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웅의 정책 스토어] 11번째 칼럼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진웅 성동구의회 정책지원관] 대한민국의 돌봄은 개인 영역인가? 사회 영역인가?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최근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집에 홀로 남겨진 아동들이 화재로 사망하게 되는 비극을 접하면서 마음이 착잡하다. 2020년에도 인천에서 두 형제가 라면을 끓이다가 화마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가 돌봄이 너무 버거워서 ‘자녀 살해 후 자살’하는 사건들도 자주 벌어지고 있다. 이럴 때마다 정치권에서는 너도나도 한 마디씩 내뱉지만 사실 뾰족한 대안은 마련되지 않고 금방 잊혀지고 만다.

돌봄은 궁극적으로 국가적으로 풀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의 돌봄은 개인 영역에 머무르고 있고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과 취약계층의 희생만 강요되는 실정이다. 이번에는 돌봄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2000년대부터 저출산 고령화의 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돌봄 위기가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다. 미미하지만 공공 보육과 공교육 시스템, 무상급식, 방과후 교실 등 다양한 돌봄의 사회화 제도틀이 마련됐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육아휴직은 꿈만 같은 제도였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놓고 부랴부랴 퇴근하여 18시를 훌쩍 넘긴 시간대에 아이를 데려가는 부모들은 어린이집 눈치를 보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사회적 인식 자체가 따라오지 못 했었다. 국가는 방관하기만 했다. 국가가 앞장서서 여성 인권 신장을 외치면서도 워킹맘의 고충은 여전히 심각하다. 돌봄이 사회화되지 못 했고 개인의 일로 남겨졌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사례들이 너무나 많다. 그나마 여성의 육아휴직은 쓰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남성의 육아휴직은 말을 꺼내기가 두렵고 뉴스에 나오는 사례로만 비춰지고 있다.
21대 국회(2020~2024)에서 아동 권리의 증진 흐름과 맞물려서 돌봄 제도 역시 고도화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정인이 사건’ 이후로 아동학대 조사 전담공무원이 생겼고, 학대 피해 아동 즉각분리 제도가 도입됐으며, 이들을 위한 쉼터 설치 근거가 마련됐다. 돌봄 교실도 전면 시행됐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언론 지면에서 기획 기사로 자주 다뤄지는 주제가 바로 맞벌이 부모의 방학 돌봄 공백이다. 돌봄도 돌봄인데 아이들의 끼니를 챙겨주는 문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부모가 각각 휴가를 5일씩 내더라도 방학은 3주 이상이므로 해결하기 어렵다. 돌봄 제도도 있고 돌봄 서비스 제공 인력도 있지만 도대체 무엇이 문제길래 이런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교육과 돌봄이 이원화된 현 시스템과 맞물려 관료화된 교육 집단이 문제다. 본인들은 교육 자치와 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 제공 주체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은 지자체의 몫이란다. 맞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돌봄의 사회화가 온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린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이러한 직역 이기주의는 볼썽사납기 그지 없다. 아이를 둔 가정과 아이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2가지만 제안해보겠다.
첫째, 지자체 중심의 돌봄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제공해야 한다. 통상 지역에서는 지역아동센터, 다함께돌봄센터, 키움센터 등 개별적으로 각각의 니즈에 맞는 대상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충분하지 않다. 현행 돌봄 서비스는 회원제이자 곧 낙인이다. 실제 지역아동센터 지침에 따르면 정원 70% 이상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안배해야 하는데 이는 자식 가진 부모들로 하여금 돌봄서비스 제공기관을 기피하게 하는 낙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다함께돌봄센터는 동네에 몇개 없어서 실질적이지 않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유행하는 팝업스토어와 같이 일주일 내지는 격주 단위로 프로그램을 개설해서 캠프 형식으로 아이들을 끌어모으면 어떨까? 특정 기관에 등록하고 출석하여 서비스를 제공받는 비자율적 비효율적인 기존 서비스 공급체계에 변주를 줄 때도 됐다. 언제까지 전통적으로 서비스 제공기관에 아이들을 앉혀놓기만 할 것인가. 지자체는 지금 당장이라도 연구 용역을 발주해서 캠프 형식의 돌봄서비스를 개발시키길 바란다.
늘 예산이 문제라고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나라살림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전국 지자체 여유재원 현황)에 따르면 2023년 10월 기준 전국 지자체들의 추경 미편성액과 예비비 잔액 합산액이 무려 24조원에 달한다. 총 세출 대비 5.7% 규모다. 한해에 다 쓰지 못하고 남는 예산이 이렇게나 어마어마하다. 또한 50만 시군구의 경우 복지재단이 있는 곳이 있고 후원사업도 한다. 예산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돌봄 문제에 진정성이 있다면 분명 길이 보일 것이고 묘책을 만들 수 있다.
둘째, 교육당국과 지자체는 아동청소년에 최적화된 공공문화복합시설을 건립해서 운영해야 한다. 기존 청소년 수련원은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어서 대안이 되지 못했다. 또한 접근성도 좋지 않다. 따라서 가능하면 동별로 주민센터 등을 거점으로 신축 문화복합시설을 구축하고 지자체 주도로 운영해야 한다. 아이들이 언제라도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문화복합시설이 동네에 있다면 맞벌이 부모나 조부모, 장애부모 등의 돌봄 부담을 다소 덜어줄 수 있다. 복합시설은 아동청소년이 좋아할만한 맞춤형 놀이와 교육 컨텐츠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통제와 감시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고 이용할 수 있는 운영 방침이 중요하다. 나아가 영양가 있는 식단도 제공해야 한다. 어느정도 보호자 부담이 불가피하겠지만 더 이상 회원 등록 절차로 인한 낙인찍기는 지양해야 한다.
필자가 거듭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시대적 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진 만큼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도 전통적인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아동청소년 문화복합시설은 기존의 지역아동센터 모델과는 근본적으로 추진 방향을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 이용자와 보호자에게 지나친 부담이 되어도 안 되고, 감시나 통제는 물론 회원 등록제 방식도 탈피해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공적 돌봄체계를 고민해야 할 때다. 갈수록 태권도 학원과 피아노 학원 등 사교육 뺑뺑이로 내몰리는 아이들의 ‘방과후 돌봄’ 현실을 생각해봤을 때 당국이 책임감을 강하게 느껴야 한다. 구체적으로 교육부는 방학 기간에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돌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는 뭐든지 급속히 변화하는 최첨단 AI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돌봄체계는 철지난 방식에 머무르고 있다. 더 이상 아이들이 돌봄 공백으로 죽거나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바뀌어야 하고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