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3.1절에 이르러 경찰(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이 의협(대한의사협회)을 압수수색하는 지경이 됐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월27일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며 전공의들의 이탈을 부추긴 것(의료법 위반과 형법상 업무방해 교사·방조 혐의)으로 간주하는 핵심 인물들을 경찰에 고발한지 3일만이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주수호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박명하 조직강화위원장,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노환규 전 의협 회장 등 5명인데 이들은 그동안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서울시의사회장을 겸하고 있는 박명하 위원장은 “전공의들은 자율적인 의지에 의해 각자 자신이 근무하는 수련병원에서 저항하고 있다”며 “정권의 폭압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들이 무슨 범죄자나 폭력적인 사람들도 아닌데 이렇게 공휴일 오전에 직원들도 없는 사무실을 급습해 무리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게 과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유관순 열사가 일본의 폭압에 저항한 것처럼 저 역시 우리나라의 올바른 의료체계와 국가와 국민, 그리고 의료계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
경찰은 6일까지 소환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한 상황이다. 박명하 위원장의 말대로 의협은 개원의들을 중심으로 집단 휴진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단 중증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상급 병원 소속 레지던트 전공의들이 뇌관이다. 총 14만명의 의사들 중 9000여명이 전공의인데 대한민국 특성상 이들이 수련 과정을 밟고 있는 큰 병원들에는 중증환자들이 매우 많다. 그래서 이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단 이탈을 하게 되면 중증환자들은 한시가 급한 수술이나 치료를 받지 못 하게 된다. 전공의들의 집단 행동으로 인해 6개월 가량 대기한 중증환자들의 수술 예약이 하염없이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안선영 한국중증질환자연합회 이사는 윤석열 정부와 의사 집단 모두가 치킨 게임으로 치닫고 있는 만큼 양쪽 모두가 원망스럽다.
분명히 순번 안에 들어갔었는데도 불구하고 문자 하나, 전화 1통으로 당연한 것처럼 (진료나 수술이) 미뤄진 상태다. 사회에 대한 원망이 가장 먼저 (환자의) 몸을 해치고 건강에 정말 악영향이 생길 것이다. 환자들은 을의 입장이다. 의협이나 정부 모두 환자들의 소리를 이용하려고만 하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중증 환자들은 본인들이 치료 받던 병원의 간호사를 붙들고 하소연들을 많이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8~90%에 이르는 만큼, 의대 증원 규모와 시기 등으로 타협안을 제시할 계획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보단 전공의들에게 데드라인을 통보하고 복귀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강경 대응에 돌입하고 있다. 통상 정권을 가리지 않고 의료 정책을 추진하다 의사들의 반발에 부딪치면 업무개시명령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양측이 한 발 물러나서 타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의사, 약사, 화물기사에게만 허용된 업무개시명령 카드를 단순히 겁만 주기 위한 게 아니라 실제로 발동시켜서 법적 처벌을 가할 기세다. 보건복지부가 파악한 바로는 전공의 9000여명 중 약 600여명 이하 6%만 병원으로 돌아왔다. 일찌감치 복지부는 주요 수련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동국대 일산병원/연세대 세브란스병원/건국대병원/충북대병원/조선대병원/분당차병원/계명대 동산병원/인제대 부산백병원/가톨릭중앙의료원) 대표급 전공의 12명의 자택으로 직접 찾아가서 업무개시명령서를 송달해놨다. 3.1절 연휴가 끝나는 4일 전공의들이 소속된 전국 수련병원들에 공무원을 파견해서 미복귀 인원을 전수조사한 뒤 업무개시명령 송달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극단으로만 치닫고 있는 분위기인데 해법은 없는 걸까? 녹색정의당과 새로운미래가 각각 중재안을 내놨는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녹색정의당은 3가지를 제시했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국민참여 공론화위원회’에서 결정
Ⓑ의대 증원에만 골몰하지 말고 의료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른 정책 의제들로 관점 전환(지역공공의대 설립/공공병원 확충/혼합 진료 금지 등 비급여 해소)
Ⓒ의사 집단행동에 대해 환자안전장치 마련(타 분야 노조들처럼 노동법에 따라 협상을 진행하고 결렬시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부서에 최소 인력을 배치하고 합법 파업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공백 채우기)
새로운미래는 5가지를 제시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의대 입학 정원의 15~20%씩 증원(연 458명~611명 규모)하고 평가를 통해 입학 정원을 조정하되 늘어나는 정원은 지방소재 의대에만 배정
㉯지방에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10+5년 지역 의사제를 도입해서 의전원 졸업한 의사들은 공공의료기관 등에서 10년 근무하고 해당 지역에서 추가로 5년 동안 의료업 종사 의무화)
㉰500병상 이상 지역 공공의료원 건립
㉱여야 정치권이 즉시 관련 상임위원회 열어서 의료 대란 현안 점검 및 청문회 개최
㉲정치권, 의료계,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가칭 ‘국민대타협위원회’ 즉각 구성
일단 Ⓐ㉱㉲는 모두 공론장에서 토론해보자는 것인데 이미 상시 가동되고 있는 국회 상임위에서 해당 문제에 대한 현안 질의가 열리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총선이 한달 반도 안 남았고 양당의 공천 작업이 진행 중인 탓이다. 무엇보다 증원 규모에 대해서는 국회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매년 4~500명선으로 입장을 낸 만큼 ㉮처럼 점진적인 증원 규모 모델을 복지부에서 상정해보는 것이 최선으로 점쳐진다.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면서 직접 꺼냈던 “소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로 상징되는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다른 근본적인 정책 의제들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회에 Ⓑ㉯㉰와 같은 정책 의제들을 논의 테이블에 놓고 같이 따져봐야 한다. 다만 증원 규모라는 핵심 쟁점 외에 다른 정책 의제들을 이번 사태를 봉합하기 위한 협상 수단으로 쓰기에는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전공의들에 대한 사법 조치가 가속화되면 의대 교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의협은 연휴 마지막날인 일요일(3일) 여의도공원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맞불을 놓고 있다. 그러나 전국 221개의 수련병원 병원장들이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호소하는 공동 호소문을 낼 것으로 알려진 만큼 사실상 윤석열 정부와 의사 집단의 치킨게임은 의대 정원 증원의 흐름을 막기 어려운 쪽으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박승일 서울아산병원장은 소속 전공의들에게 아래와 같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많은 생각과 고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여러분을 의지하고 있는 환자들을 고민의 최우선에 두기를 간곡하게 부탁한다. 완치의 희망을 안고 찾아온 중중환자, 응급환자들에게 여러분은 가장 가까이에서 환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이다. 더구나 우리 병원은 중증환자 치료와 필수 의료 비중이 매우 높고 그 중심에 전공의들이 있다. 여러분의 주장과 요구는 환자 곁에 있을 때 힘을 얻고 훨씬 더 잘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진료 현장에서 여러분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과 함께해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