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25번째 기사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정치인입니다.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았고 현재는 민생당 소속으로 최고위원과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습니다. 이내훈의 아웃사이더는 텍스트 칼럼과 전화 인터뷰 기사로 진행됩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지역구 선거운동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대부분은 고령층 유권자 위주였던 것 같다. 이유가 있다. 젊은 사람들은 평일에 시내 중심가에서 찾기 힘들다. 회사에 있거나 학교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고령층 유권자는 보통 자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선거운동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인사하고 얼굴을 익히는 일이 가능했다. 주말에도 젊은 사람들은 집에서 쉬거나 외출하더라도 번화가로 흩어지지만 고령층은 배드민턴장, 산책길, 모임 등 동네에 머무르는 비중이 높고 주변과 유대관계가 있어서 선거운동이 수월했다. 젊은 사람들은 동네 이웃들과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태반이다.
섣불리 일반화를 할 순 없겠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결국 지역구 선거운동은 고령층 유권자들에게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는 사실 실버 민주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버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수 밖에 없는 배경에는 도시화가 있다. 개발도상국으로서 한국은 급속한 발전과 함께 급격한 도시화로 치닫았다. 도시는 빠르게 번영했지만, 지방은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도시를 구성하는 20~40대는 자리잡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거주지가 자주 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령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역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투표율도 낮은 편이다. 반면 도시화가 덜 이뤄진 국가들의 경우 연령별 투표율이 우리나라에 비해 균형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고령층의 눈치를 많이 살핀다. 겉으로는 청년 정치와 청년 정책을 중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론 젊은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없다. 매번 후순위로 밀린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 정책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말미에 국민연금 개혁 합의에 실패했지만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45%까지 상향하기로 하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말로는 ‘더 내고 더 받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먼저 받고 나중에 내는’ 방식이며 그 부담은 모두 지금의 젊은층이 짊어지게 된다. 젊은층은 나중에 ‘더더더 내고 덜 받는’ 진짜 연금개혁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다. 그때가 되면 그 연금개혁을 만들어낸 정치인들은 모두 은퇴해서 나몰라라 할 것이다.
일본 오사카의 요시무라 히로후미 지사는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0세부터 선거권을 부여해야 하며, 유아의 선거권을 부모가 대리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젊은 부모에게 자녀 수만큼 투표권을 부여하자는 취지인데, 그만큼 일본에서도 젊은층 투표율이 낮고 이것이 간단치 않은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고령층에 정책 자원이 집중되어 저출산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위기 의식이 있다. 한국 정치권에서도 깊이 고민해볼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저출산 문제가 더 심각해서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인데 정치권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해결 방향도 잡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짧은 시간에 국민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권위주의 독재정권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시대로 넘어왔지만, 민주주의 체제가 실버 민주주의에 발목이 잡혀 저출산을 부추기고 사회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는 세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0세부터 선거권을 부여하는 극단적인 처방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고른 투표율 제고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고령층 위주의 정책 결정 메커니즘을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높이면 지금처럼 고령 유권자들에 의지하는 지역구 의원들만 판을 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지 기반의 영역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이 시급하다. 필자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비례 의석을 50석 이상 늘리고, 정당 지지 의석 연동률을 강화하는 방안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하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출산 문제와 실버 민주주의 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