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발도르프 학교’에 자녀 보냈지만 고민스러운 이유

  • 등록 2024.09.10 17: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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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건질 게 없는 지루한 시간이 끝나가던 무렵 귀를 번뜩이게 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난 4일 16시 전남 담양군 담양읍에 위치한 해동문화예술촌에서 개최된 <담양 농촌 유학 활성화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담양뉴스 창간 8주년 기념 행사라서 1부는 담양군수와 군의원을 비롯 온갖 ‘관’ 소속 인물들이 뻔한 인사말을 쏟아냈는데 그걸 듣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렇게 1시간을 날려보내고 2부에서도 딱히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다. 관심 있는 주제인 것 같아서 참석했는데, 그냥 이런 저런 시골 유입을 위한 정책들을 나열하는 책자를 읽고 있는 토론자들의 향연이라 괴로웠다.

 

 

그런데 거의 마지막 즈음 학부모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김은정씨가 ‘잇다자유발도르프학교’에 대해 소개를 하자 몰입이 됐다.

 

2010년에 광주 광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교사 3명과 학부모 2명이 발도르프 교육을 알게 되어 실천하고 싶어서 협동조합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3명의 학생으로 시작했다. 현재 개교 9년째인데 43가정 50명의 학생과 전임교사 15명, 강사 15명이 있는 학교가 됐다. 저희 학교는 발도르프 교육 이념에 따라 과정을 밟는다. 학교 수업은 한 가지 주제로 3~4주간 집중해서 배우는 주기집중수업과 음악, 수공예, 미술 등 예술 수업이 중심이다. 교실에는 디지털 기기가 없고 아이들은 스스로 만든 교과서를 사용하며 교사가 칠판에 그린 아름다운 그림과 시를 통해 학습이 이뤄진다.

 

발도르프학교는 담양군 대전면에 있는 미인가 대안학교로 50명의 학생이 재학 중에 있다. 발도르프 교육은 루돌프 슈타이너가 191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세운 발도르프 학교에서 그 역사가 시작되는데 개개인의 개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슈타이너는 몸과 마음의 조화로운 발달을 위한 감각 및 의지를 살리는 것을 중시했으며, 평가 중심 교육이 범하는 서열과 구별짓기 문화를 철저히 경계했다. 발도르프 학교는 현재 전세계 71개국 1300여개에 이르고 있으며 21세기 대안 교육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발도르프 학교에선 한 교사가 8년간 담임을 맡는다. 아이들과 오랫동안 호흡하며 성장과정을 충분히 지켜봐줄 수 있도록 설계된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학년도 1학년부터 8학년까지 있다.

 

○1학년: 유아기의 모방의 힘이 아직 남아있는 만큼 우리 말과 글을 익히고 1부터 12까지 숫자의 본질과 사칙 연산, 곧은 선과 굽은 선으로 형태 그리기를 배운다.

○2학년: 자기 의견이 분명해지는 2학년에는 우화와 성인 이야기를 통해 인간 내면의 양극성을 배우고, 곱셈을 통해 우주 질서와 법칙을 통찰한다.

○3학년: 루비콘 시기를 맞이하는 3학년에는 지상의 삶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농사, 수공장인, 동네학, 집짓기, 측정과 연산, 우리 말과 글의 규칙, 사방대칭의 형태 그리기들을 익히고 배운다.

○4학년: 자아를 찾아가는 4학년에는 분수, 동물학, 동네학, 신화, 입체적인 매듭형태 그리기들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5학년: 몸과 영혼이 가장 조화로운 5학년에는 동물학, 식물학을 통해 인간과의 관계를 느끼고 고대 역사를 배우며 인간 의식의 발달을 배운다.

○6학년: 사춘기가 시작되는 6학년에는 퍼센트와 비율, 천문학, 광물학, 물리등 본격적인 과학 수업을 통해 세상의 인과관계와 논리적인 법칙을 배운다.

○7학년: 본격적인 사춘기 7학년에는 몸과 마음의 불균형적 발달 속에서 감정의 질풍노도를 경험하게 되는데 세상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나를 성찰할 수 있는 지리, 화학, 건강영양학, 역사, 인간학을 배운다.

○8학년: 개별 자아가 싹트기 시작하는 8학년에는 개별 프로젝트 연구를 통해 세상에 대해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연극을 통해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며 자신을 올바르게 세우는 활동을 한다.

 

 

김씨는 초등학생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데 광주에 있는 공립초에 다니게 했다가, 2023년 발도르프 교육을 접하고 감화되어 세 아이를 전부 발도르프학교로 전학시켰다. 담양군과 전남도에선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농촌 유학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렇게 발도르프 교육 모델처럼 컨텐츠가 좋으면 도시인들이 알아서 찾아올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김씨에 따르면 아직까지 대안학교는 기존 학교에 적응하지 못 한 아이들을 보내는 곳이나, 경제적으로 넉넉한 부모들이 보내는 사립 학교의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발도르프학교에 아이들을 맡긴 학부모들은 오직 교육 철학 하나만 보고 결정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일반적인 가정이 대부분이고 다자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담양군과 전남도의 지원이 절실하다. 당장 교육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교사 월급과 학교 유지비는 전부 학부모들이 내는 학비에서 충당한다. 그래서 발도르프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서 문의를 해오는 학부모들이 많지만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 너무 비싼 학비라고 한다. 그래서 김씨는 어떤 근거와 형태로든 다 좋으니 담양군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재차 요청했다.

 

학비 외에도 결정적인 고충이 또 하나 있다. 앞서 발표자들이 내놓은 주요 대책들 중 하나가 바로 ‘모듈 하우스’ 제공이었는데 김씨는 “장기 정착”을 생각해봤을 때 모듈 하우스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미 실시하고 있는 대다수 농촌 유학 프로그램부터 개념 정립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기존 농촌유학 프로그램은 일정 기간의 체류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저희 잇다자유발도르프학교는 농촌 체험이 아닌 장기 정착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발도르프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게 된다. 전국 발도르프학교연합에 가입된 학교가 15곳인데 호남권에는 한 두곳만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도르프 교육을 희망하는 가정은 반드시 담양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담양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담양군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특히 모듈 하우스로 주거 지원을 해준다고 했는데 들으면서 느꼈던 점은 이게 평생 주거지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잠깐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면 지낼만하겠지만 저희는 그렇지가 않다. 한 번 담양으로 이주하면 12년 넘게 있어야 하고 나 역시 12년 후면 50대 중반이 된다. 그러면 굳이 담양의 모듈 하우스로 이사를 가기 보단 광주에 머물면서 아이를 통학시킬 수밖에 없다.

 

돈이 많으면 관계가 없다. 담양에도 좋은 아파트들이 많다. 하지만 발도르프 철학만 보고 담양으로 향하는 부모들은 주거 문제에서 모듈 하우스를 선택하기도 어렵고, 비싼 아파트를 선택하기도 망설여진다. 김씨는 “평생 살 집을 알아봤기 때문에 아무 집에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 김씨는 모듈 하우스 외에도 본인이 직접 안정적인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집 건축비나, 인테리어비 등을 지원해주는 방안도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박효영 eduna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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