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한정희·박효영 기자] 이태원 참사 이후 빠르게 선포된 국가애도기간 동안에는 적어도 양쪽으로 갈라진 이상한 구호는 없었다. 그러나 어느새 ‘퇴진이 추모’라는 구호와, ‘추모를 정치화하지 말라’는 구호가 진영적으로 구축되고 말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정치권에서는 참사를 겪은 국민들의 마음에 공감해주는 언행을 찾기가 힘들다. 두 달이 지났다. 국정조사는 시작됐지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요원하다. 유족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덧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불이익으로 여겼던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처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엄호하기 위한 스텝을 밟다보니 어느새 비슷해졌다.
지난 20일 19시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헤이그라운드에서 시민들이 모여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눴다. 민주주의 활동가그룹 빠띠와 청년참여연대가 주최한 행사였는데 사전에 주제와 발제문을 플랫폼에 올려 시민들의 자발적인 피드백이 모일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최성용 연구원(성공회대 냉전평화연구센터)은 세월호와 이태원의 차이점에 대해 “가령 (세월호는) 침몰하는 배나 노란 리본, 가만히 있어라와 같이 풍부한 의미를 담은 상징과 언어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참사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줬다”면서도 “이태원 참사는 그러한 은유적인 상징이나 언어가 없어서 여전히 너무 비현실적인 일처럼 다가온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지금 이태원 참사를 가장 간단하게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언어가 바로 놀러가서 죽었다인데 그래서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 유불리로 가져가는 집단은 “애도를 강요하지 마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그것은 윤석열 정부가 선포한 국가애도기간의 결과다.
정작 애도기간에 대한 반발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들을 향하고 있다. 또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개인의 책임을 말하는 이들은 놀다가 죽었다는 비난과 함께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보상금은 법적으로 규정된 것이라 정부가 임의적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다. 이번 애도 기간은 10월30일에 선포되었다. 10월29일 밤 10시에 사고가 일어났는데 다음날 아직 피해자들의 사망과 생존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애도부터 했던 것이다.
또 양대 진영으로 갈라져서 “애도를 정치화하지 마라”는 구호와, “퇴진이 추모”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최 연구원은 “사회적 참사에 대한 애도는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정치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만 사고되고 환원되는 게 현재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정부여당과 야당의 정치 언어가 애도나 정치와 같은 말들을 오염시키고 다른 애도의 말들을 봉쇄하거나 도구로 활용하면서 가능한 사회적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침묵과 냉소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놀다가 죽었다는 것은 그런 냉소의 표현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최 연구원은 “어떻게 해야 생존자를 살릴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는 이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정권 퇴진을 얘기하는 것은... 정권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정권 퇴진이 됐다면 얼마 전에 돌아가신 생존자가 돌아가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 발제를 하게 된 청년정의당 김창인 대표(이태원 참사 청년추모행동 공동집행위원장)는 윤석열 정부의 무능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국가애도기간 시기에는) 아직 구조 및 의료 업무가 진행 중이었고 희생자 숫자조차 확정되지 않은 시기”라며 “죽지도 않은 사람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국가가 공식적으로 애도기간을 선포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에게 국가애도기간은 참사에 대해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것이 아닌, 망각을 유인해 참사의 성격과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사 직후 갑자기 가족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체육관 같은 곳에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모든 유가족이 핸드폰을 압수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 가족이 어딨는지 물어보는데 알려주지 않고 체육관에 그대로 있어야 했다고 한다. 수 시간 동안 그러고 나서 안내를 받은 곳은 경기도 일산이나 충남 서산에 있는 여러 병원들이었다. 내 가족이 내 자식이 이태원에서 죽었다는데 왜 시신이 일산에 있는지 서산에 있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고 심지어 시신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수시간에 걸쳐 찾아헤맸다.
김 대표는 “참사 다음날 희생자를 찾기 위해 수많은 병원의 응급실을 쫓아다녀야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 14시간만에 나온 사체 검안서 때문에 이틀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이야기 등 상조회사만도 못한 정부의 행정 절차로 인해 유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더욱 커져갔다”며 “정부는 유가족들이 서로 소통하고 위로하기 위한 만남 자체를 차단해버렸다. 윤석열 정부가 유가족들을 정치적 적대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8년 전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참극을 다시 떠올렸다. 더욱이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에 대한 혐오부터 국가 행정의 무책임한 태도와 꼬리 자르기 행태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의 대응과정에서 볼 수 있는 사회 면면은 세월호 참사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11월4일 조계사 추모 위령 법회에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만 표현했지 여전히 유족을 만나 사과하거나 공식 브리핑으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 김 대표는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여왔던 스탠스와 현재 윤 대통령의 패턴이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2014년 4월27일, 세월호 참사 이후 열흘이 조금 넘은 시기에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는 사임을 표명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건 수습을 이유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고, 두 달 뒤 내각 개편 과정에서 마땅한 후보자가 없자 총리 유임을 결정해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도중 사과를 하는 등 공식적 사과를 집요하게 피했다. 2015년 4월16일, 세월호 1주기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 팽목항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좌절하지 말자는 유체이탈 화법을 보였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이상민 행안부 장관 파면은 법적 책임이 드러나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규모 참사에 대해 정부와 여당 그 누구도 책임감을 통감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금과 똑같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비단 윤석열 정부를 넘어 양당체제의 무능함이 곧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참사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 하는 정치적 무능의 기원이라고 역설했다.
이태원 참사 이전과 이후, 거대 양당의 정치는 달라진 것이 없다. 이태원에서 158명이 안타까운 비극을 맞이하고 있을 때, 거대 양당은 민생은 뒤로 한 채 김건희 특검과 이재명 특검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참사 이후에도 전국민이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데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청담동 술자리에 갔느니 마느니, 캄보디아에서 영부인이 조명을 썼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진실 공방을 하고 있었다. 왜 10월29일 이태원에서 국가와 정치가 국민들을 지키지 못 했는지 그 진실에는 양당 모두 무책임했다. 이 모든 것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행위가 정치의 전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지속되어온 서초동 촛불집회가 이태원 참사를 기점으로 촛불행동으로 변모하여 친민주당계를 위시한 윤석열 퇴진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김 대표는 “김건희 특검과 윤석열 퇴진을 구호로 매주 진행된 촛불집회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라는 구호가 하나 더 추가된 것에 불과한 정치적 행위가 추모로 둔갑해있다”며 “퇴진이 추모다는 피켓들 사이에 간간이 보이는 김건희 특검 피켓은, 한국 정치의 파탄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설파했다.
문제는 대중들의 정서가 이와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참사부터 퇴진까지 일직선으로 로드맵을 구상하고 추진해나가고 있는데 대중들은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세월호를 통해 경험했다. 이 괴리감을 해소하기 위해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의 대화가 필요하고 이를 사회적 담론으로 정립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대화와 토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너무나 일찍 생략(포기)해버렸다. 세월호 당시, 박근혜 퇴진 촛불 정세와는 다른 언어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김 대표는 “각자의 이야기를 산발적으로나마 꺼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퇴진이 추모라는 구호는 이 모든 과정과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