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민의 산전수전'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2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24번째 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올해는 봄이 빨리 찾아올까 싶었는데 3월말 강추위와 함께 눈이 내리기도 했다. 지난 이야기에서 문체부 인력양성 사업(디지털테크 투어리즘) 연구원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다고 독자들에게 알려드렸다. 그런데 해당 사업 관련 융합 전공이 세종대 일반대학원에 개설돼 있으니 희망자에 한해 신청을 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일단 전공 소개부터 살펴봤다. 디지털테크 투어리즘 융합 전공은 급변하는 디지털 기술과 관광 산업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관광 서비스와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둔다. 더불어 전통적인 관광학과 더불어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사물인터넷, VR, AR 등 최신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여 관광객의 경험을 혁신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공이다. 또한 관광 산업의 현황과 미래 트랜드를 분석하고 관광지 추천 시스템, 스마트 관광 시스템, 가상 관광 체험 등 디지털 기술 기반 솔루션을 연구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관광지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이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광객의 요구를 반영하는 시스템 개발 능력을 함양하며 지속가능한 관광 개발, 로컬 관광지 활성화, 관광객 경험 개선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전공이다. 지난 관광학 석사과정 내내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와 일맥상통했고 석사 논문에서도 다뤘던 것이 디지털과 관광산업 융합이었다. 망설임 없이 해당 융합 전공을 신청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호텔관광경영학 박사학위와 더불어 공학 박사학위까지 수여된다는 점이다. 나는 현재 관광학과 법학(성균관대 법학 석박사통합과정을 병행하고 있지만 이번 학기는 휴학) 이중 전공을 하고 있고 두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서 강단에 서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여기에 공학 박사까지 되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법학 세부 전공이 저작권법인데 빅데이터 기술을 통한 저작권 침해가 나의 연구 주제라서 관련성이 깊다. 결론적으로 두 분야 대학원 과정을 수행하느라 숨가쁘게 달려왔던 내가 얼떨결에 세 분야에 발을 걸치게 됐다. 지난 나의 글들을 읽어보면 두 분야를 감당하는 것도 벅차서 힘들어 했으면서 미쳤다고 세 분야에 뛰어드냐고 질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선택이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란 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보려고 한다. 무턱대고 뛰어든 것이 아니고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결정을 했다. 굳이 나누자면 법학, 관광학, 공학이지만 겹치는 연구 주제가 많다. 그래서 내 스스로 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학술적 전문성을 갖춰 언제든지 자문할 수 있을 정도의 학자가 되기 위해 앞만 보고 정진할 것이다. 아마도 힘든 일이 많고 어려움이 클 것이다. 하지만 포기는 없다. 끝으로 1학기도 어느덧 중간고사 기간으로 향하고 있는데 나처럼 대학에 있는 모든 학생 독자 여러분들 시험 잘 준비해서 치르길 기원하고 응원하고 싶다.
※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23번째 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새학기(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가 시작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복학을 결정하기까지 고민과 걱정이 많아서 잠을 설칠 정도였지만 막상 복학해보니 시작이 좋았다. 오랜만에 지도교수를 찾아뵙고 인사드렸는데 따가운 충고가 아닌 내 건강을 걱정해주는 격려의 말과, 남은 학기 일정과 연구 계획에 대한 따듯한 조언을 들었다. 위축되어 있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됐다. 또 다른 선물과도 같은 일도 있었다. 타 교수로부터 문체부 인력양성 사업(디지털테크투어리즘) 연구원 참여 제안을 받았는데 경험과 소득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마침 직장이 없는 4대 보험 미가입자만 참여할 수 있었는데 발목 수술로 마땅한 생활비를 충당할 일을 할 수 없는 나로써는 안성맞춤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문득 불행에 너무 익숙해서인지 이런 좋은 일들이 생기면 퍼뜩 불안감이 든다. 얼마나 안 좋은 일이 또 닥치려고 이러는 걸까? 근데 새학기 시작부터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일희일비는 금물이다.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전공 수업이 하나 있는데 수강생의 90%가 원어민이다. 한국인 학생은 나 포함 단 4명 뿐인데 나는 영어 공포증이 있다. 첫날 오티 때 담당 교수께서 커리큘럼을 영어로 설명한 뒤 남은 시간 동안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도록 시켰는데 당연히 영어로 해야 했다. 정말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은 순간이었다. 나는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하더라도 낯가림이 좀 있어서 말을 유창하게 하기 어려워하는 편인데 하물며 영어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나마 영어를 읽고 쓰는 것이라면 잘 할 수 있지만 말하기는 너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 순서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양해를 구하고 혼자만 한국말로 소개를 했다. 교수께서 내 소개를 듣고 외국인 학생들에게 영어로 통역 전달을 해줬는데 민망함에 닭살이 돋아 너무 힘들었다. 영어로만 이뤄지는 수업을 4개월간 감당할 수 있을지 앞으로 험난할 것 같다. 한편으로는 20대 때 태국과 필리핀에서 일했던 경험(스쿠버다이빙 강사)이 있는데 왜 그때 자연스럽게 어학연수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인지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너무 후회가 되지만 앞으로 영어 수업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해려고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이왕 할 거면 즐겁게 해보자. 해병대 부사관 출신으로서 “안 되면 될 때까지! 불가능을 모르는 전천후 해병대”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임하면 그깟 영어 하나 극복하지 못 할 일이 아니다. 참고로 나는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강해서 메일과 SNS 아이디를 전부 ‘marine’으로 쓰고 있다. 아직 새학기 초반이지만 분명 이번 학기 내내 영어 해프닝과 같은 장벽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해병대 정신으로 슬기롭게 대처해간다면 다 잘 될 것이라고 자기 암시를 걸어본다. 해병대 로보캅으로 불리는 이정구 교관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힘들 때는 많은 생각을 하지마. 누군가 날 보고 있다고 생각해. 부모 만큼은 나를 주시하고 있다. 나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잘해야 된다. 뒤처지면 안 된다. 이런 생각들을 가져야 한다. 뼈에 새기고 싶을 만큼 공감하는 말이다. 그렇다. 여전히 나는 종종 이중학적(성균관대 법학 석박사통합과정을 병행하고 있지만 이번 학기는 휴학) 그거 뭐 하러 해? 왜 굳이 사서 고생하면서까지 박사학위 2개를 취득할 필요가 있어? 이런 부정적인 말들에 노출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을 떠올린다. 여전히 날 위해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당장 이번 학기를 잘 마치는 것이 단기 목표다. 과거 해병대 부사관 훈련 과정을 마치고 하사 임관식이 열리던 날 부모님께서 직접 정복에 계급장을 달아주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장남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그 미소를 보고 싶다. 법학과 관광학 모두 박사학위를 취득해서 두 전공을 접목한 나만의 특기를 살려 대학 강단에 서고 싶다. 그렇게 아버지의 자랑이자 어머니의 자부심이 되고 싶다. 평범한미디어 독자들도 힘들고 지칠 때면 부모님 만큼은 지금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여기고 포기하지 마시길 바란다. 잠시 넘어지고 쓰러지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응원하겠다. 우리 모두 파이팅이다!
※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22번째 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또 다시 새학기가 다가오고 있다. 나는 두 대학 두 전공 석박사 과정(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과 성균관대 법학 석박사통합과정)을 밟고 있다가 2024년 2학기에 휴학을 했고 이번에는 세종대만 복학하기로 했다. 초중고 시절부터 대학원에 다니는 지금까지 새학기를 맞이할 때면 늘 설렘과 기대감이 있다. 동시에 걱정도 앞섰다. 이번 학기는 의미가 깊다. 2025년 한해 동안 두 학기를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2026년 1학기만 마치면 박사과정을 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학기가 시작되면 온전히 학업에 집중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를 명확하게 정하지 못 했는데 이번 학기 안에 확정해보려고 한다. 나아가 학위 논문을 제출하기 위한 학술 논문 게재도 의무사항이라서 올해 안에 준비과정에 돌입해야 한다. 해야 할 일들이 많다. 1학기 때도 그렇고 2학기 때도 그렇고 참으로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 복학을 앞두고 자취방도 옮겼다. 이사를 갔는데 그야말로 신상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대학원 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로 이주해온지 벌써 2년이 흘렀는데 나는 예전부터 원룸살이를 했고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5평 남짓한 작은 원룸인데 중간에 남동생까지 서울로 올라와 취직을 하게 되면서 같이 살게 됐다. 5평 원룸에 성인 남성 2명이 함께 사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방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생과의 생활 패턴 차이로 인한 불편이 컸다. 나는 밤새 과제와 논문을 써야 해서 불을 켜놓고 컴퓨터를 한 적이 잦았는데, 동생은 직장인으로서 일찍 자야 했기에 피해를 봤다. 그래서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마자 12평짜리 투룸을 찾아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막 이사를 완료했는데 새로운 자취방이 낯설지만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다. 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대학원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기쁘다. 새학기와 새집.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타이밍인데 마음가짐마저 새롭다. 앞으로 순탄치 않은 나날들이 예상된다.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학업과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녹초가 되는 순간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지만 잘 극복하고 슬기롭게 대처할 것이다. 성대 법학 석박사 과정은 이번에 휴학을 연장했는데 1년 반의 공백이 불가피해졌다. 언젠가 법학 논문을 써야 하는데 감이 무뎌지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번 학기 틈틈이 법학 논문을 읽고 쓰는 연습을 잊지 않고 수행할 것이다. 사실 큰틀에서 보면 관광학과 법학은 사회과학 분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구방법론은 많이 다르다. 논문 작성 방식이나 인용 및 참고문헌 표기법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 두 전공의 연구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주의사항들이 많다. 실제로 과거 법학 소논문 과제를 제출했을 때 관광학 논문 작성법을 차용해서 깨진 적이 있는데 이런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신경써서 체크해야 한다. 이쯤이면 나에게 상기하는 다짐들을 다 적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평범한미디어 독자들도 나처럼 새학기를 맞이하는 경우가 있을텐데 청소년이라면 새로운 학급에서 부디 잘 적응하길 바라고, 대학생/대학원생이라면 치열한 수강신청 경쟁에서 성공하길 빌겠다. 시작이 반이라고 산뜻하게 시작하면 한 학기 전체를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21번째 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산전수전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났고 나의 ‘인생록’이나 다름 없는 20개의 글이 나왔다. 직접 겪은 일들을 글로 풀어 쓴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처음에 제안을 받고 시작할 때만 해도 10부까지 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매번 내 인생에는 이슈들이 발생했고 그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풀어내다보니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21번째 글은 무슨 주제로 써볼지 고민이 됐는데 결혼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마침 30대 중반이 된 만큼 주변 친구들이나 군대 동기들, 사촌 동생의 결혼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나도 결혼 생각을 해보게 됐다. 사실 내 또래의 결혼 소식에 큰 동요는 없었다. 좋은 사람 만나서 갈 때가 되니 가는가보다 싶었다. 그러나 사촌 동생 몇몇이 결혼을 하니 명절 단골 멘트를 많이 듣게 됐다. 골치 좀 썩었다. 사촌 동생들과 나이 차이도 좀 나고 친가에서는 내가 장손이기에 “언제 결혼할 거냐? 만나는 여자 있냐?”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있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그동안 연애했던 여자들 중 결혼을 결심할 만큼 진지했던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워낙 완벽주의자라서 그런지 인생 중대사 결혼을 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앞섰다. 그래서 먼저 이별을 고했던 적이 꽤 있다. 적어도 한국에서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신혼집 전세보증금과 예식장 비용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편견을 갖고 있다보니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이런 결혼관을 고쳐먹으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지만 지금 연애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 오랜 벗이나 나의 멘토 동욱이나 용운이에게도 말하지 못 한 가정사가 있다. 우리 부모님은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았지만 별거 중이다. 자세한 사유를 미주알고주알 말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졸혼”과 유사하다. 벌써 졸혼생활이 10년 가까이 됐다. 나는 어머니와 살고 있어서 아버지쪽과는 연을 거의 끊은 상황이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연애와 결혼에 트라우마가 있다. 요즘 시대에 이혼과 졸혼은 전혀 흠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만나게 될 연인에게 나의 가정사를 알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실제로 오래 사귄 연인과 결혼 얘기가 나오고 상견례를 할 것 같은 타이밍이 되면 일부러 모질게 굴고 상처를 주면서까지 이별로 치닫곤 했다. 나 스스로도 알고 있다. 나의 생각과 언행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비겁하다. 치부도 아닌데 치부로 여기며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맞다. 그런데 최근 어린 사촌 조카와 만나 놀아주고,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의 두돌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날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근데 뭔가 두렵다.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어머니는 나의 연애관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데 안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아 “늘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부담 갖지 말고 연애를 해보라고 권하는데 오히려 내가 어머니께 죄송스럽다. 그동안 날 위해 고생을 많이 한 어머니에게 손주라도 안겨드리는 것이 자식 도리에 맞는 일일텐데 아직 나는 학업에 매진하고 있는 처지라 쉽지 않다. 지금으로선 당장 닥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무사히 마치는 것이 우선이다. 연애와 사랑이라는 것이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준비와 계획을 갖고 하고 싶다. 언제 결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해야 한다면 학업을 마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해볼 생각이다. 이상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외모적으로는 보이시한 여성을 선호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내가 대학 교수의 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학계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면 참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 할 고민이 있을 때 들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씨를 갖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동안 산전수전에서 주로 건강과 학업 또는 과거의 고난을 풀어냈던 적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하소연하며 털어버리고 싶었다. 이제 마치고자 한다. 매서운 한파와 폭설이 지나가고 날씨가 점점 따듯해지고 있다. 금세 봄이 올 것만 같다. 평범한미디어 독자들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고 행복한 겨울나기 되시길 기원한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20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2024년 여름 양쪽 발목 수술과 재활 기간까지 고려해서 두 대학 석박사 과정을 잠시 멈췄다. 2024년 2학기에는 휴학을 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충분히 쉬면서 죽마고우 윤동욱 기자와 여행도 많이 가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동욱이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곁에서 격려해주며 우정 여행의 동반자로서 함께 해주지 않았다면 심신이 지쳐있는 내가 정신건강을 챙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아가 대학 동기 용운이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최근 동욱이와 용운이 셋이서 태안으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숙박비와 차량 렌트비를 부담했는데 두 친구에게 보답하는 의미가 있었다. 평소와 달리 먼저 나서서 운전도 더 많이 하고 바베큐장에서 고기와 조개를 구웠다.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이라서 그런지 두 친구는 “웬일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괜히 미안했고 그동안 친구들에게 소극적인 태도로 도움만 받았던 나의 삶을 반성하기도 했다. 사실 태안 여행을 갔을 때 경북대 강사 임용 결과 발표가 있었다. 여행 마지막날 이동 중이었는데 불합격 문자를 받았다. 허탈감과 아쉬운 마음이 들어 다시 운전대를 잡는 것이 어려워서 동욱이가 대신 운전을 했다. 두 친구 모두 위로의 말을 건넸는데 나 혼자였다면 불합격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고 좌절하며 방황했을 것 같다. 친구들 덕분에 쉽게 떨쳐버릴 수 있었다. 이제 2025년 새학기가 다가오고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개월의 안식년이 마무리되고 있다. 복학할 것이냐? 휴학을 연장할 것이냐? 양자택일의 갈림길과 마주했다. 많은 고민을 했고 인생 계획을 세워봤을 때 결론적으로 관광학(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만 복학하기로 했다. 법학(성균관대 법학 석박사통합과정)은 관광학을 마스터하고 재개하기로 했다. 주머니 사정도 그렇지만 건강 문제가 100% 정상 컨디션이라고 볼 수 없는 만큼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무엇보다 성대는 1년간 휴학을 할 수 있고, 외국어 자격시험 대체와 학술 논문 게재 등을 활용한다면 수료 스케줄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두 전공 모두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타이밍도 얼추 비슷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2024년 1학기 당시 건강 문제로 시달리며 빡센 학업을 이어가느라 죽을 만큼 고생해서인지, 복학을 앞두고 괜한 걱정과 두려움이 든다. 그동안 창업 실패, 채무 청산, 온갖 부상과 수술 등 숱한 시련들과 도전의 맷집과 경륜이 있는 만큼 반드시 내가 목표하고 있는 학업을 완수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나는 군복무를 해병대 부사관으로 마쳤다. 군대에서 늘 마음에 되새겼던 “안 되면 될 때까지”와 “불가능은 없다”는 해병대 정신으로 버텼는데 두 전공 박사가 되는 그날까지 묵묵히 학업에 정진할 것이다. 끝으로 설 연휴도 다 지나가고 있는 지금 평범한미디어 독자들도 새해 목표와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다들 너무 멀리 있는 장기 목표로 인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작은 단기 목표부터 차근차근 이행해보시길 바란다. 새해 복 많이 받고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9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해가 바뀌고 괴롭고 힘들었던 삼재 기간도 다 끝났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언제나 나 홀로 삼재의 늪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경북대 강사 공개채용 최종 임용 후보자 공고가 발표되었는데 불합격했다.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하고서 2차 면접을 치르러 갔을 때만 해도 서류 합격자 중 1명이 면접에 불참하면서 경쟁률이 2대 1이었던 만큼 합격할 가능성이 좀 높다고 봤다. 나름 차분하게 면접도 잘 치렀다고 판단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불안하고 초조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부족해서 떨어진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내가 합격할 수 없는 채용 공고였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갈수록 대학의 채용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견지해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합격자를 내정해두는 식의 비리가 많다. 실제로 면접 중 “관광 법규 강의 외에 어떤 강의를 더 진행하실 수 있는가”란 질문을 받았는데 이미 내정자를 두고 있는 것 같다는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미리 답변을 준비해놨던 법학과 호텔관광경영학을 병행하고 있는 이중학적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질문이었다. 보통 법학 전공자들은 복수전공을 하면 유관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정치학, 행정학, 경영학 등을 선택하는데 나 또한 경영학과 무역학 중 고민을 했었다. 결국 경영학을 택했고 하위 분야로 깊숙이 들어가서 호텔관광경영학으로 구체화했다. 나는 바텐더와 스쿠버다이빙 강사도 했고 관광 가이드 경력도 있는 만큼 관광학과 법학을 접목해보고 싶었다. 이러한 취지로 현재 두 대학에서 두 전공의 석박사 과정(성균관대 법학 석박사통합과정과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는데 면접관들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요 교육 및 연구 경력이 전무하다는 점이 뼈아팠다. 면접관들이 이 대목을 파고들었다. 나는 해병대 부사관 출신으로서 상대적으로 또래들에 비해 뒤늦게 대학으로 돌아왔다.석박사 과정을 시작하게 된 시점도 좀 늦었다. 대학 동기들 중에는 전문연구요원 제도로 병역을 해결하고 빠르게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이미 연구원이 되거나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타인의 시선과 비교의식에 민감한 나로서는 친구들의 속도를 따라잡고 싶지만 쉽지 않다. 물론 사정상 대학원과 직장생활을 병행해야 했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비록 면접관들로부터 교육과 연구 경력으로 인정 받는 활동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 활동들이 삶의 밑거름이 되어 탄탄하게 받쳐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왜 나는 연구 경력을 못 쌓았을까?”라는 현실적인 자책을 하게 된다. 자꾸 그런 마음이 들어 한계를 느끼게 된다. 요즘 알바를 뛰려고 해도 경력자만 찾는다는 하소연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뼈저리게 와닿았다. 이번에 대학 강사 채용 준비를 하면서 여러 정보를 찾아봤는데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라는 법률의 존재를 알게 됐다. 강사법은 2010년 조선대 시간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탄생하게 된 법률인데 강사의 처우 개선과 고용안정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비정규직법의 부작용과 같이 비용 부담을 이유로 대학들이 강사법의 제약을 받지 않기 위해 온갖 편법을 쓰게 된다는 점이다. 1년 고용 보장, 교원 지위 향상, 4대 보험 보장 등을 해주지 않기 위해 초빙교수나 겸임교수의 형태로 편법 채용을 하는 행태가 만연하다. 대학이 원하는대로 고용 조건을 짜서 강의 인력을 구하는 것인데 통상 수도권 사립대에서 강의하는 시간강사는 한 학기당 250만원을 받는다. 석달 반 동안 250만원이면 월 90만원을 받고 강의를 하는 것이며, 동하계 방학 기간을 빼면 학기당 수업 3개를 맡아야 연봉 1500만원 가량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대학은 그렇게 초빙교수라는 이름으로 강사를 헐값에 쓰고 있는데 강사법으로 인해 이러한 초빙교수 채용 꼼수가 더 많아졌다. 겸임교수도 마찬가지다. 이미 직장이 있는 겸업 형태이기 때문에 강사료의 절반만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잠시 생각해보자. 여러분들이 다니는 대학에서 고등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교육인에게 과외 알바만도 못 한 돈을 지급하고 있다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석박사 과정만 밟았고 이번에 처음으로 대학 채용에 임해봤는데 여러모로 씁쓸한 현실의 벽을 체감하게 된 것 같다. 그래도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하면 되는 건지 나름대로 방향성을 얻은 만큼 긍정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부족한 부분들을 더 채우고 보완해서 다음에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다시 도전해볼 것이다. 끝으로 다가오는 민족의 대명절 설날 연휴를 맞아 평범한미디어 독자들 모두 안전운전 하시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8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어느덧 2024년이 저물고 2025년 새해가 왔다. 다섯달 동안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 했는데 평범한미디어 독자 여러분에게 생존신고를 하기 위해 다시 글을 써보려고 한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쉽지 않았던 다섯달이었다. 지난 여름 양측 발목 수술을 받고 힘겨운 재활치료를 견디니 무더위가 지나갔다. 그렇게 매서운 한파가 찾아올 때쯤 재활이 막을 내렸다. 내 친구 동욱이(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의 여행기를 보면 알겠지만 한라산까지 등반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진 것 같다. 발목이 드디어 괜찮아졌구나 싶을 때쯤 무릎과 발목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해병대 부사관 복무 시절 좌우측 무릎을 다쳐 수술을 받았는데 다시 도진 듯 싶다. 그래서 다시 무릎 치료에 들어갔다. 나아가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손을 잘못 짚은 바람에 엄지손가락 힘줄이 부분 파열돼서 의사로부터 수술 소견을 들었다. 올여름 내내 발목 재활로 고생했는데 또 다른 수술과 재활이라니? 참으로 막막하다.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퀘스트 깨기가 내 인생의 숙제인가 보다. 엎친데 덮친격 엄청난 의료비를 충당해줄 보험 역시 날 도와주지 않고 있다. 발목 문제는 직전 일터에서 근무중 다친 것이라 산재 신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행정소송을 하기 위해 알아보니 필히 변호사나 노무사를 선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선임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포기했다. 급한대로 실손보험금이라도 받기 위해 지급 신청을 했는데 보험사에서 날 의심하는 건지 손해사정사까지 동원해서 현장조사를 하고 있으며, 보험 실무 담당자는 계속해서 내 전화를 피하고 있다. 그로 인해 또 다시 신용불량자의 위기에 처했다. 신용카드 할부로 수술비를 긁었는데 대금을 못 내서 채권 추심을 당하기 직전이다. 정말이지 지난 과거로 역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과거에 사업 실패로 1억이 넘는 빚을 지고서도 이겨낸 적이 있다. 그 시절이 참으로 아팠지만 깡과 맷집을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그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나씩 실타래를 풀어보자. 나는 나름 기능인이다. 온갖 자격증들을 보유하고 중인데 그중 1종대형면허와 특수면허가 있다. 이를 활용해서 화물운송업과 시내버스 기사, 택배기사, 배달업 등등 일거리를 알아봤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썩 내키지 않았다. 현장 노동에 내 인생이 잠식되기 시작하면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나의 학문적 삶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잠정 보류하기로 하고 현 상황에서 나에게 적합한 다른 일들을 찾아봤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조급해질 때마다 고향 함평에서 죽마고우 동욱이를 만났다. 수다를 실컷 하고 나니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동욱이와 11월 내내 매주 만나서 여행을 다녔다. 여수, 군산, 전주, 안동, 문경, 제주 등등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것을 맘껏 먹으며 상념들을 날려버렸다. 동욱이는 퇴근 직후 출발 또는 겨우 맞은 평일 비번을 써서 가는 여행임에도 싫은 내색 없이 즐겁게 임해줬다. 되려 “친구끼리 언제 또 여행 갈 수 있겠냐”면서 운전까지도 로테이션으로 맡아줬다. 내 삶의 난제도 여행 중에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숙소 침대에 누워서 대학 강사 구직 정보를 찾아봤는데 경북대 관광과에서 ‘관광 법규’ 과목을 가르칠 시간강사 공고를 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됐다. 석사학위 취득자 이상이면 지원이 가능하기도 하고, 이전 칼럼들에서 숱하게 설명했듯이 나는 관광(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과 법학(성균관대 법학 석박사통합과정)을 각각 다른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나의 기우 본능이 발동했다. 주요 교육 및 연구경력이 부족했던 만큼 조금 망설여졌다. 지원하더라도 서류 전형에서 광탈하지는 않을까? 옆에 있던 동욱이에게 말했는데 “뭘 망설이고 있어! 해보지 않고 후회하느니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지원해봐!”라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동욱이다. 이번에 대학 강사직 채용 과정에 지원을 해봐야 나중에라도 보완을 해서 다시 도전해볼 수 있다. 어차피 나의 최종 목표는 대학 강단에서 교수로 근무하는 것이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동욱이의 격려 덕분이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서류 전형에 합격해서 면접을 볼 수 있게 됐다. 면접 예상 질문 리스트를 뽑아서 연습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다. 다음 칼럼에서 합격 여부를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평범한미디어 독자들의 좋은 기운과 응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연말연시 따뜻하고 힘이 되는 소식들로만 가득했으면 좋겠는데 계엄 사태와 더불어 안타까운 참사로 인해 온국민의 마음이 심란하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슬퍼하고 있을 유가족들에게 진심을 담아 애도를 표하고 싶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7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이번 <산전수전>에서는 발목 수술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한다. 지난 6월 왼쪽 발목 수술을 받고 40일이 흘렀다. 지금은 초기 재활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사실 재활 치료도 간단치 않았다. 병원 자체가 프로 스포츠 선수들도 찾아오는 유명한 정형외과라서 예약 및 대기 환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딱 한 차례만 재활 치료를 받았다. 그래도 수술 이후 발목에 힘이 없어 자주 삐끗할 것 같은 불안정성이 심했는데 지금은 조금 안정적이어졌다. 다만 수술 이후 4주 동안 깁스와 보조기를 착용하고 걷고 있음에도 발목의 경직도와 통증이 여전한 편이다. 오는 8월21일에는 오른쪽 발목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그동안 양발 통증으로 인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극심한 통증으로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양발에 깁스를 하게 되면 대학원 다음 학기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울 게 불보듯 뻔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2개 대학원(성균관대 법학 석박사통합과정과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 모두 휴학하기로 했다. 좀 더 빨리 세상에 나가 내 또래들처럼 꿈을 펼쳐보고 싶은 조급함이 있는 터라 휴학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처음엔 주간 수업을 듣고 있는 세종대만 휴학하고, 야간 수업을 듣는 성대는 학기를 등록해보는 방식을 고민했지만 이번엔 주치의와 부모님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정말 조급함을 잠재우는 것이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해병대 부사관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험난한 개인 사업의 경험을 겪다보니 내 또래 친구들보다 늦은 나이에 학부를 졸업했고 30대가 돼서야 대학원에 진학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했다. 시작이 조금 늦을 뿐 또래들 보다 내가 못 나지 않았고 부족할 것도 없다고 늘 상기하고 다짐했다. 막상 친구들의 취업, 승진, 결혼 등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고 학생 신분이라 비용 내는 게 부담스러워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도 기피하게 됐다. 호텔관광 분야와 법학 분야 두 곳에서 박사까지 마치고 대학교 강단에 올라 수업을 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대학원 과정을 끝내고 싶었던 탓에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줄도 모르고 무리를 했다. 2022년 초에는 암 수술을 받고 1~2년 추적 관찰을 위한 요양 권고를 받았음에도 학업을 이어나갔다. 돌이켜보면 학부 2학년으로 복학했던 2018년부터 지금까지 학업, 자격증 취득, 각종 자기계발에 있어서 단 한 순간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맘 편히 쉬어보지 못 했던 것 같다. 학부 4학년 때는 조기 취업으로 학업과 직장을 병행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 진학을 감행하기도 했다. 나는 대전에 있는 배재대 졸업생이다. 지방 4년제 사립대 졸업생이다보니 솔직히 더 유명하고 알아주는 대학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성대와 세종대로 진학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도 결국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모두 과도한 욕심일 수밖에 없다. 학업 도중 온갖 병원 입원과 수술을 겪는 과정 동안 뼈져리게 깨달았다. 암수술 이후에도 미련하게 관광학 석사를 빨리 끝내고 싶어서 무리수를 뒀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여름방학부터 2학기까지 6개월의 시간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만큼 오직 재활 치료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내년에 복학하면 두 전공 분야에 대한 연구 주제를 진지하게 탐색하는 등 다시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나의 찬란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산전수전> 다음편은 오른쪽 발목 수술까지 마치고 양쪽 발목 재활 치료가 완벽하게 끝난 뒤에 이어가보려고 한다. 아마도 연말이나 연초쯤이 될 것 같다. 평범한미디어 독자들과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약하며 무더운 여름 건강 챙기시길 바란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6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지난 글에서 예고했듯이 6월말 대학원 1학기가 끝나고 바로 왼쪽 발목 수술을 받았다. 법학과 관광 두 전공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대학 교수가 되고 싶은 나의 목표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이 바로 건강 문제다. 온몸이 종합병원 수준인데 하나씩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미션이다. 첫 단계가 발목 수술인데, 입원해서 여러 검사들을 받고 MRI 재촬영을 해봤더니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인대 초음파와 CT 촬영할 땐 몰랐는데 발목 인대 파열 정도가 꽤 깊었다. 발목 내측 거골의 연골까지도 파열돼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른쪽 발목 역시 연골 파열 소견을 듣게 됐다. 다만 주치의는 양쪽 발목을 동시에 수술하기 보단 파열 정도가 심한 왼쪽 발목부터 먼저 수술해서 재활과 회복 경과를 보고, 2~3개월이 지나서 오른쪽 발목을 수술해보자고 권했다. 왼쪽 발목 수술은 2가지로 이뤄졌는데 전거비 인대 및 종비 인대 봉합술과, 내측 거골의 연골 변연절세술이었다. 수술은 잘 마쳤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통증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병실로 이동할 때 무통 주사를 맞으며 옮겨졌는데 하반신 척추 마취로 인해 4시간 가까이 머리조차 들지 못 하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런데 무통 주사 약발이 약했는지 수술 당일에는 통증이 극심해서 새벽 내내 끙끙 앓았고 잠을 설쳤다. 주치의 말을 듣지 않고 내가 원했던대로 양쪽을 동시에 수술했다면 정말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원래는 발목 수술 다음날 특별한 통증이 없으면 퇴원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하루 더 병원에 있으면서 케어를 받고 싶었다. 그만큼 통증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고 퇴원했는데 당분간 반깁스와 목발 신세다. 수술은 서울에서 받았지만 좁은 자취방에서 홀로 있긴 좀 그래서 전남 함평 고향으로 내려와서 요양을 하기로 했다. 본가에선 가만히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화장실에 가고 밥을 먹는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간단치 않았다. 집 안에서 이동할 때조차 아기 배밀이 하듯 엉덩이로 밀어가며 몸을 옮겼다. 매번 깨닫게 되지만 수술 받고 회복하는 기간을 보낼 때마다 “역시 사지육신 멀쩡히 건강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또 다시 체감했다. 목발 짚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경과 체크를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왔는데 그 과정에서 자리 양보를 한 번도 받지 못 했다. KTX 대합실과 지하철에서 그 누구도 목발 짚고 힘겹게 서있는 나에게 자리 양보를 해주지 않았다. 계속 서있는 게 힘들어서 “죄송한데 제가 발목 수술을 해서 목발을 짚고 있는데 자리 양보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부탁의 말을 건네기도 해봤지만 개무시를 당했다. 너무나 야속했다. 몸도 아픈데 마음마저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그나마 나는 재활치료만 잘 받으면 다시 비장애인으로서 아무런 문제 없이 보행할 수 있겠지만 걷지 못 하는 장애인들은 평생 이런 상황과 맞닥뜨려야 할텐데 얼마나 괴로울지 새삼 그들의 아픔에 작은 공감이 됐다. 그리고 이중학적(성균관대 법학 석박사통합과정과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 첫 학기 성적이 나왔다. 병원에서 확인했는데 좀 실망스러웠다. 성대는 9학점 평균 4.17점, 세종대는 12학점 평균 4.0점을 취득했다. 돌이켜보면 이번 학기 내내 아픈 몸으로 정말 숨 가쁘게 달려왔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많았다. 모든 걸 내려 놓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앞선 학기 성적에 비하면 아쉽고 후회가 남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픈 몸으로 두 대학을 오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분투했기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발목이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심장 판막 문제가 없었다면?”이라는 미련의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고 있긴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몸 잘 추스르고 다음 학기에 더 잘 하면 된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본다. 이제 7월말이다. 왼쪽 발목 깁스는 풀고 발목 보조기를 착용하는 등 본격적인 재활치료에 들어간다. 과거 두 차례 무릎 수술 때도 그랬지만 수술 받을 때보다 재활치료의 과정이 더 험난할 것이다. 치료실에서 다른 재활 환자들이 참기 힘든 고통에 욕하고 소리 지르는 광경을 많이 봤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그래도 다시 건강하게 일상을 맞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재활치료 과정에 임할 것이라고 다짐해본다. 평범한미디어 독자들도 무더운 여름 폭염과 장마로부터 무탈한 나날을 보내시길 기원하며 2주 후에 새로운 글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겠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5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드디어 대학원 이중학적자(성균관대 법학 석박사통합과정과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로서 정신없이 부딪치기만 했던 첫 학기가 끝났다. 지난 1월말 이중학적 합격 발표를 전했던 산전수전(山戰水戰) 5번째 이야기 이후로 평범한미디어 독자들과 5개월간 함께 하는 마음이 들어 험난한 과정을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작이 반이니까 두 대학원에서 조금만 더 희로애락을 겪다 보면 금방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시간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우여곡절들로 가득했다. 직장, 대학원, 건강 문제 등 3가지 중대 과업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돌아가며 날 괴롭혔고 동시에 덮치기도 했다. 물론 직장을 관두고 두 대학원 생활에만 매진하기로 했는데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고 고단했다. 매일 같이 과제를 수행하며 멘탈이 자주 깨졌고 남모르게 많이 울기도 했다. 나는 원래 뭔가에 한 번 집중하면 화장실 가고, 밥 먹고, 잠자는 시간조차도 줄여가면서 일을 끝내기 위해 앉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렇다 보니 이번 학기에도 엉덩이가 짓물러서 종기까지 생겼다. 쓰라리고 아프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하지만 학기 막바지 엉덩이 종기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발목 인대 파열, 돌발성 난청, 심장판막 장애까지 3연타를 얻어맞다보니 학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껏 준비했던 최종 발표 수업에도 출석하지 못 하게 됐다. 좌절감에 휩싸였다. 불안하고 우울했다. 공황이 온 것만 같았다. 담당 교수님께 면목이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머릿 속에는 가요 노랫말처럼 “죽고 싶단 말밖에 난 할 수가 없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부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는 극단적으로 치닫았고 하루종일 허각의 <죽고싶단 말밖에>를 들은 적도 있다. 그래도 실의에 빠져있을 수많은 없었다. 교수님께 강의 불참 사유를 포함 사과 메일을 정중히 보냈는데 다행히도 교수님으로부터 양해를 받아 과제를 제출하고 발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실 한 수업만 빠진 게 아니었다. 또 다른 수업의 담당 교수님께도 같은 메일을 보냈는데 불쾌하셨던 것인지 ‘읽씹’을 당했다. 하필 그 교수님이 나의 논문 지도 교수님이다. 그래서 더 실망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른다. 앞이 캄캄하고 남은 학기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첫 학기부터 지도 교수님께 찍힌 것 아닌가. 성대에서도 쉽지 않았다. 수업별 과제를 제출하고 발표도 무리없이 하긴 했지만 충분히 양질의 내용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발표를 할 때마다 교수님들께 깨지고 또 깨졌다. 날카로운 지적을 많이 들었고 그 화살이 내 가슴에 꽂혔다.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서글프다. 그래도 내 선택에 후회는 없기에 그저 받아들인다. 좀 더 건강관리를 잘 했어야 했다. 처음부터 욕심 부리지 말고 신청 학점을 적절히 조절했어야 했다. 두 대학 토탈 21학점이나 들었는데 학부생도 아니고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으로선 그야말로 살인적인 일이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이번 1학기에서 혹독한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남은 학기들에서는 신청 학점 균형과 건강 관리를 이악물고 챙겨야겠다. 지난 14번째 이야기에서 6월 말 발목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고 알려드렸다. 그래서 수술 마치고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격주간 연재했던 산전수전을 한 텀 쉬어가고자 한다. 폭염과 장마가 번갈아가며 우리를 괴롭히겠지만 건강 잘 챙기시고 7월말이 되면 다시 돌아올테니 독자들께선 잊지 말고 찾아와서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길 부탁드린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4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이중학적자(법학 석박사통합과정과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로서 처음 맞은 학기 말 과제의 양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더불어 수술을 앞둔 양쪽 발목의 극심한 통증으로 인하여 최근 잠을 잘 자지 못 하고 설쳤다. 그래서 산전수전 칼럼을 한 텀 쉬었다. 쉬면서 악플 사태 이후 어떤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드릴지 고민을 좀 해봤다. 나란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으며 또 어떠한 삶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는지 깊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먼저 나는 나의 과거와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죽도록 괴롭고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모든 선택과 경험에는 그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다. 결국 나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로인해 겪게 된 파란만장한 인생 경험들은 하나같이 소중하고 전부 나의 내공으로 쌓여 있다. 산전수전을 읽는 독자들도 지금 너무 힘겹더라도 훗날 인생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여기고 슬기롭게 버텨내셨으면 좋겠다. 다들 아시다시피 나의 건강상태는 한 마디로 종합병원이다. 당장 나를 괴롭혀웠던 발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술을 잡았는데 구체적인 날짜가 확정됐다. 이번 학기를 마치는대로 6월 말 발목 수술을 받게 된다. 하루 전 입원해서 MRI도 찍고 혈액 검사도 받아야 하는데 돌이켜보면 조금 두려웠다. 대학원 생활을 잠시 내려놓고 학기 도중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나 고민도 했다. 막상 이중학적 첫 학기가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잘 버텨왔고, 수술 날짜까지 정해지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동안 발목 통증이 심각했는데 수술 후에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사실 몸 상태가 100% 완벽하더라도 두 전공 대학원 과정을 동시에 밟는 과업은 만만치 않다. 무척 고단하고 벅찬 일이다. 그런데 발목 문제를 비롯 온갖 건강 적신호로 인해 병원에 불려다녀야 했으니 고통이 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학기를 마무리하게 되는 만큼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게 마지막까지 잘 챙기도록 신경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발목 수술은 20일도 안 남았는데 아직 과제와 발표 등이 남아 있다. 독자들의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린다. 발목 수술 이후 여름방학 초입에 있을 나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7월이 넘어서 들려드리게 될 것 같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넓은 아량으로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건강히 수술 잘 받고 새로운 인생 에피소드로 금방 돌아오겠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3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얼마전 내가 쓴 글에 악플이 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저는 산전수전을 겪은 분이 자전적으로 글을 쓰신다기에 대단한 프로필을 기대하고 왔는데, 30대 대학원생이라 과장 광고에 속은 불쾌한 느낌이네요. 충격을 먹고 이내 바로 캡쳐해서 오랜 죽마고우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에게 보내서 고민 상담을 했다. 윤 기자는 “그런 댓글들은 신경 쓸 것 없다. 어그로를 끄는 악플러들이 생각 외로 많다”고 했고 “이러한 글은 공인이나 유명인처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고 표면적으로 대단하게 보이는 사람만이 써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해당 댓글을 작성한 사람은 너의 모든 글들을 읽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고도 했다. 일단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악플러가 그렇게 쓰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악플러처럼 누군가는 나의 삶이 과장 광고와 같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보잘 것 없고 하찮음에도 너무 과장 광고를 하고 있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되묻고 싶다. 대단한 사람만 글을 쓸 수 있는가? 실제로 대단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대단하다고 여기며 자존감을 드러내면 안 되는 건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기준이라도 있는가? 성공의 삶은 또 무엇인가? 적어도 대기업에 입사하고, 유명한 정치인이 되고, 인기 많은 연예인이 되어야만 성공한 삶이라고 평가 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30대 대학원생을 과장 광고와 같다고 비난할 정도라면 과연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30대 대학원생이 산전수전을 겪으면 얼마나 겪었겠냐는 비아냥을 한 셈인데 당신은 인생의 나락과 밑바닥에서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나는 인생의 암흑기를 빠져나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지금 내 인생은 현재진행형이자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레일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타인의 서툰 글을 읽고 “불쾌하다”고 악플 달고 조롱하는 사람보다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해볼 수 있다. 사실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해서, 치열하게 살지 않았고 고생을 덜 했다고 해서,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로부터 불쾌하다는 비난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설령 타인에게 읽혀지기 위해 먼저 글을 썼다고 해도 아무 댓글이나 달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안 그래도 발목인대파열로 인해 수술을 앞두고 있고 다음 학기 때 휴학을 해야 해서 마음이 심란한데 이런 악플을 접하게 되어 더더욱 낙담하게 됐다. 나의 인생 고백을 다룬 산전수전 기획을 애독하는 독자들 중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소수라고 할지라도 날 보고 나약하다고 비난하는 목소리에 상처를 받는 성격인 것 같다. 온라인 세계에서 익명성 뒤에 숨어 타인을 욕하는 삶은 비루하다. 그런 사람들보다 더 잘 살고 싶고, 잘 살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걸어가야 겠다.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누군가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인생이란 것이 꼭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와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승승장구 하고 평생 상향 곡선일 것만 같은 인생도 지구 맨틀을 뚫고 한 없이 추락할 수 있다. 매번 하향 곡선일 것만 같은 인생도 없고 언젠가 해뜰날을 맞이하기도 한다. 내가 볼 때 나는 동나이대 다른 친구들보다 많은 실패와 좌절을 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인생이 잘 풀리더라도 우쭐할 필요가 없고, 지금 당장 안 풀리고 정말 죽도록 괴롭다고 해도 좌절하고만 있을 필요가 없다. 악플을 전화위복 삼아 내 인생의 전환점으로 가져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들 타인의 삶에 악플을 투하하지 말길.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2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어느덧 이중학적(법학 석박사통합과정과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으로 맞이한 첫 학기가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 종강까지 5~6주 밖에 남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암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중학적의 길에 올라탄지도 10주가 지난 셈이다. 시간 참 빠르다. 난 잘하고 있는 걸까? 의구심이 든다. 요즘 나는 번아웃과 맞닥뜨렸다. 인간관계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산전수전에서는 목표를 위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가 왜 번아웃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풀어볼 생각이다. 우선 산전수전 애독자들이라면 알고 있을 나의 인생사 중 군복무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워낙 파란만장했다는 점을 거론하고 싶다. 산전수전 1편부터 7편까지의 내용인데,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의 100% 이상 초과해서 사용하다보니 안 지칠 수가 없다. 특히 제대 이후 동남아로 가서 스쿠버다이빙에 푹 빠져 다이빙 리조트 사업을 계획했다가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시달렸던 일련의 폭풍우가 휘몰아친 이후로, 내 인생은 악바리 근성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다. 빚을 갚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온갖 무리한 막노동을 감내했던 그때부터 내 몸은 여기저기 종합병원 환자가 됐다. 급한 불을 끄고 대학교로 돌아왔지만 조바심은 가시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 복학한 만큼 어린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과했으며 학점에 집착했다. 돌이켜보면 후배들과 스터디룸에서 밤새 공부했던 추억 등 좋은 기억도 많았다. 사업 실패와 빚 청산으로 고생한 나의 20대를 만회하고 싶었던 건지, 나는 법학 단일 전공으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 관광학(글로벌관광호텔학)을 복수전공으로 삼았다. 이왕 할 바엔 둘 다 박사학위를 취득해보자! 그래서 대학 강단을 누비는 실력있는 교수가 되보자! 목표를 세웠으면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그러나 그 길이 너무도 험난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장생활과 두 전공 학업을 교차해서 병행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탈이 났다. 2024년 1학기인 현재 나는 낮엔 세종대 대학원(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 밤엔 성균관대 대학원(법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이중학적 신분으로 다니고 있다.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직장을 관둔 상태이며 그 대신 세종대 연구소(관광혁신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전 11편에서 생생히 묘사했듯이 몸이 말썽이라 병원에 불려다니다 연구소 일을 못 하게 됐다. 누적된 피로와, 건강으로 발목잡힌 상황이 만나 지금의 번아웃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좋아서 시작했던 법학과 관광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예전만 못 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해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얼개를 구상하지 못하고 있다. 누구보다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목표와 신념이 살짝 흔들리고 있다. 이 길이 맞는 건가? 자꾸 나약한 마음만 든다. 마침 이상하게도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다 잘나가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오는 것 같다. 벌써 직장에서 자리잡아 대리 이상의 직급으로 승진해서 고연봉을 받고, 집과 자동차를 마련했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낳아 키우고 있는데 난 뭐 하고 있지?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고 작아진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기로 했음에도 쉽지 않다. 오직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하루하루 조금 더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인간관계도 너무 지친다. 사기꾼에게 당하고 PTSD가 생겼는지 인간관계를 기피하게 됐고, 좋은 사람에게도 좀처럼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문제점을 인지하고 좀 바꿔보려고 노력했지만 돈이 오가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가식적이란 인상이 자리잡았다. 오직 비즈니스와 사회생활을 위한 사람들의 접근이, 눈에 보여서 호의를 받으면 의심부터 품었다. 받으면 무조건 돌려주는 것부터 생각했다. 대가 없는 호의는 없고 오직 기브 앤 테이크의 룰이 지배하는 잔인한 세상에 지쳐갔다. 피해의식인지 모르겠지만 거쳐온 직장들에선 하나 같이 날 비난하고 뒷담화하며 앞과 뒤가 다른 사람들을 마주쳤던 것 같았고 그 때문에 된통 마음고생을 했다. 비즈니스적이고 가식적인 인간관계에 신물이 났다. 내가 이상한 건가? 오랜 벗들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고향 친구이자 초중고 동창인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를 비롯 대학 친구들에게 톡을 보냈다. 공감과 위로의 힐링을 얻었는데 1992년생 30대 초반의 내 또래들은 모두 사회생활에 지치고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하소연 모드가 됐다. 수다의 결론은 어렸을 적 시골에서 학교 다니며 철부지로 지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로 맺어졌다. 하교 후 축구공 하나로 해가 질 때까지 운동장을 누볐던 그때가 참 순수했던 것 같다. 그때가 그립다. 어느 순간 주변에 계산적인 관계들로만 가득차 숨이 막히지만 그나마 서로 공감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찐친들이 있어서 위안이 된다. 결심했다. 2024년 2학기에는 일단 멈추기로 했다. 두 대학원을 모두 휴학하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정체성과 방향성을 다시 탐구해보기로 했다. 나란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왜 두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하고자 하는가? 박사학위를 따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이런 물음표들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나아가 건강을 되찾고 싶다. 당장 다음달에 웨딩업체에서 근무하다 파열됐던 왼쪽 발목 관련 수술이 잡혀 있다. 무엇보다 이번 학기를 잘 마무리짓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독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고 싶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1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지난번 산전수전에서 수없이 이야기해왔는데 나는 여전히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 적신호가 켜졌다. 정말 종합병원 수준이다. 만성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최근에는 3가지로 고생하고 있다. 올초 6개월간 일하고 관뒀던 웨딩업체에서 발목 부상(인대 부분 파열)을 당했고, 돌발성 난청으로 오른쪽 귀가 잘 안 들리고 있으며, 심장판막 장애도 심각해졌다. 현재는 일을 관두고 법학과 관광학(호텔관광경영학) 대학원 생활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버겁다. 매주 2~3회 이상 병원에 가는 신세가 되다 보니 세종대 관광혁신연구소 업무에 소홀해졌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어느정도 급여를 약속 받고 연구소에 들어갔기 때문에 잦은 결석은 지도교수님의 지적을 듣기에 충분했다. 어떻게든 연구소 생활과 병원 치료를 병행해보려고 했는데 교수님께선 수시로 자리를 비우느 모습이 좋지 않다며 건강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연구소에 나오지 말라고 권고했다. 권고 사직 아닌 권고 휴직? 그렇게 표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정말로 내 건강 걱정을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밥값 못 할 거면 이만 나가달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졌다.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건강이 우선이다. 치료에 집중하자. 사실 마음 속엔 속상함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건강 문제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분하고 억울하다. 어떻게 보면 감당하지도 못 할 대학원 이중학적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나 자신이 자초한 일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올초부터 내 건강 상태가 대학원 이중학적 생활을 버텨낼 정도로 온전하지 못 하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감행했다. 기적은 없었다. 건강은 계속 악화일로였다. 돌이킬 수가 없다. 최대한 빨리 법학과 관광학의 박사학위를 취득해서 교수가 되고 싶었는데 결국 탈이 났다. 한탄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당분간 연구소에 출퇴근할 수 없게 된 만큼 푹 쉬면서 건강 회복에만 힘을 쓰려고 한다. 물론 집에서 개인 연구를 하긴 하겠지만 무리하지 않을 생각이다. 건강한 상태로 조기에 연구소로 복귀하는 것이 목표다. 우연히 인스타그램 ‘성공티켓’ 계정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보게 됐다. 오바마는 55세의 나이에 은퇴했지만 트럼프는 70세의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고. 일론 머스크는 28세의 나이에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빌 게이츠는 31세의 나이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명심하라. 때론 주변 사람들이 당신보다 앞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당신보다 뒤처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당신은 뒤처지지 않았고 앞서지도 않았다. 당신은 당신의 시간에 맞춰 걷고 있다. 지금 내 상황과 맞물려 큰 위로가 됐다. 안 그래도 두 전공 분야에 대한 학문적 깊이가 약해서 연구 실적을 못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었던 터라 큰 격려가 됐다. 그래! 나는 뒤처진 게 아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해봤어?”라는 유명한 말 외에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좋다. 원래 인생은 시련과 위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시련을 극복해서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두 전공 분야의 박사학위 학사모를 쓰고 말 것이다. 그 이후에도 게으르지 않고 다채로운 학술 연구를 진행해보고 싶다. 잠시 연구소에 나가지 못 한다고 해서 불안해할 필요 없다. 사실 좀 불안하지만 금방 복귀해서 다시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10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2024년도 4분의 1이 지나갔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산전수전(山戰水戰)도 벌써 10번째인데 이번에는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있는 주제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독자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나는 법학(석박사 통합과정)과 호텔관광경영학(박사과정)을 이중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다. 법학의 세부 전공은 지적재산권법이다. 특허권(특허법), 실용신안권(실용신안법), 상표권(상표법), 디자인권(디자인보호법)을 총칭하는 개념이 지적재산권인데 관련 법규에 따라 보호되고 있다. 헌법 22조 2항에 따르면 “저작자, 발명가, 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이에 근거해서 지적재산권법이 제정됐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것은 저작권법인데, 생성형 AI를 통해 창작된 2차 저작물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해줄 수 있는지 그 여부를 탐구하고 있다. 나아가 AI의 저작인격권이 가능한 것인지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 얼마전 전남 여수에서 개최될 박람회 주제곡을 공모전으로 선정한 적이 있는데 AI로 만들어진 곡이 1등을 차지했다. 심사위원이었던 김형석 작곡가는 “제법 수작이라 놀랐다”면서도 AI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고백했다. 엊그제 모 기관의 의뢰로 작곡 공모 심사를 했다. 1위로 뽑힌 곡이 제법 수작이었다. 그런데 오늘 주최측으로부터 AI를 사용해서 텍스트만 치고 만들어진 곡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걸 상을 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리고 이제 난 뭐먹고 살아야 되나. 허허. 솔직히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생성형 AI 창작물에 대한 법적 판단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론화 과정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 같은 경우 텍스트만 작가가 쓰고 AI로 그림을 그린 웹툰 작품에 대한 저작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관련 법제도가 미비한 상태에서 AI의 저작권을 섣불리 인정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법학에서는 AI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호텔관광경영학에서는 메타버스를 다루고 있다. 비대면이 일상이었던 코로나 시국 때 아무래도 사람들이 집 밖에 못 나가는 만큼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사회적 관심도가 줄어든 것 같다. 업계 연구자들의 연구 동향을 살펴봐도 메타버스란 키워드가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요즘 메타버스와 AI 등 신기술에 대한 연구 주제만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주제를 탐색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 대학원생으로서 적합한 연구 주제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금방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당대 사회적 이슈와 트렌드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에 뉴스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연구 주제도 매번 수시로 바뀌기 마련이다. 논문을 쓰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탐독하고 머리를 쥐어싸매야 한다. 이러한 고통을 참고 견뎌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강단에 선 선배 연구자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나는 법학과 관광학 2개 학문을 융합한 하이브리드 연구를 해보고 싶은 목표가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 판단해봤을 때 두 학문 분야에 대한 견문이 깊지 않고 아직 확신도 없다. 무엇보다 두 학문을 융합해서 연구를 진행한 선례가 없기에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주변에서도 굳이 왜 법학과 관광학을 융합해야 하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만큼 내가 증명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그렇지만 내게는 둘 다 잘 맞고 흥미로운 학문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라고 해서 길이 없는 게 아니다. 있는 길이지만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래도 나는 돌아가지 않고 직접 돌파해보려고 한다. 무엇이든 처음에는 막막하다. 누군가 가본 길을 만들어내면 다른 사람들이 그 길을 편히 걸어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열심히 개척해볼 것이다. 좀 오버해서 표현해보면 진짜 대항해 시대를 살아간 콜럼버스와도 같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도전 정신과 개척 정신을 잃지 않고 앞으로 직진하겠다. 해병대 부사관으로 군복무를 마쳤는데 그때도 도전 정신으로 버텨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원하지 않은 일을 남들이 다 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 하지 말고, 때로는 과감하게 도전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보길 바란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9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아주 디테일한 인생 고백을 만나보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새해가 시작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개강 이후 한달 정도 지났다. 이번 산전수전(山戰水戰)에서는 이중학적으로 인한 고충을 다뤄보려고 한다. 그동안 이중학적 얘기를 자주 했다. 반년 재직 중이던 회사를 관두고서라도 성취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관광학과 법학 두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일이다. 두 전공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 바로 대학원 이중학적인데 다행히도 정당하게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물론 이 방법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고 대단히 험한 가시밭길과도 같다고 예상하긴 했다. 먼저 다니고 있던 것은 성균관대 대학원(법학 석박사 통합과정)이었는데, 올초 직장을 그만두고 세종대 대학원(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에도 들어갔다. 운 좋게 세종대 지도교수께서 연구소(관광혁신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할 수 있게 기회를 주셨다. 그래서 생활비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매일 같이 출근해서 연구소 업무, 수업 듣기, 퇴근 이후 법학 대학원 수업까지 소화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성대에서 수업이 있는 날이면 세종대(서울 광진구)에서 성대(서울 종로구)까지 이동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걸어가는 시간까지 합하면 1시간이 넘게 걸렸다. 18시 퇴근 이후 지옥철과 꽉 막힌 도로를 견뎌내는 것도 인내심을 테스트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내가 스스로 선택한 방법이다. 매일 피곤해도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고질적인 건강 문제도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다. 이를테면 △소장암 수술 이후 치료과정 △심장판막 역류증 △메니에르 증후군과 돌발성 난청 등 크게 3가지의 건강상 중대 이슈가 있다. 고향이 전남이기 때문에 화순까지 내려가서 병원(화순전남대학교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정기검진을 힘들게 잡은 만큼 서울에서 화순까지 왕복으로 다녀와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연구소와 수업 모두 병가로 인한 결석을 할 수밖에 없다. 미리 양해를 구했지만 다른 연구원들과 교수님께 걱정을 끼친 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더 철저히 이악물고 최선을 다했다. 너무 피곤하지만 절대 졸지 않았고, 과제도 일찍 준비해서 제출했다. 그래도 찝찝했는데 다행히도 첫 째주 세종대 수업에서 부여된 과제 평가를 잘 치렀다. 점수가 꽤 높아서 기분이 상쾌한데 교수님께서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이번 산전수전에선 고난을 이겨내고 좋은 성과를 낸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은 맘이 크다. 성대는 지금 3학기 재학 중이다. 과거에 들었던 교수님의 수업이라 익숙했는데 그에 맞게 대비해서 그런지 교수님도 좋은 연구 주제를 잡았다며 격려를 해줬다. 사실 원래는 석사와 박사를 동시에 하는 것이기 때문에 4+4학기 총 8학기 4년을 다녀야 한다. 그러나 통합 과정이라서 성과에 따라 6~7학기만 들어도 조기 수료할 수 있다. 그리고 석사 논문도 스킵할 수 있고 박사 논문만 통과하면 된다. 얼마전 졸업 요건을 체크해봤는데 작년에 단독으로 써놨던 논문(한국연구재단 등재)과 영어 수업 A로 이수(졸업 영어 시험 합격 처리) 등 미리 챙긴 덕분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년 2025년까지만 순탄하게 간다면 조기 수료가 가능할 것 같다. 논문 제출 자격시험도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일찍부터 준비할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웨딩업체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성대만 다니던 작년보다 현재가 더 바쁜 것 같다. 피로 누적과 건강 문제도 간단치 않다. 허나 절대적으로 내가 선택한 길이다. 후회는 없고 포기도 없다. 법학과 관광학. 두 박사학위를 반드시 취득하겠노라! 스스로 다짐해본다. 사실 두 대학원에는 나처럼 알게 모르게 이중학적 신분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지들이 꽤 있다. 심지어 로스쿨과 법학과를 동시에 다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직장과 병행하는 경우는 예삿일이다. 모두들 목표 달성하는 행복감을 누렸으면 좋겠고 꼭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우리 함께 열심히 해보자.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8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길을 걸어왔고,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생생한 삶의 기록을 기대해주세요.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3월은 학생들에게 새 학기가 시작하는 달이다. 산전수전(山戰水戰) 8번째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 역시 새학기를 맞이했다. 2개 전공 박사과정으로 두 곳의 대학 캠퍼스를 밟게 됐다. 법학(성균관대 석박사통합과정 3학기)과 관광학(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 1학기)인데 후자는 첫 학기라서 긴장이 좀 된다. 무엇보다 어떤 지도교수와 함께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홈페이지로 전임 교수들을 탐색했고 그중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석사 때 관광과 메타버스를 접목해보는 연구를 진행한 바 있었는데 마침 ‘메타버스 관광’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교수님이 있었다. 그분께선 세종대 관광혁신연구소 소장이었으며 연구소 차원에서 메타버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이 당연히 직진했고 ‘오케이’ 답변을 받았다. 기존에 다니고 있던 웨딩업체를 퇴사했던 만큼 생활비가 없어 막막했는데 내게 기가 막힌 기회까지 제공해주셨다. 연구원 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들어와주길 바란다. 연구소에 들어와서 연구에만 매진한다면 RA(연구조교) 장학금과 인건비를 지원해줄게. 물론 교수님께선 내가 타학교 대학원 생활을 병행(이중학적 가능)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달갑게 여기지 않으셨다. 전혀 다른 전공 분야를 동시에 공부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고, 관광학에만 집중해서 논문을 쓰는 것도 버거운데 과연 둘 다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스러웠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교수님께선 나의 이중학적 상태를 받아들여주셨으며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이미 다른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우리 학교에도 벌써 등록을 마쳤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휴학이나 자퇴하라고 말하진 않을게. 다만 연구소에 들어와서 내 제자가 됐으니 우리 연구소 일에 최대한 집중해줬으면 좋겠어. 교수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폐 끼치지 않고 싶다. 부단히 노력하고 연구하겠노라!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계속 되새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법학 공부를 소홀히 할 순 없다. 주간에는 연구소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퇴근 이후에는 법학 공부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다. 과제는 산더미고, 논문 준비도 벅찰 거고, 공부량도 한도 초과일텐데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다. 개인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잘 조율해서 데드라인 안에 과제 제출 100%를 달성해볼 것이라고 평범한미디어 독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한다. 교수님과 관광학 석사학위를 받았던 대학과 지도교수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적잖이 놀랄만한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 〇〇〇 교수가 석사 지도교수였어? 안타깝지만 그분 마카오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그 소식 들었니? 사실 안 좋게 헤어졌어서 석사 졸업 이후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었다. 이런 비극이 있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유족들이 일일이 연락을 돌리지 못 했고 그래서 이제야 알게 됐는데 가슴이 정말 먹먹하고 미어졌다. 머릿 속은 백지상태가 되었다. 안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논문 작성법 abc는 물론, 연구자로서 첫발을 내딛을 수 있는 모든 걸 가르쳐주셨는데 너무나 허무했다. 다수의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도, 학술대회에서 우수 논문으로 상을 탈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조만간 기회가 된다면 찾아 뵙고 응어리진 것을 풀 작정이었다. 이제는 불가능하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좀 더 빨리 용기 내서 찾아 뵙지 못 한 점이 한스럽고 죄송스럽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못난 제자를 용서해주고 편안히 잠드시길.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7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회사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써볼 계획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법학과 관광학(호텔관광경영학) 박사학위 과정에 재학 중이다보니 간혹 학창시절 공부를 잘 했을 것 같다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공부를 못 했다. 수학과 영어를 정말 싫어했고, 좋아하는 사회탐구 과목만 열심히 파는 유별난 학생이었다. 공부에 재능이 별로 없었지만 미친 듯이 노력했다. 이번 산전수전에서는 공부하는 삶을 살게 된 노력의 동기와 배경을 풀어보려고 한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서 채택하지 않은 사탐 과목 법과 사회, 정치, 경제를 선택해서 홀로 인강을 들으며 공부할 정도였다. 그때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은 하나 같이 “혼자 공부하면 절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을 것”이라고 핀잔을 줬지만 나는 고2 때부터 고3 내내 사탐에 한해서는 2등급 아래로 내려가본 적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대학 입시는 국영수 성적이 중요하기에 원했던 공부만 열심히 했던 나로서는 성적에 맞춰 지방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전에 있는 배재대 법학과로 진학했다. 법과 사회를 독학하면서 나름대로 흥미와 관심이 생겨서 법학과를 선택했다. 법학과 생활은 잘 맞았고 1학년 1학기 성적이 잘 나와서 장학금도 받았다. 그러나 2학기에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던 만큼 술 마시며 놀기 바빴다. 특히 해병대 부사관으로 장기 복무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격렬히 놀았던 것 같다. 차라리 휴학할 걸. 2학기 평점이 2점대로 크게 떨어졌다. 해병대 부사관으로 4년간 열심히 복무하고 저축도 할 포부를 갖고 있었지만 군대에서 부상(전후방십자인대 파열과 반월상연골판 파열)을 당했다. 그래서 수술까지 받고 전역할 수밖에 없었는데 7년간 방황하고 다시 돌아온 곳이 대학이었다. 장기 복무하겠다고 큰소리치며 학점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갔기에 그것을 메꾸고자 공강 시간에도 도서관에서 끼니를 떼우며 오로지 공부만 했다. 다시 학점을 4점대로 끌어올렸다. 그 즈음 우연히 듣게 된 관광학 수업이 계기가 되어 복수전공까지 하게 됐는데 전공에 대한 기본 이해도가 낮아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꽤 만족스러운 학점으로 학부를 마쳤다. 관광학 수업을 듣다가 알게 된 조주기능사(바텐더) 자격증을 취득했던 탓에 졸업하자마자 칵테일바 창업을 알아봤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시도하지 못 했다. 그래서 대학원으로 눈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법학이 아닌 관광학으로 배재대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박사과정은 서울권 대학원으로 가고 싶어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정말 밤잠 줄여가며 이를 갈았다. 그 결과 학술대회에서 우수 논문상(대상)을 수상했다. 노력은 정말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고교 성적도 별로고, 지방대로 진학했던 만큼 학벌 컴플렉스가 있었는데 나에게 결정적인 자신감을 심어줬던 시작점이 이때부터다. “꼴찌의 반란”이라는 각오로 더욱더 열심히 매진하게 됐는데 그 결과 성균관대 법학과 석박사통합과정에 합격했다. 스스로도 될까? 그런 마음이 좀 있었지만 자기 최면을 걸어가며 열심히 준비해서 원서를 넣었는데 덜컥 합격해버렸다. 사실 그 당시에도 날 무시하는 사람들의 수군대는 말들이 있었다. 니가?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니야? 학술대회에서 상 받았다고 거만해진 것 같은데? 성대는 너랑 어울리지 않아! 불합격할 것 같아. 합격한 뒤에도 그들은 “운이 좋아서 합격한 거지 강의 및 과제 진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결국 자퇴하겠지”라고 비아냥댔다. 그래서 더 고삐를 쥐고 노력했다.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해가면서도 논문도 쓰고, 학점도 높게 유지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날 헐뜯는 사람들이 주변에 나타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중학적 관광학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하려고 하니 “무슨 이중학적이냐? 지금 하는 거나 잘해라! 양쪽 모두 망하게 될 거고 허황된 꿈 꾸지 말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현재는 세종대(호텔관광경영학)와 성균관대(법학)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직장은 관뒀다. 학업에 올인하고 싶다. 길고 짧은 건 모르는 일이고 대봐야 안다. 난 또 자기 암시를 걸고 있다. 스스로 노력하고 끝없이 도전하고 자기계발을 위해 힘쓰는 자는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궁극적으로 어떻게든 법학과 관광학 서로 다른 두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 내가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공부머리는 언제 어떻게 트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 역시 군 전역 후 학술 연구에 재미를 붙이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입과 진로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혹시 있다면 좋아하고 잘 맞는 분야를 선택해서 공부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나에게 잘 맞는 전공 분야를 자연스럽게 좀 더 일찍 접할 수 있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이 무조건 성적에 목을 매는 입시 위주라서 안타깝다. 청소년들이 자기 적성을 발견해서 밟아나갈 수 있는 그런 교육 시스템으로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6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회사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써볼 계획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벌써 설 연휴가 끝났고 날씨마저도 조금씩 봄이 찾아오는 듯 조금 따뜻해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봄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산전수전 6번째 글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드릴까 고민했는데 건강 문제를 다시 꺼내보려고 한다. 지난편에서 소장암 수술 이력과, 올 새해벽두부터 청천벽력 같은 심장판막 역류증 진단을 받아 고생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렸는데 이게 다가 아니다. 나의 건강 적신호는 여전히 깜빡이고 있다. 언젠가부터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이명과 이충만감이 느껴졌다. 심한 어지럼증과 두통도 동반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왔다. 급하게 동네 이비인후과로 갔다. 담당 의사는 내게 “작년 9월 무렵 이관염으로 내원했을 때보다 급격하게 청력이 저하되어 있고 30대 남성 평균 청력에도 못 미친다”고 진단해줬다. 돌발성 난청이 의심되며 진료 의뢰서를 써줄테니 상급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길 바란다. 특히 돌발성 난청은 골든타임 2주 이내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청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일주일 빨리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의뢰서를 들고 이비인후과를 나서는데 정말 참담했다. 왜 또 나한테? 좌절감이 들었다. 그래도 칠전팔기! 정밀검사 받고 제때 치료를 받으면 금방 나아지겠지.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렇게 1월말 상급 병원으로 향했다. 순음청력검사와 어음명료도검사 등 각종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돌발성 난청이 맞는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다. 아뿔싸 너무 정신없이 바빠서 골든타임 2주를 놓쳤던 것이 뼈아팠다. 골든타임 2주를 넘겼다. 예전처럼 청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그래도 고용량 스테로이드제를 2주분 처방해 줄테니 복용해보고 그때 가서 다시 검사해보자. 마치 시한부 선고와도 같은 2주! 2주간 스테로이드제를 꼼꼼히 복용했다. 불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청력이 나아지길 소원하며 정말 신이란 신은 다 찾았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 했다. 추가적인 고용량 스테로이드제 처방이 무소용일 만큼 청력 회복의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됐다. 엎친데 덮친격 ‘메니리에르 증후군’도 의심된다고 했다. 이명 완화약을 처방 받고 병원 문을 나왔는데 정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여기까지 설 연휴 직전의 일이다.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만나야 하는데 내 건강 문제를 또 말씀드려야 하는 건지 막막했다. 서러웠고 눈물이 났다. 청력과 함께 발목 인대도 문제를 일으켰다. 작년 10월 근무 도중 왼쪽 발목 인대가 부분 파열되는 사고를 당했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 했었다. 확실히 완치하지 못 했던 탓에 통증이 다시 도졌다. 정형외과에 방문했는데 의사가 관절염으로 인한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는 소견을 냈다. 나만 삼재란 삼재는 다 겪는 것일까? 불행과 비극은 항상 나의 몫일까? 정신 차리고 수습을 해야 한다. 연초부터 이중, 삼중, 사중의 건강 문제가 겹쳤으니 더 이상 현재 다니고 있는 웨딩업체 근무와 대학원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웨딩업체 근무는 2월까지만 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물론 돈을 벌어야만 한다. 학비가 한 두푼이 아니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다간 내 몸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비명횡사의 두려움마저 엄습하는 지경이니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 학업(법학 석박사통합과정+호텔관광경영학 박사과정)은 지속하기로 했다. 사실 이런 몸상태로 두 대학원에 다니는 것도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업 만큼은 나중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이어가고 싶었다. 절대 중단하지 않고 싶다. 평범한미디어 독자들의 힘찬 응원이 필요하다. 상이한 법학과 관광 분야에서 동시에 박사학위를 따려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대신, 격려와 박수를 부탁드린다. 양력과 음력 모두 새해가 밝은지 오래됐지만 독자들 모두 올 한해 복 많이 받길 바라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길 빌겠다.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5번째 글입니다. 김철민씨는 법학과 관광을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회사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30대 청년입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주제로 글을 써볼 계획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칼럼니스트] 드디어 법학과 관광학 박사과정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 산전수전 5번째 이야기는 얼마전 1월10일 치러낸 관광학 박사과정(호텔관광경영학) 입시 면접 후기와 결과를 공유하고자 한다. 따끈따끈한 이야기인데 지난편에서 누차 설명했듯이 나는 법학도이자 관광학도다. 구체적인 사연은 지난 글들을 다시 살펴보면 될 것 같고 먼저 다들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대학교 학부는 이중학적이 허용되지 않지만 대학원에서는 이중학적이 가능하다. 사실 나도 몰랐다. 그래서 이미 재학 중인 대학원(법학 석박사통합과정)과, 입학을 희망하는 대학원 양쪽에 일일이 문의를 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서둘러 원서를 넣었다. 면접장에는 교수 3명과 지원자 3명이 있었다. 3대 3 면접인데 누군가를 몰아붙이려는 압박 면접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자기소개와 지원 동기, 연구계획을 차례대로 말하고 교수들의 질문에 답변을 했다. 아뿔싸! 나 말고 다른 2명은 같은 대학교 같은 과에서 학석사를 마친 지원자들이었다. 자기소개 하는 걸 들어보니 카페 운영과 항공사 승무원 등 관광계열에서 나보다 실무 경력이 더 많고 월등한 것 같았다. 그래서 괜히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동문이니 두 사람만 편애하는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교수들의 질문이 나에게만 유독 날카롭고 공격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불안하고 긴장감 넘치는 면접 시간 15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불합격하면 어떡하지? 걱정에 사로잡혔다. 똥줄이 탔고 내내 마음을 졸였다. 합격자 발표는 1월22일 오전 10시. 8시부터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결과는..... 합격!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당당히 합격증을 받아서 SNS에 게재했다.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자부심이 들었다. 2024년에는 법학과 호텔경영학 박사과정을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고 더불어 직장생활도 해야 한다. 인생에서 매번 그랬던 것처럼 내가 선택한 길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예상치 못 한 시련과 역경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 것이다. 나는 완벽주의자다. 목표와 성취를 중시한다. 그래서 늘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며 다짐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발전해야 한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완벽해야 한다. 가족들이나, 나와 죽마고우인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등 절친들로부터 아래와 같은 말을 많이 들었다. 자기자신에 대한 잣대가 너무 엄격한 것 아니냐? 그렇게까지 혹독하게 채찍질 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짊어진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놔도 괜찮다. 하지만 나의 신념은 이런 거다. 남에게는 친절하고 상냥하더라도 내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단호해야만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성공을 성취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앞으로도 나는 목표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갈 것이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거다. 그럴 때마다 과거의 고난을 떠올리며 이겨낼 것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산전수전의 과정을 곱씹으며 극복해낼 것이다. 오직 나의 목표 하나만 보고 전진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우연히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접한 적이 있다. 토끼가 거북이한테 패배한 이유는 상대방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반면 거북이는 자신의 목표에 집중했기 때문에 토끼를 이길 수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인생을 상대평가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절대평가다. 너무 와닿았다. 깊은 깨우침을 줬다. 그렇다. 인생은 절대평가다. 남들이 뭘 하든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 그동안 남들과 비교하면서 더 성공하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혔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삶을 살아가면 된다. 내 목표만 바라보면 된다. 앞으로 산전수전 연재를 통해 이중학적 학업 스토리와 고군분투의 과정을 생생하게 소개해보려고 한다.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드린다.