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악’의 정치인 이준석

  • 등록 2025.06.08 14: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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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TV 토론에서 이준석의 성폭력적인 발언을 듣고 충격을 받은 한 시민으로부터 기고문을 싣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준석의 뻔뻔한 태도와, 그 이후 논란이 된 유시민의 망언을 통해 한국 정치에서 ‘기능적 위선’과 ‘위악’이 어떤 의미인지 통찰력이 담긴 글을 써주셨습니다. 세 편으로 나눠서 올리겠습니다. 2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외부 익명 기고 ‘노멀 피플’] 그렇다면 위악의 정치인 이준석은 어떻게 성장했는가? 이준석은 어떻게 전국민이 시청하는 TV토론에서 성가학적 발언을 하고도 ‘문제제기를 위한 것’이라며 양해를 바라는 태도를 취할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인 이준석은 논쟁적이고 공격적인 언행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정치적 입지를 넓혀왔다는 점이다. 1년 반 전으로 돌아가보자. 총선을 앞두고 개혁신당을 창당하며, 그는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제도를 문제 삼았다. 실제로 인구 고령화로 무임승차 비율이 늘어날 가능성은 교통공사의 적자와 맞물려, 실질적인 부담이 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준석은 이 제도를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만 활용하며 정치적으로 소모했다.

 

 

먼저 지하철 운용 적자의 근본 원인은 노인 무임승차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낮은 운임 체계에 있다. 2024년 서울시의회 자료에 따르면 지하철 수송원가는 1760원이었다. 하지만 지하철 요금이 1800원에 도달하려면 4호선 기준으로 약 55분 거리인 불암산역에서 남태령역까지 가야 한다. 이는 4호선 서울 구간의 전체를 지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긴 구간을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지하철의 기본 운임은 1400원이다. 대부분의 이용자는 다른 대중교통과 연계하여 지하철을 타기 때문에 서울교통공사가 실제로 수취하는 금액은 이보다 적다. 서울교통공사의 2024년 재무제표와 수송 인원 통계를 기반으로 자체 분석한 결과 유임승차자 1인당 평균 운임 수입은 약 1159원으로 나타난다. 유임승차자만 놓고 봐도 수송원가 대비 1인당 평균 601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노인 무임승차 제도가 포괄적으로 유지되는 배경에는 사회경제적 맥락이 존재한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38.2%로 OECD 평균(13%)의 3배 이상이다. 1945년 이전 출생자의 빈곤율은 50%를 넘는다. 40년대 후반 출생자의 빈곤율도 44.5%에 육박한다. 초고령층의 빈곤 문제는 이동성과 사회 참여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이들에게 단순한 교통 지원일 뿐 아니라 사회와 연결되는 최소한의 공공 자원이다. 노인들이 자주 찾는 종로3가역 주변에는 저렴한 음식점이나 잔 단위로 판매하는 간이 주점 등이 밀집해 있다. 이곳은 노인들에게 사회적 고립을 줄이고 일상적인 사교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상권으로 기능한다. 한국은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노인 밀집 공간에 접근성을 높이는 무임승차 제도는 노인의 우울증 예방에 기여하기도 한다. 나아가 무임승차는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노인이 참여할 수 있는 경비나 청소 등의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교통비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에서는 이동 그 자체가 노동 참여를 막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하철 적자와 노인 무임승차 제도에는 여러 층위의 논쟁 지점이 얽혀 있다. 그러나 이준석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진행된 김호일 대한노인회장과의 토론 내내, 무임승차 제도 자체를 사회적 비용으로만 규정하며 적자 문제의 원인이 오롯이 노인 무임승차 제도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김 회장이 우리나라의 지하철 요금이 수송원가에 비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 있다고 지적하자 이준석은 이렇게 말했다.

 

이 방송을 듣는 젊은 세대에게 노인들에 대한 무임승차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2200원대까지 지하철 요금을 올리자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수송원가 얘기하시면 좀 곤란하고.

 

그는 내내 약자인 노인을 사회적 비용으로만 간주하고, 유임승차자인 ‘젊은 세대’를 흑자 요소로, 무임승차자인 노인을 적자 요소인양 말했다. 그러다가 노인 복지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이 나올 때면 ‘지하철이 없는 지방 노인들을 위한 복지 재구조화’라는 식의 말장난으로 논점을 슬쩍 비켜가며 논리적인 태도를 가장했다. 마무리 1분 발언에서는 마치 일부 노인들이 도박에 빠져 ‘젊은 세대’의 교통비를 잠식하고 있는 것처럼 발언했다.

 

4호선 51개 지하철역 중에서 가장 무임승차 비율이 높은 역이 어딘지 아는가? 경마장역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게 어떻게 젊은 세대에 받아들여질지 한 번 살펴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해당 역의 정식 명칭은 경마공원역이었다. 그는 굳이 이 역을 옛 명칭인 경마장역으로 지칭했을 뿐 아니라 해당 발언에는 비율을 악용한 통계적 오류까지 의도적으로 담긴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비용 문제가 핵심이라면 무임승차자 인원 ‘비율’이 아니라 ‘총 인원’이 더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무임승하차자 수 기준으로 놓고 보면 경마공원역은 순위권 밖이다. 이 역은 애초에 승하차 인원이 적기 때문이다.

 

도심 인근의 산이나 대형 공원 등을 찾는 노인들이 무임승차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 역에는 농수산물 직거래 시장인 ‘번개장터’가 열릴 때도 있어서 전통시장을 선호하는 노인들이 이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4호선은 서울 인근의 교외 지역이나 서울의 쇠락한 구도심 전통시장을 경유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이런 통계 수치가 나온 것이다. 이준석은 이러한 맥락을 생략한 채 상대를 공격하는 도구로 활용했고 이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일종의 쾌감을 제공했다. 또한 ‘소외된 지방 노인을 위한 복지 재구조화’라는 논점 일탈적 발언을 통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도덕적 우위마저 느끼도록 해주었다.

 

그의 정치는 언제나 이랬다. 복잡한 문제 속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질서와 제도를 단순화하고 약자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아니면 약자를 자기 이익만을 좇는 존재로 그려 전체 사회의 동력을 해치는 이기적인 집단처럼 비춘다. 그렇게 약자를 공격하면서 뒤에 현학적인 말장난을 덧붙여 지지자들에게는 정당한 명분을 쥐어준다. 기능적 위선이 필요한 정치판에서 그는 그렇게 위악을 일삼는다.

 

이번 논란도 마찬가지다. 전국민이 지켜조고 있는 대선 TV 토론에서 그는 성적 학대를 연상케 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이 발언은 자라나는 여성 미성년자들에게 이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을 심어줄 수도 있다. 아니면 성적 학대를 경험한 이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해 고통을 되살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식의 변명을 하며 자신의 표현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문제제기를 위한 방식은 그 외에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는 다만 공격적인 발언으로 주목을 끌고 지지자들에게 정서적 만족을 안겨주는 방식으로 지지를 얻는, 자신의 오래된 정략적 가정을 반복했을 뿐이다. 기능적 위선이 필요한 정치판에서 그는 그렇게 위악을 일삼는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형편 없는 인물이 대선에서 무려 8%(291만표)를 얻으며 정치권의 주요 행위자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공격해 정치적 이득을 얻고 싶어 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기능적 위선이 작동해야 하는 정치판에서 오히려 위악을 무기로 삼아 성장했다는 점은, 지금의 정치 구조가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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