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웅의 정책 스토어] 2번째 칼럼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진웅 성동구의회 정책지원관] 지난 2월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에서 국민연금 모수개혁 관련 법안들이 상정되어 논의됐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높이는 데에는 의견을 모았지만 소득대체율을 40~45%의 범위에서 조정하는 문제에 대해선 이견을 좁히지 못 했다. 국민의힘은 현재 연금특위에서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연계해서 동시에 개혁안을 마련하자는 입장인 반면에 민주당은 2월 안에 국민연금을 현행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자는 입장이라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단순히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에 대해 연금 개혁이 아니라, 연금 개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제도는 1988년 도입할 때부터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설계됐다. 처음 도입할 때만 해도 보험료율이 3%에 그쳤고 점차 올라서 김영삼 정부에서 6%, 김대중 정부에서 9%가 된 것이다. 어느덧 35세가 된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처음에 비해 고작 3배 오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험료율 인상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제도의 역진성 부분은 그대로 둔 채 단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개혁이라고 규정하고 밀어부치는 형국은 가히 코미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제시되고 있는 연금 보험료 13% 상향건은 앞으로 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가파르게 증가한다는 점, 국가의 조세 지원 없이 현재의 기금 운용방식으로는 연금 소진은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는 점, 세대 간 이전의 맨 아랫단에 놓인 MZ 세대의 연금제도 불신 등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수 전문가들이 비판하는 국민연금 제도의 역진성 문제에 대해 확실한 대안을 고민하지 않은 채 일단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주장은 손쉬운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그리고 최소 5년 이내 연금을 수급하게 되는 세대는 연금 보험료를 적게는 3%에서 6%, 많아 봐야 9% 밖에 납부하지 않았고 평균 소득의 40%에 달하는 연금을 평생 받는다. 하지만 이제 막 취업 전선에 뛰어든 청년들은 강제로 징수되는 연금 보험료 13%를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에서 내야 하는데 머지 않아 연금 기금이 소진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이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다. 세대 갈등만 유발될 뿐이다.
민주당은 복지위 소위에서 일단 보험료율 13% 인상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보험료율 인상에 찬성하지만 그 외 연금 개혁에 필요한 사안을 연금특위에서 논의한 후 통과시키자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소위에서의 보험료율 13% 인상은 무산됐다. 이는 결국 구조적 논의도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아래와 같이 3가지를 제안한다.
①자동조정장치(확정 급여→기여 방식 전환)
②퇴직 후 재고용제 도입
③단계적 소득대체율 상향
연금 자동조정장치는 많은 학자들이 검토한 바 있고 정부에서도 진지하게 논의했던 바 있는데 실제로 스웨덴(1998년), 독일(2004년), 일본(2004년) 등 OECD 회원국 중 70%가 운용 중이다. 이는 인구구조, 경제지표, 연금재정수지 등에 따라 보험료율과 지급액 및 수급 연령과 같은 모수가 자동으로 조정되는 제도다. 자동조정장치는 재정에 적신호가 들어오면 기여와 급여 등을 법적인 절차에 의존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법 개정으로부터 야기되는 문제들을 줄일 수 있다. 또한 기여와 급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에 가입자와 수급자에게 불안함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지급 능력과 연계시키는 스웨덴, 독일, 일본 등이다. 스웨덴의 경우는 기존의 확정 급여형(defined benefit state plan)을 가상 확정 기여 방식으로 전환하고 지급 능력과 관련된 자동조정장치를 결합하여 운영하고 있다. 즉 미래 자금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예상되면 가상 구좌의 적립금 계산에 이용되는 이율을 평균 임금 성장률보다 낮추고 이에 따라 현재 급여 수준이 낮아지게 되어 지급 규모가 줄어드는 방법이다. 독일은 기존의 확정 급여형을 유지하면서 지속가능인자(Sustainability Factor)라고 불리는 자동조정장치를 사용하고 있는데 기대 수명과 인구 요인을 결합한 것으로 제도 부양비(가입자 대비 수급자 비율)를 이용하여 비율이 높아지면 급여 수준을 낮아지도록 정하는 것이다. 물론 급여 수준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지만 지급 능력 향상을 위하여 기여율도 조정하도록 고안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마크로인덱싱(macro indexing)이라는 재정안정장치를 적용하고 있다. 가입자 수가 감소하고 기대 수명이 증가하여 재정의 어려움이 예측되면 재정이 안정화될 때까지 급여 수준의 삭감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24년에 이르러 한국의 국민연금 기금은 1000조를 돌파했다. 하지만 현 제도상으로는 2065년 즉 30년 후면 기금은 반드시 소진된다. 보험료율을 1%씩 상향하면 소진 시기가 5년으로 늦춰진다. 만약 13%를 올린다고 가정한다면 2085년까지 소진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기대 수명이 예측한 것 보다 의료기술 발달로 인해 연장될 경우 소진 시기는 앞당겨지므로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통해 경제성장률과 들어오는 보험료보다 나갈 돈이 더 많아질 때는 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여건에 따라 연금액은 삭감시키고 보험료율은 자동 상향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음으로 퇴직 후 재고용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도 국민연금 수급 연령 변경과 관련해서 재고용제 도입을 언급한 바가 있다. 다가오는 2033년에는 현행 만 64세에 국민연금 수급권이 발생되는 제도가 변경되어 만 65세로 연령이 연장되는데 이에 따른 소득 크레바스 현상의 심화가 우려된다. 직장에서 퇴직 후 국민연금을 수급할 때까지 소득이 없는 기간을 소득 크레바스 현상이라고 하는데 소위 ‘은퇴 크레바스’라고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50대 초중반에 은퇴해서 64세가 되어 연금을 수령할 때까지 많게는 10년 적게는 5년의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에 은퇴 시점부터 생계 위협이 야기될 수 있다.
그래서 연금 개혁을 논의할 때 퇴직 후 재고용제에 대한 방안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만 하더라도 퇴직 시기와 연금 수급 기간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소득 공백을 슬기롭게 대처한 사례를 갖고 있는데, 공무원과 민간 기업 정년퇴임자가 퇴직 후 연급을 수급할 때까지 계약직 신분으로 고용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해준 것(국장급 정년 퇴임자가 ‘계장급’으로 재고용되어 이전 급여의 70% 수령)이다. 같은 맥락으로 국민연금 주무부처 고위공직자라고 할 수 있는 이 차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임금 삭감을 전제한 퇴직 후 재고용 형태로 64세까지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발언한 대목은 의미가 있다. 이 차관은 무작정 65세까지 정년을 보장해 달라는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면서도 청년 일자리 창출 문제와 세대간 형평성 차원을 고려할 때 퇴직 후 재고용제가 바람직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가뜩이나 국민연금 자체가 세대간 부담 문제로 불신과 반목의 갈등을 켜켜이 쌓아가는 와중에, 청년 일자리도 부족하고 연금 보험료 상승을 청년들에게 부담시키는 것도 억울한데 정년 65세를 보장해달라는 노동계의 요구는 사회적 갈등만 부추기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단계적 소득대체율 정책에 대해서는 그 전에 조세를 통한 기초연금 수급 요건 완화와 점진적 인상을 통한 소득 보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면 소득대체율 인상은 언제부터 적용해야 할까? 앞으로 10년에서 15년 정도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세대부터 소득대체율 45%(자동조정장치 적용)를 적용해야 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소득대체율 40% 적용 요건인 40년 납부 기준을 25년으로 하향하고, 저소득일수록 소득대체율을 더 많이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확정 기여 방식(DB)으로 전환됨에 따른 국민연금의 소득 재분배 성격이 다소 약화되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적합하다.단순히 연금을 많이 부었다고 해서 더 많은 급여를 제공하는 걸 넘어 저소득층이지만 25년간 꾸준히 보험료를 납부한 경우에는 노후를 두텁게 보장하는 취지에도 부합한다.
필자는 이번에 형성된 연금 개혁 담론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라고 평가한다. 야권 주도로 복지위에서 모수 개혁을 논의한 것은 의의가 있으며, 여권에서 구조 개혁을 함께 논의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타당하다. 앞으로도 추진력을 상실하지 말고 좀 더 큰 틀에서 장기적인 안목과 긴 호흡을 갖고 연금 개혁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참고 문헌>
-민기채(2019) [독일 국민연금의 재정계산에 관한 연구: 제도, 목표, 지표를 중심으로/유라시아 연구] 25~43쪽
-이선우, 최일환(2020)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따른 공무원정년 후 소득공백 문제 대응방안 연구/한국공공관리학보] 117~139쪽
-최장훈, 성주호(2014) [자동조정장치를 활용한 국민연금 균형 재정에 관한 시뮬레이션 진단/보험학회지] 59~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