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만행이다. 50대 남성 천모씨는 개인적으로 앙심이 있는 70대 남성 나모 변호사가 아닌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무참히 살인했다. 방화살인범 천씨는 범행 당시 입구에 휘발유를 끼얹고 “너 때문에 소송 졌다. 다같이 죽자”라고 외치면서 앞에 있는 A 변호사와 B 사무장을 칼로 찔렀다.
32년 경력의 전직 강력계 형사 김복준 교수(중앙경찰학교 수사학과 외래교수)는 14일 14시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소송 걸려가지고 상대측 변호사에게 패소해서 감정 상해서 협박하는 이런 일들이 꽤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극단적으로 너 죽고 나 죽자고 하는 케이스는 흔치 않다”며 “내가 볼 땐 칼로 찔렀다기 보다는 입구에다가 (휘발유를) 뿌리고 나서 도주 못 하게 옛날에 안인득처럼 입구에서 사람들 못 나가게 위협하려고 찌른 것 같다”고 추정했다.
사건은 9일 오전 11시 즈음 벌어졌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인근 법조타운에 위치한 7층짜리 법무빌딩 2층 사무실 203호였는데 천씨는 입구에 휘발유를 뿌려서 불을 질렀고 변호사와 직원 등 6명을 죽게 만들었다. 수성구 신천시장 재개발사업에 6억8000만원을 투자했다가 미분양 사태로 크게 실패하자 시행사를 상대로 각종 소송을 제기했고 모조리 패소했다.
엉뚱하게도 천씨는 잘못 투자한 본인의 실책을 탓하지 않고 시행사를 대리한 나 변호사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됐다고 여겼다.
그때 203호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C 사무장은 천씨의 괴성을 듣고 자력으로 창문을 깨고 탈출했는데 경찰에 “천씨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김 교수는 “짐작컨대 내 추측이 합리적일 건데 먼저 그놈이 거기로 가서 불 지르기 전에 흉기 공격을 했으면 좀 틈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이 여러 명이기 때문에 피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그런 게 아니고 전체가 오도 가도 못 하고 그렇게 된 것 보면 아마 안인득처럼 못 도망가게 지키고 서서 흉기를 휘두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분명 천씨는 치밀하게 사전 답사까지 왔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나 변호사를 정확하게 타겟팅하지 않았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너 죽고 나 죽자고 했던 그의 심리 상태는 도대체 뭘까.
김 교수는 “(사전 답사를 왔을까?) 충분히 가능하다. 그 사무실 구조라든지 그런 것은 미리 와서 아마도 확인했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목숨을 잃게 되는 것도 계획에 있던 걸까?) 그럴 것 같다. (소송에서 패소하니까) 복수하려고 맘먹은 것 같은데 자기 전재산이 날라갔기 때문에 자포자기 심정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사람이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적어도 꼼꼼하게 범행하려고 했으면 나 변호사한테만 감정이 있는 것 아닌가. 엄밀히 말하면. 그러면 그 사람이 당일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했을텐데 근데 이 사람은 저 사람 죽이고 나도 인생 쫑내자. 자포자기 상태 뭐 이런 상태가 눈 앞에 닥쳐있어서 치밀하게 계산 같은 것은 안 한 듯하다. (이미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였던 것인데) 그게 딱 정확한 표현이다. (법정에서 봤을테니 나 변호사의 얼굴을 알았을텐데) 당연히 알 것이다. (만약에 나 변호사가 없었다면 그냥 나왔을 수도 있는데?) 그런 개념 자체도 없는 놈이다.
심리학자 문가인 원장(참마음심리상담센터)도 19일 경북일보에 게재한 칼럼에서 “너 죽고 나 죽자란 말은 결국 너는 나쁜 사람이니 너를 죽이고 너를 죽인 나도 나쁜 사람이니 죽겠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며 “(천씨는) 타인을 죽이고 그 자리에서 자신도 죽을 각오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뱉은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함께 죽은 것”이라고 가정했다.
응축된 피해 망상과 비뚤어진 분노심도 있었겠지만 코로나 이후 각종 방화 사례들을 보고 모방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웅혁 교수(건국대 경찰학과)는 채널A <뉴스A>를 통해 “(코로나 장기화 이후에) 복수와 불만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고 타인이 행한 방법으로 따라 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모방 범죄의 우려가 크다”고 해석했다.
대구수서경찰서는 고작 20분만에 꺼질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과 관련 건물의 안전시설 문제가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천씨를 포함 목숨을 잃은 7명 전부 일산화탄소 중독이 사인이었고 그때 연기를 들이마신 사람만 50여명이다.
김 교수는 “구식 건물이라 스프링클러도 작동이 안 됐다고 한다. 법적 의무가 있는 건물이 아니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사건의뢰에서도 잠깐 다뤘는데 사람들이 나한테 이런 일이 닥치리라고 상상조차 안 한다”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나는 어떻게 처신할까? 그런 걸 머릿속에 그려보지 않는다. 근데 그거 교육 꼭 필요하다. 사람들 얘기는 창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물론 뛰어내려야 한다. 2~3층 밖에 안 되면. 근데 십 몇 미터 정도가 되면 두려워서 사람이 망설이게 된다. 근데 그거 이전에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될 것이 뭐냐면 타월 같은 걸 빨리 물을 뿌려서 입과 코를 막는 거다. 유독가스를 두 모금만 흡입하면 바로 의식 잃어버린다. 방화 현장에서 불에 타서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가스 중독으로 죽는다. 그래서 그걸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한다. 아주 흔한 얘기지만 그런 교육이 잘 안 돼 있다.
한편, 김 교수는 “(살았으면 법정에 세워 사형 선고라도 할텐데) 내 말이 그렇다. 이거 진짜 기가 막힌다. 하루 아침에 날벼락 맞은 것”이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