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제발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2025년 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진웅의 정책 스토어] 1번째 기사입니다. 김진웅 정책지원관은 서울시 성동구의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학 박사로서 배움원격평생교육원 운영 교수로도 재임하고 있는데 그 누구보다 복지 정책에 진심이며 전문성을 갖고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진웅 성동구의회 정책지원관] 국민연금 개혁은 반드시 단행해야 하지만 가능하면 개혁을 미루는 것이 정치 집단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랬고, 윤석열 정부가 그랬으며, 국회도 마찬가지다. 지난 26년간 연금 개혁은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 했다. 잃어버린 26년이다. 하지만 이제 더 미루면 안 된다. 윤석열 정부가 계엄 사태 이후 제기능을 못 하더라도 여야와 관계부처 등은 연금 개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지난 11일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연금 개혁 추진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고 밝혔다. 전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교섭단체 연설에서 “더는 불가능한 조건을 붙이지 말고 모수개혁부터 매듭짓자”고 제안했다. 여야 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에서 공통적으로 연금개혁을 의제로 던졌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모수개혁이란 보험료 상향, 연금액 삭감, 연금 수급 연령 상향 등의 방법으로 보험료를 더 내거나 받는 연금액의 변화를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구조개혁은 제도의 틀을 뒤엎는 것이다. 좀 어려운 개념이지만 확정급여방식(DB), 확정기여방식(DC)으로의 개혁이거나 자동조정장치 등이 구조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잠시 국민연금의 고질적인 문제부터 짚어보기로 하자. 1988년 국민연금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 소득대체율(가입 기간 중 평균 소득에 비례한 연금액 비율)을 70%로 설정했고, 납부해야 하는 월 보험료는 급여의 3%로 한정했다. 이는 근로자가 국민연금을 40년 납부했다는 가정하에 100만원이 평균 급여였다면 평생 70만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나는 급여의 3%를 납부했지만 연금을 받을 때는 내 평생 소득 평균액의 70%를 받는다니! 그로부터 제도 도입 5년 후 김영삼 정부에서 보험료를 6%로 인상했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9%로 상향했다. 하지만 2025년 현재까지 9%의 보험료율은 변동이 없어서 26년간 ‘제자리 걸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연금연구원 등에서는 2065년에는 그동안 쌓아온 연금 재정이 소진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30년 남은 셈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연금 소득대체율을 50%에서 40%로 하향 조정했지만 보험 납부액은 손대지 못 했다. 다수 연금학자들은 노무현 정부에서 보험료를 9% 이상으로 인상했어야 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물론 노무현 정부에서 소득대체율을 조정한 것은 큰 성과라고 봐야 한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국민연금 개혁을 단행한 정권은 전무하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 연금을 개혁했다. 결국 필자가 전언한 바와 같이 그동안의 연금 개혁은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에 갇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 했다. 그래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이 가능하려면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①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 특별법 제정 ②기금운용본부 서울 이전 및 투자 전문 인력 확보 ③기금운용 이사회 구조 변경 먼저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 특별법은 국회에서 서둘러야 한다. 지금까지 연금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의사결정권자로서 국회와 정부가 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금개혁안을 정치권이 단독으로 마련하고 결정하기보다는 연금 전문가를 비롯 투자 전문가, 재계, 노동계가 모두 포함된 공론화위원회에서 의결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공론화위원회의 의결안에 대해서는 고도의 연금제도를 갖고 있는 주요 선진국의 전문가집단으로부터 검토를 받는 프로세스를 거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보다 뛰어난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캘퍼스) 등의 자문을 받는다면 연금의 사회보장적 성격을 지키는 동시에 투자운용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국내 정치사회적 논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공론화위원회 특별법에는 반드시 위원회의 의결안을 국회와 정부가 반영해야 한다는 강행 규정을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두 번째는 기금운용본부를 서울로 다시 이전하는 것인데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규모면에서 세계 3대 연금 중 하나다. 연금 보험료와 운용 수익금 등으로 약 1565조원을 조성하고 연금 급여로 380조원을 지출해서 적립된 기금은 1185조원에 이른다. 국민연금 기금은 가입자로부터 받는 보험료와 투자 운용 수익금으로 구성된다. 현재 연기금은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를 하고 있다. 2024년 11월 말 기준 투자 수익금은 712조원에 달한다. 아직까지는 연금을 받는 사람보다 내는 사람이 더 많고, 연기금 규모가 커서 이러한 수익률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 반대가 되면 수익률은 언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 현재 연기금 규모에서 수익률이 1%만 올라도 연금 소진 시점이 5년 늦춰진다. 2027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됨에 따라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운용할 수 있는 기금액은 급전직하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기금운용 전문 인력의 전문성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기금운용본부 인력은 정원 대비 50명 이상 부족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2017년 서울에서 전주로 기금운용본부가 이전했는데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 주요 증권사들은 서울에 몰려 있다. 투자, 자산운용 관련 정보와 소식들은 모두 서울 안에서 돌고 있고 시장의 분위기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언론 보도를 보면 기금운용본부가 투자 인력을 구하는 어려움이 지리적 제한 때문이라는 주장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인력을 단순 공공기관 종사자로 보면 안 된다. 소속은 공공기관일지 모르지만, 하는 일은 수익의 극대화와 기금운용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역할이다. 기금운용본부를 반드시 전주에 계속 둬야 할 이유가 없다. 세 번째는 기금운용 이사회 구조를 전면 개정하는 것이다.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니 만큼 이사회는 모두 1급 투자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의사결정 과정, 투자, 수익 현황 등을 공시하게 되어 있으므로 운용 전문성은 물론 윤리적으로도 투명하다. 무엇보다 이사회는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체계인데 우리나라처럼 국회가 기금운용본부장에게 투자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훈수를 둘 수 있는 구조이면 안 된다. 캐나다는 기금운용 기구 자체가 관리감독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현재 보건복지부에 공시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명단을 보면 투자 전문 인력이 없다. 지금과 같이 위원회 산하 전문위원 구조로 운용을 해서, 심의 결과와 검토 의견을 참고만 하고, 결정은 이사회 성격인 기금운용위원회가 하는 지배구조를 반드시 손봐야 한다. 굳이 전문 인력을 산하로 두고 투자 지식이 전무한 의사결정자들이 기금운용 지배 구조를 장악하는 현 구조를 그대로 둘 필요가 없다. 필자는 연금개혁을 위해 모수개혁과 구조개혁 둘 다 꼭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지난 26년간 연금 보험료율 9%의 벽을 넘지 못 했던 이유가 우선 모수·구조개혁이라는 늪에 빠져 논의가 진전되지 못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만 한다. 그리고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 정치권에 기대를 걸기 보다는 공론화위원회가 우선이고, 정치권은 공론화위에서 결정된 개혁안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당리당략이 연금개혁 방안에 개입할 여지가 없도록 공론화위에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 제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