증 취득, 기능경기대회 수상, 검정고시 합격, 모범적인 수용 태도, 범했던 죄질, 기타 등등 까다로운 여러 허들을 넘었기 때문에 겨우 가능했다.
무기수 가석방 대상들 중에는 김진태씨 사례처럼 시대의 한계 때문에 그렇게 된 경우가 있다. 이런 무기수들은 가석방이 될 필요가 있다. 반면 이춘재 같은 연쇄살인범은 어차피 가석방으로 못 나온다. 무기수 가석방 심사 대상조차 되지 못 한다. 그러니까 굳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만들지 않아도 이미 형벌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대법원도 헌법재판소도 비판적이다. 어차피 하나 마나다. 이를테면 모녀 3명을 죽인 김태현은 지금 시스템에서도 못 나오고 감옥에서 죽어야 된다.
그런데 끔찍한 무차별 살인사건이 3건이나 벌어졌던 요즘 분위기에서 ‘엄벌주의적 여론’과 ‘범죄 예방을 위한 구조적 개선’이 꼭 배치되는 것일까? 양립할 수는 없을까? 적어도 전자가 후자로 가기 위한 촉매제가 될 순 없는 걸까. 김씨에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김씨는 “마지막 연쇄살인마 강호순 때도 그렇고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사형 집행 여론이 80%까지 올라간다”면서 “그러니까 (사형제를 폐지하고 엄벌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는데 오히려 그럴수록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런 분위기를 틈 타서 국가 권력이 너무나 쉽게 여러 권리들을 제약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고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도입도 비슷한 맥락에서 보고 있다. 나는 그런 흉악범들이 우리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그런 구조적 원인이나 예방책들이 중요한데 관심을 덜 받을 수밖에 없다. 응보와 처벌만이 꼭 능사가 될 수 없고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은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은 진짜 엄벌주의다. 인구 10만명당 감옥 수용률이 한국은 100명인데 미국은 500명이다. 진짜 많이 가둔다. 근데 미국이 안전한가? 절대 아니다. 미국 민주당조차도 엄벌주의적이다. 엄벌주의는 절대 해법이 아니다.
그 대신 김씨는 고립 문제에 주목했다. 교육과정에서 이탈한 청소년들, 실질적인 치료를 받지 못 하고 있는 정신질환자, 교화되지 못 하고 계속 범죄를 반복하는 전과자 등등 이들이 무직 상태로 고립되고 또 고립되어 인간관계가 끊어지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들 중 극소수가 타인을 해치거나 자살하는 극단으로 나아가겠지만, 그들이 인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1992년에도 여의도에서 차량 돌진 사건이 있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는데 갈수록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있고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서 (무차별 살인사건과 칼부림 시위 등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사회가 갑자기 삭막해져서 흉악 범죄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쌓여있었던 게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있을 뿐이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모든 나라들이 자국민간의 경제적 격차에 따른 박탈감과 좌절 문제를) 관리해야 하는데 한국은 관리를 잘 못 하고 있다. 심지어 은둔형 외톨이와 고립 문제가 이미 심각한 상황인데 이 부분에선 전혀 못 하고 있다. 원래 고립감이나 고독이 범죄로 나아가는 데 영향이 크다. 정신질환자가 일으키는 범죄 문제도 관리가 안 되고 있다.
※2부에서 사형제에 대한 내용이 다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