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2007년 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 등이 2세대 걸그룹의 시대를 열었고 2009년에는 2NE1, 포미닛, 티아라, 시크릿 등이 모두 터지면서 걸그룹이 대중음악계의 주류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에이핑크는 미쓰에이, 씨스타, 걸스데이, 나인뮤지스가 데뷔한 다음해(2011년)에 모습을 드러낸 2.5세대 걸그룹 중의 하나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인기와 위상을 유지하며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에이핑크는 2012년에 데뷔한 EXID와 AOA, 2014~2015년에 나타난 마마무, 레드벨벳, 러블리즈, 여자친구, 트와이스 등의 선배 그룹으로서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걸그룹이다.
에이핑크가 데뷔 13년차가 된 올해 4월 10번째 미니 앨범을 내고 컴백했다. 앨범 타이틀은 ‘셀프’다. 딱 1년 전 데뷔 11주년 기념 디지털 싱글곡으로 <나만 알면 돼>를 출시했는데 이번에는 타이틀곡 <D N D> 포함 5곡을 수록했다.
우선 <D N D>의 사운드에만 집중해보기 위해 음원을 직접 들어보고, 그 다음에 뮤직비디오와 음악방송 무대를 봤다. 일단 나쁘지 않고 좋았다. 에이핑크만의 청량하고 밝은 컨셉이 유지된 곡이었는데, 솔직히 에이핑크의 메가 히트곡이었던 <No No No> <Mr. chu> 등과 같이 귀에 확 꽂히는 멜로디는 아니었다. 뭔가 <Remember>나 <FIVE>와 비슷한 선율이었다.
아무튼 오랜만의 밝은 곡이라서 좋았는데 그동안 에이핑크는 늘 밝고 청순한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밀어왔다가 2014년 11월 출시한 미니 앨범 5집부터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때 <LUV>의 컨셉은 좀 더 성숙하고 쓸쓸한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D N D>는 ‘Do Not Disturb’인데 말 그대로 ‘방해 금지’다. 방해하지 말라는 건데 멤버 오하영씨는 아래와 같이 그 의미를 설명했다.
나의 갈 길을 가자, 네 방식대로 가자는 내용의 노래다. <No No No>라는 곡으로 많은 분들이 힘을 내셨던 것처럼 요즘에는 또 많은 분들이 사람으로 인해, 사회로 인해 힘들어 하고 고민을 겪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이 노래가 또 다른 ‘힐링 송’이 되었으면 좋겠다.
외부의 압박으로부터 방해 받지 말고 나만의 길을 가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D N D> 노랫말을 보면 정말 <No No No>의 시즌2와도 같은 힐링 송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너를 있는 모습 그대로 믿어봐. 해야 하는 것보단 하고 싶은 걸로 과감하게. Take that 그래도 돼. Oh 행복이라는 건 생각 외로 단순해. 머나먼 저편에 찾아 헤맨 Heaven. 사실 여기 있는 걸. 네 마음의 Room 한구석으로 미뤄왔던 꿈. 더 외면하지는 않길. 때론 아무 대책없이 내일을 낙관해도 괜찮아. 네 마음 속에 가득 쌓인 Dust. 전부 다 털어봐.
<D N D>만 봐도 앨범 타이틀을 왜 ‘셀프’로 지은 것인지 이해가 된다.
(셀프는) 본모습, 자아를 의미하는 단어로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 그냥 '나'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자는 의미를 담았으며, 앨범 내에 에이핑크의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으로 보여주기 위해 멤버 모두가 많은 꾸밈을 내려놓고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었다.
에이핑크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멤버 정은지씨는 “말 그대로 에이핑크의 아이덴티티였던 힐링의 의미가 담긴 곡이 타이틀곡이라 그런지 더더욱 반가운 앨범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자평했고 하영씨도 “가장 에이핑크다운 게 뭘까? 혹은 많은 분들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할까? 생각하다 보니 (팬들이) 가장 본연의 모습을 기대할 것 같았다. 셀프는 당당한 내 자신, 우리들을 보여주자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D N D>는 봄과 어울린다. 여타 흔한 밝은 노래라도 연차가 있어서 그런지 좀 더 성숙한 느낌이 가미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마치 여고생이 이제는 어엿한 회사 대리급 사원으로 자리잡아 동생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것만 같다. 확실히 기존의 밝은 노래들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보컬적으로 보면 <D N D>는 일단 후렴 파트의 음정이 꽤 높다. 여성들이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려면 좀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걸그룹 노래가 쉬워보여도 각 잡고 부르면 굉장히 어렵다. 특히 에이핑크는 기본적으로 보컬 실력이 탄탄한 그룹이다. 메인 보컬 은지씨는 아이돌 전체로 봐도 보컬 실력이 탑티어다. <D N D>에서 리드 보컬 윤보미씨의 파트도 눈에 띄는데 정은지 파트 못지 않게 음역대가 높다. 보미씨는 그동안 에이핑크 곡의 후렴과 고음 파트를 거의 은지씨가 맡고 있어서 부각이 덜 된 측면이 있다. 게다가 보미씨는 팀에서 예능과 피지컬(운동신경)을 담당했기 때문에 보컬적으로 좀 저평가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D N D>에서 보미 파트를 눈여겨보면 참 좋을 듯 싶다.
에이핑크는 2011년 4월19일 <몰라요>라는 데뷔곡으로 처음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2011년도는 대박을 이뤄낸 2세대 걸그룹들의 전성기였는데 그런 트렌드와 맞물려서 수많은 걸그룹들이 쏟아져 나오던 기간이었다. 무려 170여개의 걸그룹이 데뷔했는데 대중들이 기억하는 걸그룹은 에이핑크, 달샤벳, 스텔라 딱 3팀에 불과하다. 스텔라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인해 반짝 주목을 받았을 뿐이고, 달샤벳도 중박 수준이었다. 즉 2011년부터 활동해왔던 걸그룹이 지금까지 살아 남아서 꾸준히 앨범을 내고 있는 걸그룹은 정말 드물다. 물론 아이돌 역사 전체로 넓혀봤을 때 신화(1998년), 동방신기(2004년), 브라운아이즈걸스(2006년), 빅뱅(2006년), 소녀시대(2007년) 등이 해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이제는 원로 그룹이자 레전드 테크가 강해지기도 했고, 몇몇 팀은 일부 멤버의 사회적 물의 등으로 인해 현역 활동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오히려 에이핑크 멤버들은 스스로 괜찮은데 주변에서 “너무 오래된 만큼 앞으로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걸 불식시키고 싶었을 거다. 그냥 우정 그룹으로 남아 2~3년에 한 번꼴로 간간이 활동하는 “의미”만 챙기는 원로 그룹이 아니라 현역 걸그룹의 위치를 가져가면서도 더 오래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에이핑크의 롱런 비결은 뭘까? 컨셉일까? 에이핑크는 초창기에 기존 걸그룹이 했던 공식을 어느정도 차용했다. 이를테면 ‘사랑에 빠진 청순한 큐트 소녀’ 컨셉이다. 사실 청순과 큐트 컨셉은 S.E.S와 핑클 때부터 꾸준히 있어왔던 선택지였는데 오히려 2011년 당시만 해도 지나치게 섹시와 걸크러시 또는 알파걸(포미닛과 2NE1 등) 컨셉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원래 에이핑크도 데뷔 직전까지 대세에 순응해서 걸스힙합 컨셉으로 준비했으나 전략을 선회해서 에이핑크표 청순 모드를 들고 나왔다.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는데 그만큼 에이핑크 스스로 가장 잘 맞는 옷을 골라 입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에이핑크는 한 번에 확 뜨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팬들을 모았다. 물론 멤버들의 매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걸그룹 멤버들은 소위 ‘덕질’을 유도할 수 있는 그런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현재는 탈퇴했지만 11년간 에이핑크에 소속된 손나은씨만 하더라도 비주얼 멤버로 주목을 받았고, 은지씨는 2012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흥행하며 에이핑크의 인지도를 덩달아 상승시켰다. 보미씨는 그야말로 운동돌의 매력이 넘치는데 태권도 공인 3단이 베이스로 깔려 있으며 <아육대>와 <진짜사나이> 등에서 시청자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야구공을 잘 던지는 시구 종결자로서의 능력과 함께 먹방도 잘 하는 멀티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다. 김남주씨는 MBTI 극E의 성향으로 언제나 밝고 붙임성있는 멤버로서 예능미가 넘치는 캐릭터다. 하영씨는 막내 멤버로서 스포츠와 게임을 좋아하는 덕후 이미지가 있으며, 박초롱씨는 맞언니이자 팀의 리더로서 그야말로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다. 실제로 초롱씨는 멤버들의 재계약이 깔끔하게 성사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줬고, 팬들이 인정하는 리더다운 리더다.
물론 연차가 오래된 만큼 에이핑크에게도 시련과 위기가 없었던 게 아니다. 데뷔 초 홍유경씨가 탈퇴했고 그 이후 신화처럼 6명의 구도가 영원할줄 알았는데 나은씨가 탈퇴했다. 이밖에도 초롱씨의 학폭 논란 등 자잘한 구설수들이 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5명이 의리를 다지는 취지로 우정 반지까지 맞추면서 다시 에이핑크 완전체로서 대중들에게 선을 보였다. 통상 에이핑크의 최전성기로 평가 받는 2013~2015년(<No No No> <Mr. Chu> <LUV> 3연속 대히트) 만큼의 주목도는 어렵더라도 꾸준히 활동하는 현역 걸그룹으로서의 위치는 무난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컴백하고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에이핑크 멤버들은 가수 김종국씨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했다.
요즘 인사법이 바뀌었다. 안녕하세요. 에이핑크입니다. 앞으로도 에이핑크입니다. 사실 12년차가 되니까 자꾸 에이핑크가 오래된 것에 있어서 질문이 많으셔가지고 앞으로도 에이핑크입니다. 인사법으로 퉁치려고. 사실 콘서트 하고 나서 저희가 항상 손잡고 지금까지 에이핑크였습니다. 이렇게 했었는데 갑자기 남주가 무대 위에서 언니 아니에요. 저희 계속할 거예요. 앞으로도 에이핑크입니다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너무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