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싶은 동기부여가 될 만큼만 읽다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그만 읽고 바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동진 평론가처럼 스포를 확인해도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 타입이라면 그냥 읽어도 상관없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이병헌 배우가 홀로 영화 홍보에 나서고 있지만 사실 유아인 배우의 존재감과 연기력이 못지 않게 중요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승부>를 보면 그렇게 느끼게 된다.

꼬마일 때부터 바둑 신동 소리를 듣던 이창호(아역 김강훈 배우)는 건방지고 호기롭다. 굳건한 실력이 뒷받침된 부분이 있지만 선배 바둑 기사들을 가뿐히 이기면서 거만한 말들을 내뱉는다. 어른들의 한 마디에 절대 지지 않고 꼭 애어른 같은 말로 응수한다. 그러나 스승 조훈현(이병헌 배우)에게는 안 통한다. 한수 위의 실력으로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있는 조훈현에게 “한 판 더 둬요”라고 외치지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조훈현을 매료시킨 이창호는 그의 집으로 들어가 같이 살며 가르침을 받게 된다. 단순히 바둑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다. 자세, 태도, 인내심, 기세, 컨디션 조절 등 바둑을 넘어 인생의 가르침을 받는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기세등등했던 이창호(유아인 배우)도 10대 청소년이 된 뒤로는 조훈현의 통제로 인해 조용해진다. 말수가 없고 묵직한데 유아인 배우가 그야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프로 바둑 기사 돌부처 이창호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의기소침한 표정과 말투, 뭔가 굽어 있는 어깨만 봐도 이창호가 조훈현을 통해서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육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둑은 타고난 천재성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천재성과 더불어 노력하는 자세가 뒷받침돼야 한다. 조훈현은 직감적으로 이창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자기 제자로 맞이했다. 이창호는 조훈현 밑에서 거대한 바둑의 세계를 알아가는데 자신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천재성과 노력하는 자세가 갖춰져 ‘바둑의 신’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어느 순간 이창호는 조훈현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조훈현은 그런 이창호를 여전히 한수 아래로 보고 인정해주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속으론 인정하고 있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공식 대국에서 처음으로 졌다. 매번 이겨서 남들에게 상처만 주던 조훈현이 제자에게 졌다. 자존심이 구겨졌다. 집으로 돌아와서 이창호와 ‘복기’하는 과정에서 심술이 폭발해 “앞으로 나와 붙었을 때 복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들어가 버렸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어쩌다 한 번 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조훈현은 그날 이후로 이창호에게 계속 졌다.
<승부>를 만든 사람들 또는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바둑을 몰라도 영화를 보는 데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바둑은 소재일 뿐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창호도, 조훈현도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대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지만 결국 수용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극복하지 못 하면 그 자리에 머무르고 뒤처지게 된다.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나도 언제든지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나아가 “너 덕분에 나도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말한다.
이병헌 배우는 <컬투쇼>에 출연해서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보통 스승이 거의 전성기를 마치고 이제는 거의 바둑을 현역으로서 뛰지 않을 때 애제자를 키워서 그 제자가 천재적인 어떤 실력을 발휘하는 것을 뒤에서 계속 서포트 해주는. 그래서 새로운 레젠드가 탄생이 되고 이렇게 서로 오버랩 되면서 제자가 나오는 상황인데. 조훈현 9단은 현역으로서 가장 활발할 때 애제자를 키우기 시작하신 것이다. 조훈현 9단도 굉장히 지금 한참 전성기이고, 이창호 9단도 천재적인 실력으로 너무나 급성장한 상황이라 둘 다 전성기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대결을 벌이게 된, 어찌 보면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이런 사건들이 상황들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승부>는 상대의 존재와 현실을 인정하는 태도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인정하기 싫고 힘들지만 그래야 하는 진통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승부>의 키포인트다. 아직 안 봤다면 지금 당장 극장으로 가서 꼭 보길 바란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