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3 대선 직후 이준석과 유시민에 대한 비판 칼럼을 익명으로 기고했던 ‘노멀 피플’이 돌아왔습니다. 비정기적으로 자유롭게 평범한미디어를 통해서 노멀 피플의 칼럼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평범한미디어 익명 칼럼 ‘노멀 피플’] 2022년 3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설립 1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공직자를 기소했다. 그 대상은 스폰서 검사로 지목된 전직 서울남부지검 형사부 부장검사 김형준씨였다. 공수처의 첫 기소가 검찰 내부의 비위, 그것도 검찰권 남용의 상징처럼 인식되던 ‘스폰서 검사’를 겨냥했다는 점은 기관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진 검사가 금품과 향응을 받고 대가를 제공하는 행위는, 단순한 일탈을 넘어 공권력의 윤리적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로 인식된다. 우리 사회는 그와 같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기관을 설립해볼 정도로 공직자의 금품 향응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 법적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검찰 내부에서 ‘스폰서 검사’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날 경우에는 내부 징계 차원의 단속이 이뤄진 사례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2010년 부산지검 성접대 스폰서 사건이다. 당시 부산지검 검사들의 스폰서였던 건설업체 대표 정아무개씨는 구속된 뒤 검사들의 외면을 받자 “검사들에게 촌지와 성접대를 했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향응 수수 자체만으로도 7명의 검사에게 정직과 감봉 등 징계가 내려졌고, 징계 시효가 지난 검사들에게는 인사 조치나 경고를 내렸다.
물론 스폰서 검사에 대한 법적 처벌은 늘 쉽지 않았다. 강력한 법적 처벌은 금품수수 사실 확인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입증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스폰서 검사 문제는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사안’으로 인식된다. 검사는 기소권을 통해 법적 처벌의 출발선을 결정하며 사법부에 처벌을 설득하는 행정부의 핵심 권력 중 하나다.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사에게 기업이나 이해당사자가 금품과 편의를 제공하려는 유인은 구조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그 유인이 현실화되는 순간, 국가는 법적·윤리적 정당성을 송두리째 잃을 수 있기에 스폰서 검사를 단속하는 일은 중요하다.
기업이나 기업인이 검사에게 반복적으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여 스폰서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유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검사가 있다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수사 단계를 무력화하거나, 기소를 피하거나, 보다 가벼운 혐의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금품 제공을 통해 미래의 이득을 사전에 맞바꾸는 것이다. 스폰서를 만드는 행위는 일종의 ‘도박’에 가깝다. 모든 도박적 행위에는 암묵적 ‘룰’들이 존재한다. 그런 룰들은 다음과 같다.
①과거에 더 많은 돈을 베팅한 사람은 더 큰 이득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②실현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 베팅했다면 그만큼 보상은 커야 한다.
③오래 기다린 사람은 결과를 더 확실히 보장받아야 한다.
스폰서 구조도 이 논리를 따를 것이다. 더 오래, 더 많이, 더 위험하게 금품을 제공한 자일수록 더 큰 영향력을 기대할 것이다. 이 스폰서 구조를 검사 뿐 아니라 예산·인사·정책 결정권을 가진 고위 공직자 전반으로 확장해 보면 스폰서 검사를 넘어서는 훨씬 더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위험이 눈앞에 보인다. 바로 ‘스폰서 정치인’이다.
스폰서 검사를 만드는 이들은 통상 각종 경제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스폰서 정치인을 만들고자 할 때는 그 정치인이 실제로 권력을 잡지 못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치인은 선거라는 불확실한 경쟁을 통과해야만 권력을 가질 수 있으며 대개 선거 전까지는 별다른 직업 없이 캠프를 꾸리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스폰서 입장에서는 정치인을 스폰서로 삼으려면 더 많은 돈을 더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그 대신 정치인이 당선되어 권력을 얻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예산, 인사, 정책 결정권을 가진 고위 공직자가 되며 검사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더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
스폰서 구조를 도박에 비유하면 정치인은 검사보다 훨씬 더 고위험·고보상의 도박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논리적 차원이 아니라 정서적 차원으로 본다면 실상은 더 심각할 수 있다. 검사의 경우 스폰서가 제공하는 금품은 대개 유흥비나 여유 자금 정도로 쓰여왔다. 그러나 정치인의 경우 특히 원외 정치인이거나 생계 기반이 약한 경우에는 스폰서가 제공하는 돈은 실제로 삶을 버티게 해주는 생활비 혹은 자녀 교육비, 주거 비용, 사무실 유지비 같은 절실한 항목들이 된다. 이 경우 정치인의 입장에서 돈은 단순한 ‘베팅’이 아니라 정치인의 나날을 지탱해준 정서적 빚으로 자리 잡는다.
이와 같은 관계 안에서는 “내가 어려울 때 당신이 도와줬잖아”라는 말 한 마디로 정책 방향이나 예산, 인사, 공천에까지 은밀한 영향력이 스며들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계산의 언어보다 더 끈끈하고 위험한 것은 바로 “정으로 맺어진 채무 관계” 그리고 그 정서적 의무감이 권력 행사에 작용할 가능성이다. 결국 스폰서 정치인은 정치인의 생계를 책임졌던 정서적 유착과 스폰서의 계산된 기대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오랜 시간 동안 가족처럼 곁에 있어준 후견인의 요청을, 권력을 쥔 정치인이 냉정하게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반대로 스폰서 입장에서는 ‘내가 여러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널 만들었다’는 확신과 함께 공적 결정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가 지속된다면 권력은 점점 ‘공공성’이 아닌 ‘사사로움’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이다.
스폰서 검사가 발견될 경우 징계가 내려졌다. 형사처벌이 어렵더라도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지금 스폰서 정치인의 가능성이 제기됐던 신임 김민석 국무총리에 대해서도 우리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김 총리의 청문회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청문위원의 이름만큼이나 사업가이자 정치인 강신성씨의 이름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미국에 유학 가는 동안 자금을 지원받은 경로도 강씨에 의해서다. 물론 청문회장에서 김 총리는 이를 두고 배추 농사에 대한 투자금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억을 투자하고 3년간 매달 일정한 금액으로 450만원씩 수익을 거두어서 받고 원금 2억원을 회수했다는 걸 투자의 결과라고 납득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투자 수익률 27%에 매달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었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투자에서 폭등한 해들을 제외하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연 10~20% 정도이며 변동성도 크기에 수익을 거두는 시점도 불안정적이다. 매달 단위로 연 27% 수익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투자처는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월 450만원은 강씨가 원조해준 유학 자금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강씨의 흔적은 김 총리의 인생 여러 지점들에 걸쳐 나타난다. 김 총리는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유죄 선고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강씨는 불법 정치자금 후원자 중 1명으로 2억 5천만원을 지원했다. 또한 2018년 김 총리는 11명으로부터 총 1억 4천만원을 ‘대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4천만원의 자금은 강씨로부터 나왔다. 2.5%의 낮은 금리와 5년의 변제기에도 불구하고 만기일(2023년)까지 아무도 독촉이나 소송을 하지 않았으며 총리 지명 이전까지 변제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을 보아 단순한 대출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스폰서 정치인은 이토록 위험하다. 그러나 일부 원외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말한다. 정치 자금의 유통 경로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고 선거는 돈 없이 치를 수 없으며 정당은 체계적인 후원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인간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하헌기 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김 총리의 논란에 대하여 공직 검증의 기준을 가족 문제나 과거 품행이 아니라 “그 권한을 사익을 위해 남용했는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김 총리는 “권력을 통해 누군가에게 대가를 주거나 사적 이익을 취한 흔적이 없기 때문에 총리 후보로서 결격은 없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하 전 부대변인은 더 나아가 현행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정당법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다. 선거가 없는 시기에는 후원금 모금에 한계가 있고 원외 정치인의 경우 공식 사무실 운영조차 위법이 되는 현 제도는, 결국 스스로를 생계 유지조차 못하는 상태로 내몬다는 것이다.
정당은 길러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치인을 길러낼 수 있는 자금 구조는 전혀 마련하지 않는다.
이것만큼은 우리가 공론장에서 논의해야 하는 문제다. 김 총리의 자금 흐름, 특히 강씨로부터 수년간 생활비를 받았다는 사실도 하 전 부대변인의 시각에서는 단순한 ‘스폰서 유착’이 아니라 구조 속에서 생존을 도모한 정치인의 고육지책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에 대한 논란을 단순히 구조의 문제와 도덕성의 문제로 구분 짓고 ‘구조의 문제이니 개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논리로 이어가는 것은 옳은가? 그렇지 않다. 이 구조 안의 모든 원외 정치인이 그와 같은 스폰서를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총리가 그러한 금전적 조력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그가 한때는 집권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명망이 있었던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원외 정치인들은 정치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당장 하 전 부대변인 본인도 이번 대선이 끝나고 육체노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겠다고 한 적이 있으며 당의 선배에게 ”경선도 본선도 최선 다해서 하고 끝나면 공구리 치러 갈라고요”라고 말한 바 있다고 SNS을 통해 고백했다.
개혁신당 소속 이기인 최고위원도 건설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따라서 김 총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전방위적인 스폰서를 받으며 정치를 지속해온 것은 단순히 구조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취약한 구조에서 정치적 유명세가 있는 원외 정치인이라는 약한 고리가 있었고 그 약한 고리 중 하나인 김 총리의 정치 자금에 대한 공적 의식이 상당히 약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김 총리는 이 논란만으로 총리직 제안을 거절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김 총리의 총리직 수행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국회 인준과 공식 임명 절차까지 마무리됐지만 필자가 구체적으로 김 총리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갖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밝히도록 하겠다. 그렇지만 스폰서 논란에 대해서 만큼은 김 총리의 분명한 입장 표명이 재차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강씨와의 금전적 관계가 있었음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강씨가 이득을 얻는 일은 없을 것이고,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시에는 자신이 더 이상 공직을 수행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하더라도 필자는 김 총리에 대한 반대 의사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가 계엄과 탄핵 국면 당시에 보여준 공적인 일을 처리하는 방식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 논지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