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감상하고 꼭 ‘마이클 샌델’처럼 토론해보길

  • 등록 2025.03.16 05: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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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싶은 동기부여가 될 만큼만 읽다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그만 읽고 바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동진 평론가처럼 스포를 확인해도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 타입이라면 그냥 읽어도 상관없다.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기생충> 이후 6년만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감독 봉준호의 신작. <미키 17>이 개봉했다. 원래 원작 소설이 있는데 봉준호 감독이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봉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하나 하나 너무나 유명하지만, 나 역시 지금까지 공개된 7편의 장편 영화를 전부 다 섭렵했다. 그냥 본 게 아니고 곱씹고 분석하고 음미하면서 반복해서 감상했다. 그래서 <미키 17>이 개봉하자마자 바로 박효영 기자와 함께 극장으로 향했다. 사실 약간의 두려움은 있었다.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살펴보니 원작을 읽고 가야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그러더라. 약간 난해하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근데 그야말로 기우였다. 빠져들듯 봤다.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난해하지 않았다. 봉 감독의 작품들은 사실 그 자체로 떠먹여주는 경우가 많다. <미키 17>은 시작되자마자 그 안의 세계관과 설정 등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다 설명해준다. 거진 초반 약 20분은 주인공이 왜 이런 상황에 처했으며 지구와 인류가 직면하게 된 환경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기생충>이 평단과 대중 모두를 만족시킨 최고의 영화로 평가 받는 이유는 뛰어난 연출과 작품성, 접근하기 쉬운 스토리로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았기 때문이다. ‘빈부격차’라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진부한 소재를 블랙 코미디적 스타일로 잘 버무려서 맛깔난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이 <미키 17>은 다들 꼭 봤으면 좋겠다. 요즘 세상 이슈들이 너무 어지럽고, OTT 기대작들도 쏟아지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과거 봉 감독의 작품들에 비해 <미키 17>이 한국에서 센세이셔널한 주목을 받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 조금 아쉽다. 망설이는 독자들이 있다면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으로 가보자.

 

서론이 길었는데 영화의 줄거리는 먼 미래 2054년 인류가 지구 밖 다른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된다는 대전제에서 시작한다. 아참! <미키 17>에는 익숙한 헐리우드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트와일라잇>의 로버트 패틴슨, <어벤저스> 헐크로 명성을 얻은 마크 러팔로, 한국계 헐리우드 배우하면 떠오르는 스티븐 연 등등이다. 주인공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는 친구(스티븐 연)와 함께 창업을 했다가 쫄딱 망해 큰 빚을 졌다. 이들은 하는 수 없이 악독한 사채업자를 피해 행성으로 이주하는 우주선을 타게 된다. 우리가 장난처럼 말하는 "지구를 떠나겠다"는 것을 실제로 해버린 거다.

 

미키가 탄 우주선은 ‘니플헤임’이라는 미지의 행성으로 향한다. 니플헤임의 주인은 강성 정치인 출신 케네스 마샬이다. 마샬이 메인 빌런이다. 참고로 러팔로는 이 역할로 처음 악역을 맡았다고 한다. 러팔로의 연기도 좋았지만 아내역을 맡은 토니 콜렛의 연기력도 정말 인상 깊었다.

 

 

마샬 부부를 보고 있노라니 ‘그 부부’가 머릿속에 자꾸 떠올랐다. 마샬 로우를 발동해서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그 부부. <미키 17>에서도 마샬은 아내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연설을 할 때도 옆에서 아내가 도와준다. 물론 악랄한 짓을 할 땐 스스로 빠른 판단력을 발휘하지만 아무리 봐도 아내의 그림자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다. 악역이지만 좀 재밌는 캐릭터다.

 

미키는 계약서도 제대로 읽어 보지 않은 채 ‘익스펜더블’이라는 직무에 지원한다. 우리는 여기서 왜 계약서 약관을 꼼꼼히 읽어봐야 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는 자신의 기억, 모든 장기, 신체 정보 등을 저장할 처지에 놓인다. 그리고 미키는 사망할 때마다 ‘인체 생성 프린트’라는 기기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죽기 전 모든 기억들은 데이터에 저장되어 새로운 육신에 다시 입력된다. 미키가 17번째로 프린트된 미키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영화 제목도 <미키 17>이다. 그냥 쉽게 말해서 계속 죽었다가 살아났다. 죽었다 살아났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익스펜더블 설정은 <미키 17>을 관통하는 핵심 세계관이다.

 

우리는 보통 위험한 일을 안전불감증에 빠져 수행하고 있는 사람에게 관용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목숨이 여러 개냐? 근데 미키 입장에서는 맞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다. 익스펜더블을 만든 취지 자체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을 떠넘기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키는 우주에서도, 니플헤임에서도 계속 죽었다가 계속 태어난다. 심지어 미키는 ‘마루타’와 같은 포지션에 놓이기도 한다. 

 

언뜻 생각해보면 어차피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니? 좋은 거 아니야?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가정법을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죽는 순간의 고통과 끔찍한 기억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리셋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어떨까. 미키는 17번이나 다시 태어났지만 로봇은 아니다. 엄연히 인간이다. 그래서 살갗이 찢어지는 죽음의 공포와 아픔이 그대로 뇌 속에 탑재된 상태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점이 비극적이다. <미키 17>을 보는 내내 미키가 참으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다시 프린트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권 개념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 삶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개나 줘버린 꼴이 된 것이다. 물론 미키의 애석한 처지에 동정과 연민을 갖고 있는 그의 여자친구 나샤 배릿지(나오미 애키 배우)와 몇몇 등장인물들이 있긴 하지만, 절대 다수는 미키를 그저 위험한 작업에 쓰고 버리는 ‘몸빵용’ 로봇으로 보고 철저히 도구로 취급한다.

 

 

죽는 과정도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그냥 죽으면 프린트값이 아깝기 때문에 기회비용을 생각해서라도 뭔가 정보를 알아내려는 목적으로 미키의 몸에 생체실험을 가한다. 말이 좋아 실험이지 그냥 고문이다. 미키는 피를 토하며 죽기도 한다. 상상해보자. 감기 몸살에 걸려도 너무 아픈데 피를 토하면서 죽는다.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미키는 이런 과정을 끝도 없이 반복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심지어 미키는, 우주 방사선을 쬐면 어떻게 되는지 니플헤임의 대기가 인류의 신체 조건과 맞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마루타를 당하기도 한다. 일본 731부대와 함께 생체실험에 참여한 과학자들도 그 당시 마루타 조선인들을 그렇게 대했을 것이다. 계속 실험당하는 미키의 처연한 모습을 보며 감정이입 해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주변 인물들도 미키를 막 긁어댄다. 나름 친구라고 생각한 인물도 미키에게 실실 쪼개며 "죽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냐?"고 물어본다. 몰라서 묻는가? 죽는 기분? 극단적으로 짧게 표현하자면 정말 X같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스크린 속 그 친구의 면상을 주먹으로 날려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짜증 수치가 맥스로 찼다. 그들은 미키가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마치 대형 공벌레와도 같은 이질적인 '크리퍼'의 존재도 핵심 장치다. 한 마디로 외계 생명체다. 이들은 니플헤임의 원주민이다. 비주얼은 영 보기 그렇다. 그런데 어느정도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 이들의 울음소리를 분석해서 만든 통역기로 소통을 해볼 수도 있는데 비주얼이 징그러웠지만 계속 보다 보니 약간 귀여운 것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마샬은 당연하게도 이 크리퍼들을 몰살시키고 행성의 주인이 되려 한다. 그러나 크리퍼는 생김새와 다르게 인간들을 해칠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 오히려 마샬이 크리퍼를 없애버리려고 거짓 명분을 조작했다. 후반부로 가면 미키가 이러한 마샬의 끔찍한 계획을 저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내용이 나오는데 <미키 17>의 스펙터클이 구현되는 중요한 파트다.

 

 

또 다른 미키는 새로 복제된 인물인데 미키 17이 죽은줄 알고 만들어졌다. 미키 17은 죽지도 않았는데 착각을 한 과학자가 미키 18을 프린트 해버린 것이다. 그들에 예상대로라면 미키 17은 임무를 수행하다가 크레바스(빙하나 눈 골짜기에 형성된 깊은 균열)에 떨어져 크리퍼에게 먹혀야 한다. 하지만 크리퍼들은 미키 17을 그냥 놓아주었다. 이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키는 우주선으로 돌아갔지만 너무 놀랍게도 또 다른 나 미키 18을 발견해버렸다. 도플갱어를 마주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미키 17>의 전환점이 시작된다. '멀티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미키 17과 미키 18은 서로 죽고 죽이려고 한다. 같은 사람이 2명 있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치고 박고 싸울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둘은 이내 협력관계가 된다. 마샬의 폭력적인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연대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미키 18은 마샬과 동반 폭사하며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 이후 마샬의 부인도 정신병원으로 향하게 되어 서울의 봄과도 같은 평화가 찾아오는가 싶더니, 이내 식민지 사람들은 친마샬파와 반마샬파로 나뉘어 정치 싸움을 벌인다. 역시 해방 정국은 혼란스럽다. 그러나 미키의 여자친구 나샤가 엄청난 활약을 해서 니플헤임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식민지 사람들은 인체 생성 프린트를 폭파시켜 익스펜더블을 더 이상 생성하지 못 하게 하는 뱡향으로 가닥을 잡는다.

 

봉 감독의 작품에서 보기 드문 권선징악 플롯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미키 17>은 <기생충>과 달리 놀랄만한 반전의 미학을 기대하지 말고, 미키의 불쌍한 처지에 집중하며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 알고 봐도 괜찮다. 그래도 재밌다. <미키 17> 다 보고나면 같이 보러 온 사람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딜레마 상황을 가정해서 윤리와 인간의 존재를 주제로 토론해보길 권하고 싶다. 인간에 대한 무한 복제는 정당할까? 그게 가능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죽여도 될까?

윤동욱 endend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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